논단과 현장

 

한류를 바라보는 일본사회의 두 가지 시각

 

 

이따가끼 류우따 板垣龍太

일본 도오시샤대학(同志社大學) 전임강사. 조선근대사회사 전공. 주요 저서로 『植民地近代の視座』(한국어판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공저) 등이 있음. itagaki@tka.att.ne.jp

오구라 키조오 小倉紀藏

일본 토오까이대학(東海大學) 외국어교육쎈터 조교수. 한국철학 전공. 주요 저서로 『韓流インパクト(한류 임팩트)』 등이 있음. kizo@ii.em-net.ne.jp

 

 

편집자의 말

한국 문화력의 실체와 가능성

 

지난 2월 24~25일 일본 쿄오또(京都)에서 한류를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 ‘동아시아로 발신되어 확산하는 한국 문화력의 가능성’이 열렸다. 『창비』 편집진은 서울에서 창간 40주년 축하행사를 마무리짓고, 동아시아 지식인 연대의 한 장으로 마련된 이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쿄오또로 향했다. 동아시아에서 한류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이미 수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 체계적인 학문 연구와 조사가 충분하지는 못하다는 느낌이다. 『창비』 역시 지면에 짤막한 글들을 게재한 적은 있지만, 한류 현상과 정면에서 대결하지는 못했던 차여서 이번 행사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본지와 함께 이 심포지엄을 주최한 기관은 리쯔메이깐대학(立命館大學) 코리아연구쎈터이다. 쿄오또에 자리잡은 좌파적 전통이 강한 이 대학의 명성을 더욱 값있게 하는 것은, 대학 부설 코리아연구쎈터의 책임자 서승(徐勝) 교수의 이름이다. 주지하듯이 한국현대사의 한 페이지는 서승과 그의 형제들로 장식되어 있다. 아직도 불행한 역사의 상흔을 얼굴에 지니고 있는 서승은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 활력있고 누구에게도 스스럼이 없었다. 이 심포지엄 역시 그의 강한 추진력과 광범한 네트워크의 힘이 없었다면 성황리에 진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3백여명의 청중이 발 디딜 틈 없이 행사장에 운집한 첫째날은 테라시마 지쯔로오(寺島實郞)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과 백낙청(白樂晴) 『창비』 편집인의 기조강연이 있었다. 지면사정상 창비 독자들에게 친숙한 백낙청의 강연(그의 신간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에 수록됨) 대신, 테라시마의 내용을 전하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자. 그는 일본이 20세기의 4분의 3 이상을 앵글로쌕슨 동맹(영일동맹 20년, 미일동맹 50년 이상)에 의지해 지내왔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한다. 오늘날 일본의 대외무역에서 미국에 비해 중화권이나 아시아권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데서도 보이듯이, ‘몸’은 아시아에 있으면서도 ‘머리’는 미국에 가 있는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그는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촉구한다. 이제는 현실적 이익을 위해서라도 더이상의 미국 위주 정책은 재고해야 한다는, 일본 주류사회에서도 비중있는 이 인사의 발언은 일본의 현 대외정책이 좌파뿐만 아니라 더 광범위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지닌 진영에서도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진행된 이튿날 심포지엄도 참관자의 숫자나 토론의 열기가 전날 못지 않았다. 한국측에서는 「한국문학의 매력과 동아시아」(한기욱) 「한류와 동아시아 문화의 미래」(이욱연) 「동아시아 협력과 한국의 역할」(이남주) 「한류와‘친밀성의 정치학’」(김현미) 등이 발표되었고, 일본과 미국의 한국학연구자, 문화연구가, 국제정치학자 등 10여명의 개성있는 발표가 어우러졌다.

이날 제기된 여러 쟁점 중에 한류의 실체 논쟁이 있다. 한류란 아시아 각국의 문화수용자들에 의해 ‘구성’된 비실체적인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즉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자국의 발전단계에 맞게 요구되는 어떤 사회적 양상, 가치관, 욕망 들이 한류라는 외부적이고 우연적인 요소에 투영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따라서 그 욕망을 투사하는 문화적 거울은 시기에 따라 한류일 수도 있고, 혹은 일류(日流)나 화류(華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자연히 한류의 실체보다는 한류의 수용과 소비 양상에 주목하게 마련이다. 이런 견해는 한류에 고정불변의 본질성이 존재하고 이것이 절대화·추상화되어 민족우월주의나 문화제국주의, 천박한 상업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류를 상대화하고 해체하는 것에 방점을 두는 입장은 지금 완연한 흐름으로 자리잡은 한국발 문화력의 새 기운을 어떻게 바람직한 동아시아 역내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소홀할 수 있다. 더욱이 한류가 한국사회의 역동성과 민주주의적 활력에서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을 적절히 상기한다면, 한국의 문화력은 동아시아 변혁의 기폭제가 될 한반도의 개혁에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런 방향으로 작용하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류라는 새로운 메씨지의 발신자이자 동아시아에 울려퍼져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문화적 메아리의 수신자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감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중요한 주제는 지금 일본사회에 나타나는 ‘한류’와 ‘혐한류’라는 두 가지 흐름이다. 혐한류 현상에 대한 분석적 접근을 통해 우리가 동일한 논리구조에 얽혀드는 것을 경계하고,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듯 보이는 이 두 흐름이 서로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고 의미있는 일이다. 여기에 실린 이따가끼 류우따의 글과 오구라 키조오의 글은 이 주제와 관련해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독자 여러분들의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리라 믿는다.

ㅣ염종선ㅣ

 

 

혐한류의 해부학

 

이따가끼 류우따

 

 

2006년 2월까지 야마노 샤린(山野車輪)의 『만화 혐한류(マンガ嫌韓流)』(2005년 7월 출간)의 공식 판매부수는 45만부였다. 그리고 2월 22일, 즉 2005년에 시마네현(島根縣) 의회가‘다께시마(竹島)의 날’을 제정한 지 딱 1년 만에 『만화 혐한류2』가 발매되었다. 이 만화는 곧바로 인터넷서점 일본 아마존(www.amazon.co.jp) 판매량에서 상위를 차지했다. 3월에는 “1·2권 누계 65만부 돌파”라는 출판사의 공식발표가 있었는데, 출판사의 발표수치는 과장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이다.

나는 내 강의를 듣는 어떤 학생이 제출한 리포트의 유일한 참고문헌이 『만화 혐한류』이고, 그 나머지도 인터넷의 여러 페이지에서 따온 것이라는 걸 알고 굉장히 허탈했던 적이 있다. 이것은 『만화 혐한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인터넷상에서 발표되었던 이 만화가 제시하고 있는 인식과 지식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블로그, 통속역사책 등을 통해서 유통되고 있다. 또한 『만화 혐한류』가 일정한 반응을 얻었다고 판단한 다른 출판사들 역시 그에 편승한 책들을 출판하고 있다.1 즉 다수의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서‘혐한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 혐한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수 있다(이하 이런 일련의 큰 흐름은‘혐한류’, 만화작품은 『혐한류』로 표기한다).

『혐한류』는 일본에서의 어떤 욕망의 구조 위에서 성립하고 있다. 이 책을 낸 신유우샤(晋遊社)는 성인만화나 게임을 중심으로‘대중적’인 서적을 간행하는 출판사다. 그런 의미에서도 『혐한류』는 욕망의 마케팅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글은 만화 자체의 특징을 읽는 데서 출발하여‘혐한류’를 비롯한 현재의 일본사회와 그것을 둘러싼 상황, 즉 『혐한류』와 같은 표현을 욕망하는 구조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경악’과‘논파’의 문법

흔히 오해하듯 『혐한류』는 이른바‘한류’를 비판한 만화가 아니다. 나도 처음엔‘한류 붐’을 야유한 것으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배용준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만화의

  1. 내가 본 것만으로도 『만화 혐한류의 진실: ‘한국/반도’의 터부 초(超)입문』(寶島社 2005), 『혐한류 debate: 반일국가 한국에 대해 반발한다』(總合法令出版 2005), 『혐한류의 진실: 장외난투극』(寶島社 2005), 『혐한류 실천의 핸드북: 반일망언 격퇴 매뉴얼』(晋遊舍 2005), 『만화 혐한류 가이드북』(晋遊舍 2006) 등 많은 책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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