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07, 한국사회의 미래전략

 

한미FTA와 한국형 개방발전모델 모색

 

 

최태욱 崔兌旭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저서로 『세계화시대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경제』 『세계화와 한국의 개혁과제』(공저) 등이 있음. eacommunity@hallym.ac.kr

 

* 이 글은 필자의 편저 『한국형 개방전략: 한미FTA와 대안적 발전모델』(창비 2007)에서 주요 내용을 옮겨온 것이다. 공저자들의 글을 인용할 때는 해당 논문을 따로 밝혔으나, 필자 본인의 것일 경우에는 생략했다.

 

 

 

1. 한미FTA와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

 

‘자본주의의 다양성’ 논의가 보여주듯 자본주의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1 예컨대 영미식이라 불리는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 체제와 흔히 유럽식이라 불리는 ‘조정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y) 체제가 그것이다.2 영미식은 시장과 자본의 자유를 최우선시함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반면, 유럽식은 국가나 사회에 의한 시장의 조정을 장려함으로써 사회공동체의 유지를 도모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간에 소위 ‘자본주의 표준경쟁’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만들고 익숙해져 있는 기술, 규율, 제도, 체제 등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그리하여 그것이 ‘세계표준’(global standard)으로 자리잡을 경우, 그 창시자는 세계 어디에서나 편안한 환경과 유리한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주요 선진국간에는 다양한 영역에서 표준경쟁이 벌어진다. 자본주의체제도 마찬가지이다. 자국의 자본주의체제가 세계표준이 될 때 해당국은 세계 경제질서의 주도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 주로 유럽연합(EU)의 확대와 다른 지역 및 국가 들과의 협력관계 구축 그리고 ‘유러피언 드림’ 같은 연성파워(soft power)의 투사 등을 통해 자신의 자본주의 영역을 점진적으로 넓혀간다면,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앞세운 다자주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전미주자유무역협정(FTAA) 등의 체결을 통한 지역주의, 그리고 한미FTA 같은 양자주의적 경로 등을 통해 더 다양한 방식으로 더 급격하게 자기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 경쟁에서 미국이 유럽보다 훨씬 공세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일한 경쟁상대인 유럽조차 수세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타 지역이나 국가 들이 미국식 자본주의의 확산 혹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압력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980년대의 중남미 그리고 1990년대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요당한 것은 그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 역시 IMF 구조조정을 뼈아프게 경험했고 이제는 다시 FTA방식을 통한 미국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미국은 FTA를 자국식 세계화를 추진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삼고 있다. 미국식 세계화란 금융자본주의와 시장만능주의를 요체로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의미한다. 미국은 FTA 체결시 상대국에 철저한 시장개방, 민영화, 정부개입 축소 등을 요구한다. 이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약소국에 불공정한 관계의 설정을 강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식 FTA의 핵심문제는 그것이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라는 데 있다.3 공산품뿐 아니라 농산품 및 써비스상품을 모두 교역 자유화 대상에 포함하며 그외에도 투자, 지적재산권, 경쟁정책, 노동, 환경 등 경제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협정인 것이다. 결국 실제로는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라 경제통합협정에 해당한다.

미국과의 포괄적 FTA 체결로 한미 양국이 경제통합과정에 들어가게 되면 한국의 사회경제체제는 상당부분 미국식으로 바뀌어가게 될 것이다. 본디 상품, 써비스, 기술, 자본 등은 경제규모가 큰 나라에서 작은 나라로, 그리고 경제발전 정도가 높은 나라에서 낮은 나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경제통합협정은 당연히 이 흐름을 더욱 거세고 가파르게 그리고 일방적이게 한다. 흐름을 방해하는 각종 장벽들이 인위적 개입에 의해 비교적 단기에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거되는 장벽들에는 관세뿐 아니라 제도, 규범, 정책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및 경제체제까지 포함된다. 만약 우리 스스로 가장 적합한 자본주의 유형을 선택하고 그 성취를 위해 필요한 효과적 기제와 유리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러한 노력 없이 미국식 FTA를 졸속으로 체결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국식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미국화가 이로운 것이라면 반대할 일은 전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미국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특정한 자본주의 유형은 특정한 복지체제 혹은 민주주의형태와 친화적이다.4 조정시장경제를 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나 조합주의적 복지체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시장의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으로 제도화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자유시장경제는 자유주의 복지체제와 연결되는 경향이 강하다. 복지의 질과 양조차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원칙이므로, 있는자는 최상의 복지를 누릴 수 있으나 없는자는 누군가의 시혜를 바라야 하는 굴욕적 처지에 놓이게 된다. 전자의 민주주의가 참여적이고 포괄적이라면, 후자의 민주주의는 배타적이거나 제한적이기 마련이다. 노동자나 농민 혹은 중소상공인 같은 약자집단의 실질적 정치참여는 당연히 전자에서 제대로 보장된다.

미국식 자본주의로 갈 경우 우리 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절름발이 민주주의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안전망이나 복지체계 미비로 인해, 가뜩이나 심각한 사회양극화 현상은 현재의 미국이 그렇듯이 공공연한 현실로 고착될 것이다. 미국은 빈부격차가 세계 최고수준이다.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는 고작해야 잔여적(residual)일 뿐이며, 따라서 막대한 규모의 빈곤계층은 거의 방치상태에 놓여 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선진국’이며, 인구 대비 세계 최고의 수감률을 기록하고 있는 불만 가득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미국이 지닌 특수한 조건 때문이다. 다양한 인종, 광활한 영토, 엄청난 내수시장, 세계 최강의 군사력, 그리고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행권 등 여러가지 격차 수용기제가 미국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에겐 그러한 기제가 전혀 없다. 격차를 감당하기 힘든 사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격차의 유지 혹은 확대를 당연시하는 미국식 ‘자유시장’경제로 갈 수 있겠는가? 더구나 평등과 공동체적 삶을 중시하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나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방지할 수 있는 획기적 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미국화로 귀결될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를 체결하는 것은 무리다.

한미FTA 논쟁을 계기로 이제 우리에게 적합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떤 유형의 자본주의이든 세계화나 개방 그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정부와 시장 간의 역할분담 정도에 따라 세계화의 추진 방식이나 경로, 혹은 개방의 순서와 속도 등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지향할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세계화는 엄연한 현실이고, 우리의 발전을 위해서도 개방은

  1. 자본주의의 유형에 대해서는 Peter Hall and David Soskice, eds., Varieties of Capitalism: The Institutional Foundations of Comparative Advantage, Oxford Univ. Press 2001 참조.
  2. David Soskice, “Divergent Production Regimes: Coordinated and Uncoordinated Market Economies in the 1980s and 1990s,” Herbert Kitschelt, Peter Lange, Gary Marks, and John D. Stephens, eds., Continuity and Change in Contemporary Capitalism, Cambridge Univ. Press 2001 참조.
  3. 세계은행은 FTA의 유형으로 미국식, EU식, 그리고 남-남식(개도국식)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미국식은 다른 것들에 비해 신자유주의적 성격이 뚜렷하다. 특히 써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등 소위 ‘신통상영역’에서의 자유화를 유난히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World Bank, Global Economic Prospects 2005: Trade, Regionalism and Development. 좀더 상세한 설명은 김양희 「FTA의 다양성과 우리의 선택」, 최태욱 편, 앞의 책 참조.
  4. 자본주의 혹은 생산레짐과 복지체제 간의 친화성 논의에 대해서는 Michael Shalev, “The Politics of Elective Affinities,” Bernhard Ebbinghaus and Philip Manow, eds., Comparing Welfare Capitalism, Routledge 2001; 안재흥 「생산레짐과 복지국가체제 상호연계의 정치」, 『한국정치학회보』 38집 5호, 2004; 신동면 「세계화시대 사회정책의 변화」, 『정부학연구』 11권 1호, 2005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