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길

6·15 20주년 기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대담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세교연구소장, 본지 편집부주간.

 

임종석 任鍾晳

전)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문재인대통령 비서실장.

 

 

이남주 역사적인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습니다. 한반도 정세도 중요한 분기점에 처해 있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 우리 정부는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더 적극적으로 진전시키려 노력해볼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특별히 최근 남북관계의 변화를 평가하고 향후 발전방향을 논의해보는 대담을 마련했습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굳이 자세히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만 비서실장 당시에 4·27 판문점남북정상회담, 평양남북정상회담 등의 준비위원장 역할을 했고 판문점선언 이행위원장도 맡아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비서실장에서 물러난 이후 정계 진출이 예상되었으나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총선 불출마선언을 했습니다. 사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6·15남북정상회담 이후 시작된 남북교류 과정에서 다양한 관련 사업을 해왔지요. 지금은 다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에 취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6·15 20주년을 맞이하여 남북관계의 현재와 앞날을 이야기하는 데 가장 적합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동안 조용히 계시다가 총선 때 공개활동을 재개하셔서 보도가 많이 됐습니다. 인사를 겸해서 오랜만에 전국을 다니신 소감이 어떠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임종석 안녕하세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2주더라고요. 모처럼 즐겁고도 바쁘게 살았습니다. 공개활동이라기보다 작년 11월에 불출마를 말했을 때부터 선거에서는 제가 할 도리는 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과에 따라서는 문재인정부 하반기 국정운영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거이니만큼 최선을 다해서, 가급적이면 신인후보들 위주로 도우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도 무언가 꽉 막힌 현 상황에서 이번 선거결과가 남은 2년 동안에 돌파구를 낼 수 있냐 없냐 하는 정치적인 기로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보람도 있었고요.

 

반대를 뚫으려 했던 트럼프 대통령

이남주 보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어렵게 모셨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난 4월 27일에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2주년을 맞았습니다. 2018년에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생각했고 기대감이 굉장히 높았지요. 그런데 지금 현실은 그런 기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2019.2.27~28)에서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가장 중대한 전환점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그것과 함께 또다른 요인이 있다고 보시나요?

 

임종석 두가지로 봅니다. 먼저 하노이회담이 노딜로 끝난 것이 분명히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북으로 하여금 전략적 고민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하노이회담까지 정말 숨 가쁘게 달려왔거든요. 우리 정부도 최선을 다했고 북도 새로운 방향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의욕을 보였기 때문에 저희는 남북 간에 더 할 수 있는 일조차 조금 아끼고 유보해두면서 북미회담에서 1단계 성과가 나도록 맞춰갔습니다. 1차 결승라인을 앞둔 지점이었는데 이게 노딜로 끝난 게 제일 안타까운 일입니다.

또 하나는, 남북이 양자 간 합의사항을 더 적극적으로 실행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북미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로 이끄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하더라도 남북이 풀어야 할 문제를 뒤로 미루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해선 안 되고 마찬가지로 비중 있게 추진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2016~17년에 이루어진 대북제재들이 남북관계를 매우 크게 제약하고 있긴 하나 필요하면 제재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개진하며 국제여론을 환기시키고 또 제재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과감하게 해가면서, 북미 간의 문제가 잘 풀리도록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북미관계가 어느 시점에 풀릴지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두번째 문제에서는 새로운 결심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것이 사실 오늘 대담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드리고 싶은 얘기입니다.

 

이남주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회담에서 왜 실패했는가를 가끔 생각하게 되는데, 한번에 싸인을 안 해주는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이 그 요인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적 거래에서는 한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축적하고 이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 매번 거래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고 그것을 성과로 내세우는 것에 집착하는 스타일이지요. 유리한 입장에 서서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얻으려는 접근법과 비슷합니다. 이번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만 해도 논의돼서 올라간 걸 그대로 받지 않고 거기에 또 가격을 올리려고 했지요. 그런 습성을 당시에 잘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임종석

임종석

임종석 트럼프 대통령을 평가할 때 사업가 기질, 이해관계를 아주 본능적으로 따져서 이익을 보는 면을 많이들 지적하지요. 그런데 저는 그보다도 미국 전체가 한반도 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게 훨씬 더 갑갑한 현실이라고 봅니다. 잘 아시지만 오바마 정부 8년 동안 단 한번도 한반도 의제를 백악관 테이블에 우선순위로 올려본 적이 없습니다. 국무장관부터도 동북아·한반도 문제를 다룰 때 우리가 합리적으로 풀어보려는 방식을 수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라는 게 하루아침에 올 수 없으니까 북을 정당한 대화 상대로 인정해서 단계적으로 풀어가야 하는데 그러한 접근법에 부정적이지요. 우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렇게 공을 들였던 것도 그의 스타일이 오히려 미국 내의 그 많은 유보 내지 반대들을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정말로 문재인 대통령께서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거든요.

에피소드를 들려드리면, 4·27정상회담 전인 3월에 정의용 안보실장이 대북특사로 갔었지요. 돌아오자마자 바로 백악관에 갔는데, 아마 많이들 기억하실 거예요. 정의용 실장이 백악관 뜰에서 서훈 국정원장, 조윤제 대사를 양쪽에 두고 기자회견을 하는 정말 진기한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원래는 특사가 가서 카운터파트너와 얘기하면 그쪽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보고하고 그다음 날 만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늦은 오후에 갑자기 한국의 안보실장을 만나자 해서, 그러한 과정 없이 바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정의용 실장도 굉장히 당황했고요. 그래서 방문한 오벌 오피스(Oval Office, 백악관에 위치한 대통령 집무실)에 트럼프 대통령과 그쪽의 주요 책임자들이 스무명 가까이 앉아 있고 바깥 복도에 또 그만한 숫자가 서성대고 있었답니다. 그런 자리에서 정의용 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는데 뚜렷한 비핵화 의지를 가지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을 희망한다’라는 취지를 설명한 거고요. 트럼프 대통령 반응이, 대부분의 참모들한테 ‘거봐, 내가 뭐랬어, 맞지? 그래 맞아, 그거야’ 계속 이러더라는 거예요. 그 장면으로 미루어봐서도 내부 참모들은 다수가 부정적이었던 거예요.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풀도록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 면담 직후에 뜻밖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나는 좋다, 만날 의사가 있다, 그러니 당신이 가서 기자회견을 해라’ 그래서 정의용 실장이 당황한 거죠.

국무부를 포함해서 미국 정보부처와 백악관 핵심관계자들이 어느 정도로 이 문제에 부정적이냐를 보여주는 장면이 또 이어지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정의용 실장한테 그 자리에서 바로 그런 얘길 하니까 정실장이 그럼 맥매스터(H. McMaster) 보좌관(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하고 같이 하겠다 했어요. 그러니까 노노, 당신 혼자 하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럼 맥매스터하고 의논해서 내가 하겠다 했더니, 노, 그냥 당신이 하라니까.(웃음) 그러고는 거기서 회의 끝나고 기자실을 간 거예요. 그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에 백악관 기자실에 처음 간 거래요.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실 문을 열고, ‘하이, 조금 이따가 한국 안보실장이 중요한 발표 할 거다’라고 얘기하고 나가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지요. 그 장면에서 저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의 엄청난 반대를 뚫고 뭔가를 만들어보려고 한 점을 평가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노이회담이 노딜로 끝나긴 했지만 그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서는 우리가 충분히 기대를 품어볼 만했습니다. 그럼 왜 결국 노딜로 갔느냐는 제가 자신있게 말할 순 없는데, 여러 스캔들로 미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몰렸던 환경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하노이 가기 전에 이미 미국의 의회, 정부 부처, 조야 등 사방에서 배드딜보다는 노딜이 낫다고 계속 압박했던 상황이 결국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판문점에서 처음 만난 김정은 위원장

이남주

이남주

이남주 북한 김정은체제가 처음 출발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