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룻밤은 마치 천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1975년 4월 11일, 청년 사제 함세웅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으로 끌려갔다. 음습한 벽을 넘어 피맺힌 절규가 들려왔다. 그는 공포에 사로잡혀 간절한 기도를 반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이틀 전 인혁당사건으로 사형당한 청년 이수병의 시신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시신의 손발과 등은 온통 시커멓게 멍들거나 가혹한 전기고문으로 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1974~75년, 민청학련사건에서 인혁당사건으로 이어진 일련의 ‘간첩단 사건’의 조작과 여러 청년들의 구속·고문·사형 집행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폭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표적 장면이었다. 한국전쟁의 참상에 삶의 허무를 느껴 가톨릭 신자가 된 함세웅은 어쩌면 이같은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