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훈 金薰

1948년 서울 출생. 소설가, 자전거레이서. 장편소설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빗살무늬토기의 추억』 『개』 등이 있음.

 

 

 

항로표지(航路標識)

 

 

16시 30분께부터 갈매기들은 날아다니지 않았다. 아직 당도하지 않은 먼 바람의 낌새를 알아차렸는지, 그것들은 일시에 멸종이 되듯이 사라졌다. 수평선 너머에서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고 해수면은 뜨거운 습기를 뿜어냈다. 비는 오지 않았는데, 등대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혀서 흘러내렸다. 해수면은 흔들리지 않았다.

17시 정각에 남해 서부해상의 폭풍주의보가 파랑경보로 바뀌었다. 초속 20미터 넘는 바람과 파도높이 6~8미터가 예고되었다. 라디오가 정규뉴스의 첫머리에서 기상특보를 전했고 그보다 10분 앞서 지방항만청 수로국은 소라도 등대로 전화통지했다. 수로국 안전계장은 황천(荒天) 대비수칙을 외우듯이 고함쳤다.

―각 등대는 비상발전기 가동에 대비하고 모든 지상시설물을 고박(固縛)하라.

―시정(視程)이 흐려지면 등대장의 판단으로 일몰 전에 점등하라.

―직원 가족들의 옥외활동을 금하고 등대장은 통신축선상에 대기하라.

등대장 김철(40세, 6급수로직)은 7급직원 두 명을 데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바람의 선착대들이 이미 섬에 당도해 있었다. 해안단애 꼭대기에서 물푸레나무 줄기들이 일제히 쓰러지며 뒤채었다. 백색 등탑 뒤쪽으로 바람을 등지는 사면에 발전실 축전지창고 유류저장고가 들어섰고, 그보다 높은 개활지에 풍향계 풍속계 백엽상과 태양열 집광판이 한울타리 안에 모여 있었다. 등대장 김철은 풍향계 철탑지주와 태양열 집광판에 와이어로프를 걸어서 말뚝에 묶었고 발전실 창문에 철제 덧문을 내렸다.7급직원들이 숙사 문짝에 각목을 대고 대못을 질렀고 숙사 유리창을 판초로 덮었다.

일몰시각은 1시간 30분쯤 남아 있었으나 비구름이 연안으로 몰려와 해는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찢어지는 틈새로 핏빛 석양이 쏟아져 물 위에 꽂혔다. 바람의 방향은 남남서와 서남서 사이에서 무질서했다. 풍향계 화살이 쉴새없이 방향을 바꾸며 어두운 원양을 가리켰다. 풍향계 화살 끝은 공격각도를 탐색하는 뱀 대가리처럼 긴장되어 있었고 긴장의 무게를 감당하면서 가벼웠는데, 그 가벼운 끝이 가리키는 방향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면을 밀면서 몰려오는 바람의 대열은 해안단애에 부딪치면서 치솟았고 흰 물줄기들이 바람을 따라 단애를 넘어왔다. 바람의 흐름이 끊어지고 이어지는 골짜기에서 풍향계 화살은 진저리를 치며 갈팡질팡했다.

바람이 취주(吹走)거리를 길게 끌면서 휩쓸어올 때 풍속계 바람개비는 맹렬히 돌면서 환(幻)으로 흐려졌다. 환은 맹렬할수록 희미했다. 맹렬한 환이 어둠속으로 잠적할 때 바람에 끄달리는 물푸레나무 숲이 후진하는 파도소리를 냈고, 허공에서 서로 쓸리우는 바람의 대열들은 길게 우는 짐승의 울음을 잇대었다.

물은 파구(波丘)를 횡렬로 연대해서 산맥처럼 달려들었다. 어둠의 바닥은 썰물이었다. 육지로 향하는 바람이 원양으로 나아가는 물의 대열을 뒤집었다. 바람에 부딪친 파도의 떼들은 대가리가 부서지면서 벌떡벌떡 일어섰다. 깨어진 대가리에서 흰 물보라가 쏟아졌다. 물보라는 갈기를 너울거리면서 바람 속으로 길게 흘러갔다.

18시에 지방항만청은 당직 교대했다. 야간 당직주임은 다시 관하 일곱 개 등대를 전문으로 다그쳤다.

―각 등대는 축전지와 연료 재고량을 보고하라.

―각 등대는 관측장비와 통신시설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인접등대와 수시로 교신해서 이상 유무를 상호 확인하라.

―새벽에 농무(濃霧)가 예보되어 있다. 소라도, 서청도는 포그씨그널(fog signal)에 대비하라.

기상대 상황실도 항만청 당직실을 경유해서 등대에 전문을 보내왔다.

―각 등대는 관하 해상기상관측 부이(buoy)의 안전상태를 확인해서 명일 05시 30분에 보고하라.

소라도 부이는 등대 서남쪽 5마일 해상에 돌출한 암초 위에 가설되어 있었다.8미터 높이의 철탑에 기압, 수온, 습도, 파고, 파향, 파주기를 자동 측정하는 장비와 측정된 정보를 기상대로 전송하는 전자장비와 축전지가 장착되어 있었다. 철탑 끝에 빨간 등이 켜져서, 해안으로 접근하는 배들에게 거기가 암초임을 알렸다. 김철은 부이 쪽으로 망원경을 들이댔다. 렌즈 속에서 부이의 등불은 물보라에 휩쓸리며 가물거렸고 철탑은 꼭대기를 넘는 파도를 견디고 있었다.

등대장 김철은 18시 25분에 점등했다. 등명기 필라멘트가 하얗게 사위면서 할로겐램프가 빛을 뿜어냈다. 빛의 입자들은 태어나는 순간에 광원을 떠나서, 필라멘트에는 한점의 빛도 묻어 있지 않았다. 필라멘트는 재처럼 적막했고 빛들은 그 재 속에서 다시 뿜어져나왔다. 반사경이 빛을 한 방향으로 몰아서 튕겨냈고, 프리즘 렌즈가 빛을 꺾고 합쳐서 먼 바다로 쏘아냈다. 등명기가 회전했다. 빛의 다발들이 어둠을 휘저었다. 바람이 물보라의 끄트머리를 고공으로 몰아왔다. 뻗어나가는 빛의 다발 속에서 물의 입자들이 나부꼈다.

소라도 등대 등명기는 1분에 5회전했고 광달(光達)거리는 25마일이었다.25마일 밖 해상에서 그 빛은 12초에 한번씩 명멸하는 백색섬광으로 보였다. 밤의 바다에서 어둠과 물보라에 가리워 섬은 보이지 않았고 12초에 한번씩 깜박이는 불빛이 보였다. 12초 1섬광, 거기가 소라도였다.

18시 50분께부터 장대비가 쏟아졌다. 빗줄기는 밀도가 높았다. 바람이 억센 빗줄기들을 사선으로 몰아왔다. 섬의 지형은 가팔랐다. 골짜기를 흘러내린 물이 해안단애에서 바다로 떨어지면서 단애를 치받는 바닷물과 부딪쳤다.

19시에 등대장 김철은 다시 옥외시설물을 점검했다. 7급직원 두 명이 김철을 따랐다. 발전실에서 관측장비 쪽으로 이동할 때 김철은 배수로 고랑을 따라서 기었다. 김철은 부하직원들에게 고함쳤다.

―발전실 굴뚝을 떼어내라.

직원들은 보조로프를 붙잡고 앉은걸음으로 이동했다. 김철은 흔들리는 유류저장고 문짝에 대못을 박았다. 풍향계 철탑이 바람에 갈리면서 쇳소리를 냈다. 김철은 허리춤에 찬 비너로 철탑에 몸을 묶고 풍향계 전달장치를 와이어로 묶었다. 김철은 발전실 뒤쪽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

―땅에 바짝 붙어라. 바람이 끊어질 때 이동하라.

김철은 다시 배수로 고랑을 기어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등명기가 쏘아내는 빛의 다발들이 김철의 머리 위로 어둠을 휘저었다.

연안 유자망 어선들은 16시 무렵부터 어망을 거두어 귀항했다.27해역 남단에서 장기조업중이던 중대형 어선들은 송일만 북쪽 어업전진기지로 대피했다. 송일만으로 향하던 여객선은 회항했고 연안화물선은 중간기착지인 서청도에서 묘박(錨泊)했다.

송일만 안쪽 중화학공단 전용부두로 향하는 컨테이너선, 유조선,LNG 탱크선들이 그 황천(荒天)의 밤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아라비아반도를 떠나서 인도양과 남지나해를 건너온 그 배들은 27해역 북단에서 12초 1섬광의 소라도 등대불빛을 확인했고, 거기서부터 남남서로 방향을 돌려 송일만으로 향했다. 송일만 어귀에서 대형 수송선박들은 만의 양쪽 돌출부에서 바다 한가운데로 뻗어나온 방파제 끝의 좌록우적(左綠右赤) 무인등대 사이를 통과했다. 대형선박들은 컨테이너 부두 타워크레인 아래 우현을 접안했다.

송일만을 떠나서 남지나해로 나아가는 철강제 수송선박들은 무인등대 사이를 빠져나와 200마일을 북동진해서 27해역 남단에 진입했다. 그 해역에서 당직항해사들은 광달거리 25마일을 건너온 12초 1섬광의 소라도 등대불빛을 확인했다. 어둠속에서, 빛과 배 사이의 거리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바늘끝 같은 백색섬광은 12초에 한번씩 어둠을 찔렀고, 빛의 방향은 북북서였다. 항해사들은 12초 1섬광을 확인하고 나서, 소라도를 등지고 남남동으로 항로를 수정해서 원양으로 나아갔다.12초 1섬광에 의해서 항로를 수정할 때 항해사들은 교습생 시절에 배운 항해교본의 밑줄 친 페이지를 떠올렸다.

 

…항해술의 핵심은 진행방향의 설정과 변경이다. 선박은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진행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항해사는 선박 외부의 육상표지물을 파악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해도(海圖)는 항해사의 육안과 육상표지물 사이의 매개물이다.

 

소라도 등대는 12초에 한번씩 백색섬광을 쏘아내며 여기는 소라도…… 여기는 소라도,라고 어둠을 향해 깜박였다. 보이지 않는 섬을 지표로 삼아 배들은 제 위치를 확인했다. 배들은 섬으로 가는 방향을 버리고 남남서, 서남서로 선수를 돌려 원양으로 나아갔다. 등대로는 아무런 배도 들어오지 않았다.

소라도 등대는 러일전쟁 때 남해를 우회해서 서해의 싸움터로 나아가는 제국함대의 뱃길을 인도하는 항로표지로 건설되었다. 벽돌로 쌓은 8각형 등탑은 그후 몇번의 보수공사를 거치면서도 옛모습을 잃지 않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초기에 설치된 등명기는 광달거리 10마일 정도의 제4등급 청동제 가스등이었다. 초기의 가스등은 수은 위에 떠서 톱니바퀴에 물려 회전했고, 밑바닥에 메이지(明治)의 연호가 찍혀 있었다. 그 청동제 가스등 시절부터 소라도 등대의 불빛은 12초 1섬광이었다. 섬광의 주기를 바꾸면 다른 등대와 혼동이 빚어질 것이므로 12초 1섬광은 변경이 불가능한 신호였다.

검은 연기를 뿜는 제국함대의 증기선들은 12초 1섬광을 지표로 북서진했다. 압록강 어귀까지 북상했던 함대는 몇달 후 승리의 욱일승천기(旭日昇天旗)를 펄럭이며 남하했고, 다시 12초 1섬광을 지표로 삼아 열도의 모항으로 돌아갔다. 군함이 뿜어내는 검은 연기가 해풍에 밀려 섬에까지 흘러왔고, 물을 할퀴는 증기터빈의 흰 거품이 27해역 남단을 멀리 돌아갔다. 그후, 식민지의 밤바다에서도 어선들은 등대를 확인하고 나서 등대를 돌아서는 항로를 따라 포구에서 포구로 이동했다. 다시 전쟁이 터지자 아메리카의 군함들은 12초 1섬광을 지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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