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창훈 韓昌勳

1963년 전남 여수 출생. 199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 『가던 새 본다』, 장편 『홍합』 등이 있음. kkunha@naver.com

 

 

 

해는 뜨고 해는 지고

 

 

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명함판 사진을 내려놓으며 성근은 몸을 벽 쪽으로 돌리고 눈을 감았다. 납작하게 눌린 머리카락이 베개에서 떨어졌다. 끼잉끼잉. 이 소리는 순돌이 울음소리다. 목줄을 팽팽하게 만들어놓고 앞발을 들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들어오는 사람이 은례라는 소리였다.

그는 개가 움직이는 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짐작이 됐다. 아주 대놓고 사납게 짖는다면 생면부지인 이들이고 그 정도는 아니되 짖기만 한다면 고지서 배달 온 우체부나 상환 독촉하러 온 농협직원이었다. 짖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반기지도 않는, 전혀 반응이 없는 경우라면 성근 자신의 친구들이었다. 아니, 우리단란주점의 황사장이었다. 그들 외에는 근래에 이 집을 찾는 이가 없었다.

그러니 낑낑대며 애정을 호소하는 소리는 참으로 모처럼 들어보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순돌이에게는 말 한마디 없이 짝짝, 쌘들 끄는 소리만 났다.

휘흠, 긴 숨이 절로 나와 벽에 부딪힌다. 아주 짧은 순간에 그게 아내가 들어오는 소리로 여겨졌는데 그렇다면 오락가락하던 사이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졌던 거다.

아내는 새벽에 일 보러 나갈 때가 자주 있다. 품앗이로 밭 매러 나갔다가 아침밥 차리려고 돌아오거나 첫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선착장 나갔다 오는 경우도 있다. 가지나 상추 뜯으러 텃밭에 갔다 오기도 했고 마땅한 반찬이 없으면 급한 대로 두부모나 사러 가게 다녀올 때도 있다.

지금 저 소리가 아내라면, 일어났수? 얼른 씻으시오, 밥 차릴 테니, 소리가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기분대로만 한다면, 갔다 왔는가? 밥은 그냥 두고 잠깐만 들어와보소, 해서 들어오는 것을 달려들어 꽉 보듬었으면 싶었다. 아이구 참, 정신사납게 왜 이런댜, 밥 먹을 생각은 않고, 앙탈을 한다면 젊었을 적 산 너머 연애바위에서 그랬던 것처럼 힘으로라도 찍어눌렀으면 했다.

그런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크고부터 밤을 조심하게 되어 애들 학교 가고 난 다음 일을 치르는 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그것은 성근의 일 때문이기도 했다. 어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은 늘 아침이었고 고단한 뱃일에 대한 보상으로 한바탕 몸을 실은 다음에야 밥을 먹든지 잠을 자든지 했다. 또한 이렇게 자신은 방에 누워 있고 아내가 잠시 바깥바람을 쏘이고 들어왔을 때도 뭔가 새로운 기분이 들어 싫다는 것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러나 발소리는 현관에서 작은방 쪽으로 휘어졌고 머잖아 탁, 문이 닫혔다.

그래, 아내가 올 리는 없었다. 만약 오늘 이 시간, 예전처럼 아침 일찍 바깥엘 나갔다가 돌아오는 중이라면 (그런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쯤 다른 사내가 누워 있는 방문을 열고 있을 것이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는 사내 어깨를 두드리며 보시우, 역시 새벽 도깨비시장에 가야 좋은 것을 산다니까, 싱싱한 것으로 사왔으니 얼른 일어나 보시우, 할지도 몰랐다. 아니, 풍문으로 들어본 바로는 아내에게 이천만원짜리 통장하고 카드를 만들어준 이는 육십 넘은 사내라니 인삼이나 녹용 이런 것을 사와 갈고 있거나 약탕기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천지가 모두 허전한 바람으로 변해 그의 가슴속을 뚫고 들어왔다.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몸 어딘가에 구멍이 나서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허전하고 쓸쓸했다.

순간의 잠결로 착각을 하긴 했지만 그는 이제 아내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돼버리고 말았으니 큰 미련도 없다. 문제는 발소리였다. 안방 한번 안 들여다보고 작은방으로 가버린 게 속상하기 그지없다.

집에 사람 사는 표시는 들고 나는 사람들의 흔적과 그들이 내는 소리에서 나오는 거 아닌가. 그러나 요 몇달 동안 사람들의 방문을 좀처럼 받아보지 못했다. 특히, 이처럼 순돌이가 반기는 그런 방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아침은 적막의 시간이 되어 있었다. 오늘만 하더라도 이른 시간에 눈을 떴건만 근 열시가 가까워오는 이 시간까지 들어본 소리라는 게 뒤란 시누대 숲에서 사는 참새들 재재대는 것밖에 없다. 그의 집만 그런 게 아니다. 이웃들, 나아가 마을 전체가 조용했고 그것은 새벽일이 없어졌다는 걸 뜻했다.

얼른 일 가세, 밥은 자셨수? 누구네 어매는 안 보이네, 오늘 새벽에 서방이 왔잖은가, 그러니 여러모로 늦겠지, 깔깔, 곧 올 것이니 먼저 가세나, 그 집 아배는 이번 어장에 재미 좀 봤답디까? 공쳤다고 하대, 어장보다 더 좋은 재미가 있는디 뭔 걱정이여, 아 늦었어, 뻘소리 그만 하고 얼른 가자니까, 아침밥 먹기 전에 두 이랑은 매야지, 하던 새벽의 왁자지껄한 소란이 없어진 것이 이미 몇년째였다. 아낙들이 빠져나가고 나니 밭농사도 없어지고 텃밭에는 잡초만 자랐다. 소란이 떠난 곳에는 이렇게 적막함만이 떠돌았다.

주변이 워낙 한적해서도 그랬지만 성근은 새벽부터 내내 문 여는 소리를 기다렸다. 은례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들어와서는 어디에서 자고 왔다, 밥은 드셨냐, 이런 말 한마디 없이 방으로 휭, 들어가버리는 것 아닌가. 그는 벽에서 퉁기듯 벌떡 일어나 작은방 쪽을 쏘아보았다. 저쪽에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인기척도 없다.

 

은례는 기별도 없이 어제 오후 마지막 배로 들어왔다.

지난 두어 달 동안 그는 가족들이 몹시도 보고 싶었다. 딸애는 더욱 그랬다. 새벽잠 깨어 담배만 피우다가 햇살에 서서히 창이 밝아지면 나타나는 가족사진(결국 며칠 전에 떼어내어 광 속에 집어넣었지만) 속에서 딸애 얼굴을 바라보곤 했다. 은례가 항구에 있는 정보통신고에 가던 해 찍은 것이니 얼추 사오년은 된 것이다. 얼추라고 짐작하는 것에 그의 고민이 있다. 올해 은례가 스물인지 스물하나인지 얼른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그해에 일어난 일들을 떠올려보다가 수업 때문에 사지 않을 수 없다는 말에 황에게 돈을 빌려 컴퓨터를 사준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돈을 해가 바뀐 다음에야 갚았고 갚은 해에 황의 늙은 어머니 초상이 있었다는 것을 두루 꿰맞춘 다음에야 올해 스물하나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 정도이다보니 딸애에 대해 누가 물어보면 대답할 게 별로 없었다. 나이를 짐작해보다가 별 생각 없이, 저절로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된 건데, 딸애가 선착장에 있는 선박수리소에서 튄 용접 불똥에 동전만한 화상을 입었던 때가 초등학교 3학년인지, 4학년인지, 5학년인지 분간이 안되고 그게 왼쪽 팔뚝이었는지 오른쪽 팔뚝이었는지도, 그때 그가 분명히 약을 발라주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돌 때 걸었는지 못 걸었는지, 백일해를 몇살 때 앓았는지(뭔가 된통 앓은 적이 있는데 그게 백일해인지 급성신장염인지 또다른 병이었는지도 헷갈렸다), 공부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말을 잘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고등학교에서는 무슨 반이었는지, 친구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는 아직도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다. 오십줄 중반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늙은 게 아니다. 힘도 아직 쓸 만하고 무엇보다도 새벽에 발기도(지난 일년간 그런 적이 유난히 많기는 했다) 되고 있었다. 총기가 떨어져서 딸애에 대한 기억이 흐려진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는 그런 생각들을 날마다 되풀이하다가 끝내는 몹시 미안해졌다. 아들인 은석이에 대한 것은 거의 다 뚜렷이 기억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물론 그는 딸아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다만, 집에 돌아오면 늘 제자리에 있는 텔레비전이나 이불처럼 한번도 그 존재에 대해 의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던 것뿐이다. 멸치잡이 어장엘 가면 잘 있으려니 하고 잊어버렸고 돌아오면 역시 아내와 아들과 딸애는 무탈하게 집에 있었다. 아내는 밥을 차려주고 자식들은 다녀왔냐고 인사를 했다.

일 없는 기간에도 그는 아내 몸을 탐하거나 마실을 나가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거나 친구들과 대폿잔을 부딪치며 보냈다. 아이들은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있으면 학교 갔다 왔냐,고 했고 늦은 시간에 없으면 아이들 어디 갔냐,고 물어보았다. 잠시 어디 갔다거나 요 앞에서 논다거나 하는 대답을 들으면 그만이었다. 밥 먹고 자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다시 어장 날짜에 맞춰 여객선 타고 항구로 나가면 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런 세월을 살아왔다. 그게 잘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고민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았고 다들 그랬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좋은 것이었나, 뼈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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