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세화

임세화 林世華

1984년 대전 출생. 2007년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 재학중. farewell_i@hanmail.net

 

 

 

헬로 강시

 

 

1

 

콩콩콩. 엄마가 왔다.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아주 오랜 옛날의 사진 속에서 그대로 툭 튀어나온 것처럼 엄마는 낡아 있었다. 펄럭이는 옷자락 소리. 엄마가 콩콩 뛰어오를 때마다 매큼한 먼지가 파도처럼 일었다. 순한 짐승처럼 웅크려 앉은 채 나는 긴 대롱으로 숨을 내쉬었다. 엄마는 내 숨이 뿜어져 나가는 대롱 끝을 향해 다시 콩콩 뛰어올랐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고 검은 강시복이 펄럭거릴 때마다 집 안 가득 파도소리가 울려퍼졌다. 콩-쏴아. 콩-쏴아. 규칙적인 파도소리에 맞춰 나는 노를 젓듯 대롱 끝을 잡아당겼다.

플라스틱 눈알이 끼워진 인형처럼 엄마는 눈을 부릅뜬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직 호흡만으로 사람을 식별하는데도 까닭 없이 커다랗게 뜬 눈 때문에 엄마의 얼굴은 몹시 부자연스러웠다. 이미 오래전에 정지된 표정. 거뭇거뭇한 부패의 흔적이 엿보이는 얼굴 위에 오직 눈만이 과장되게 뜨여 있었다. 입술이 썩어 사라진 까닭에 고스란히 드러난 검붉은 잇몸과 날카로운 잇새를 나는 찬찬히 바라보았다. 온전히 죽어 있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얼굴. 섬뜩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엄마의 얼굴은 끊임없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콩-쏴아. 콩-쏴아. 집 안 가득 일렁이는 어둠의 파도 속에서 엄마는 경쾌하게 뛰어올랐다. 엄마가 일으키는 먼지에 코가 간질거렸다. 재채기가 날 것 같았다. 나는 손으로 입과 코를 우악스럽게 틀어막았다. 찔끔 눈물이 났다. 오랫동안 정돈하지 않은 듯 엄마의 머리카락은 파뿌리처럼 힘없이 마구 얽혀 있었다. 창밖에서는 한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았다. 완연한 어둠 속에서 나는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 숨을 쫓아 줄기차게 뛰어올랐다. 엄마가 고무공처럼 통통 튀어오를 때마다 엄마의 양 볼과 입술에 찍힌 연지가 화인(火印)처럼 뜨겁게 빛났다.

엄마가 콩 디뎠던 자리마다 진흙 냄새가 끄느름히 피어올랐다. 그것은 오랫동안 환기하지 않은 집 안 공기와 섞여 는개처럼 끈적끈적하게 온몸을 감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엄마의 손끝을 노려보았다. 날카롭고 시퍼렇게 굳은 강시의 손. 내 노력이 무색할 만큼 그것은 끈질기게 내 목을 향하고 있었다. 죽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들키지 않기 위해 나는 긴 대롱을 깊숙이 물고 부엌을 향해 빠르게 호흡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오래된 곰팡이 포자가 혀에 축축하게 들러붙는 게 느껴졌다.

강시 냄새는 코를 자르고 싶을 만큼 지독했다. 그것은 단순한 시취가 아니었다. 퀴퀴한 어둠이 걷히고 엄마가 흐릿해지고 난 이후에도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종일 환기를 시키고 방향제를 뿌려도 소용없었다. 강시 냄새는 마치 형체를 지닌 것처럼 축축하게 집 안을 적시며 떠돌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시간의 냄새였다. 나는 조금씩 익숙해졌다. 희미하지만 그것에는 엄마의 체취도 섞여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무 냄새도 품지 않은 듯 흐릿한 공기의 입자들이 도리어 이물스러웠다. 그러나 문제는 냄새가 아니었다. 정말 심각한 것은 소음이었다.

강시답게 엄마는 점프력이 좋았다. 무릎을 굽히지 않고도 천장까지 펄쩍펄쩍 뛰어올랐다. 완충 작용을 해주는 강시 모자가 없었더라면 윗집에서도 나를 고소했을 것이다. 때때로 나는 아랫집 여자가 천장을 두드리는 듯한 환청을 느꼈다. 그리고 환청 속에서 나는 천장에 대고 미친 듯이 망치를 두드리는 어떤 여자를 보았다. 어쩌면 그것은 환청이 아닐지도 몰랐다. 여자는 때때로 우리 집의 초인종을 눌렀고, 대꾸하지 않자 현관문 앞에 갖은 음식물 쓰레기를 부려놓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용히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것뿐이었다.

이명처럼 망치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나는 조용히 일어나 형광등을 켰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형광등이 깜박이는 동안 엄마는 포말처럼 희미하게 사라졌다. 엄마의 빛바랜 강시복은 날렵한 물고기처럼 순식간에 지느러미를 감추었다. 나는 빛 속에서 반짝 짙어졌다 흐릿해지는 엄마의 그림자와 그 그림자로 맹렬하게 달려드는 망치질 소리를 향해 물끄러미 서 있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난 이후에도 망치질 소리는 계속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귀가 아니라 몸으로 소리가 전해져왔다. 아파트의 얇은 벽과 벽, 바닥과 천장에서 묵직한 진동이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집 안을 헤집고 다니던 어두운 조각들이 순식간에 불쾌한 진동으로 몸을 바꾼 듯했다. 검은색 물감을 한꺼번에 삼킨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욕지기가 치밀어올랐다.

진동은 소리보다 먼저 울렸다. 환하게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침대에 몸을 눕히자 부르르 떨고 있는 녹슨 철근이 보였다. 지은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아파트. 그 기간 동안 엄마와 나는 아파트와 함께 차근차근 낡아가고 있었다. 온몸의 세포가 팝콘처럼 타닥타닥 튀어오르는 듯한 진동 속에서 나는 낡은 철근과 그 위에 부지런히 피어난 녹꽃 따위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눈을 부릅뜬 채 머리까지 이불을 푹 뒤집어썼다.

모든 신경과 세포가 마비될 듯한 고통스러운 멀미가 찾아왔다. 여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어느 벽에 침대를 붙여놓는지, 어느 방에 책상을 두는지, 거실 어느 쪽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지, 언제 잠들고 언제 밥을 먹고 언제 화장실에 가는지…… 여자는 내 사소한 습관과 동선들에 맞춰 끈질기게 망치를 두드려댔다. 희고 가느다란 팔로 망치질을 하고 있을 여자의 절망적인 눈빛이 떠올랐다.

“당신 미쳤어?”

“보시다시피. 이 집엔 저 혼자 살아요. 묶어놓을 애 따윈 없다구요.”

여자는 코를 움켜쥔 채 날카롭게 집 안 이곳저곳을 훑어보았다. 나는 일부러 더 환하게 집 안 곳곳에 불을 켜놓았다. 집 안을 가득 채운 것은 소리가 아니라 냄새뿐이었다. 여자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어른 혼자 사는 집. 그것도 자주 집을 비우는 취업준비생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여자가 부러 끊어다 놓은 정신과 진료 기록은 순식간에 이상한 증거로 바뀌었다. 미칠 듯한 소음 때문에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태여 내가 그 소음을 증명해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쿵쿵거리는 그 발소리는 내가 낸 것도 아니었다. 경찰은 빨리 냄새나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아랫집 여자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 되어 나를 노려보았다.

“층간 소음은요, 바로 윗집에서 나는 게 아닐 수도 있대요. 아파트도 철골 구조물이니까요. 멀리 어딘가에서 쿵 뛰면 전혀 다른 어딘가에서 쿵 울릴 수도 있다네요. 원체 낡은 아파트가 돼놔서.”

나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문틈으로 “알았어요”라고 중얼거리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지나치게 예민한 여자였다. 엄마가 매일 오는 것도 아닌데.

다만 엄마는 아무 때나 찾아왔다. 어떤 때는 일주일에 한번, 어떤 때는 보름 동안 매일, 어떤 때는 한달을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면접날 아침 형광등을 켜려는 순간 반짝반짝 나타났다가 반짝반짝 사라지기도 했고, 캄캄한 공원에서 B와 입을 맞추려는데 멀리서부터 콩콩 뛰어와서 다음날 아침까지 내 주위를 맴돌기도 했다. 오늘은 오지 않으려니 하고 불을 끄고 잠이 들면 순식간에 나타나 내 목을 죄기도 했다.

콩콩. 콩콩. 엄마는 늘 소리로 먼저 찾아왔다. 소리가 휩쓸고 난 자리에는 밀물처럼 강시 냄새가 훅 끼쳐왔다. 형체를 지닌 소리. 형체를 지닌 냄새. 집 안을 온통 헤집으며 흐물흐물하고 축축한 포말을 일으키는 냄새 속에서 온몸의 세포들은 감각에 예민해졌다. 보는 것보다 더 정직한 방식. 나는 예의바른 아이처럼 얌전하게 대롱을 문 채 엄마를 마주했다. 어둠 속에서 엄마는 선명했다. 엄마는 소리와 냄새로 자신을 증명할 줄 알았다.

경찰과 함께 다녀간 이후에 여자는 천장에 대고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자신이 아래층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절박해졌다. 여자가 망치질을 할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쩡 부서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지독한 진동과 울림 때문이었을 것이다. 낡은 아파트는 작은 충격에도 격렬히 몸을 떨었다. 여자가 천장에 대고 망치질을 할 때마다 내 몸과 내 방과 내 집 전체를 감싸고 있는 커다란 네모들이 무너질 듯 진동했다. 여자는 집요했다. 엄마가 나타나지 않는 날에도 끈질기게 망치질을 했다. 나를 둘러싼 커다란 네모들이 진동할 때면 내 몸속의 작은 실핏줄과 세포와 창자와 핏방울들도 함께 진동했다. 숨을 꾹 참고 있어도 멀미가 났다.

매일 변기를 끌어안고 토악질을 하면서도 나는 무감해지려고 노력했다. 엄마를 어찌할 수는 없었다. 엄마는 강시였다. 그 차고 딱딱한 손아귀에 잡혀서 질식사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일이었다. 시퍼런 얼굴에 붉은 연지를 찍고 빨간 색실뭉치가 달린 관모를 쓴 엄마. 엄마가 오지 않는 밤에도 나는 망치질 소리인지 엄마의 발소리인지 알 수 없는 진동과 소음에 몸을 떨었다. 그 수많은 떨림들 속에서 나는 때때로 환영처럼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강시가 되어 돌아오는 길, 그 멀고 험한 길을 콩콩 뛰어다녔을 엄마의 모습을.

 

 

2

 

B는 내 귀가 커진 것 같다며 부러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야 유인원인지 인간인지 분간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최근 B는 이상한 과학에 골몰하고 있었다. 너무 심취한 나머지 지구나 인류의 미래 따위를 걱정하는 집회에 나를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 집회의 내용은 너무 허무맹랑했고, 그래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것인지 그 요지조차 분명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B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내 몸의 작은 변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B는 살아 있는 나에게서 진화를 관찰하고 싶어했다. B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옆머리를 내려 귀를 완전히 가렸다. B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전시실 문을 열었다. 머리카락 속에서인지 전시실 안에서인지 희미하게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전시실은 커다란 지하실에 설치되어 있었다. 전시실 문을 열자 파란 조명과 함께 오래된 먼지와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파란 조명이 폐 속으로 함께 딸려 들어왔다. 전시실은 커다란 동굴 같았다. 발을 내딛자 이명처럼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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