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문학, ‘닫힌 미래’와 싸우다

 

‘헬조선’에서 ‘탈조선’을 꿈꾼다는 것

신자유주의형 신인류의 역습

 

 

소영현 蘇榮炫

문학평론가,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저서 『프랑켄슈타인 프로젝트』 『분열하는 감각들』 『문학청년의 탄생』 등이 있음. yhso70@hanmail.net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다.”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문학동네 2015)

 

“저도 안다고요, 충분히. 아저씨 세대에 비해서 제 세대가 훨씬 여유로운 거

저도 안다고요. 근데, 그래서요? 저보고 어떡하라고요? 그게 제 탓이에요?

말씀하셨잖아요, 제 탓이 아니라고. 그럼 저보고 어떡하라고요?”

김사과 『천국에서』(창비 2013)

 

 

1. 한국사회 성찰론, ‘헬조선’이라는 마술부대

 

청년들이 이곳을 ‘헬조선’(hell+朝鮮)이라 부르며 한국사회의 퇴행적 면모에 대한 전면적 비판에 나섰다. 인터넷 싸이트 디씨인사이드(역사갤러리/주식갤러리)에서 조선시대를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다 2015년 중반 언론의 핫이슈가 된 헬조선은 국가와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극도의 혐오가 불러온 말이다. 헬조선론은 ‘견디면 암이고 못 견디면 자살’1)인 이 땅에서 입시, 취업, 결혼으로 대표되는 생애주기의 주요 계기마다 청년, 아니 우리 모두가 목숨을 건 경쟁을 펼쳐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살고 있음을 비명처럼 전한다. 애초에 극심한 취업난에 내몰린 청년들에 의해 지펴졌지만, 헬조선론은 한국사회 비판에서 전방위적이다.2)

사실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나 ‘망한민국’, ‘불지옥반도/지옥불반도’(지옥불이 치솟는 半島)로 명명하는 일이 전에 없는 낯선 일은 아니다. 표현은 달랐지만 이곳이 지옥이라는 절망적 인식과 이에 대한 전면적 비판은 적어도 근대 이후만 따져보아도 꽤 긴 연원을 갖는다. ‘미개한 국민성’과 ‘후진 시스템’에 대한 비판3)인 헬조선론은 다소간 과격하고 자극적인 표현이나 이미지가 동원되고 하위문화적 놀이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4) 한국사회에 대한 전면적 반성과 사유를 요청하는 사회비판 담론의 계보 위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이전 시대의 사회비판 담론이 그러했듯 청년 주도의 청년론에 가깝지만 세대론으로 국한될 수 없는 것이다.

그간 한국사회의 갈등과 모순의 주적의 자리에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금융자본주의가 불려나왔다면, 이제는 그 자리를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채우게 되었다. 헬조선론의 미덕은 한국사회 전반에 흩어져 있는 문제들을 서로 유관한 관계망 속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 점이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미시화 전략으로 파편적으로 인지되던 한국사회의 모순들, 노동, 교육, 주거 등 긴급한 해결이 요청되는 문제들이 헬조선의 이름으로 한자리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SNS(쏘셜네트워크서비스) 공간은 말할 것도 없고 일간지나 주간지, 사회비판적 계간지에서 ‘헬조선’론에 대한 관심이 뚜렷하다.5) 헬조선론을 통해 신자유주의라는 모호하고 실체가 불투명한 비판대상에 현실적 무게가 얹히면서 사회비판의 실질적 가능성이 좀더 뚜렷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헬조선론은 헬조선이라는 용어로 이 땅의 적체된 문제들을 한자루에 쓸어담아 그 자루만 버리고 나면 모든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 있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게 사실이다. 한국사회의 문제적 면모들에 대한 혐오와 조롱으로 채워진 채 그 대안으로 ‘탈조선’이 거론되고 탈조선이 한국사회에서의 이탈, 즉 이민의 문제로 한정되는 구조는 그러한 착각을 부추기는 헬조선론의 함정이기도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비판 담론의 계보 위에서 헬조선론의 차별적 면모는 이 논의구조에서 생겨난다. 헬조선론이 아직 몸체를 확인할 수 없는 시대변화의 징후로서 읽혀야 하는 것은 헬조선론이 보여주는 이 미묘한 면모 때문이다.

 

 

2. 헬조선론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노오력, 미개, 흙수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노답, 벌레(충), 노예, 탈출, 인정 등 헬조선론에서 주로 활용되는 용어는 헬조선론이 근대정신의 중심을 이루었던 담론들, 입신출세주의, 노력론, 수양론, 교양론에 대한 조롱임을 말해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쌔뮤얼 스마일스(Samuel Smiles)의 언술이 근대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격언이 된 것은 신분제가 해체된 세계에서는 개인이 균등한 기회를 부여받고 ‘노력’을 통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신념이 널리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