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갑상 曺甲相

1949년 경남 의령 출생.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병산읍지 편찬약사』, 장편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 등이 있음.

ksc29911@gmail.com

 

 

 

현수의 하루

 

 

중문을 열자 TV 소리가 크게 울렸다.

“저, 왔습니다.”

현수는 거실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인사했다. 부친은 소파에 앉아 있고 보호사 허선생은 부엌에 서 있었다. 현수는 그녀에게 다시 인사했다.

“수고하십니다.”

“빨리 오셨네요.”

현수는 소파 앞 탁자에서 리모컨을 집어 소리를 낮추었다.

“아버지, 병원 가시게 옷 입으셔야죠.”

부친은 실내복 차림이었다.

“선걸음에 가나.”

“빨리 가야지요.”

부친이 벽에 세워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방으로 갔다.

“아버님은 요즘 어떠십니까?”

그가 허선생에게 말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부친에게는 목소리를 높이고 허선생에게는 낮춘다고 하지만 기계처럼 조절되는 건 아닐 것이었다.

“잘 지내십니다. 식사도 잘하시고 기침도 덜 하시고.”

“이번 약은 잘 맞는 것 같죠? 그래, 기억력은 어떻습니까?”

“표 나게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은데……”

“네에……”

그도 전화상으로나 휴일에 한번씩 와서 관찰하고 있는 바였다.

그때 점퍼를 입은 부친이 마스크를 쓰고 거실로 나왔다.

“지금 택시 부릅니다.”

“오늘도 차를 안 갖고 왔나?”

현수는 순간적으로 속이 뒤틀렸지만, 숨을 가다듬고 “네”라고 답했다.

택시 배차 문자가 뜨고 현수가 신발을 신는데 부친이 호흡용 휴대 산소캔을 내밀었다. 방과 거실에 산소호흡기가 한대씩 있지만 외출용도 사두고 있었다.

“무겁도 않은데 가져가자.”

현수는 말없이 캔을 받아 손가방에 넣었다. 저번에도 그랬다. 한동안 사용한 적이 없어 잊었는데 이번에도 부친이 챙긴 것이다.

 

택시가 제때 왔다. 문을 여닫고 내리는 데 편하도록 부친을 뒷자리에 앉히고 그는 앞에 탔다. “백병원 갑니다.” 현수는 호출할 때 밝혔던 행선지를 기사에게 다시 알렸다. 부친은 폐에 물이 차고 호흡 곤란이 있어 몇년째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입·퇴원을 반복하며 치료 중인데 의사가 바뀌고는 증세가 안정되고 있었다. 두달에 한번씩 검사를 하고 약을 타는 것만으로도 현수는 감지덕지였다. 신호에 차가 멈추었는데 갑자기 찬바람이 들이쳤다. 부친이 창문을 내렸다가 천천히 올리고 있었다. 백미러로 지켜보던 기사가 눈웃음을 지었다. 현수는 웃을 수도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실내 환기를 시키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일까마는 유난스럽게 보이긴 했다. 민망한 그의 심정이라도 읽었는지 기사가 먼저 말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방역수칙을 더 잘 지킵니다.”

“네에. 하긴 하루 종일 뉴스 방송만 보시니까.”

좋은 일이지요,라고 넘어가면 될 걸 그는 핀잔주듯 말하고 말았다. 정말 민망해진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친을 대할 때마다 자신을 탓할 일이 잦아 괴로웠다. 그는 거리를 보고 상가 간판들에 몰입했다. 해결책이 없으니 생각하기도 싫어지고 있었다.

택시는 출입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정차했다. 한쪽 문만 사용하다보니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은 줄지어 선 사람들 뒤에 붙어 서서 바닥에 벌겋게 붙여놓은 신발 그림과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부친은 부축하지 않아도 곧잘 걸으시는 편이었다. 아들은 부친의 뒷모습을 살폈다. 지팡이를 쥔 오른쪽 어깨가 좀 처졌지만 등도 많이 굽지 않고 걸음도 바른 편이었다. 이 모든 게 혼자 지내실 수 있다는 판단을 주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체온 체크 등 절차를 밟은 뒤 로비에 들어섰다. 그는 모친이 돌아가신 뒤 동생들과 부친을 어떻게 모실까 의논하던 기억을 지우며 말했다.

“이층으로 갑시다. 채혈실로.”

“오늘도 사람이 많네.”

“네에.”

병원이니까,라는 말이 싱거워 입에 삼키고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다. 현수는 부친의 왼쪽 팔목을 힘주어 붙잡고는 “자, 이번에 탑니다”라면서 발을 얹었다. 부친도 제때 같은 칸에 올랐다. 채혈실 앞 대기의자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그는 대기표 뽑는 기기로 가면서 “아버지, 저기 빈자리에 앉아 계세요”라고 말했다. 표를 뽑아 화면에 떠오른 순번을 보니 40번이나 간격이 떴다. 부친 옆에 앉으려는데 부친이 먼저 일어났다. “화장실 갈란다.” 그러고 보니 그도 요의가 느껴졌다. 부자는 화장실로 갔다. 하지만 그는 입구에서 멈춰 섰다.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천천히 나오셔도 됩니다.” 요즘 들어 요의는 있어도 그때마다 오줌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오줌을 누지 못하고 나오는 일도 심심찮게 겪고 있었다. 부친과 나란히 소변기 앞에 섰다가 오줌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도 낭패였다.

얼마 뒤 부자는 채혈실 안으로 들어가 잠시 기다리다 207번 번호가 뜬 자리로 갔다.

검사의뢰서와 번호표를 내밀자 간호사가 물었다. “할아버지, 성함하고 출생연도가 어떻게 되세요?” 현수가 얼른 대답했다.

옆자리 젊은 여자가 부친의 출생연도를 들었는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소매 걷고 팔 주세요.”

점퍼를 미리 벗었음에도 옷이 겹겹이었다. 더디게 남방셔츠 단추를 풀고서야 팔을 내밀 수 있었다. 간호사가 팔뚝 위를 고무 밴드로 묶는데 허물한 살이 흔들렸다. 검버섯 딱지가 덮은 팔뚝에서 혈관을 찾은 간호사가 바늘을 찔렀다. “따끔합니다.” 이내 검붉은 피가 주사기로 흘러들었다. 현수는 부친의 채혈 모습을 지켜보며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떠올렸다. 이년째 입원 중인 아내는 약한 피부에 혈관까지 잘 나오지 않아 주사 맞는 걸 힘들어했다. 눈앞에 퉁퉁 부어오른 아내의 혈관자리가 떠올라 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삼분간 꼭 누르고 계세요.” 반창고를 붙이며 간호사가 말했다.

현수는 부친을 모시고 엑스레이 촬영실로 갔다. 의사는 폐에 물이 차는 게 기침의 원인이라고 했다.

사진을 찍고 아들과 아버지는 순환기내과로 갔다. 현수가 접수대로 가서 부친 이름을 밝히고 나오는데 핸드폰에서 재난문자 알람이 울렸다. 이제 시작이구나. 어제 발생한 환자 수가 구청별로 나왔다. 일주일째 요양병원 발생은 없었다. 이번엔 벨이 울렸다. 서울 사는 아우였다.

“형님, 접니다. 병원이십니까?”

“그래, 검사 마치고 내과로 왔다.”

“날씨도 찬데 수고가 많으십니다. 요즘 아버님 목소리가 한결 수월해 보입디다.”

“그래, 다행이지.”

“그럼요. 저.”

동생이 머뭇댔다.

“강수가 어제 전화했습니다. 오늘 형님하고 의논한다면서……”

동생이 다시 망설여 그가 말했다.

“그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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