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화

 

현장에서 바라본 교육, 희망은 없는가

 

 

권태선 權台仙

언론인,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한겨레신문 편집국장과 교육혁신위 산하 2008 대학입시개혁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이범

교육평론가, 곰TV이사. 학원계의 대표적 스타강사로 2004년부터 무료 인터넷강의를 시작했다.

 

채은숙 蔡銀淑

상문고 학교운영위원회 부위원장. 고등학생, 중학생 두 자녀의 학부모 자격으로 대화에 참석했다.

 

ⓒ이영균

ⓒ이영균

 

권태선(사회) 반갑습니다. 저는 신문사에서 논설위원으로 일하는 권태선입니다. 이범 선생님은 요즘 워낙 활발히 활동하시는 교육전문가이니까 특별한 소개가 필요 없을 것 같고요, 채은숙 선생님은 강남의 학부모 자격으로 모셨는데 상문고 학교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우리나라는 「강남 엄마 따라잡기」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을 정도로 사교육 열풍이 심한데, 한분은 사교육 중심지로 지목되는 강남의 학부모이시고, 다른 한분은 사교육 현장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오셨고 또한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해오신 터라 우리 교육의 쟁점들을 다루기에 좋은 자리인 것 같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먼저 사교육 현황부터 이야기해볼까 싶어요. 통계청에서 조사한 2007년 사교육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초중등학생의 77%가 사교육을 받고 있고 그 전체 규모가 20조원이 넘는다고 해요. 2006년에는 공식적으로 15조원,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30조원이라고 얘기했으니까, 현재 공식 통계로 잡히는 20조원은 실제로 40조원쯤 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범 이제 사교육비가 공교육비를 초과할지 모르겠네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용도 있을 거고요. 저 수치는 아마 소비자들을 조사해서 나온 것일 텐데, 학원비의 경우는 업계에서 조사하면 신고하지 않는 사례가 꽤 되니까요.

채은숙 학부모들이 사교육을 못 견뎌 아이들을 유학 보낸 경우까지 합한다면 훨씬 초과하겠죠. 유학 가서도 사교육을 시키니까요.

 

아이 장래는 엄마 하기 나름?

 

권태선 강남 학부모들이 사교육비를 가장 많이 지출할 것 같은데, 그 실상은 어떤가요?

채은숙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에 의존하는 게 일반적이고요, 외고 준비하려면 내신을 관리해야 하니까 중학교 때 국영수는 기본이고 팀을 짜서 음악, 미술, 체육까지 하는 게 보통이에요. 고등학교 가서는 입시와 연결되니까 사교육 비중이 더욱 커지죠. 언수외(언어 수리 외국어)는 수능형과 내신형 이중으로 시키고, 아울러 사회탐구 과학탐구까지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죠.

권태선 채선생님댁 아이들은 어떠세요?

채은숙 저도 강남의‘독수리엄마’들처럼 교육열에는 유난했었어요. 지금 고등학생 중학생 두 아이가 있는데 좀 일찍부터 조기교육을 시작했어요. 일산에 살다가 강남에 입성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는 큰아이를 사교육 현장으로 밀어넣었죠.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말쯤에 제가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애들 교육비 지출이 가계수입을 넘어갔거든요.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독립시키기 시작했죠. 그동안 기초를 닦아놓아서 지금은 기본적인 영어 수학 정도만 하고, 나머지는 인터넷강의 듣고 스스로 공부하고 있어요. 제가 손을 떼고 격려하기 시작한 뒤로 아이와 사이도 더 좋아지더라구요.(웃음)

이범 훌륭하게 리모델링하셨네요.(웃음) 우리나라 가계소득을 보면, 자녀가 중고등학교 들어갈 때쯤에 정점에 올랐다가 이후에는 떨어지거든요. 그런데 지출을 보면 대학입학 이후에 자녀들에게 더 많은 돈이 들어가요. 등록금에다 어학연수다 뭐다 해서 그후의 교육비도 만만치 않고, 결혼할 때가 되면 목돈이 들어요. 그런데 학부모들이 자녀를 대학 문턱 안에만 집어넣으면 될 거라 착각하고 아낌없이 쏟아붓는 경우가 많죠. 그런 점에서 채선생님은 상당히 훌륭하게 리모델링하신 겁니다. 제가 강연할 때 모범사례로 언급해야겠어요.(웃음) 저런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아요. 어떻게든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부모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권태선 채선생님이 아까 교육비 지출이 가계수입을 초과한다고 그러셨잖아요, 그럼 모자란 부분은 어떻게 충당하셨나요?(웃음) 직접 말씀하시기 뭣하시면 다른 강남 엄마들의 경우라도 말씀해주시죠?

채은숙 애아빠들이 사교육 비용을 이해 못하기 때문에 사실대로 이야기 못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봤어요. 저도 그랬구요.(웃음) 저희 집에서는 애들 아빠 수입에 한계가 있으니까 나름 재테크도 하고 아이들 어릴 때 저축해둔 적금으로 사교육비를 해결했어요. 다른 어머니들은 재테크를 하기도 하고, 부모님 신세를 지는 분들도 있고, 자신에게 쓸 돈을 아껴 아이들 사교육에 쓰고 있어요. 소문에 강남 엄마들은 아이들 학교 보낸 다음에 오전엔 운동화 갈아신고 부동산, 증권사를 다니며 재테크를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 간식 먹여서 학원 픽업을 하며 학원테크를 한다죠.

권태선 재테크를 한다면 어떤 것인가요, 주로 부동산인가요?(웃음)

채은숙 부동산을 하는 엄마들도 있고, 주식을 하기도 하고요. 저는 좀 예외지만 대체로는 끝까지 가죠. 자신의 생활수준을 넘어서까지요.

권태선 이렇게 학부모들이 많은 돈을 들여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잖아요. 교육전문가로서 그 사교육이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보시나요?

 

사교육의 효과와 역효과

 

이범 최근에는 과잉 사교육의 역효과를 우려해야 할 지경이에요. 제가 보기에, 중학교 때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느냐 아니면 전적으로 학원에 의존해서 공부하게 되느냐로, 거창하게 말하면 인간형이 나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채선생님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리모델링하셨으니까 때를 놓치지 않아 성공하신 거죠. 그러지 않으면 전적으로 학원에 의존하다가 결국 자기 주도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돼요. 그런 아이들이 결국 대학 가서도 사교육을 받죠. 요즘 대학생들은 별의별 것을 다 배우러 학원에 다니는데, 초중고 시절부터 그렇게 길들여져왔다고 봐야 해요.

권태선 사교육의 효과가 있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이범 주입식으로 단기간에 점수를 올리는 데는 아무래도 효과적이죠.(웃음)

권태선 채선생님은 사교육을 시키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그만두셨다고 했잖아요. 그때 경제적인 이유 외에 또 어떤 게 있었나요?

채은숙 이렇게 아이를 끌고 가다가는 평생 그래야겠다는 생각, 부모 밑에 있을 때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으면 이 아이를 평생 마마보이로 만들고, 제가 독수리엄마처럼 아이를 지켜야 된다는 위기감이 생겼어요. 지금 체제에서는 엄마가 어떻게 코디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장래가 바뀌잖아요. 제가 코디하는 대로 아이가 잘 따라올 줄 알았는데 아이의 성향과 제 성향이 부딪친 점도 작용했어요. 그런데 저도 그 시점에 개인적으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까‘아, 공부는 스스로 다져나가야 결과물이 나오는데 내가 아이를 왜 이렇게 가르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것들이 결정적인 계기였죠. 그래서 마음을 바꾸게 됐어요. 근데 정말 쉽지는 않아요. 중학교 때 우리 아이와 함께 공부하던 애들이 민사고(민족사관고), 특목고(특수목적고)에 갔어요. 우리 아이가 영어를 더 잘했는데, 그 애들이 3, 4개월 집중적으로 학원을 다니니까 확실히 점수가 올라가면서 실력 차이가 나더라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와서 공부하는 걸 보니‘내가 잘했구나’느껴요.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길렀기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상승한다는 장점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현체제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을 엄마들이 단계별로 사교육에 투입시키는 거예요.

권태선 제 경우에는 특파원 생활을 하느라고 큰애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프랑스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그 애가 수학을 잘 따라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내신에서는 100점을 받아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안심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얘가 “엄마, 내가 수학을 얼마나 못하는데 학원도 안 보내주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점수도 잘 나오는데 왜 못한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는데, 바로 수능 얘기더라고요. 큰애가 지금 대학원에 다니는데, 올해 처음 화해했어요. “고등학교 때 수학을 따라갈 수 있도록 뒷받침을 안해줘서 너무 힘들었다”고 하는 거예요. 혼자서 그것을 극복하느라 쉬는 시간에도 수학문제만 푸느라고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고 고등학교 생활이 엉망이었다고 해요. 그게 아이한테 상처로 남은 것 같더라고요. 기자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한국교육의 현실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몰랐던 거죠. 결국 아이한테 엄마의 무지와 아이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상처를 준 걸 사과했어요. 이런 경우도 있지만, 이선생님 말대로 사교육 과잉으로 인한 문제도 적지 않다고 여기는데요. 해마다 청소년 건강실태에 관한 조사를 해보면 초중등 학생들의 우울증이나 과잉행동장애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고요. 그럼에도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사교육의 쳇바퀴 속으로 계속 내몰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고민의 지점은 어디일까요? 그리고 강남 어머니들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채은숙 가장 큰 요인은 자신의 아이를 정확하게 관찰하고 필요한 시기에 사교육을 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인 것 같아요. 권선생님 경우에도 따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필요한 시기에 수학과외를 시켰다면 따님이 좀더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이렇게 아이가 엄마랑 함께 발맞춰가면 그래도 나은데, 엄마의 불안과 의욕이 앞설 경우 아이는 엄청 괴로운 거죠. 엄마랑 사이가 좋은 아이들이 그래도 좋은 결과를 낳는 것 같아요.

이범 실제로 조사해보면 부모와의 대화시간과 성적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어요. 사교육 성공에는 두가지 중요한 조건이 있어요. 첫째는 실제 그 아이에게 알맞은 사교육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해주느냐인데, 그런 측면에서 아까 말씀하신 아이와의 대화가 중요하죠. 애가 뭘 어려워하고 뭘 필요로 하는지 대화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거든요. 또 하나는 학생 스스로 얼마나 자기 공부시간을 확보하느냐예요. 관성적으로 학원 보내는 학부모들은 학원만 다니면 뭔가 될 거라 생각하시는데, 그건 큰 착각이에요. 학교, 학원만 쳇바퀴 돌듯 다니고 자기 공부시간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가장 실패할 확률이 높죠.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몇시간이라고 하면 그에 맞춰서 학원 다니는 시간도 조정해야 되거든요. 이런 것들도 결국 자녀와의 대화로 조정할 수밖에 없죠.

 

선행학습과 줄세우기 시험에서 강점을 지닌 사교육

 

권태선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입시에서 더 경쟁력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것은 높은 수강료, 강력한 학원간 경쟁, 공식적 교육목표와 실제 교육목표의 일치, 낮은 교사 대 학생 비율, 더 나은 교육능력에 대한 강력한 화폐보상, 교육자의 잔무 제거 등 공교육이 가질 수 없는 잇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잇점과 무관하게 사교육 나름의 교육적 특장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범 그건 과목마다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영어는 한국 공교육에 맡겨서는 절대로 성공하기 어려워요. 학교교육만으로는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 자체가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