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조경란 趙京蘭

1969년 서울 출생.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등이 있음.

 

 

 

형란의 첫번째 책

 

 

옛날 옛날에 오르배라는 커다란 섬이 하나 있었어요. 그 섬에는 지리학자들이 살았는데 그 사람들은 지도를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어떤 지리학자는 평생 동안 자신의 뜰에 사는 개미들의 세계만 갖고도 오백장이 넘는 지도를 만들었고 어떤 지리학자는 구름의 변화에 관한 지도를, 또다른 지리학자들은 나무나 생물의 생태, 혹은 전설이나 신화 같은 것도 지도에 담고 싶어했어요. 또 어떤 학자들은 지도를 그리기 위해서 아주 오랫동안 떠돌아다니지 않으면 안되었어요. 그들은 산과 강, 호수와 숲, 땅과 하늘 그리고 바닷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하나씩 이름을 붙여주고 불렀어요. 그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 땅의 잠자던 모든 생명들이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대요. 오르배 섬은 이제 사라지고 없어요. 거기 가고 싶어도 우린 이제 갈 수가 없게 된 거죠. 그러나 그 지리학자들이 시도한 몇장의 지도는 아직 남아 있어요. 이따금 나는 오르배 섬에 가는 꿈을 꾸어요. 크고 작은 수천장의 지도들이 마치 흰 빨래처럼 널려 있는 그 섬에 말이에요. 내가 이 도시에 막 도착했을 때 내 손에 들린 것, 내가 무슨 밧줄처럼 꽉 움켜쥐고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지도 한장이었답니다, 쯔야끼 씨. 대도시에서 태어났고 한평생을 거기서 살았고 남은 날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나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으로 찾게 되는 건 어쩌면 커다랗고 낯익은 광고판일지도 몰라요. 나는 주로 광고판을 보고 어디서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사야 할지를 순간적으로 결정하곤 했어요. 이 도시는 가도 가도 끝없는 옥수수밭뿐이었어요. 나를 유혹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도시처럼 느껴졌어요. 호텔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최초의 두려움을 느꼈어요. 손에 움켜쥐고 있던 지도를 펼쳐서 이불처럼 온몸에 둘둘 감고 싶었어요. 낯선 언어로 씌어진 그 지도는 정말 신비해 보였어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지금부터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요.

……쯔야끼 씨 걸음은 너무나 빨라서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언제나처럼 엉덩이를 뒤로 쑥 내민 채 앞뒤로 크게 팔을 흔들며 안짱걸음으로 재빨리 걸어가고 있군요. 맨 처음에 나도 여기 왔을 땐 쯔야끼 씨처럼 그렇게 걷곤 했어요. 언제나 등을 펴고 조금 빠르게. 뒤쫓아가는 걸 단념하고 나는 다시 까페로 돌아와 창가에 앉았어요. 쯔야끼 씨 모습은 이제 여기서 더는 보이지 않는군요. 쯔야끼 씨가 지금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건 오가닉 슈퍼마켓으로 사과나 쌀을 사러 간다는 것이고 또하나는 도서관 근무시간이 끝났다는 걸 의미하겠지요.

이 창가 자리에 앉아서 우리 함께 차를 마신 적이 있었어요. 버스를 타고 가던 쯔야끼 씨가 창가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곤 경쾌하게 뛰어내려 함께 중국식당에 가거나 마트에 가서 접시나 포인세티아 화분을 산 적도 있어요. 이곳에 머무는 동안 구두 두 켤레를 버리고 새로 사야 할 정도로 내내 걸어다니곤 했는데도 나는 언제나 여기 이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이렇게 창가에 한 시간만 앉아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 적어도 여섯 명쯤은 발견할 수 있어요. 지금 쯔야끼 씨를 본 것처럼 말이에요. 그들은 대개 이 다운타운 상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죠.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앨런, 브래드 가든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줄리,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아흐메드 등등 이름표를 달고 있던 사람들요. 그중에는 갈색 머리카락을 어깨 밑으로 치렁치렁하게 기르고 다녔던 홈리스도 있었어요. 어쩌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나 또한 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네요, 쯔야끼 씨. 언제나처럼 내가 여기 앉아 있는 것도 모른 채.

 

쯔야끼 씨, 나는 오늘 작별인사를 하려고 합니다.

 

남편은 내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행성처럼 같은 평면에 있고 또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는 거야,라고 말이에요. 무겁고 오래된 종을 친 것처럼 그 목소리는 둥둥둥 내 귓가에 울려퍼졌어요. 나는 거의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어요. 나는 그게 사랑에 관한 거라고 이해했거든요. 그러나 남편은 바로 그 다음날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어요.

나는 행성처럼 빠르게, 빛의 속도로 여기 달려오고 싶었어요. 그러나 비좁고 건조한 비행기 안에서 열다섯 시간도 넘게 마른침을 삼키고 있어야 했어요. 나는 남편을 찾아야 했어요. 그러나 걱정할 건 없었어요. 나한텐 이 도시의 지도가 있었고 이제 그걸로 남편을 찾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택시기사는 나를 M호텔로 데려다주었어요. 이 도시에 있는 유일한 호텔이라면서요. 트렁크를 던지듯 방에 팽개쳐두고는 곧장 로비로 내려갔어요. 소파에 앉아서 처음으로 지도를 펼쳐보았어요. 도서관의 위치를 알고 싶었으니까요. 몇겹으로 차곡차곡 접혀 있던 지도를 펼쳐본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내가 쥐고 있던 건 이 도시의 축적지도가 아니라 ‘푸드&레스또랑’ 지도였던 거였어요. 이방인들을 위한 레스또랑 가이드 같은 거였죠. 하! 나는 실소했어요. 그땐 긴장이 풀려 있던 거예요. 그 지도만으로도 당장 남편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호텔 정문 앞에서부터 갈라진 다섯 개의 길 중에서 세번째 길을 선택해 허리를 곧게 펴고 조금 빠르게 걷기 시작했어요. 다운타운을 지나면 그 길 끝에는 곧장 이 도시에서 가장 크고 긴 강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남편은 이 도시에 가을에나 오게 되어 있었어요. 만약 그의 여권이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여기 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강으로 내려가는 길 언덕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외관 자체가 둥글고 휘어지고 기우뚱하게 왼쪽으로 늘어진 커다란 건축물 하나가 보였어요. 곡선의 수많은 면 때문인지 단지 건물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적절하기도 했으며 그 안에 사각형의 공간이라고는 도무지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그런 건물이었어요. 그러나 나는 그만 입을 벌리고 말았어요. 내가 그 도서관을 이해하는 데는 그후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아무튼 그때 그 붉은색 벽돌 건물은 다소 수용적이면서도 장엄한, 그리고 유혹적인 동시에 어떤 힘센 도구처럼 보였어요. 게다가, 여기가 바로 당신이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입구입니다, 그 건물은 마치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나는 성큼성큼 건물 쪽으로 걸어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녁놀 속에서 의식을 일깨우듯 더 짙고 선연한 붉은빛으로 빛나고 있던 벽돌 건물은 창조성,이라고 다시 한번 말했어요. 나는 그 속을 꿰뚫고 들어갈 작정이었어요. 힘껏 문을 잡아당겼어요.

 

*

남편을 찾기 위해서 나는 남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해내지 않으면 안되었어요. 나는 지금부터 내가 남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럴 때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했을까. 나는 우체국에 갔어요. 거기서 벤이라는 우체국장을 만났어요. 그 다음에 이발소에 가서 크리스라는 노인과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남편은 초등학교 교사를 만났을지도 모르고 다운타운을 순회하는 버스 운전기사나 은행의 수위를 만나 시시한 잡담을 나누었을지도 몰라요. 그게 자신이 강연할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 맨 처음 그가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그가 거기에 다녀갔다는 아무런 단서를 찾을 수 없었어요. 그리고 나에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특별한 단 한사람인 내 남편이 그토록 아무 특징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예요. 이 도시에 키가 175쎈티미터쯤 되는 어깨가 구부정한 사십대 초반의 안경 쓴 동양인은 셀 수도 없이 많았거든요. 내가 맨 마지막에 간 곳이 바로 도서관이었어요. 그래요, 쯔야끼 씨. 그날 나는 그 문을 힘껏 잡아당기고서도 거길 들어가지 못했죠. 문을 연 순간 깨달아버린 거예요. 거길 들어간다는 건 나에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요. 남편이 거기 없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나를 두렵게 만들었거든요. 거긴 맨 마지막 장소가 되어야 했어요. 상점에 물건을 사러갈 일이 있거나 혹은 강가로 산책을 나갈 때도 애써 도서관 쪽은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러나 새의 목처럼 완만하고 부드러운 곡선과 절제된 선들로 이루어진 건축물, 어느새 내 눈엔 그것이 탄생하기 이전의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언어의 한 형태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는 줄곧 도서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는 사이에 이 도시의 상점들을 한번씩은 다 다녀보았고 한꺼번에 여러 명의 친구들까지 생기게 되었어요. 그러나 해가 질 무렵이면 나는 늘 혼자 이 창가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곤 했어요. 의기소침한 날에는 공원에 나가 웃통을 다 벗은 채 춤추고 있는 히피들을 구경하기도 했어요. 내가 다시 도서관을 찾아가게 된 건 그후 보름이 더 지난 구월 첫째주 토요일 아침이었어요.

강가에 다녀온 날이었어요. 나는 풀숲 속에서 화려한 은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구렁이 허물을 발견했어요. 수면 위에서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던 카누 위에다 구렁이 허물을 씌웠어요. 카누에 깃든 구렁이의 정령이 무성한 갈대 사이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까요. 자, 이제 가자! 카누 위에 올라타서 나는 모험을 떠나는 바이칼 사람들처럼 호기롭게 외쳤어요. 나는 꿈에 의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꿈이 나에게 다시 도서관에 가서 남편을 찾을 수 있는 용기를 준 건 사실이랍니다.

쯔야끼 씨, 당신은 위풍당당한 책들 속에서 고개 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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