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형식실험의 역설

김연수의 특이한 서사적 행로

 

 

한기욱 韓基煜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주요 평론으로 「지구화시대의 세계문학」 「대중문화 속의 소설과 영화」 「우리 시대의 사랑·성·환경 이야기」 등이 있음. englhkwn@ijnc.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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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세대는 자신의 고유한 문학사를 새로 써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한국문학의 젊은 작가들 가운데 김연수(金衍洙)만큼 이런 요구를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는 작가는 드문 듯하다. 그가 흔히 90년대 ‘신세대문학’의 기수로 꼽히는 것도 이런 세대적 자의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1970년생인 김연수가 창작활동을 시작한 1994년에는 80년대의 격렬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가두시위나 분신과 고문 같은 엄혹한 상황―은 삶의 중심에서 물러나 하나의 풍문이나 전설로 바뀌고 있었다. 게다가 바로 그 직전에 일어난 동구권과 소련의 몰락은 좋든 싫든 엄연했던 객관적 세계 혹은 현실이 삽시간에 사라지는 듯한 충격적인 경험을 안겨주었다.

90년대 초반 민주화 투쟁의 퇴조와 맞물려 갑작스레 찾아온 디지털 소비자본주의의 일상 그리고 현실사회주의권의 돌연사는 많은 작가들에게 그러했듯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가 앞선 세대 작가들, 특히 80년대 리얼리즘 작가들의 세계관을 분명히 거부한 것은 90년대에 등단한 다른 신세대 작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령,“객관적 현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주관적인 내 몸뚱어리의 경험을 무한히 세계의 지평까지 확장시키려는 욕망”을 자기 문학의 기원이라고 밝힐 때,1 혹은 장편 데뷔작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세계사 1994)의 「작가의 말」에서 “나는 비로소 세계라고 하는 객관적인 구조체가 두렵기 시작하였다. 세계는 없다. 세계는 없는 것이다”(354면)라고 토로할 때, 그는 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대전제였던 객관적 세계 즉 현실에 대해, 그것이 하나의 (언어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인식론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김연수의 특이한 점은 김영하나 하성란과 같은 신세대 작가들이 80년대를 시효가 만료된 과거로 받아들이고 90년대의 문화적 현실에 몰두할 수 있었다면, 그는 그럴 수 없었다는 점이다.“90년대를 살아가는 자들은 이미 죽은 자들이고 90년대가 오기 전에 죽은 자들이야말로 살아 있는 자들이다”(『스무 살』, 문학동네 2000,227면)라는 작중화자의 발언처럼,90년대의 사람들이란 80년대와 그 이전의 진짜배기 삶이 사라진 후에 겉돌고 있는 유령들이라는 생각이 그의 의식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특이한 시대인식 덕분에 김연수의 초기작품에는 어떤 화해하기 힘든 모순이 존재한다. 김연수의 발상을 빌려서 말하자면,80년대적인 영혼이 90년대적인 예술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의 서사적 행로에 하나의 역설이 존재하는 것도 따져보면 이런 특이한 모순 때문인 듯하다. 데뷔작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와 최근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문학동네 2002) 사이의 현격한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인식론에서 출발했으되 다양한 스펙트럼의 지적 편력과 서사적 실험을 거치는 동안 출발점과는 반대방향의 어느 지점에 도달한 듯하다. 문학 텍스트에서 ‘세계’를 추방하고 순전한 허구의 언어적 구성물을 보여주겠다며 출발한 그가 (‘객관적’이라는 형용사는 붙일 수 없을지는 몰라도) 하나의 ‘세계’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다. 어쩌면 이 작가의 선명한 입장표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는 처음부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인식론과는 다른 무엇이 작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종종 그의 서사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내용과 형식이 어긋나는 현상은 텍스트 바깥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강렬한 애착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은밀한 일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와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는 동일한 작가가 썼다고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의 지적 편력, 특히 소설관의 경우에도, 작가의 입장표명과 작품의 구체적 면면 사이에는 어떤 괴리가 존재한다. 그는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의 서두에서 한때 매혹됐던 무라까미 하루끼(村上春樹)에서 벗어나 한국문학사를 만나면서 “그제야 나는 맥락이 없는 세계가 참으로 나약한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10면)고 밝힌다. 하지만 이런 선언적 각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동안 한국문학보다는 서구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맥락에서 사유하는 듯했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쿨’(cool)한 포즈를 취하는 무라까미 하루끼 유의 병폐에서도 시원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보다는 오히려 리얼리즘 예술에 더 가까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의 단편 연작을 씀으로써 한국문학사의 맥락에 확실히 접속한 것 또한 역설이라면 역설이다. 외국문학을 거쳐 한국문학으로 들어오는 우회적 경로, 이것이 김연수의 또하나 남다른 점이다. 이 글은 김연수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보다는 형식적 측면에 치중하여 데뷔작에서 최근작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특이한 서사적 행로를 추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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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첫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는 전통적 소설서사의 관행에 어긋나는 새로운 발상과 기법으로 가득하다. 마치 70,80년대 리얼리즘 소설이 강조하던 형식적 규칙들을 모조리 깨뜨려보는 실험을 하는 듯하다.작가는 이 소설이 하나의 허구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소설에 대한 논의를 작품의 핵심적인 일부로 끌어들인다. 작중에 작가로 등장하는 ‘나’(김연수)가 쓴 소설을 (80년대 맑스주의 세계관과 예술론을 지닌) 그의 친구이자 문학적 스승인 서원기가 논평하는 장이 간간이 삽입되며, 말미에는 이 둘과 등장인물 3명이 이 작품의 공과를 논하는 좌담회까지 열린다. 소설쓰기에 대한 고민을 소설의 소재로 삼는 이른바 메타픽션(metafiction)적인 면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소설의 주된 내용 역시 파격적인데, 냉전 이후 한국의 주도권을 놓고 유신 재건세력과 모종의 탈근대적 신민족주의 세력이 대결한다는 황당한 가상 역사를 기둥 줄거리로 설정하고, 이에 연루된 최민식과 송찬명이라는 두 청년의 좌충우돌을 보여준다. 장면들은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느닷없이 바뀌고 등장인물들의 말장난과 대화는 썰렁하기만 하다. 이 소설에 현실이 있다면 그것은 서원기의 말대로 “만화의 현실일 뿐”(45면)이다. 이런 실험적 형식들이 겨냥하는 주된 표적은 물론 반영론적 리얼리즘이다. 특히 신민족주의 세력이 국민개조 프로그램으로 구축한 ‘허구를 반영하는 현실이론’이란 것은 반영론적 리얼리즘의 허구성을 패러디하는 기제로 활용된다.

묘한 것은 권위에 의한 어떤 경계를 무너뜨릴 때는 무릇 신이 나게 마련인데 김연수의 이 작품에서는 그런 해체의 신명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영론적 리얼리즘을 통째로 뒤집고 조롱하는 발상들이 통쾌하기는커녕 어쩐지 찝찔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다. 가령, 서원기가 작중의 작가 김연수가 쓴 소설을 비판하는 대목은 맑스주의적 반영론에 대한 하나의 패러디로 의도된 것이겠지만, 다른 한편 자신의 과도한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에 대한 작가 김연수의 자의식적 반론으로도 해석될 수가 있다. 서원기는 패러디 대상임에 틀림없지만, 작가 김연수의 도플갱어(Doppelgänger,분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김연수의 이런 양면적 세대의식으로 말미암아 이 소설은 파격적인 형식실험에도 불구하고 통렬한 맛이 없고 어정쩡한 느낌을 주고 만다.2 게다가, 국내외 정세라든지 문학에 대한 작가의 예사롭지 않은 생각들이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와 구성이 정교하지 못해 별다른 예술적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한마디로 기발한 아이디어는 많은데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느낌이다.

두번째 장편 『7번국도』(문학동네 1997)는 데뷔작에 비해 분량도 적은데다가 언어도 꽤 정제되어 있어 한결 쌈박한 느낌을 준다. 이 소설에서도 형식실험은 계속되지만, 그 상당부분은 리처드 브로티건(Richard Brautigan)의 『미국의 송어낚시』(Trout Fishing in America, 1967)에서 그대로 차용된 듯하다. 우선 책의 제목인 ‘7번국도’는 ‘미국의 송어낚시’의 경우처럼 한가지 고정된 뜻으로 사용되지 않고 그 의미가 다양하게 변전된다.7번국도는 부산에서 시작하여 포항을 거쳐 속초에 이르는 동해안을 따라가는 도로이지만, 화자는 이것을 화분에 기르다 죽여버린 나무(뒈져버린 7번국),

  1. 김연수 「소수의 문학성이지 감각이 아니다」, 『작가세계』 1999년 봄호 302면.
  2. 이 소설의 문제점을 “우화적 구도라면 더 철저하게 만화를 향해 나아가든지, 아니면 정치적 알레고리가 요구하는 논리적 정합성과 개연성을 확보해야만 했다”고 지적한 서영채의 논평은 정곡을 찔렀다고 본다(서영채 「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문학동네』 2002년 봄호 3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