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혼돈의 미국 대선, 미국 민주주의는 쇠퇴하는가

 

 

서정건 徐正健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서 『미국 정치가 국제 이슈를 만날 때』 『현대 한미관계의 이해』(공저) 『미국 정치와 동아시아 외교정책』(공저) 등이 있음.

seojk@khu.ac.kr

 

 

1. 들어가며

 

미국 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다른 나라 민주주의를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이번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와 지난 4년간의 트럼프 시대는 우리에게 미국 정치와 사회의 여러 민낯을 보여주었다. 2016년 대선에서 허세와 막말 그리고 자기자랑으로 일관하는 아웃사이더를 소위 중서부(Midwest) 3개 경합주가 선택했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거의 모든 행정명령과 행정합의를 폐기 혹은 탈퇴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너나 할 것 없이 의회정치는 속수무책이었으며 언론은 저마다 한쪽 편만 옹호하고 다른 편은 비방하느라 분주했다.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은 정해진 수순처럼 트럼프의 반(反)이민 행정명령 등에 잇따라 5 대 4 판결을 내며 보수 편을 들기에 급급했다.

우리 같은 외부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트럼프 대통령 지지세가 확인된 만큼 미국 내부에서도 리더십 실패를 실패라고 인식하지 않는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가 분분해질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예외가 아닌 회복으로 평가하는 백인 유권자 규모가 여전하기에 민주주의 논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 이들에게는 진보 편만 드는 주류 언론과 엉터리 여론조사 기관만 오직 문제가 될 뿐인지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우리가 미국을 민주주의의 전형이라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온 만큼이나 지금은 미국 민주주의 쇠퇴론이 국내 여기저기서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민주주의를 재평가해야 할 상황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통령선거 결과가 당일에 나오지 않았고 또한 패자가 쉽게 승복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국 민주주의가 ‘폭망’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생각해볼 거리들이 적지 않다.

이 글은 지난 4년을 비롯해 과거 미국 국내정치와 외교정책의 주요 지점을 정리하고 특히 2020년 대선 과정을 돌아보며 미국 민주주의의 변화를 살피고 향후를 전망해본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질문을 자주 던진 연유로 인해 실제 미국은 어떠한가를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미국을 있는 그대로 파악해보는 작업은 추후 미국을 향한 우리의 사고와 전략을 가다듬는 데 필수적이다. 미국을 너무 좋아할 필요도 너무 싫어할 이유도 없는 세상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2. 미국 정당정치, 2016년 대선, 그리고 트럼프 시대

 

1980년 레이건 당선을 기점으로 뉴딜 시대가 마감되었다. 이후 작은 정부, 감세 정책, 국방비 증대 등이 현재까지 미국 정치의 기본 방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소련이 붕괴되는 과정에서 초래된 1984년 레이건 재선과 1988년 아버지 부시 당선은 뉴딜 민주당 후보들의 잇따른 패배와 함께 미국 정치의 흐름 변화를 확증시켜주었다. 부시는 1991년 1차 걸프전쟁에서 국제주의적 접근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국내 경제침체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여론의 악화를 불러왔다. 결국 대선 3자 구도까지 겹치며 공화당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실패로 끝난다.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1992년 임기를 시작한 민주당 클린턴 대통령은 군대 내 동성애자 이슈와 의료보험 개혁 실패로 1994년 공화당의 이른바 깅그리치 혁명(Gingrich Revolution)을 맞게 되었다. 1954년 이후 무려 40년 만에 하원을 공화당에 넘겨주게 된 것이다.

이에 클린턴은 1996년 재선 과정에서 큰 정부 시대의 종말을 선언함과 동시에 복지정책 개혁 명목으로 우클릭을 시도한다. 1996년 대선 해 ‘복지에서 직장으로’(Welfare to Work)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1935년부터 시행되던 복지 프로그램을 축소했고 대공황 대응책으로 1933년에 만들어진 글래스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도 규제 개혁을 명목으로 1999년에 폐지하게 된다. 이로 인해 투자은행과 상업은행 간의 업무 영역 분리가 허물어졌는데, 이것이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표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0년 플로리다 재검표 논란을 딛고 당선된 아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 초당파적인 세제 개편을 통해 1조 3천억 달러 규모의 세금 인하를 실현시킨다. 또한 아버지가 못 이룬 교육 대통령의 꿈을 이루고자 ‘뒤처지는 아동 없애기 법안’(No Child Left Behind Act) 통과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자 부시의 관심사와 어젠다는 완전히 재정비되기에 이른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어 2003년 이라크전쟁을 개시함으로써 탈냉전시대 ‘미국의 대전략’(American Grand Strategy)을 다시 한번 정립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잘 알려진 대로 2005년 이후 이라크전쟁이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전쟁의 동기라던 대량학살무기(WMD) 존재가 거짓으로 드러남에 따라 200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참패하게 된다. 게다가 2008년 유례없는 대규모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공화당 정권은 막을 내리고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다.

‘국내 이슈 우선’(nation-building at home)을 기치로 내건 오바마가 2008년 당선 및 2012년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소위 ‘오바마 연합’(Obama coalition)이 형성되었다. 청년, 여성, 흑인 및 라띠노 유권자,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하나로 묶어서 만들어진 연합체 성격이었다. 하지만 앞서 밝힌 대로 레이건 시대 미국 정치 흐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2010년 오바마 시기 첫번째 중간선거에서 티파티(Tea Party) 운동의 득세로 상하원을 공화당에 다시 빼앗기고 결국 민주당 주도의 개혁 입법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것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16년 대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가 ‘오바마 연합이 과연 오바마 없이 지속될 수 있을까?’였다. 만일 그렇다면 힐러리 후보든 혹은 그 이후 어떤 후보든 개인의 면면과 상관없이 늘 민주당이 이길 수 있는 미국 정치의 흐름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대선 결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젊은 세대와 흑인 그룹은 선거 참여에 매우 소극적으로 변했다. 여성과 라띠노 유권자들 또한 오바마 당시보다 저조한 민주당 지지율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들은 ‘승리에 대한 기억’으로서의 오바마 연합을 이후에도 계속 추구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깃발을 드는 후보 개인과 선거연합의 정책이 동시에 중요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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