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경숙 申京淑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1985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 『오래전 집을 떠날 때』 『딸기밭』, 장편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등이 있음.

 

 

 

혼자 간 사람

 

 

여태 뭐하고 있었길래 전화를 다 받니? 참, 거긴 이제 늦오후겠구나. 진작 전화해볼걸 그랬다. 두 시간 전부터 너한테 전화를 걸고 싶었는데 참고 있었거든. 나? 나야 뭐, 저 바람소리에 잠이 깬 후 다시 눈을 붙일 수가 없구나. 여기가 지금 몇시냐구? 새벽이야. 네게 전화걸기 전에 뻐꾸기 시계가 다섯시를 알렸다. 바람이 되게 분다. 들리냐? 저 바람소리? 커튼으로 가려놓긴 했는데 창문이 덜컹덜컹거려. 창문 바로 곁에 단풍나무 그림자가 커튼 위에서 이따금 한쪽으로 확 휘어지는구나. 저렇게 바람이 불다가는 잎사귀에 가을물도 들기 전에 오늘밤에 다 지고 말겠다. 여기는 11월도 되기 전에 겨울이 먼저 온 것 같다. 벌써 찬물에 손이 닿는 게 싫고 문밖을 나가면 목덜미로 찬바람이 훅 파고들어서 나도 모르게 옷자락을 여미게 되는구나.

오늘 아침엔 언젠가 네가 한 말이 생각났어. 아이를 낳아서 제일 좋던 때가 새벽에 깨어나서 아이를 꼭 껴안을 때라고 했지. 잠에서 막 깨어난 아이의 눈곱 달라붙은 얼굴을 끌어당겨 안고 있을 때 아이의 체온이 가슴에 깊이 닿는 게 참 좋다고. 아이의 체온이라. 그래, 잘은 모르겠다만 오늘 아침같이 썰렁할 때 아이를 꼭 껴안고 있으면 우선은 내가 따뜻하겠다. 원이의 시력이 더 나빠지진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지난번에 부탁한 동화책 챙겨 보내면서도 그 책이 애 시력을 더 떨어지게 하는 거 아닌가, 은근히 걱정했었어. 그앤 무슨 책읽기를 그리 좋아한다니. 지난번에 배우기 시작했다는 점자는 다 배웠어?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마.

네 메일주소를 잃어버렸어. 그동안 나는 집에서는 쭉 넷츠고라는 통신을 사용하고 있었어. 그 회사가 문을 닫은 모양이야. 말할 거리도 못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기계치잖아. 직장 다닐 때 눈치깨나 받았다. 후배는 나보고 끝내 인터넷과 친해지지 않으려면 돈을 많이 벌어 오너가 되든지요, 하면서 날 놀렸단다. 사방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렸는데도 나는 그냥 최근까지 PC통신을 사용하고 있었어. 나 개인으로야 뭐, 통신으로도 충분했지. 그런데 초고속 인터넷에 통신 자체가 버티기가 힘이 들었는지 자꾸 써비스를 중단하게 된다는 안내문이 뜨기 시작하더라. 무슨 조치를 취해야 될 텐데 하면서도 내 실력으론 어쩌지 못해 그냥 있었는데 어느날 통째로 메일이 다른 인터넷 주소로 옮겨졌더라구. 넷츠고 이용자는 그곳으로 가야 메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를 따라 클릭을 했더니 당분간 기존의 메일주소를 그곳을 통해 사용할 수는 있다는 거야. 하지만 그동안 내 메일박스에 보관되어 있던 메일과 주소록에 있던 주소들은 다 날아가고 없었어. 나는 누가 메일을 보내오면 답장을 누르고 그곳에 내 말을 써서 다시 보내는 식으로 메일을 사용해왔어. 네게도 예외가 아니었지. 따로 주소를 적어놓지도 않았는데 다 없어진 거야. 얼마나 허전하던지. 편지하고는 정말 다르구나, 생각했다. 벌써 십년도 전에 네가 결혼해서 남편과 헝가리로 갔을 때 이따금씩 보내오던 엽서도 저기 어디 찾아보면 아직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니. 하긴 지금 네가 있는 밴쿠버가 여기에서 얼마나 먼 데니. 그런데 내가 쓴 메일이 십분도 안되어 네게 도착하는 게 수상했다. 그 댓가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전화를 건 용건을 말하라구? 내가 전화해서 놀란 모양이군. 전화비가 장난 아닐 거라구? 괜찮아. 네가 그곳으로 간 후에 내가 너에게 전화를 건 게 두 번도 안되잖아. 네가 웃겠지만 가끔 네가 여기 살았을 때 쓰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보기는 했다. P가 독일에 다니러 갔을 때 네가 하던 짓이잖니. 너와 P는 유별났었지. 매일 만나느라 매일 전화통화를 했던 너희들이었지. 밤늦게 헤어지고 귀가해서는 또 전화질이었고. 나는 P가 생각날 때면 P는 언니 만나러 독일엘 갔지, 그랬는데 너는 P가 없는 빈방에 전화를 걸어보곤 했지. P가 없는 빈방에 울려퍼지는 전화벨소리를 무작정 듣고 있다가 팔이 아프면 수화기를 내려놓았지. 내가 네 흉내를 내며 네가 여기에서 쓰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돌렸을 땐 누군지 모를 사람이 받더구나.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더라. 나는 네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 저, K 좀 바꿔주세요, 했지. 상대방은 그런 사람 없습니다, 하고선 탁 끊어버리더라. 그런 사람 없습니다,라는 말이 그렇게 이상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상대편에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전화를 건 내 쪽에서 그런 소리 듣는 게 당연한데도 그날은 왜 그 말이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던지. 여러 날 혼자 웅얼거렸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네 가족이 이민을 떠난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가는구나. 아이들을 데리고 가자니 유학생 신분보다는 이민자 신분이 더 유리한 것 같아 이민수속을 밟았을 뿐 오년쯤 있다가 돌아올 거라고 했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이니? 모르겠다구. 그래,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해. 너와 나는 학교를 같이 다닌 것도 태생지가 같은 것도 동갑내기도 아닌데 이렇게 친구가 되었잖아. 내가 일터에서 만나 아직까지 친구로 남아 있는 유일한 사람이 너란다. 첫 직장에서 만나 그런 것이었을까? 가끔은 신기해. 무엇이 너와 이토록 긴 인연의 끈이 되어주는 것인지. 서로 일년씩 이년씩 연락 없이 지낸 적은 있어도 그래서 멀어졌다는 느낌은 없었어.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했어. 기억나니? 오래 전 어느 일요일에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네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영화보러 갈래? 한 적이 있었어. 동숭동에서 지금은 제목도 잊어버린 무슨 영화인가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나누고 헤어졌지. 그로부터 육개월쯤 지났을까. 네가 이번엔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왔어. 그저 이러저러한 얘기를 나누고는 전화를 끊었다. 삼개월쯤 지났을까. 너에게서 또 전화가 왔고 한 삼십분쯤 통화를 하다가 또 끊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고 바뀌었다. 훗날에 알고 보니 그때 너는 몹시 힘든 상태였다. 몸에서 물기가 싹 빠져 마른풀이 될 상황을 견디고 있었어.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응, 아니 따위의 영양가 없는 대답이나 하고 있었겠지. 갑자기 네가 여길 뜬다고 했을 때도 내심 낯선 땅으로 가서 상한 마음을 회복해보려는 것이겠거니 생각했을 뿐 네가 왜 그 먼곳으로 떠나는지 상세히는 알지 못했어. 네가 떠난 뒤 오히려 우리는 메일을 통해 여기 있을 때보다 자주 연락을 했지. 살다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말하기 싫은 일이 얼마나 많으냐. 멀리 있는 너는 그래서 더 가까워졌어. 그러더니 느닷없이 너로부터 소식이 뚝 끊겼다. 두달이 지나고 석달이 지났다. 너에게 무슨 일이 터졌구나, 직감했다. 여기 있을 때도 겨우 내색이라고는 갑자기 전화걸어 영화보러 가자고나 했던 너 아니었니. 무슨 일이 있니? 내가 몇번 다급하게 물은 지 한달이나 지나 너로부터 대답이 날아왔다. 큰애 원이가 뇌종양이라는 것이었지. 그래서 병원에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나날이었다고. 뇌종양?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지난 겨울에 너 왔을 때 잠깐밖에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하룻밤이라도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서울에만 있었어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네가 와 있던 2주일 중에 너도 1주일은 시댁이 있는 남도에 가 있었는데다 나도 또 시골집에 내려가 있었으니. 그런데 너는 어떻게 된 친구가 내가 출판사 사직하고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는데도 그러니? 할 뿐 걱정하는 내색을 안하냐?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태 이렇게 백수로 지낸다. 노는 게 이렇게 좋아서 어떡하니. 혼자 노는데도 시간이 너무 잘 가는구나. 대학 졸업하고 지금껏 일만 했으니 앞으로 더 놀아도 된다구? 고맙구나. 영화 씨나리오를 쓴다는 네 여동생은 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더라. 니 말 참 잘 듣는 것도 똑같고. 그 밤중에 널 태우고 내 집 근처까지 와줘서 그나마 널 볼 수 있었지 하마터면 그냥 보낼 뻔했지. 그때 생각보다 네 얼굴이 밝아서 좋더구나. 더구나 무슨 여유가 있다고 내게 예쁜 책도 사다주었지. 그 책을 내가 어디다 뒀지? 잃어버렸냐구? 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 아마 어디다 잘 모셔두었을 거야. 그때 결혼식을 치른 시동생이 너 여기 살 때 함께 살던 그 시동생이니? 니 큰애 되게 예뻐했던? 결혼식도 결혼식이지만 아이가 워낙 오고 싶어해서 어렵게 왔다고 했었는데 돌아간 후 후유증은 없었는지 모르겠다. 너도 참 독하지. 아이가 아픈 것을 여기 식구들한테 말하지 않다가 그때 알렸다며. 안들 먼곳에서 어쩌겠니,라는 게 네가 말 안한 이유였지만 그러자니 너 혼자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여기 오고 싶어하는 아이의 소망이 너무 커서 시동생 결혼식 핑계삼아 아픈 아이 소망 하나 들어주자는 마음에 의사와 상의해서 2주일이란 시간을 얻어서 왔는데…… 말하다 말고 고개를 숙이며 손톱을 만지작거리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늘어났다고 했던 아이 인대는 괜찮아졌니? 그래? 다행이다. 그때 말은 안했지만 아이의 시력이 4분의 1로 떨어졌다는 네 말에 나는 충격받았어. 밴쿠버의 계단은 한 계단 끝마다 노란 줄이 그어져 있어서 그걸 표지삼아 한 계단씩 올라가면 되는데 여기 계단은 그런 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아이가 자꾸 헛발을 디뎌 인대가 늘어났다는 말에 어찌나 마음이 상하던지. 마지막이라고 여긴 계단 뒤에 또 계단이 있는 줄 모르고 자꾸 헛발을 디뎠을 아이. 멋진 건물의 대리석으로 된 계단은 내 아이 눈엔 아예 통짜로 보였을 거야, 하던 네 말. 계획했던 일은 아니지만 아픈 아이를 위해서는 거기로 간 것이 잘된 일이라고 했어. 그래, 네 말대로 여기는 신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살기가 힘든 곳이야. 몸이 아픈 사람을 위한 엘리베이터나 시설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해놓아 그것 찾느라고 더 힘들다는 네 말이 맞아. 너 가고 난 뒤에 나도 유심히 살펴봤거든. 시력을 잃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이라니. 아이가 시력을 아예 잃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점자를 배우게 하고 있다는 말을 담담히 할 수 있을 때까지 네가 겪었을 고통들. 이젠 울진 않는다구? 그래, 울지 마라. 뭐? 네가 자꾸 우니까 원이가 그랬다며. 엄마, 못 걷는 거보다 안 보이는 게 나으니까 울지 마세요. 아이가 할 소린 아니지. 아픈 아이도 널 위로하는데 어쩌니, 나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구나. 형이 아프고 난 뒤 달라진 생활에 적응을 못한 네 작은애가 밤에 오줌을 지리고 토했다는 이야기를 그냥 맥없이 듣고 있어야만 했지. 그때 너와 헤어진 시간이 새벽 두시가 넘었었지? 네 동생의 자동차에 올라 손을 흔들던 네 모습을 그냥 바라볼 뿐이었으니. 다시 밴쿠버로 돌아간 네가 보내온 메일의 제목은 “무사도착”이었어. 그곳에 돌아가니 폭설이 내려 온도시가 하얗더라고 했지. 새로 피기 시작한 수선화가 눈발에 얼어붙었더라고. 그리고 이렇게 썼지. 거기 머무는 동안 아이가 아플까봐 조바심이 나서 누굴 만나도 제대로 만날 수가 없었어. 아이가 다니던 병원 옆으로 돌아오니 안심이 된다. 외롭지만 이 적막한 안심이 나로서는 더 낫다. 그 메일들을 송두리째 사라지게 하다니.

지워진 메일에는 지난 연초에 S가 보내온 메일도 있어. 응, 그래. 네가 좋아하는 작가 S. 저기 잠깐만. 오늘은 왜 이렇게 종일 갈증이 나냐. 생수를 3리터는 마셨을 게다. 마치 내 안에 메마른 구덩이가 하나 있는 것 같구나. 물을 마셔도 마셔도 밑바닥만 적시고 그만인 것 같아. 무슨 얘길 하다 말았지? 그래, S. 저기, 사실은 S 이야기를 하려고 네게 전화를 걸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