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홍콩으로부터의 사색
정규식 鄭圭植
원광대 HK+연구교수. 공저 『도시로 읽는 현대중국 2』, 공역서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 『중국 신노동자의 미래』 등이 있음. guesik@hanmail.net
* 이 글은 필자가 프레시안에 게재한 칼럼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말해주는 것들: 동아시아 ‘탈냉전’과 ‘동아시아적 시각’의 간극」(2019.6.21)에서 제기한 문제의식과 이전의 고민들을 좀더 구체화해 확장한 것이다.
1. 홍콩시위에서 무엇을 사유할 것인가?
최근 홍콩에서 전개되고 있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 반대 시위’(이하 홍콩시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사태가 더욱 격화되고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이미 많은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듯이 이번 홍콩시위의 근저에는 중국의 홍콩 정책에 대한 ‘홍콩인’들의 불만과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위기감이 깔려 있다. 현재 홍콩의 행정수반은 직선제가 아니라 친중국파가 다수인 선거위원단의 투표로 선출되고, 중국정부의 최종 임명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입안이 시도되었던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개정안은 행정수반과 법원의 결정만으로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지 않은 곳으로도 쉽게 범죄자를 송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따라서 홍콩 시민들은 인권운동가나 반중(反中) 인사들이 편의적으로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홍콩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이다.
그러나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인 20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법안의 완전 철회와 시위 관련 체포자 석방, 경찰 폭력진압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캐리 람 행정장관 사퇴 등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경찰의 계속되는 강경대응과 정체불명의 무리에 의한 ‘백색테러’까지 자행되면서 사태는 갈수록 격화되는 모양새다. 이번 시위와 관련해 현재까지 총 4명이 사망했으며(추락사 1명, 투신 3명), 부상자도 속출하고 있다. 또한 이미 140여명이 체포됐으며, 그중 44명이 기소됐다(8월 8일 현재). 이에 따라 시위대의 구성도 점차 다양해지고(소위 엄마부대, 아빠부대, 흰머리부대의 등장과 노동자 파업으로의 확산), 시위의 양상도 점점 반중 색채를 보이면서 과열되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1일 홍콩의 중국 반환 기념일에는 시위대가 의회 격인 입법회 건물을 점거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21일에는 중앙인민정부 홍콩특별행정구 사무판공실 건물에 내걸린 중국 국가 휘장이 시위대에 의해 훼손됨으로써, 사태가 본격적으로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투쟁으로 전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중국정부는 이 사건을 ‘국가 주권에 대한 도전’이며 ‘일국양제(一國兩制)의 근간을 뒤흔든 행위’로 규정했다. 이 글을 한참 쓰고 있는 7월 29일 중국정부는 홍콩 반환 이후 최초로 시행된 홍콩 주재 사무판공실 기자회견을 통해 중앙정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폭력시위에 대한 홍콩 경찰의 엄격한 법집행을 촉구했다. 심지어 우 첸(吳謙) 중국 국방부 대변인과 양 광(楊光)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대변인은 홍콩특별행정구 주군법(駐軍法) 제3항 제14조를 근거로 중국 인민해방군 투입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 조항에는 홍콩 주재 인민해방군은 홍콩 내정에 개입할 수 없지만, 홍콩 정부가 공공질서 유지와 재해 구호를 위해 중앙정부에 요청하는 경우 투입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홍콩시위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리고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사건이 현재 진행 중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회운동이 그렇듯이 그 결과와 영향은 훨씬 장기적인 과정을 통해 서서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더 시급한 과제는 이번 홍콩시위의 역사적 맥락과 현실적 구조를 심층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며, 나아가 홍콩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한 사건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분석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이 사건을 홍콩이나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온전히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홍콩시위의 역사적 복합성에 좀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홍콩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특수한 지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적 지역으로서의 위상을 지니며, 지리·정치·문화의 과거와 현재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냉전은 식민주의, 민족주의, 제국적 상상이 착종되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냉전구조의 복합성이 2014년 홍콩의 ‘우산운동’과 대만의 ‘해바라기 운동’에서도 표출되었으며, 그렇기에 2019년 홍콩시위도 아직 끝나지 않은 동아시아 냉전구조의 복합성에 정위(正位)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일국양제’의 균열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중국 사상계의 곤혹, 그리고 동아시아 탈냉전과 ‘민주’의 문제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2. ‘일국양제’의 균열과 중국 사상계의 곤혹
이번 홍콩시위는 표면적으로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이 원인이지만, 그 심층에는 ‘홍콩인’의 정체성 및 중국과의 관계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내장되어 있다. 150여년의 영국 식민지배와 냉전 시기 국제적인 경제도시로의 발전, 그리고 중국으로의 반환이라는 역사적 경로를 거쳐 형성된 홍콩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과 다원성을 기반으로 하는 ‘혼종성’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홍콩에서는 배타적 반중국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홍콩 본토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혼종성과 배타성이 공존하는 오늘날의 홍콩이 중국 대륙의 국가중심성·중화민족성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홍콩의 정체성 정치가 강화”1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1984년 홍콩반환 협정이 체결되고 오년 후에 발생한 톈안먼사건을 계기로 홍콩인들에게 중국은 ‘민주’와 대립되는 독재와 억압의 국가체제로 각인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집단기억으로 인해 홍콩인들에게 주권 반환은 홍콩의 역동성과 다원성이 중국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에 의해 침식당하고, 중국이라는 ‘국민국가’의 일원으로 통합을 강요당하는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홍콩인들의 집단적 기억과 정체성은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사회운동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즉 2003년 ‘국가안전법 입법 반대’ 시위, 2007년 ‘국민교육과정 도입 반대’ 시위,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 요구’ 시위 등으로 이어졌으며, 이번 시위도 기본적으로 그 연장선에 있다. 특히 이번 시위는 시 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일국양제에 대한 해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