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제12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이반장
1982년 인천 출생. 경희대 디지털콘텐츠학과 재학중. libanjang@gmail.com
화가전(畵家傳)
화가가 되다 만 친구를 한명 안다. 학창시절 친구다. 친구는 오랜 시간 화가를 꿈꿨다. 그에겐 오직 그뿐이었다. 당시로부터 반평생이라 느낄 만큼 세월이 지난 지금도, 친구는 오직 꿈만 꿀 뿐이다.
되다 만 화가란 건 그러니까 굉장히 미묘한 구석이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하시나요?
친구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눈을 살짝 내리깐 채, 상대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이다. 상대방은, 대개 이럴 경우 할 말을 잃는다. 유년에 잿빛으로 화한 채 뻗친 머리카락은 위압적이고, 조그마한 동공은 집요하다. 수척한 뺨은 움푹 꺼져 있다. 상대는 뜻하지 않게 폐부를 찔러버린 건 아닐까 싶은 죄책감에, 없는 칼을 쥔 손을 내리고 고개를 푹 수그린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친구는 그저 할 말이 없었을 뿐이란 걸.
되다 만 화가란 건,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그와 다시 만난 때는, 눈 덮인 연말연시다. 퇴근길. 도심 복판을 걷고 있다.
눈이 내린다. 도시의 형형한 조명에 잠시 반짝인 눈은 금세 녹아 흩어지고 없다. 건물들은 파랗고 빨갛게, 노랗고 푸르게 달아오른 채 그들만의 축제를 벌인다. 전광판은 미소 짓고 확성기는 축복의 노랫말을 퍼뜨린다. 주머니에 두 손 푹 찔러넣고 찬 보도나 전전하는 나 따위 아무개가 낄 곳은 어디에도 없는, 그런 신명난 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러니까 되다 만 짐승에 가까울 것이다. 몇년 전 아내가 말했다.
이런 짐승만도 못한 놈.
아내는 딸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있다. 다른 손에는 큼직한 여행가방을 들고 있다. 딸아이는 사탕이나 쪽쪽 빨며 아내와 나를 번갈아 살핀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딸아이에게 이리 오라 말한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아내의 다리에 두 팔을 두른 채 찰싹 붙어버린다.
쾅.
현관문이 닫힌다. 그들이 사라진 현관을 한참 살핀다. 한결 넉넉해진 신발장을, 휑뎅그렁한 칫솔꽂이를 살펴본다. 그곳에 더는 아무 변화도 없으리라 확신한 순간, 배가 고프다. 부엌에 가서 라면을 하나 끓이고, 내친김에 하나 더 끓인다. 빈 라면봉지가 부엌 바닥에 다섯개쯤 나뒹굴고 부서진 계란 껍데기가 수채바닥을 뒤덮을 무렵, 배가 부른 나는 만족스럽다. 그러고는 식탁에 멀거니 앉은 채 두어시간쯤 펑펑 운다. 평생 그토록 울어본 기억이 없다. 어느덧 땅거미가 졌다. 한숨 돌린 나는 주섬주섬 봉지를 줍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부엌 창 한구석의 거미줄이 달빛에 뽀얗게 달아오르고, 밤은 소리 없이 찾아온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 잠을 자야 할 시간이다.
고백건대, 나는 짐승이 되고자 한 적이 없다. 그런지라 아내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난 짐승이 되고자 한 적이 없는데, 짐승도 못된다니. 난감한 일이다.
그렇게 연말연시, 진눈깨비 휘몰아치는 도시의 밤, 되다 만 짐승과 되다 만 화가가 마주친다.
“아!” 하고, 무심한 투로 친구가 감탄한다.
아! 하고, 받아치는 나 또한 어쩐지 그가 새삼스럽지 않다.
이런 게 필연일까. 기차역 앞, 친구는 화판틀을 몇개 세우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그림을 팔고 있다. 시대의 한 획을 그은 대가들의 작품이다. 하지만 결국 조잡스럽게 모사된 가짜에 불과한 것들이다. 되다 만 명화들이다. 하늘은 친구에게 때이르게 빛바랜 머리와 목석같은 얼굴, 가래 끓는 목소리 등의 자질을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림재주의 성은만은 베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친구의 얼굴은 수염 난 목탄 같다. 해진 외투는 개집 아래 깔려 있던 걸 훔쳐 입은 게 틀림없다. 하지만 잿빛 머리, 움푹 꺼진 두 뺨. 그는 내 친구가 틀림없다.
“아!” 친구가 다시 감탄한다.
아! 다시, 나 또한 받아친다.
친구가 내 양손을 덥석 잡는다. 순간 쭈뼛, 목덜미에 오한이 든다. 친구의 손가락 몇개가 휑하니 실종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는 이내 내게 안긴다. 친구의 몸은 깔짚처럼 푸석하다. 적어도 손가락 두개만큼 경량화된 그.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저 팔을 두른 것만으로도 나는 그가 버겁다. 먼지투성이 옷 뒤에 감춘 거친 살갗과 병든 뼈가, 내 빳빳한 정장에 순간 생채기라도 낼 것만 같은 것이다. 점차 짙어가는 눈보라에 그의 그림들은 추적추적 검게 젖어간다.
한때 친구는, 지나치게 화가가 되다 만 나머지 고사할 지경에 이른 적이 있다. 학창시절은 물론 졸업 후 줄곧 그는 꿋꿋했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 앞에 내저은 고개는, 지구가 지난 긴 세월 자전한 횟수에 근접해갔다. 그 고개들이 일제히 돌아가는 광경이란, 휘유, 그저 곁에서 보기만 해도 현기증 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싱긋, 큼직한 목제 화구통에 담은 물감과 붓만을 살림 삼아, 친구는 거리를 전전했다. 그에겐 그밖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제 한몸과 화폭만 있으면 방긋, 온세상 만천하가 자기 것이었다. 하지만 극장 간판은 걸리는 족족 웃음거리가 되고, 시민회관과 여러 공공기관에 기증한 그림들은 다음날 새벽 공사장 화톳불로 승화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길거리 초상화 사업은……
……고객들의 심적 내상을 생각하면 손해배상청구나 들어오지 않은 게 다행일 게다.
친구는 퇴짜 맞은 극장 간판들을 모아다 뒷골목에 가건물을 하나 조립했다. 비바람이나 가려볼 심산이었다. 한데 뒷골목의 해방구를 전전하던 건 그만이 아니었다. 유기견과 길고양이들. 젖은 해초 같은 몰골의 그들도 그렇게, 친구의 가건물에 의탁하게 되었다. 그해 겨울, 벼룩과 빈대를 한마리 한마리 짓눌러 터뜨리며, 친구는 연신 밭은기침만 해댔다. 남은 물감이라 해봐야 손톱 아래 말라붙은 게 고작이고 붓은 모조리 빳빳하게 굳었다. 밤마다 누워 빙산처럼 몸을 말던 친구는 못 쓰는 붓을 몇개 꺾어다 작은 화톳불을 피웠다. 하지만 웬걸, 친구가 다가앉기도 전에 이미 그 주변은 개와 고양이 천지였다. 아무리 휘휘 내쫓아봐야 일제히 내민 손톱 발톱 그리고 이빨 앞에 친구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결국, 국가에 몸을 맡기기로 결정한다. 어느날 역사(驛舍)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그에게 두명의 군장교가 다가온다. 빳빳하게 제복을 두른 그들이 모자를 벗고는, 군은 여러분에게 그럭저럭 적절한 보수와 그런대로 괜찮은 주거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이런 곳에서 삶을 버리지 말고 자기들과 함께 대의를 위해 힘쓰라 한다. 하지만 친구의 귓속을 파고든 건 단 두마디뿐.
그럭저럭. 그런대로.
친구는 그조차 자신에게 과분하다 생각한다. 계산해보니 십년쯤 몸담으면 평생 쓸 만큼의 최상급 물감을 색별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군침만 흘리던 세필도 자기 것이 되고, 오래전에 반토막 난 조색판도 참나무 재질로 새로 장만할 수 있을 테다. 친구의 입에 꿀꺽, 침이 고인다.
“뭐, 그렇게 생각했네.” 술잔을 마저 비우며, 친구가 말한다. 우적우적 배추를 씹는다. 연탄 위에 고기가 익어간다. 시커멓게 그은 석쇠는 젓가락만 대도 부서질 듯하다.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가게 안을 피해 우리는 고깃집 앞 노천 식탁에 앉았다. 가게 안은 호박빛 조명과 연탄불로 이글거리고 있다. 힐끗 보기만 해도 동공이 델 듯하다. 침침한 이곳과 환한 저곳 사이를 두꺼운 통유리가 가로막고 있다. 그 어떤 야단법석도 그것을 넘지 못한다. 한껏 달아오른 얼굴들이, 뻥끗거리기만 하는 입들이, 흥청망청 쏟아내는 말과 다짐들이, 유리 위에 이슬로 맺혀 줄줄 흐를 뿐이다. 저곳과 이곳, 두 세계는 결코 화합하지 못할 것 같다. 침범이란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것만 같다.
밖에 자리를 잡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친구가 수레를 멀리하기 꺼린 탓이다. 수레에는 화구와 화가, 화폭, 그림 등이 잔뜩 얹혀 있다. 눈 덮인 낡은 천 아래 말이다. 한때 그의 삶에는 화구통이 전부였듯, 지금은 수레뿐이었다. 그래서 우린 이곳, 눈 내리는 차가운 밤 속에 앉아 있다.
어디 배치받았다 했지?
“남쪽 바다. 포병대. 자주포 조종수. 시력은 또 좋아놔서.” 친구가 답한다. 엄지와 약지로만 쥔 술잔이 위태로이 떨린다. “경치 참 죽였는데. 눈 덮인 산. 계곡 사이로 구불구불한 빙하. 소나무 숲. 가끔 앞바다에 고래들도 지나가고 말이야. 거기서 본 것만 옮겨도 평생 그릴 거리는 충분했을 거야. 그 정도면 겨우 십년쯤이야, 하고 받아들일 만했네. 어떤 때는 아예 눌러앉아도 괜찮겠다 싶었어. 그런데 어느날, 고정 안된 탑승구 문이 손가락 위로 쿵.”
손가락은 찾았나?
“기동중이었어. 뒤따르던 자주포 궤도 아래 빨려 들어갔을 거야. 땅에 거름 준 셈 치지 뭐.”
그게 입대하고선?
“석달. 그뒤 즉각 의가사제대 처분.” 친구는 풉 하고 웃어 보인다.
어떻게 검지하고 중지만 그렇게 나가나.
“마법…… 인가 보지. 다 가져가버리긴 미안했던 거야.”
마법이라……
친구의 지난날들에만 머물던 화제는, 이윽고 궤도를 달리해 내게로 향한다. 하지만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친구의 삶. 작품이 공사장 인부들을 위해 따스한 불꽃을 피우고, 퇴짜 맞은 극장 간판이 떠돌이 개나 고양이들에게 비바람막이가 되어주고, 그의 두 손가락이 세상에 아직 마법이 있음을 증명해주는 동안 나 따위……
……관두자.
결과적으로 짐승만 되다 말았을 뿐이다. 뭐라 해봤자 변명이고 자기기만밖에 되지 않는다.
“그림에선 아주 손 뗀 건가?” 친구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