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오늘의 한국, 변모하는 사회운동

 

환경관리주의와 생태주의의 긴장

 

 

이필렬 李必烈

방송통신대 교양과정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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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환경운동이 싹튼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1982년 군사독재 치하에서 한국공해문제연구소 설립으로 어렵사리 첫발을 내디딘 환경운동은 그동안 양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질적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수많은 환경단체가 전국 각지에서 생겨났고, 가장 큰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1은 회원수가 7만을 헤아리게 되었으며, 생태주의운동을 선도한다고 할 수 있는 『녹색평론』의 독자수도 8천에 이르게 되었다. 운동단체들의 이념도 환경관리주의에서 생태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환경운동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운동이 풀어가야 할 내적·외적인 과제도 한층 더 어렵고 복합적인 것이 되었다. 내적으로는 이념의 검토와 조직의 정비, 외적으로는 자본의 세계장악과 과학기술의 질주에 대응할 수 있는 적절한 운동의 모색이 주요과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환경운동의 현황을 분석하는 것은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한국 환경운동의 이념적 지형을 독일의 예에 비추어 분류하고 몇몇 구체적인 운동사례를 운동단체의 이념적 성향과 연관지어 분석하면서 앞으로의 환경운동의 방향에 대해 약간의 전망을 덧붙이고자 한다.

19세기 중엽 독일에서는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됨에 따라 환경분쟁이라 부를 만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쟁들은 오염을 유발하는 산업체에 대항하여 종종 주민운동의 형태로 발전하기도 했는데, 이때 주민들과 산업체 사이의 중심 이슈가 된 것은 대체로 오염에 대한 보상 및 오염물질 배출의 감소였다. 이들 주민운동은 독일 환경운동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독일에서 환경운동이라 부를 만한 움직임이 주민운동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민운동이 오염 자체를 둘러싸고 일어난 데 비해 국지적인 오염보다는 산업문명 자체에 비판적이던, 현재의 생태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보인 환경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의 중심이념은 ‘낭만적 자연주의’(Naturromantik)라 할 수 있는데, 19세기말 20세기초에 독일 전역에 퍼진 자연·고향보호운동(Natur- und Heimatschutzbewegung)을 통해 널리 발현되었다.

여기서 주민운동과 낭만적 자연주의운동을 ‘진보’—산업기술문명에 기초한 근대성을 지향한다는 의미의—와 ‘보수’—기술문명과 근대성을 거부한다는 의미의—라는 범주로 나누어보면, 주민운동은 딱히 ‘진보’나 ‘보수’ 어느 쪽에 넣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기술발전을 부정하지는 않고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오염측정의 신뢰성을 인정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진보 쪽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낭만적인 자연주의운동은 오래 전부터 인간에게 심미적인 위안을 준, 문화의 일부로서의 자연이 산업화로 인해 훼손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고 산업문명에 비판적이었다는 점에서 대체로 ‘보수’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범주화가 반드시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자연·고향보호운동을 기술진보와 사회변화를 거스르려는 보수적 성향을 가진 운동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하겠지만, 노동운동에 참여하던 산업노동자들까지 ‘자연의 친구들’(Naturfreunde)이라는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어 일종의 자연회귀운동을 벌인 것을 고려하면 낭만적 자연주의운동의 지형이 완전히 ‘보수’로 규정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도시 시민 중심의 낭만적 자연주의운동도 초기에는 독일 민속운동(völkische Bewegung)의 반근대주의적인 문명비판의 영향으로 산업화에 크게 비판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산업화와 기술발전에 대해 점차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점도 이 운동을 ‘보수’로 뚜렷하게 범주화하기 어렵게 만든다.

독일에는 현재 큰 환경운동단체로 환경·자연보호연합(Bund für Umwelt- und Naturschutz in Deutschland, BUND)과 자연보호연합(Naturschutzbund, NABU)이 있는데, 이들 중 BUND는 자연·고향보호운동의 참여단체였던 바이에른 자연보호연합(Bund Naturschutz)을 중심으로 지역의 주민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든 것이고, NABU는 자연·고향보호운동의 주요 참여단체였던 조류보호연합이 발전한 것이다. 두 단체의 전신인 바이에른 자연보호연합과 조류보호연합은 1960년대까지도 순수 자연보호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70년대에 환경위기가 심각해짐에 따라 성격과 활동방식이 크게 바뀔 수밖에 없었다. 지역 또는 전국 차원의 환경분쟁에 개입하게 되었고, 핵에너지 포기를 주장하고 생태적 세제개혁을 통해 환경문제를 해결해가자는 제안을 적극 지지하는 등 상당한 탈바꿈을 겪었다. 또한 활동을 점차 전문가에 의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른바 ‘녹색기업’과도 협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갔다. 이는 이들 단체가 산업문명 자체를 거부하는 생태주의자들과 달리 과학기술을 인정하고 산업체제 속에서 산업구조의 녹색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일에서 환경운동은 좌파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독일의 가장 큰 환경단체인 BUND와 NABU가 그 원류를 독일 민속이념의 영향을 받은 보수적 자연·고향보호운동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환경운동을 고찰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의 자연·고향보호운동은 처음부터 근대성, 민주적 정치체제에 부정적이었고 점차 반유태주의로 흘렀다. 1933년 나찌가 정권을 잡자, 새로운 정권이 바이마르공화국과 달리 서구적인 방향이 아니라 독일적인 자연과, 고향을 지키는 쪽으로 나아가리라는 기대로 나찌를 환영했다. 따라서 노동자로 구성된 ‘자연의 친구들’은 해체당했지만 자연·고향보호운동은 금지되지 않았고, 곧 나찌의 자연보호 프로그램 속에 편입되었다. 반산업주의적·문명비판적 성향의 자연보호운동이 파시즘의 대두와 강화에 기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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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독일 환경운동단체의 뿌리와 성향을 규정해보았는데, 한국의 환경운동에 대해서도 이러한 분류를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분류의 기준선은 명확한 단일 직선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군데군데 끊어진 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부분에서 선의 좌우가 서로 섞여들어가는 형태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분류의 기준선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앞으로의 한국 환경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려 할 때 이러한 분류가 어느정도 도구적 유용성을 제공하므로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분류를 해볼 필요는

  1. 2000년부터 환경연합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이 글에서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환경운동연합이란 이름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