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평 │ 소설
망각과 기억의 사이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저서로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이 있음. llauper@hanafos.com
1. 돌아오는 유령들
이 계절에 흥미롭게 읽은 임철우(林哲佑)의 단편 「나비길: 황천이야기2」(『문학동네』 2005년 여름호)는 황천읍에서 벌어지는 유령소동으로 시작된다. 마을의 중학교에 부임해온 생물선생 기병대가 추문에 휩싸여 실종되는 과정을 그려가는 이 소설은 스토리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뛰어난 흡입력을 발휘하는 작품이다. 소설 전반을 휘어감는 끈적끈적한 ‘늪’의 이미지, 소리없이 목을 죄어오는 악몽과 추문, 산 자와 죽은 자를 오가는 ‘나비’의 상징은 소설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적절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황천읍이라는 고립된 공간 역시 학교와 직장, 가족이 지시하는 규범적 삶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는 마을사람들의 삶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무대가 된다.
여성과 남성, 사회와 가정, 삶과 죽음, 이성애와 동성애, 실재와 환상,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가치기준을 비판하는 이 소설은 집단의 욕망과 광기가 지닌 폭력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동안 임철우 소설이 꾸준히 다루어왔던 주제들을 연상시킨다. 오랜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백년여관』(한겨레신문사 2004) 역시 영도(影島)에 있는 ‘백년여관’에 모여든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등장하는 구도라든지 현재와 과거, 실재와 환상이 교차하는 방식의 서술기법은 「나비길」을 포함한 황천이야기 연작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황천이야기 첫번째에 해당하는 「칠선녀주」(『문학판』 2004년 겨울호)에서도 신비한 술을 빚는 모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근대사의 비극적 사건들이 등장한다.
황천이야기 연작의 두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나비길」은 추문에 휩싸여 삶의 근거지를 박탈당한 나비연구자 기병대의 이야기를 통해, 집단의 규율과 질서에서 튕겨져나간 타자(他者)들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푸꼬(Foucault)의 지적대로 근대사회의 각종 제도와 기관들은 ‘비정상적’ 사람들에 의해 ‘정상적’ 사람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면밀한 감시와 처벌을 행해왔다. 19세기 중반에 대대적으로 체제가 구축되어 ‘비정상인’들을 판별하고 가려내어 사회에서 격리시키는 역할을 정당화했던 서구 정신의학의 학문적 부상은 그 대표적인 기획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미셸 푸꼬 지음, 박정자 옮김 『비정상인들』, 동문선 2001, 349~80면 참조). 변태선생으로 놀림당한 나비선생 역시 ‘비정상’으로 보이는 특이한 행동으로 서서히 집단에서 이탈되기 시작한다. 권위적인 남자교사의 이미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의 부드럽고 다정한 태도는 사람들에게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성정체성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우며, 장애인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지 않는 그의 태도는 일반인들에게 오히려 혐오와 의문의 대상이 된다.
나비선생에게 마을사람들이 보여주는 편견과 차별은, 집단의 ‘정상적’ 가치관에 흡수되지 않는 타자가 박해당하는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리얼하게 드러낸다. 나비선생과 더불어 이 소설에서 또다른 타자로 부각되는 인물은 황천이발관 주인 양성구다. ‘양마담’이라는 별명을 지닐 정도로 소심하고 수줍은 양성구는 객지에서 날아온 미지의 인물 나비선생에게 단숨에 매혹된다. “나이를 가늠하기 불가능한, 완전한 소년의 얼굴”을 지닌 나비선생은 “희고 정갈한 목덜미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보얗게 돋아 있”는 “눈부신 순백의” 모습으로 이발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실제로 소설에서 애절하게 부각되는 것은 나비선생 기병대와 이발사 양성구의 로맨스이다. 두 사람 사이에 싹튼 감정이 순수한 우정인지 아니면 성적인 관심이 동반된 사랑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집단에서 소외된 주변인임을 본능적으로 자각한 이발사와 나비선생이 서로를 위무하는 모습은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간절한 로맨스가 주는 여운에도 불구하고, 나비선생을 배신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이발사의 모습을 그린 소설의 결말은 이 작품이 결국 넘지 못한 경계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소설 초반에 제기되었던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의 문제는 후반부로 갈수록 그 복잡하고 섬세한 층위들이 생략된 채 집단과 개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구도 속에서 극화된다. 인물 형상화의 문제점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다. 나비선생의 선량한 성품과 비교한다면 그를 괴롭히는 ‘자율방범대장’ 나수칠은 지독하게 혐오스러운 악인으로 그려진다. 나수칠이 남성가부장 사회의 모순과 폭력을 집약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전형화되는 부분은, 그가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 귀향한 포악한 사업가라는 설정에서도 드러난다. 더불어 나수칠의 횡포를 묵인하고 지지하는 마을사람들의 차별적 태도도 구체적인 에피쏘드들보다는 막연한 ‘소문’의 분위기로 형상화된다. 나비선생을 유령으로 만든 것은 ‘우리 모두’라는 작가의 전언에도 불구하고 막상 이를 뒷받침하는 주변인물들과 연결된 스토리들은 다양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동성 사이의 욕망이 발생하는 내밀한 과정에 끊임없이 개인의 가족사나 정신적 상처를 개입시키는 작가의 설명적 묘사는 이 소설이 제기한 욕망과 금기의 다양한 해석 층위를 제한한다. 두 사람 사이에 싹튼 감정이 순수한 우정인지 아니면 성적인 관심이 동반된 사랑인지도 모호하지만, 이 사랑의 형태가 ‘이성애자’의 시선 속에서 가족과 군대집단 등의 환경적 요인의 영향으로 거듭 규정되고 있는 것은 눈에 띈다. 나비선생을 향한 이발사의 욕망은 그가 군대시절 겪었던 억압적 체험에 대한 보상심리로 설명되며, 나비선생 역시 어머니를 여읜 고독감으로 인해 내성적이고 여린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특히 나비선생은 정체를 알기 힘든 아름답고 유혹적인 모습으로 끝까지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신비화된 인물이다. 여성이 영원한 자연적 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