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은 시대적 징후

 

환상은 어떻게 현실을 넘어서는가

박민규와 조하형의 소설

 

 

차미령 車美怜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절망의 시대, 소설의 희망」 등이 있음. kirugi@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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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도 그 중반을 넘어서면서 지난 연대와는 구별되는 2000년대 소설의 지형도가 차츰 윤곽을 잡아가는 느낌이다. 배수아, 은희경, 김연수, 김경욱 등 이른바 ‘90년대 작가’들이 연대를 격해서 스스로를 갱신해나가는 움직임이 뚜렷하고, 박민규, 윤성희, 김애란, 조하형, 편혜영 등 2000년대 들어 첫책을 상재한 신진들이 내놓은 소설 또한 선배작가들의 그것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특히 작년은 시와 소설을 막론하고 새롭게 등장한 신인들이 구사하는 새로운 스타일에 평단의 관심이 집중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소설에 국한해서 보자면, ‘상상력의 서사’ ‘무중력 공간’ ‘우주적 상상력의 지대’ ‘탈현실적 상상력의 문법’1 등 기존의 소설 통념에서 파격적으로 자유로운 서사문법을 조명하는 비평적 움직임이 여러 각도에서 활기를 띠었던 것이다.

장르문학인 SF소설과 판타지소설 혹은 인터넷 유머나 만화, 동화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온 이야기들을 이제 본격소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냉장고 속에 미국을 포함한 세계를 넣으면 따뜻한 카스테라가 되어 있으니(박민규 「카스테라」, 『카스테라』, 문학동네 2005), 이즈음 젊은 소설이 환상문법을 빌려 누리고 있는 서사적 자유는 유례없이 낯선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하기에 더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그 현실적 연원이다. 모든 상상력의 기원이 ‘지금 이곳’에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자유로운 환상과 견고한 현실 간의 관련성은 좀더 숙고될 필요가 있다. 현실에 고통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소설 속 인물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서사적 자유분방함과 유희적 에너지로 충만한 젊은 소설 속의 인물들은 현실에서의 자신은 너무나 왜소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인물들의 인식의 근저에, 부정적 현실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변화 혹은 개선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이 자리하고 있음은 그리 어렵지 않게 가늠해볼 수 있다.

나날의 삶에서나 소설에서나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볼 때, 현재를 관통하는 비관적 세계관의 핵심이 세계의 불변성에 있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변하지 않는 세계란,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기에 더더욱 고통스럽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앗아가고 인간을 굴종적으로 만드는 세계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인간에게는 알리바이다. 세계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된 경우 인간은 세계의 실상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정론적 현실에서 벗어난다면, 나로 인해 세계가 변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환상은 세계의 불변성을 가로지른다. 그래서 자유롭다. 과연 박민규는 환상공간에서 선택지를 내놓기 시작한다. ‘세계의 인스톨을 유지할 것이냐 언인스톨할 것이냐.’(『핑퐁』, 『창작과비평』 2005년 여름호~2006년 봄호) 미래의 환상세계에 자신의 공간을 건설한 조하형 역시 비슷한 질문을 거듭한다. “삶에 대한 질문도, 하나밖에 없어. 어떤 태양 아래 설 것인가, 하는 거.”(『키메라의 아침』, 열림원 2004, 158면) 적응할 것이냐 바꿀 것이냐, 타협할 것이냐 거부할 것이냐…… 현실의 거울 이미지로서의 환상에서 세계를 위반하는 힘과 종종 조우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지만, 환상은 이 지점에서 문제를 닫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활짝 열어놓게 된다. 환상 속에서 발아한 진실한 욕망의 목소리를 부정적인 현실의 지형도를 변경하고자 하는 의지로 전환시켜야 할 책임이 그 바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젊은 소설에 만개한 상상력과 이에 토대한 환상의 맥락을 이 글에서는 박민규와 조하형의 소설을 중심으로 짚어본다. 이 작가들이 구사하는 파격적인 스타일에서 장르문학의 자취라든가 전자(電子)적 글쓰기의 흔적을 찾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이들의 미학적 실험을 근본적으로 추동하는 것은 부정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자의식이다. 2000년대 젊은 소설의 가능성을 짚어보는 이 글에서 두 작가의 최근작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라는 사실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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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씨나리오에 의지해 주어진 초라한 현실로부터 비스듬히 비켜나가는 방법적 전략은 이즈음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2 이를테면, 처치 곤란한 냉장고를 인격화하여 그 전생이 훌리건이었으리라 상상하고 그 냉장고가 뿜어내는 엄청난 소음을 고독을 무마하는 위안의 소리로 치환함으로써 누추한 일상을 견딜 만한 것으로 재맥락화하는(「카스테라」) 박민규(朴玟奎)의 주인공을 보라. 현실을 뒤집는 화자의 상상이 능청스럽게 제시된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동시대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예서 그치지 않는다.

「카스테라」의 서두에서 작가는“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14면)라는 화자의 진술을 무심히 부려놓고 있는데, 자신의 판단과 세계의 양태는 무관한 것임을 애써 강조하는 이 진술은 뒤집어보자면 현실을 전제하면서 그것의 논리를 의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냐구?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15면)라는 문답에서 그 물음 또한 화자의 관념이 승인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에둘러 환기하기는 마찬가지다. 『카스테라』에 묶인 소설들은 때로 매우 비현실적으로 읽히지만 그것은 어느정도 과장과 능청의 효과일 뿐, 현실이 ‘처음부터’해체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보다는 대체로 서사의 전반부에서는 현실논리와 대비되는 개인의 특수한 관념만을 부각시켜가다가 어느 순간 주체의 인식 범주의 문제에서 이탈해 비현실적 서사로 도약해나간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표제작 「카스테라」에서도 ‘냉장의 시각

  1. 서영채 「상상력과 허풍의 미래」, 『문학동네』 2005년 봄호; 이광호 「혼종적 글쓰기 혹은 무중력 공간의 탄생」, 『문학과사회』 2005년 여름호; 손정수 「두 가지 잉여가 드러내는 징후들」, 『문예중앙』 2005년 여름호; 심진경 「탈현실의 문법과 상상력에 관한 질문들」, 『문예중앙』 2005년 가을호.
  2. 이에 대해서는 김영찬 「방법론적 상상제국의 아이들」, 웹진 『문장』 2006년 4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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