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선우 朴善友

1986년 서울 출생.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shuduririrara@gmail.com

 

 

 

휘는 빛

 

 

연휴를 맞아 한갓진 대로를 달리는 기분이 좋았어. 셔터를 내린 고즈넉한 상점가를 빠른 속도로 지나치는데, 마치 내가 이 도시의 주인이라도 된 것 같았지. 바람은 서늘하고 볕은 뜨거운 날씨였어. 그렇게 7212번 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종로3가 교차로를 지나칠 때였다. 무심코 왼쪽 창밖을 건너다보는데 중앙버스정류장 벤치에 네가 앉아 있었어. 찰나에 불과했지만 네가 확실했다. 챙 달린 검은색 모자를 눌러쓴 채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더라. 버스를 기다리는 중인지 버스에서 내릴 누구를 기다리는 중인지는 알 수 없었어. 순간 너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는 충동이 내 마음의 밑바닥 어딘가에서 분수처럼 터져나왔다. 나는 허둥대며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고 연락처에서 너의 이름을 검색했어. 아마 오초도 걸리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통화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대체 뭐라고 말을 꺼내야 좋을까 싶더라.

거기서 뭐 해. 종로3가에는 왜 있어. 어디를 가려는 거야. 혹시 누구를 기다리고 있어? 설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냐고 장난스레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바로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오랜만에 너와 웃는 얼굴로 인사한 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까지 상상했지만 끝내 통화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 그대로 세 정거장을 지나쳐 원래 내리려던 경복궁역에 이르러서야 하차벨을 눌렀지. 창가에 부착된 버튼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STOP’이라고 적힌 글자 아래로 연보랏빛 램프에 불이 들어왔어. 그제야 알았다. 이 세상에는 누를 수 있는 버튼들과 그 순서가 정해져 있는데, 멋대로 하나를 건너뛰어버리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 그 버튼을 누를 수 없다는 걸 말이야.

물론 헛소리지.

나는 경복궁역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스타벅스 적선점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내내 너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한 다음 쿨라임피지오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픽업대 근처를 서성이는 동안에도 트위터 타임라인을 새로고침하는 대신 너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어. 음료를 받아 창가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꺼내고, 이따금씩 고개를 들어 창밖의 플라타너스들이 햇빛을 잔뜩 머금은 채 노랗게 익어가는 풍경을 지켜보는 와중에도 너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러나 하지 않았고, 이건 못했다기보다 하지 않은 것이지만, 나는 못하는 것처럼 하지 않았고, 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쭉.

왜 이렇게 살까.

종종 그런 의문이 든다. 내 방에서 스탠드의 주홍빛 조명 아래 앉아 꾸벅꾸벅 졸아가며 책을 읽는 밤이면, 정신을 차리려고 침대 쿠션에 기댄 자세로 천장의 한구석을 멍하니 올려다볼 때면, 눈이 시큰거려서 질끈 감았다 뜨고 다시 질끈 감기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눈자위에 물기가 어리는 것을 느낄 때면, 나는 스스로가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이 쾌활한 사람이 되기를, 그런 사람인 척하기를, 척하다가 정말로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기를, 누구에게든 스스럼없이 다가가 한바탕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기를, 마치 나의 부모가 나를 낳아 기르는 내내 소망했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온 힘을 다해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그런 질문을 가만히 공글리는 밤이면, 나는 금세 기진맥진하여 침대 쿠션에 미끄러지듯 누워버리고, 거기에 머리를 뉘인 채 잠시 눈을 붙이고, 잠이 들 뻔하고, 설핏한 꿈속에서 다시금 너를 떠올리고 만다. 버스정류장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무언가를 기다리며 유난히 뜨거운 햇살을 견디고 있던 너를. 그날 네가 무릎께에 올려둔 에코백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도 뒤늦게 일어난다. 둥그스름한 모양으로 불룩 튀어나와 있던 그 가방에는 누구를 위한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그날 주저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르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너를 만났더라면 그것에 대해 넌지시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이렇게 잠들기 직전에 너의 모습을, 네가 지니고 있던 무엇을 막연히 그리며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하지 않았지.

하지 못할 것이고, 그럼에도 나는 궁금하다. 달리는 버스 뒷자리에서 우연히 너를 발견한 순간, 네가 지금 내 앞에 있고 여전히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대체 내 마음 밑바닥 어디에서 너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는 열망이 불쑥 튀어나온 것일까. 육년 넘게 한번도 연락하지 않고 지냈으면서, 네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지낸 주제에 말이야.

그래서 오초밖에 지속되지 않았던 걸까.

내 기억에 그 열망은 어떤 판단과 감정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당해 끌려나갔다. 너에게 닿고자 하는 마음은 마치 한낮의 탈주범처럼 뛰쳐나왔다가 제대로 한번 활개쳐보지도 못하고 구속되었어. 지금은 어느 밑바닥에서, 어떠한 형태로 머물러 있을까. 다시 뛰쳐나올 수 있기는 할까. 이따금 그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는 밤이면, 이제는 내 안에 그런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

 

*

 

새로 산 노트북에 백업해둔 문서들을 옮기던 중 이경은 오래전에 자신이 쓴 글을 하나 발견했다. 그걸 읽는 내내 얼굴이 홧홧해지는 것을 느꼈다. 문서 작성일을 확인해보니 작년 구월 말이었다. 당시 이경은 추석 연휴 기간에 연차까지 덧붙여 열흘을 내리 쉬었다. 잇따른 대외행사와 프로젝트를 마감한 직후여서 묵직한 피로감과 무기력증에 시달린 탓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바로 회사를 때려치웠을 것이다. 업무 스트레스가 일상을 해치고 몸의 균형을 뒤흔들어놓는다고 느낄 때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사직서를 내민 횟수만 다섯번이 넘으니까. 하지만 업무강도와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올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나서기에 그녀는 이제 스스로가 너무 늙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더는 떠돌이처럼, 고독한 용병처럼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영혼이 노쇠했다는 증거라는 건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때 이경은 연휴가 시작되자마자 죽은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사흘간 집 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오를 넘겨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켰고, 허기가 느껴지면 그릇에 흰 우유와 콘플레이크를 담아 먹었다. 그러다가 나흘째 무슨 비장한 각오라도 한 사람처럼 그녀는 가방에 노트북을 챙겨 들었다. 무턱대고 집 앞의 버스정류장으로 나가 반쯤 조는 듯한 얼굴로 서서 볕을 쬐었다. 오래지 않아 동네를 통과하는 유일한 지선버스가 그녀 앞으로 다가와 문을 열었다. 이경은 그걸 타고 남은 연휴 동안 경복궁역 근처의 스타벅스를 드나들었다. 서른셋. 생의 진로를 변경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속수무책으로 방관하기에는 너무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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