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흔들리는 민족문학

민족문학론을 둘러싼 최근 논의에 대해

 

 

신승엽 辛承燁

문학평론가. 평론집으로 『민족문학을 넘어서』, 주요 평론으로 「20세기 민족문학론의 패러다임에 대한 몇가지 반성」 「기억과 구조 속에 폐쇄된 전망— ‘박하사탕’론」 등이 있음. shdw324@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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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필자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민족문학작가회의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민족문학론과 관련된 글을 발표한 바 있다.1 주로 20세기에 전개된 민족문학론의 역사적 경과를 더듬어보는 글이었는데, 역사를 살피다보니 자연스럽게 비판적인 언급이 많았고 또 나아가서 현재의 민족문학론에 대해서도 몇마디 관견(管見)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와 달리 이제는 민족문학론이 시대적합성이라든가 문학이념적인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새로운 이념적 가치의 발견을 위한 노력에 있어서 민족문학적 사유가 하나의 반성적 거점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그러한 거점을 토대로 이제는 세계문학에 대한 사유를 좀더 발전시켜보아야 한다는 점 등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 주장들이 본격적으로 제출되지 않고 매우 거칠고 단순화된 형태로 토로된 것은, 비단 필자에게 주어진 주제가 ‘민족문학론의 역사’였던 탓만은 아니다. 필자 자신 그때나 지금이나 민족문학론을 넘어설 만한 새로운 문학이념에 대해 그다지 생각이 깊지 않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민족문학 이후의 문학이념에 대한 모색은 어느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몫이 아니며, 하루이틀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오늘날의 문학에 있어 과연 ‘이념’이란 것이 얼마나 절실히 요구되는지조차도 쉽게 단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미 1990년대 이후 우리는 오랜 기간 ‘탈이념’의 시대를 살아오고 있다. 비단 문학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발전전망을 둘러싸고서도 탈이념은 이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일종의 조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이념에 대한 모색이 불필요할 만큼 오늘날의 제반 현실이 자기완결적이라거나 만족스러운 것 역시 결코 아닐 터이다. 이처럼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느껴지지도’않아서 곧바로 ‘현안’으로 삼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문제해결의 전망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데에 오늘날 이념 논의의 난점이 있을 것이다.

필자의 졸렬한 발표에 대해 몇사람이 보여준 반응이 반가운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민족문학론에 대해서는 지난 1990년 이후 수차례 ‘갱신’논의가 있었지만, 한결같이 특별한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만큼 갱신 논의만이 아니라 민족문학을 둘러싼 이념적 논의 자체가 대중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인데, 그러나 그 이유가 혹시,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어떤 직접적인 ‘결론’만을 기다린 데에 있지는 않았는지도 반성해보아야 한다. 논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아 쉽사리 현안으로 삼기는 어려운 궁지에서는 섣부른 결론의 도출보다는 논의 자체의 지속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돌파의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을 때에는 머나먼 우회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요컨대 민족문학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아직은 기존의 민족문학론에 대한 더 많은 반성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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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글에 대해 먼저 반응을 보여준 것은 김명환(金明煥)이다. 김명환은 같은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이병훈(李炳勳)과 필자의 글이 모두“과거의 민족문학 개념이 우리 시대를 이끌 문학이념으로서 더이상 적절하지 않”2다고 보는 공통점을 가졌지만, 이병훈이 민족문학 나름의 유효성을 인정한 데 반해 필자는 아예 민족문학을 폐기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진단했다. 필자가 ‘폐기’라는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민족문학이 이념적 가치를 가졌던 것은 20세기에 국한된 현상이었다고 민족문학을 ‘역사화’한 데 이어서 오늘날에는 더이상 이념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고 선언한만큼, 독자들에게 ‘폐기’의 주장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필자의 글에 두번째로 반응을 보였다고 할 수 있는 백낙청(白樂晴) 역시 필자의 입장을“민족문학론의 용도가 이제 다했다는 입장”3이라고 요약함으로써 이를 확인해주었다.4 어쨌거나 필자가 민족문학의 생명력이 다했다고 진단한 것은 단순 직절하게 문학이념으로서의 민족문학, 곧 문학운동과 창작의 방향에 대해 일종의 지침이 되어주는 문학이념의 차원에서였다. 하지만 필자의 글에 대한 김명환과 백낙청의 반응은 민족문학 개념을 좀더 여러 차원으로 세밀하게 분해하여 사유하고 있으며, 그 결론들은 역시 민족문학의 유효성이나 용도가 아직 남아 있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두 사람 모두 필자가 촛점으로 삼은 ‘이념으로서의 민족문학’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예전과 같은 권위랄까 지위 같은 것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점은 일단 어느정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물론 필자의 입장을 수용한 것이라기보다는, 백낙청이 이미 분단체제론을 펼치면서“민족문학 개념에 대한 일정한 해체작업을 수행”했음을 지적하는 가운데(김명환 97면), 혹은 민족문학론이 ‘민족문학의 새 단계’론을 거쳐 분단체제론으로 ‘자기조정과 발전을 계속’해오면서 ‘민족문학의 개념 자체가 얼마간 상대화’되어왔으며 그에 따라 이념태 역시 ‘민족문학’이 아니라 그것과는 구별되면서도 중첩되기도 하는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하는 문학’으로 변했음을 주장하는 가운데(백낙청 20면) 이루어지고 있다.(그러면서도 백낙청은“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하는 문학’이라는 설명적인 문구 대신에 ‘민족문학’을 사용하는 것이 적당할 때가 많은 것이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요컨대 이제 70,80년대와 같은, 문학 창조의 방향과 문학운동의 슬로건이 통일된 이념으로서의 민족문학은 역사적 시효를 다했다는 점에는 필자나 김명환, 백낙청이 모두 견해를 같이하고 있는 셈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면서 민족문학을 둘러싼 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 면에서는 조금씩 혹은 크게 상위(相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있어 민족문학론은 어떤 점에서 아직 유효한 것일까? 김명환은 명확히 구분하여 논의를 펼치지는 않으나, 정리해보자면 우선 남한의 국민문학을 포섭하면서도 분단국 한쪽에 국한되는 ‘국민문학’을 거부한다는 뜻에서 ‘민족문학’의 개념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들고 있으며, 나아가 이를 ‘민족문학’들간의 네트워크로서의 세계문학 개념의 필요성으로 연결시킨다. 또한 글 말미에서는 이러한 민족문학 개념을 ‘남북민족과 해외동포가 한국어로 창작한 문학을 지칭하는 기술적(記述的) 용어’라고 규정한 뒤, 이런 점에서의 효용 이외에도“우리 시대의 문학다운 문학의 ‘대명사’로서 민족문학의 유효성”(96면)을 지적하고, 나아가

  1. 「20세기 민족문학론의 패러다임에 대한 몇가지 반성」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무크지 『크리티카』 창간호(이가서 2005)에 수록되었다.
  2. 「87년 이후의 민족문학론」, 『창작과비평』 2005년 겨울호, 83면. 이하 이 글의 인용은 면수만 밝힘.
  3. 백낙청 「서장: 민족문학, 세계문학, 한국문학」,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창비 2006), 16면. 이하 이 글의 인용 역시 면수만 밝힘.
  4. 그러나 필자 역시 ‘민족문학론의 용도’는 나름대로 남겨두었다는 점은 분명히해두고자 한다. 다소 변명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민족문학을 넘어서는 이념의 모색을 위해서 민족문학을 화두로 한 논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이다.(졸고, 앞의 글 88~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