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박서혜 朴書慧
인하대 경제학과 2학년. 1991년생.
stella_oo@naver.com
대안가정 생태보고서
인물과 무대에 대하여
이 텍스트는 6–3–2–1로 4등분 되어 있다.
등장하는 인물은 A, B, C, D, E, F다.
A, B, C는 여자배우가, D, E, F는 남자배우가 할 것을 권장한다.
필요한 배우의 숫자는 최소 여섯명이다.
6에서는 A, B, C, D, E, F가 모두 등장한다. A는 어머니, B는 할머니, C는 딸, D는 할아버지, E는 고모부, F는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한다.
3에서는 A, B, D가 등장한다. 3은 재혼가정이다. A는 재혼가정의 새어머니, B는 딸, D는 친아버지다.
2에서는 C와 E가 등장한다.
1에서는 F가 등장한다.
6–3–2–1은 세대나 혈연으로 구성된 총체적 가계도로 볼 수도 있고 별개의 집안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6–3–2–1은 시간적 흐름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연출이 무대를 어떤 양식으로 다루건 이 텍스트는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다. 단 장면이 바뀔 때마다 여섯명, 세명, 두명, 한명이 각각 거주하는 집안의 거실이 배경임을 주목해주길 바란다. 조명의 움직임에 따라 무대가 축소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과 일부 소품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일부 적어두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텍스트에 대한 연출의 접근 양식일 것이다. 이 텍스트가 세계를 총체적으로 그렸다면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무대를 만들어내면 될 것이고, 리얼리즘의 재현에 실패했다면 마술적 상상력을 행간마다 발현해도 무방하다.
맞지 않는 것은 과감히 삭제하고, 필요한 것은 차곡차곡 채워주길 부탁한다.
어쨌든 저자는 이것이 전적으로 현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6-프롤로그
무대 중앙으로 핀 조명이 들어온다.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 약간 밝아지면 A, B, D, F가 가족사진을 찍기 위한 대열로 모여 있다. A는 아기로 보이는 포대기를 안고 있다. E는 네사람 앞에 카메라를 들고 있다.
E 사진 찍겠습니다. 스마일, 김치, 치이즈. 자, 우리 화목한 가족 여러분. 아, 웃으세요. 오늘은 좋은 날이잖아요.
B (작은 소리로, 하지만 들으라는 듯) 좋은 날은 무신 좋은 날. 고추도 안 달린 년 돌잔치가 으데 좋다고.
D 이 사람아.
A, 표정 안 좋아지며 무리로부터 살짝 떨어진다. 굳어지는 F.
E (A에게) 아이, 아주머님 좀 붙으세요. 형님두요. 누가 보면 가족 아닌 줄 알겠어요. 웃으세요. 웃으시라니까요? 좋은 날이잖아요. 좋은 날이니까 무조건 웃어야죠. 자, 따라해보세요. 하하하!
잠시의 정적.
E (과장되게) 하, 하, 하!
다들 어색하게 하, 하, 하 하고 웃는다.
E 자,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셔터 터진다.
암전.
6-1
무대 밝아지면, 여섯명이 살고 있는 집의 거실이다.
거실 한쪽 벽면에는 앞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무대 하수 쪽에는 주방이, 상수 쪽으로는 집으로 들어서는 현관이 있다.
무대 가운데에는 여섯사람 정도가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앉은뱅이 밥상이 놓여 있다.
밥 짓는 냄새가 난다.
A는 상을 닦고 그릇을 나른다. 외출복 차림의 A는 앞치마를 매고 있다.
신문을 든 D, 등장한다. 몸이 불편한 듯 어기적하게 걷는 D는 눈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D 에미야.
A 네, 아버님. 일어나셨어요?
D 돋보기 못 봤냐.
A 아까 어머님이 쓰시던데요.
D 돋보기 못 봤냐니까.
A 주방에서 어머님이 쓰고 계세요.
D 아, 돋보기 못 봤냐니까!
A, 다가가서 D의 귀에 대고 크게 말한다.
A 돋보기 못 봤어요. 아버님.
D 그래? 못 봤어? 그게 발이 달렸나 어디로 갔단 말이냐.
A 아버님.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D 뭐라고? 돋보기에 발이 달렸다고?
A, 떨어져서 D를 가만히 본다.
D 돋보기 어디 있냐? 돋보기!
A 어머님한테 여쭤보세요. 주방에 계세요.
D 그래? 이봐, 할멈!
D는 주방 쪽으로 들어간다.
A,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안에서 그릇을 나르기 시작한다.
반찬거리가 상 위에 하나씩 놓인다.
초인종 소리 들리면 A, 무대 상수 쪽으로 걸어간다. 양복 차림의 E, 들어온다.
A 일찍 오셨네요, 고모부.
E 네. 요즘 통 잠을 못 자네요. 뭐 그만큼 번다는 거죠. 오늘 아침은 토란국인가요?
E는 한쪽에 놓인 신문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A 네, 친정에서 잔뜩 보내셨어요. (웃음) 지현이는 콩쿨 잘하고 있대요?
E 글쎄요. 회사 가서 메일 확인해봐야죠. 오늘 아침은 토란국인가요?
A 네, 토란국이요. 지현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지 않았었나요, 아빠 보고 싶다고.
E 것두 하루이틀이죠. 요즘은 서로 바쁘기도 하고—시차도 다르고. 근데 오늘도 토란국인 거죠, 아주머니?
A 네, 오늘 아침 메뉴는 토란국이에요, 고모부. 밥 뜸들이고 있어요. 조금 기다리세요.
E 네. (신문 넘기며) 지겨운데.
A 친정에서 잔뜩 보내셔서요.
E (혼잣말로) 토란국 지겨운데.
A 고모부?
E 아주머니, 토란국 말고는 딴거 없어요?
A 네. 오늘은 토란국뿐이에요. 근데 고모부,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
E (신문 넘기며) 참 저, 아주머니.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형님내외 사는 처가에서 아침 얻어먹는 처지인 기러기 아빠에게, 따뜻한 밥 차려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긴 한데요—내일은 토란국 말고 다른 것 좀. 전 그 감자도 아니고 무도 아닌 그—표현할 수 없는 말캉말캉한 게 영 거슬리더라구요.
A 네……
E (A를 보며) 뭐랄까, 영 애매하잖아요.
D (안에서) 이서방 왔나?
E 예, 장인어른— 신문 가져다드릴까요?
D 이리 와서 돋보기 좀 찾아줘. 돋보기가 없어!
E 예? 예. (A에게) 아주머니, 부탁드릴게요. 토란국 말구 다른 걸로요.
A 고모부, 냉동실에 콩나물국 얼려둔 거 있는데. 그거라도……
E 아주머니, 제가 아무리 그래도 세전 700 중산층인데—
D (안에서) 이서방! 돋보기가 없어!
E (대고) 예, 갑니다.
E,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금 더 굳어진 얼굴의 A는 상을 마저 차린다.
교복 차림의 C, 방에서 나온다.
C 엄마, 실내화!
A 그거 빨았는데.
C 빨지 말랬잖아. 오늘만 신으면 고등학교 가니까 새로 살 거라고.
A 멀쩡한 걸 왜 버려.
C 버릴 건데. 갈아 신기도 귀찮고 쓰레빠 살 거야. 고딩은 쓰레빠 신어도 된대. 학교에서 오래 있잖아.
A 버릴 때 버리더라도 졸업식 날인데 깨끗하게 신어야 할 거 아냐.
C 누가 본다고. 할아버지 뒤치다꺼리한다고 오지도 않을 거잖아.
A, 일어선다.
A 실내화 지금 말리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마를 거야.
천둥소리가 난다.
C 이 날씨에? 어딨어?
A 베란다. 조금만 기다려. 밥 금방 차리고, 엄마가 챙겨줄게.
C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