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이주영

이주영 李柱渶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2학년. 1986년생.

leejy14@hanmail.net

 

 

 

카나리아 핀 식탁

 

씨놉시스

근주는 언제나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형옥은 남편이 짐을 싸지 못하게 하느라 다툼을 벌이기 일쑤였다. 그렇게 16년이란 세월을 보내고 나서야, 결국은 이혼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고 오는, 둘이 함께하는 마지막 길에서 근주와 형옥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아리는 부모의 사고소식을 듣고도 태연하게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집으로 찾아온 근주의 내연녀 서희를 맞이한다. 아리는 상황을 익히 눈치채고 있었기에, 서희가 아빠의 짐을 싸가도록 허락하지만, 둘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게임을 하는 척하며 서희를 지켜보던 아리는 서희가 싸는 짐이 모두 자신과 관련된 물건이라는 것에 불쾌해하고, 아빠와 엄마가 가장 아끼는 식탁을 내어주지 않음으로써 서희를 견제한다. 이때 집달관들이 들이닥쳐 집이 차압되었음을 알리는데, 감정이 격해진 아리와 서희는 언성을 높이고 만다. 영원히 그림자만 바라보는 처지인 서희는 아리의 철없는 시위를 책망하고, 아리 역시 가족의 부재를 서희에게 질타한다.

식탁을 포기한 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서희는 근주의 짐을 처분하면서 허망함에 눈물을 쏟는다. 짐을 싸는 행위는 근주와 형옥의 부부애를 확인하는 과정의 일부였던 것이다. 비로소 근주의 진심은 바로 아내 형옥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서희는 불감당한 절망과 함께 죄책감에 휩싸인다. 누구보다도 아리의 심정을 잘 헤아리는 서희는 아리에게 때늦은 용서를 구하고 장례식장에 함께 갈 것을 부탁한다.

 

* 지면사정으로 작품의 일부만 싣습니다. 전문은 대산문화재단 홈페이지(www.daesan.or.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등장인물

근주(39), 아내 형옥(42), 내연녀 서희(32), 딸 아리(16), 그외 음식배달원, 집달관 1, 2, 3.

 

무대

1993년, 8평 남짓의 지하 단칸방. 작은 간이씽크대. 컵, 그릇, 수저, 칫솔 따위가 거의 두개씩만 있다. 책들도 몇권 쌓여 있다. 행어에 잡다한 옷들이 일렬로 빽빽이 걸려 있다. 반듯이 개켜둔 이불더미. 베개도 쿠션도 방석도 심지어 화분도 두개씩이다. 중앙에는 다리가 짧은 나무식탁이 있고, 그 위에 라디오가 올려져 있다. 음악채널에서 클래식음악이 흘러나온다.

 

커다란 남방에 반바지 차림인 형옥, 식탁에 주저앉아 책장만 넘기고 있다. 이따금씩 음악에 맞춰 고개를 흔들거나 허밍을 하기도 한다. 근주, 씩씩거리며 들어온다. 가방을 열어 앞으로 멘다. 방을 휘젓고 다니며, 두개씩 놓인 물건들 중에서 하나씩만 꼭꼭 배낭에 처넣는다. 시위라도 하는 양 행동이 과장되고 거칠다. 뒤돌아 형옥을 보고 한숨. 근주, 행어에 있는 옷들 중 일부를 통째로 빼낸다. 배낭에 짓이겨 넣는다. 잘 들어가지 않아 끙끙댄다.

 

 

형옥 (조용히) 옷걸이는 빼고 가져가라.

(근주, 잠깐 멈칫한다. 그대로 배낭을 들고 뒤돌아서 나가려고 한다. 형옥, 벌떡 일어나서 근주의 가방을 낚아챈다. 근주도 뺏기지 않으려고 실랑이를 벌인다.)

형옥 옷걸이는 빼고 가라고! 내 돈 주고, 내가 산 거거든!

근주 그게 중요하냐, 지금!

형옥 내 것, 네 것은 확실히하자며? (밀고 당기면서) 내가 처음 이사할 때부터 옷걸이 필요하다고 했니, 안했니? 그때 너 분명히 거추장스럽다고 했다. 옷은 대충 벗어젖히면 그만이라면서? 뻔히 여기다 벗어놓고, 저기다 던져놓고. 몇달을 구기고 사나 보다가, 죽어라고 사다 나르고, 걸고, 다리고, 개킨 게 누군데? 왜? 이제 와선 아니니?

근주 알았다, 알았어. 놓고 가면 되는 거지?

(근주, 가방을 뒤집어 모조리 쏟아버린다. 신경질적으로 일일이 옷걸이를 빼내 던진다. 형옥, 쏟아진 물건 중 베개를 꼭 껴안는다. 쿵쿵 발을 구르며 이불더미 쪽으로 가서 남겨진 베개를 근주에게 힘껏 내던진다.)

형옥 이게 네 거잖아! 왜 내 걸 가져가?

근주 (일어서며) 그거나, 이거나!

형옥 (던져진 베개를 다시 던지며) 네 거! 네 거!

근주 참 내. (컵 하나 들고) 이건 내 거 맞지? (컵을 일부러 깨버린다)

형옥 그 옷 내가 사준 거지? (근주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기려 한다) 벗어!

근주 끝까지 정말.

형옥 끝이니까 이러지, 시작일 때 이랬니? 벗어, 당장!

근주 벗으라면 못 벗을 줄 알아?

형옥 (짐을 발로 차며) 할 말 있어? 따지고 보면 다 내 지갑에서 나온 거야.

근주 (웃통을 벗어던지며) 됐냐? (때마침 시끄럽게 울리는 라디오를 내려놓고 식탁을 어깨에 멘다) 이건 나 실습 나가서 처음으로 만든 거야, 맞지?

형옥 (식탁 한쪽을 붙들고 실랑이) 나 때문에 만든 거지. 내가 한 디자인으로.

근주 재료도 순전히 내가 샀다.

형옥 말은 바로 해. 공구는 내 거였어.

근주 이러지 말자. (형옥의 손을 잡고 타이르듯) 누나. 응?

형옥 누우나? (식탁을 세게 밀자, 근주 넘어져버린다) 나가! 나가라고!

근주 (넘어진 채) 나갈 거야!

형옥 이럴 거면 왜 들어왔어?

근주 (가방에 넣었던 짐들을 신경질적으로 갖다 놓으며) 가지든, 버리든, 팔아먹든 알아서 해.

형옥 너 걔 좋아하니? 사랑해? (약간 울먹)

근주 그래서 전화했어? 걔한테 물어보려고? 하루에도 전화통이 수십번씩 울려대서 아무것도 못하겠대. 숨이 턱턱 막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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