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희망의 문학, 계몽의 담론

어린이문학의 역사와 창비아동문고

 

 

김상욱­ 金尙郁

문학평론가. 춘천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저서로 『소설교육의 방법 연구』 『숲에서 어린이에게 길을 묻다』 등이 있음. childlit@hanmail.net

 

 

1. 출판과 어린이문학의 관련 양상

 

꽃이 지고 난 자리마다 새잎들이 돋아나고 있다. 작고 투명한 이파리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물비늘처럼 마구 몸을 뒤척이고 있다. 계절이 더할수록 이 새잎들은 연두에서 초록으로, 진초록으로 빛을 더욱 깊게 안으로 그러모으며 자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잎새들뿐만이 아니다. 잎을 매단 가지들은 더욱 높고 굵어질 것이며, 우듬지 아래의 밑둥치는 쉼없는 노동으로 나이테를 더하며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릴 것이다. 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나무들을 보며 어린이문학의 지금·여기를 가늠해보는 것은 자칫 턱없는 비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의 역동적인 변모를 어린이문학이란 특정한 문학적 장르의 생성과 성장, 쇠퇴와 소멸에 빗대어보는 것은 지금·여기에서 필요한 성장의 환경이 무엇일지 유추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 쓸모없는 궁리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여기에서의 어린이문학은 언뜻 보아 왕성한 성장기를 맞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문학의 위기는 물론이거니와 인문학 전체의 위기가 공공연히 거론되는 즈음인데도 어린이문학만큼은 유독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럴듯한 규모와 연륜을 지닌 출판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린이도서를 대대적으로 기획하고 있으며, 매체들 또한 어린이문학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고 있다. 서구의 뛰어난 문학작품들이 그다지 큰 시차 없이 우리 어린이들의 손에 건네지고 있는 것만 보아도 사정이 어떠한지 엿보게 해준다.

그러나 이들 두드러진 징후들을 근거로, 초록의 광휘로 뒤덮인 여름날의 숲을 보듯 어린이문학의 전성기가 도래했다고 찬탄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현단계의 성장을 출판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판사는 출판과 연계된 문학상을 통해 창작의욕을 고취하기도 하고, 입도선매에 가까운 형태로 작가들의 작품을 서둘러 묶어내기도 하며, 뛰어난 그림과 함께 작품을 포장하여 상품으로 손색이 없게 만들기도 하는 등 어린이문학을 둘러싼 소통의 모든 단계를 제어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출판은 어린이문학의 외적 환경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축이며, 출판의 발전이 어린이문학의 발전을 위한 필요조건인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출판은 어린이문학을 위해 존재하기보다 문화산업의 한 부문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밖에 없다. 문화창조라는 고유한 기능과 함께 상업적 기획으로부터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어린이문학의 성장을 출판이 주도한다는 것은 자칫 출판의 또다른 칼날인 상업주의에 어린이문학을 저당잡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징후는 도처에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장르간의 불균등 발전은 그 대표적인 실례가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어린이문학은 서사장르가 여타의 장르들을 압도하고 있다. 특히 서정장르의 역사적 구체태인 동시는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 어린이문학의 성장이 안겨주는 어떠한 혜택으로부터도 배제되고 있다. 최근 들어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생적인 역량들이 축적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서사장르의 내부를 들여다보아도 문제는 다를 바 없다. 서정장르와 안팎으로 연관된 그림동화나 판타지동화는 충분히 개화하지 못한 상태이며, 이들 양식은 대부분 외국문학의 번역으로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왕성하게 성장해온 현실주의적인 양식들조차 최근 들어 고학년과 저학년으로 이원화된 채, 저학년을 겨냥한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출판이란 어린이문학의 주요한 축이 긍정적인 기능을 하기보다 역기능으로 전화될 싯점에 놓여 있음을 입증하는 생생한 실례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출판의 논리에 어린이문학이 끌려다니는 것은 어린이문학의 발전을 위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출판의 공공성을 최대한 강화해가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출판에 거는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기대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시장에 개입함으로써 출판이 갖는 문화적 특성들을 견인해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계몽적 장치는 교실과 도서관이다. 문학교육의 활성화와 공공도서관의 내실화를 통한 제도적 장치의 정착은 비평기능이 복원되는 길이 열림을 의미한다. 동시에 출판을 시장논리에 앞서, 풍부한 문화자본을 생성하는 공공영역의 한 부문으로 설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출판시장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그 가능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문학의 발전이 새로운 공공영역의 창출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곧 우리 어린이문학의 단계가 성장의 정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작해야 잠시 흐드러진 꽃을 피운 다음, 숨을 고르며 잎새를 틔울 준비를 하는 시작의 단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절감케 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공공영역의 광범위한 창출이 단순히 어린이문학을 둘러싼 외적 환경이 아니라, 작가와 작품, 독자를 연결하는 내적 자질로 존재한다는 점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어린이문학은 문학이 갖는 예술적 자율성과 함께 어린이의 지각·인식·정서와 직결되는 계몽적 기획과 분리하여 논의할 수 없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계몽성을 어떻게 탈피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올바른 계몽성에 한결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우리 어린이문학의 역사적 전개과정은 바람직한 계몽성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발견해온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어린이문학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여러 작가들이 성취한 계몽성의 질적 차이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와 함께 이 글은 작가와 작품, 독자로 이어지는 일직선상의 연결을 한층 풍요롭고 다층적으로 만드는 출판의 내재적인 가능성을 새삼 확인하는 소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최근 들어 200권을 넘어선 ‘창비아동문고’라는 특정 출판사의 출판물에 한정하여 논의를 진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들 작품만으로도 오늘날의 어린이문학을 가능케 한 중심적인 한 축을 거칠게나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이 글이 새롭게 형성되어야 할 공공영역이 무엇을 기저로 자신의 실체를 확립할지, 그리고 비평의 기능을 어떻게 수행해나갈지를 내다볼 수 있게 된다면 그만한 다행스러움이 없을 것이다.

 

 

2. 어린이문학 전통의 복원

 

무릇 모든 새로운 출발은 과거를 재평가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는, 과거를 새로운 관점으로 재조명하고 과거 속의 ‘오래된 미래’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 ‘민족문학의 일부’로서의 어린이문학을 모색한다는 취지에서 출간된 ‘창비아동문고’ 역시 자신의 미래를 과거로부터 찾았다. 그 결과 선정된 작가들은 식민지시대부터 작품활동을 해온 이원수(李元壽, 1911〜81)·이주홍(李周洪, 1906〜87)·마해송(馬海松, 1905〜66)이다. 이 이름들이 그저 단순한 작가들의 나열이 아님은 명백하다. 이 세 작가는 서로 다른 출발과 지향에도 불구하고 우리 어린이문학의 앞선 역사로 거론되기에 손색이 없는 작가들이며, 민족문학으로서의 어린이문학을 빛낸 이들이다.

다채로운 함축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민족문학은 민족의 역사적 과제, 민족구성원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중심적인 묘사대상이나 주제로 형상화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들 초기의 세 어린이문학 작가들은 역시 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자신들의 작품 속에 끊임없이 담고자 하였다. 마해송 동화집 『사슴과 사냥개』(1977)에 수록된 「떡배 단배」 「토끼와 원숭이」는 의인동화이면서 민족국가 건설을 위해 요구되는 자주독립 정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원수의 『잔디숲 속의 이쁜이』(계몽사 1973)나 『숲속 나라』(신구문화사 1953)는 판타지를 통해 해방을 성취하는 과정과 그 소망스러운 실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주홍의 『아름다운 고향』(1981) 역시 3·1운동을 중심에 둔 식민지시대의 고통을 풍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민족·역사·독립 등의 거대담론에 치중한 반면, 공통적으로 삶의 세부를 형상화하거나 어린이들이 겪는 일상적인 삶에 대한 경험의 형상화는 부족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세부적으로 이 세 작가들이 활용하는 창작의 방법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어린이문학의 발전을 밀어올리는 동력은 조금씩 다른 듯이 보인다. 먼저 가장 앞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마해송은 「바위나리와 아기별」(1923)이란 최초의 창작동화를 쓴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상징성이 높은 이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그는 의인동화를 즐겨 썼다. 특히 「떡배 단배」는 떡배와 단배라는 외세의 경제적·문화적 침략을 사건의 중심에 두고, 두 인물의 대응방식을 대조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자주적인 민족국가 건설의 구체적인 방안을 설파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은 강렬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우화적 세계를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대응시킴으로써, 미적 풍부함을 충분히 획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정작 마해송 동화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우화적인 작품이 아니라 『모래알 고금』(가톨릭출판사 1958)과 같이, 경험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기술한 작품일 것이다. 이 작품의 두드러진 미덕은 서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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