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 | 새로운 25년을 향하여 | 지역·농업

 

희망하고 싸워 만들 지역과 농업

 

 

정은정 鄭銀貞

농촌사회학자. 저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 『대한민국 치킨展』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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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하면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의 이성복 시 「남해 금산」이 떠오를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남해멸치쌈밥 같은 것만 떠오른다. 경남 남해군은 군청 소재지인 남해읍을 중심으로 1읍 9면으로 구분된다. 지난봄 남해군 남해읍을 오래도록 걸었다. 군청 소재지나 읍내는 지역주민들의 생활이 모이고 흩어지는 공간으로 짧은 시간 안에 고장의 사정을 가늠하기에 알맞다. 1980년 남해군 인구가 10만명이 넘을 때도 있었고, 읍면에 골고루 분포하며 농어업 종사자가 70%가 넘기도 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남해군의 인구는 4만명 남짓. 2000년만 해도 남해군 인구가 6만명 가까이 되었으나 23년 만에 2만명이 빠져나간 ‘과소화지역’이다.

현재 남해군의 농림어업 인구는 군 전체 인구의 26%가 조금 넘는 1만 1676명으로,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인데다 60대 농민보다 70~80대 농민이 더 많은 보통의 농촌이기도 하다. 여기에 3천명 정도의 어가 인구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이 작은 고장에도 등록 외국인이 1천명이 넘는데 대체로 선원이나 양식장에 고용된 어업 인력이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까지 합치면 더 많을 것이다. 한편 4만명 인구 중 비농업지역인 남해읍의 거주자가 1만 2천명이 넘는다는 것은 지역 내에 농어업 기능이 그만큼 축소되어서다. 청소년들은 친구라도 사귀려면 읍내 중고등학교까진 나와야 한다. 식당과 미용실 같은 상업시설도 군청 소재로만 몰리는 지역 내 불균형 현상이 오히려 농어촌 현장에서는 지역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농촌을 살리자는 추상적인 말을 넘어 면 단위의 자족기능 유지에 힘쓰자는 주장들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남해군은 관광지이기도 해서 주말에는 사람이 ‘벅적벅적’대지만, 정작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끌어갈 이들이 모자라다. 남해군 읍내는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거리 정비가 되어 있고 예쁜 간판의 청년상점도 몇곳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평일 낮에도 개점하지 못했거나 ‘임대 문의’라 붙여놓은 가게들을 보노라니 지역상권 활성화라는 문제는 묘연해 보였다. 지역 곳곳에 재생 프로젝트가 굴러가지만 ‘우리가 사람이 없지 돈이 없냐!’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도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을 잘 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인들은 중앙에서 돈을 끌어오겠다 외치지만 막상 끌어온 돈을 사람 양성에 쓰지 못하고 영수증 증빙이 가능한 일만 찾곤 하니 사람이 남지 않는다.

4월 1일 토요일, 때마침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 개통 50주년 기념 축제일이었다. 1973년 남해대교가 노량해협에 세워지면서 남해군은 육지와 연결되었고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 드나들었으나, 빠져나가는 이들이 더 많았다. 시간 차도 없이 뒤죽박죽 꽃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기후위기에 대한 걱정을 한마디씩 보태면서도 기왕지사 핀 꽃은 보기에 좋았다. 꽃이 핀다는 건 농촌에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해군은 기후가 따뜻해 사철 농사가 돌아가는 지역으로, 월동작물인 남해시금치(남해초)와 마늘을 비롯해 고사리와 땅두릅, 유자, 한우, 해산물 등이 특산물이다. 사철 밭농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 강도가 세다는 뜻으로 농한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계절에 남해 금산의 ‘한 여자’, 구점숙 농민을 만났다. 그는 여성농민의 전국 조직인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의 사무총장을 거쳐 ‘남해군여성농민회’ 활동을 하고 있다.

“차나 한잔하시죠.” 밥 먹고 나서 차를 마시자도 아니고 차‘나’ 마시자는 이 말은 온기 없는 도시의 말이다. 농촌에서는 밥이 중요하다. 농민을 만날 때는 차려 먹든 사 먹든 먼 길 와서 밥 한끼 나누는 일이 중하다. 구점숙 농민이 마침 쑥도 도다리도 제철이니 도다리쑥국을 먹어보자며 읍내의 식당에 예약까지 걸어놓았다. 도다리쑥국은 통영 지역의 향토음식이었으나 매체에 알려지면서 인기가 높아져 인근 남해에서도 먹게 된 음식이라 한다. “남해는 싱싱한 해산물과 사철 채소가 나와 큰 솜씨 부리지 않아도 되는 먹거리문화”라는 설명도 덧대주었다.

 

나는 밥도 전략적으로 먹어요. 여농(여성농민회)의 주요 활동가들이나 연락을 나눠야 할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나서 먹거든요.

 

사적 생활이 별로 없다는 구점숙 농민에게 이날의 식사는 공적이며 전략적인 행위에 가깝다. 국토의 끄트머리 남해에서 여성농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것도 개인 구점숙의 이야기를 넘어 공적 활동의 일환이라 만나겠노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