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李箱과 식민지근대

 

유희석 柳熙錫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보들레르와 근대」 등이 있음.

 

 

1

 

영어(英語)가 판치는 세월이라 그런지 요즘은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도 듣기가 힘들다. 이는 변화에의 순응과 발빠른 변신에 사활을 거는 이 시대의 풍토와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때일수록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가 아쉽지만, ‘낡은 것을 보내고 새 것을 맞는다’는 당위의 진정한 실행 또한 절실하다. 문학에서도 그렇다. 새로운 천년을 맞은 평단에서는 리얼리즘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여기는 풍조가 대세를 이룬 듯하다. 특히 재현(주의)에 본바탕을 둔 리얼리즘(론)은 이제 역사적 시효를 다하고 낡아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창작이든 비평이든 선배들이 피땀으로 쌓아놓은 유산을 그토록 쉽게 망각하고 식상해하는 데는 문학 자체에 파괴적인 시류가 극성을 부린 탓도 있지만, 그렇다고 대세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고루한 리얼리즘론자나 ‘영신(迎新)’에만 급급한 지식인들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문단의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둘 때 이상(李箱, 본명 金海卿, 1910〜37)을 간과할 수는 없겠다. 더욱이 지난 100년 동안의 문학유산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한 이 싯점에서 그는 30년대 모더니즘에─거꾸로 그 모더니즘이 이상에─걸리는 대표적인 표본인지라 어떤 경우든 리얼리즘·모더니즘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는 작가인 데다가, “호기영신(好奇迎新)을 따라 돌아다니는 유행아”라는 김안서(金岸曙)의 비판이 말해주듯이1 시대의 최첨단을 달린 상징적 사례라서 우리 근대문학에서의 송구영신을 생각해볼 좋은 기회도 되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몇년 전에 나온 흥미로운 문제제기, 즉 30년대 모더니즘을 보는 시각의 재조정 및 프로문학 주류성 해체와 더불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會通)2이 공표된 저간의 상황에서 바로 그같은 눈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염두에 두고 이상 문학 전체를 검토하려는 노력은 매우 드물었다고 하겠다.

물론 현재 평단에서 30년대식 ‘프로문학’은 잔해만 남았으며 리얼리즘·모더니즘의 회통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리얼리즘을 쇄신하겠다거나 리얼리즘·모더니즘의 이분법을 극복하고 양자를 종합하겠다는 젊은 평자들의 작품을 밝히는 눈은 그리 형형하지 못했으며, 동구권 붕괴에 잇따른 ‘포스트’ 사조의 창궐에 별다른 창의적인 대응도 없었다. 또한 시대의 정신적 위기에 대응한 비판정신으로서 모더니즘을 옹호한 논자는 그 선언적 주장만큼 작품의 실질적 성취와 한계를 정밀하게 규명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요컨대 “근대를 진정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내포된 역설적 가능성을 온몸으로 사는 자세, 극단까지 가는 철저함과 진지함이 요구된다”3는 열정적인 신념이 공허한 일반론을 벗어나려면 모더니즘의 역설적 가능성과 극단의 성격을 작품을 통해 구체적으로 식별·평가해내는 작업이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 과업을 제대로 인식하고 떠맡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근대문학의 가난함을 직시해야 한다는 솔직한 자기반성이 있었지만, 가난할수록 풍요에 대한 갈구가 깊어짐 자체를 부정할 일도 아니겠다.

 

 

2

 

“미친놈의 잠꼬대냐” “무슨 개수작이냐” “烏瞰圖라고 오자(誤字)를 내는 것부터가 알 수 없는 수작이 아니냐.”4 이상이 줄곧 비평가와 일반독자 모두의 관심대상이 된 데는 『오감도』(1934)의 충격적인 파문이 시사하는 바의 ‘망측한’ 난해성이 결정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로 말미암아 이상의 전문연구자들은 각종 첨단 수입이론을 한번씩 시험가동해보는 ‘호사’도 누렸지만, 그에 비례하여 일반독자와 이상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최근 국문학계의 이상 비평에서 ‘텍스트’ ‘욕망’ ‘해체’ ‘기호’ 등이 난무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작품에 천형(天刑)처럼 새겨진 난해성에서 비롯된 현상일 것이다. “한국 모더니티의 흑사병”5이라는 그 난해함의 진상은 오히려 그런 최신 언설을 통해 더 용이하게 은폐·왜곡된 느낌마저 있다. 요컨대 일제를 통해 들어온 서구문학의 단순한 모방·답습이 아니라 근대문학 자산, 특히 20년대 문학의 성과가 어느정도 축적된 토양에서 자라난 30년대 특유의 현상으로 이상의 난해성을 파악하려는 발상은 빈약하고, 그같은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엄밀한 작품평가를 특히 4·19 이후 민족문학의 성과를 감안하여 시도한 경우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상뿐만 아니라 해방 전후의 여타 모더니즘 작품에 각인된 역사적 문맥을 회복하고 엄정하게 평가하려는 문제의식은 계속 이어져야 마땅하다. 그 가운데서만 이상을 얽어맨 이론의 족쇄가 풀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30년대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 장르의 성취가 그런 족쇄를 용인하지 않을 수준의 주체적 의식에서 달성된 것임을 상기할 때 더욱 그렇다. 앞으로도 우리의 소중한 문학자산으로 남을 『삼대』 『임꺽정』 『탁류』 등이 모두 30년대의 산물이거니와, 이상 자신이 삽화를 그려넣기도 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에서 박태원은 조이스(J. Joyce)의 『율리씨즈』에 대해 “그것이 새롭다는, 오직 그 점만을 가지고 과중평가할 까닭이” 없음을 당당히 밝히기도 한 것이다. 반면에 이상의 모더니즘을 모든 근대적인 것의 부정이나 초극으로 규정하는 논자도 있지만, 그것은 근대의 일면적인 부정이나 초극보다 훨씬 복잡한 ‘현상’이다. 이상은 『오감도』에 대한 당시 몰이해를 두고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십년씩 떨어져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이냐”(3권 353면)라고 개탄했으면서도 정작 그렇게 앞서간 토오꾜오의 “표피적인 서구적 악취”(3권 234면)를 혐오해 마지않은 식민지 지식인의 선구적 자각이 있었던 것이다.

「오감도」가 그러한 자각과도 무관하지 않다면, 우리는 얼치기 개화꾼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상의 이중성과 선진성을 식민지근대 고유의 역사적 현상으로서 좀더 참구(參究)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근래 사회과학계에서 개발과 수탈 양극단으로 ‘식민지근대화’ 논쟁이 활발했지만, 그런 사회과학적 논쟁의 허실을 오히려 이상의 문학을 통해 더 깊은 차원에서 밝혀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전근대의 수많은 구습이 일제의 폭압적 근대화기획에 뒤섞여들어가는 복합적인 이행과정에 대한 진정 근대다운 고뇌로서 이상을 읽어보자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전근대의 종요로운 유산과 후진적 폐해 모두를 온전히 계승·혁파할 수 없게 된 현실, 겉모습은 어지럽게 발전하는 듯하지만 근대정신의 내실은 공허한 식민지사회가 이상 문학의 핵심 문맥이 된다. 또 바로 그런 문맥에 1920〜30년대를 풍미한 진보적 문학이념과 이상의 도저한 실험의식이 놓여 있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등장한 여러 유파의 문학 중 ‘진보성’을 따진다면 역시 카프(KAPF)를 첫손꼽아야 할 것이다. 이상 연구 가운데 이상과 카프의 ‘동시대성’6만큼 오래 망각된 주제는 흔치 않으며, 카프의 와해와 이상의 홀연한 등장이 하나의 시대적 국면에서 파악되지도 않았다. 그것은 골수 모더니스트로서의 이상을 철저하게 운동과 이념으로 일관한 카프와 연계하는 발상 자체가 지난 몇십년간 리얼리즘·모더니즘의 골이 깊어진 (국문)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었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이미 30년대의 창작지형에서조차 카프가 주도적 실세가 아니었음은 물론, “우리 같은 가난한 계급은 이 몸뚱이 하나가 유일 최종의 자산”(3권 221면)임을 토로한 이상 역시 “작가는, 대체, 초근목피 편이냐 응접실7 편이냐”(3권 250면)를 준열하게 물었음도 기억함직하다. 게다가 이상이 남긴 ‘수필’ 가운에 백미로 통하는 「권태」(1937)는 카프의 어느 작품 못지않게 식민지의 질곡을 실감케 한다. 이를테면 이상과 카프의 동시대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통념적인 리얼리즘·모더니즘의 대립구도도 자연스레 해체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작품 차원에서는 그 구도가 더 불투명해진다. 「날개」(1937)의 ‘모더니즘적’ 화자 하나만 해도 당대 진보적 지식인의 다양한 정신적 편린과 비교할 때 그 일탈성이 두드러질지언정 그들보다 덜 ‘리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이냐 모더니즘이냐를 그렇게 갈라 따지기 시작하면 오히려 식민지조선을 구더기가 들끓는 무덤으로 한탄한 『만세전』(1924)의 이인화나 망국의 온갖 신고(辛苦)를 때이른 계몽의 환희로 뒤바꾸어놓은 『흙』(1932)의 허숭처럼 일제와 함께 앞서간 지식인들이야말로 식민지시대를 망각하고 헛것을 본 혐의가 다분하다. 나아가 “남에게 예속된 강아지의 행복을 누리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내 뜻대로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걸어가겠느냐?……하는 기로에” 선 『황혼』(1936)의 단호한 결단마저도 「날개」에 비추어보면 진보를 빙자하여 너무도 손쉽게 현실을 털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상 당대의 비평으로 말하자면, 바로 이 작품을 겨냥한 김문집(金文輯)의 맥고모자 운운한 “위악적인 허튼말”8이 악명높은 예지만, 실상 이상의 재능을 누구보다도 인정하고 그 요절을 안타까워한 최재서(崔載瑞)의 이른바 ‘리얼리즘 심화론’ 역시 주관/객관의 이분법에 가둔 혐의가 뚜렷하다. 동시에 김남천(金南天)이 “허위의 사실주의”로 질타한, “일상의 속악한 실재에 만족하고 본질을 빼어놓고 비본질적 쇄사(鎖辭)에만 종사하는 공허한 ‘리얼리즘’”9과는 격이 다른 본질적 현실에 천착한 작품이 바로 「날개」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필요도 있다. 「날개」를 읽어보겠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기상(奇想)과 황당한 논리가 일견 뒤섞인 듯한 서사(序詞)는 「날개」에 대한 작가의 교묘한 해석인 동시에 그 특유의 감수성의 현시다. “가증할 상식의 병인 위트와 패러독스”로써 “여인의 반”만을 “영수(領受)하는 생활”을 “머릿속의 백지에 깔리는 바둑 포석처럼” 보여주겠노라는 포부는 전형적인 모더니스트적 태도다. 미망인·여왕벌의 본성을 가진 한 여성과의 삶을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것과 같은 아이러니로써”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본질을 그렇게 정의하는 행위가 “여성에 대한 모독”이냐고 반문하는 화자의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했다.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諸行)이 싱거워서 견딜 수 없게 된” 결과 내면이 텅 비어버린 상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구석진 방의 이불 속에서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 무위무책(無爲無策)을 ‘실현’하려는 룸펜이다. 이상은 전통적인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가 성립할 리 만무한 식민지현실에서 “그날그날을 그저 까닭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가 그만”인 룸펜, 화류계의 “한 떨기 꽃을 지키고─아니 그 꽃에 매어달려 사는 (…) 도무지 형용할 수 없는 거북살스런 존재”, 즉 기생인간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식민지 지식인의 통한이 삶의 의지를 일깨우는 처녀작이자 유일한 장편 『12월 12일』(1930)을 예외로 치면, 「날개」를 포함한 「지주회시(會豕)」(1936) 『동해(童骸)』(1937) 「종생기(終生記)」(1937) 「환시기(幻視記)」(1938) 「실화(失花)」(1939) 등 이상의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룸펜의 존재방식은 한마디로 ‘권태’다. 이는 상품의 물신화가 전면적인 현실이 되어버린 빠리 거리에서 발생하는 ‘충격 체험’으로서의 보들레르식 권태나 식민지 지배자로서의 정신에 깃들인 삶의 허무에 맞선 까뮈의 강렬한 부조리의식과도 사뭇 다르다. 이상의 권태는 삶의 모든 의미 부재(不在)를 영혼의 허기로써 극단까지 체험한 식민지 지식인의 상황에서 연유한다. 참다운 예술가를 이해하고 북돋아줄 수 있는 교양계층의 빈곤이 외부로부터 강제된 결과 더이상 ‘삶에의 부름’이 들리지 않게 된 현실에서 역설적으로 지향하게 된─“권태를 인식하는 신경마저도 완전히 허탈해”(3권 142면)져버리려는─삶의 방식이다. 삶의 부름과 소임은 있어야만 하고 또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주어지지 않는 현실 자체로의 부름과 부재로서의 소임만이 존재할 뿐인 식민지근대가

  1. 김주현, 『이상 소설 연구』, 소명출판 1999, 408면에서 재인용.
  2. 최원식,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다시 생각한다」, 『창작과비평』 1994년 겨울호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작품으로의 귀환」, 『현대 한국문학 100년─20세기 한국문학 어떻게 볼 것인가』, 민음사 1999 및 토론문 참조.
  3. 진정석, 「모더니즘의 재인식」, 『창작과비평』 1997년 여름호, 171면.
  4. 林鍾國 편, 『李箱全集』 제3권, 泰成社 1956, 317면. 이는 『오감도』를 읽은 당대 독자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필자가 알기로 이상의 작품을 전집 형태로 낸 경우는 임종국의 문성사(文成社 )본 (개정판, 1972)말고도 이어령 교주(校註)의 갑인출판사본(1977, 78)과 김윤식·이승훈이 4권(1권 시, 2권 소설, 3권 수필, 4권 이상에 관한 비평)으로 엮은 문학사상사본(1991)이 있다. 작품 인용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문학사상사본에 근거하되, 괄호 안에 전집 권수와 면수만을 병기하며 띄어쓰기는 「지주회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현재의 표기법에 따랐다. 상론할 계제는 못 되지만, 각 판본의 문제점에 대한 성실한 고찰로는 김주현, 앞의 책, 3부 참조.
  5. 고은, 『李箱評傳』, 청하 1992, 13면.
  6. 박영희의 전향선언─“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며 상실한 것은 예술이다”─은 1933년 10월 7일에 나왔다. 그해 이른바 ‘신건설사사건’으로 카프는 사실상의 와해에 접어든다(좀더 구체적인 카프 해체과정은 임규찬, 「카프 해산 문제에 대하여」, 김학성·최원식 외, 『한국근대문학사의 쟁점』, 창작과비평사 1990 참조). 시의 경우 이상의 첫 공식 발표작은 1931년 7월호 『朝鮮과 建築』에 실린 「이상한 가역반응」 외 5편이었다.
  7. 문학사상사판에는 “作家는─大體─草根木皮 편이냐 應接害 편이냐”로 되어 있다. 임종국의 개정판(186면)을 보나 전후맥락에 비추어 보나 응접해는 ‘응접실’의 오식임이 분명하다.
  8. 최원식, 「서울·東京·New York─이상의 「실화(失花)」를 통해 본 한국 근대문학의 일각」, 『문학동네』 1998년 겨울호, 174면.
  9. 김남천, 「낭만적 정신의 현실적 구조─신창작이론의 정당한 이해를 위하여」(1934), 김재용 엮음, 『카프비평의 이해』, 풀빛 1989, 5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