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주혜 李柱惠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자두』 등이 있음.

leestori@hanmail.net

 

 

 

장편연재 1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학살자가 죽은 날, 그의 죽은 몸이 운반된 병원에 갔다. 그의 끝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텔레비전 화면에 간혹 비치는 그의 산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아 채널을 돌려버리는 사람이었다.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 예약이 되어 있었다. 아침 뉴스에서 그의 사망소식을 전하는 기자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유당이 제거된 우유에 천천히 그래놀라를 말아 먹었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외출복을 입었다. 마지막으로 텔레비전을 끄면서 한 문장을 떠올렸다. 모든 죽음은 느닷없다. 죽음의 평등함을 말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학살자는 죽음조차 불평등함을 조소하고 가버렸다.

택시 안에서 바라본 병원 후문은 온갖 언론사의 중계차들로 혼잡했다. 붉은색 표지판이 위압적인 응급실 입구에 묵직한 카메라를 어깨에 인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누가 새로 도착할 때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든 사람들이 우르르 한곳으로 몰렸고, 그 바람에 바로 옆에 보이는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안내판이 상대적으로 초라해졌다. 씨발새끼가 사과도 않고 죽어버렸어. 내 말에 택시 운전사가 움찔 놀라더니 백미러를 흘끔거렸다.

좀 어떠셨습니까? 의사는 과거형으로 질문했다. 이주일 동안 복용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가 잘 맞았느냐는 물음이었다. 처음 처방받은 약은 끝없는 졸음을 유발해 문제가 되었다. 한낮에 숟가락을 입에 문 채 깜박 잠든 적도 있었다. 입안에 든 음식물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처음 약을 처방하면서 의사는 낮에도 졸리면 부작용이니 곧바로 내원해 약을 바꾸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 치 약을 다 먹고 예약일에 병원을 찾아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의사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뭔가를 메모했는데, 나는 속으로 ‘쓸데없이 고지식한 게 문제임’이라고 쓰지 않았을까 상상했다. 약을 바꾼 후 낮에 졸린 증상은 사라졌지만 대신 밤잠이 허술해졌다. 의사는 원하는 취침시간 한시간 전에 약을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한시간은커녕 두세시간이 지나도 잠이 쉽게 들지 않았고 겨우 잠들었다고 생각했을 때도 몸의 스위치만 꺼지고 의식은 반 이상 깬 채 밤을 통과했다. 이 역시 부작용일까 생각했지만, 그때도 일주일 치 약을 다 먹고 병원에 갔다. 의사는 정신과 약이란 게 원래 처음 몇주는 개인별로 적절한 종류와 용량을 찾아 미세한 조정이 필요한 법이니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보자고 했다. 약 몇번 먹고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하는 게 오히려 위험한 생각이라고 했다. 참을성이란 내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덕목이었으므로 조바심을 내는 쪽은 내가 아니라 의사일 터였다. 세번째 처방에 의사가 약 하나의 복용량을 조금 늘렸는데 그후로 낮에 졸리지도 않고 미약한 가위눌림 상태로 밤을 통과하는 일도 점차 줄었다. 약이 드는 모양이었다. 일주일에 한번씩 내원했던 것을 두주일에 한번으로 바꾸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지 두달이 다 되었을 때 학살자가 죽어버렸다.

지금 감정 상태는 어떤가요? 약효에 이어 의사가 현재형으로 감정을 물었다. 분노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의사가 모니터 너머로 내 얼굴을 살폈다. 마스크를 쓴 상대의 감정을 어떻게 살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의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일에 대한 분노일까요? 역시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학살자가 죽었어요. 잘 먹고 잘살다가 죽어버렸어요. 의사가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나를 보았다.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사과 한마디 없이 덜컥 죽어버렸다고요. 의사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이나 인정의 표현은 아니었다. 오래전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그런 일로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군요. 수년 전 독재자의 딸이 가뿐히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늦은 밤 인터넷 까페 게시판에 울분의 글을 올렸다가 그 댓글을 보았다. 조롱이나 비난의 기미는 없었다. 그냥 좀 신기하고 낯설다는 말이었다. 앞에 앉은 의사의 표정도 비슷했다. 개인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정신과를 찾아와 두달째 약을 먹고 있는 당신이 개인적인 감정을 묻는 말에 꽤 정치적인 이유를 들다니 신기하군요, 정도랄까. 물론 순전히 내 추측이고, 나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사고는커녕 생활조차 불가능한 상태였으므로 그 추측은 틀렸을 가능성이 컸다. 의사가 물었다. 그 사람이 사과 없이 죽었다는 사실이 환자분의 개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이유가 뭘까요? 예전이었다면 단호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니까요. 그러나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다분히 수세적이었다. 잘못했다고 한마디 하는 게 뭐 그렇게 어렵나요? 입도 있는 새끼가! 의사는 웃지도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다만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나는 야심 차게 준비한 농담에 실패한 사람처럼 주눅 들었다. 환자분은 사과가 중요한 사람이군요. 의사의 말이 허를 찔렀다. 석구와 해준이 떠올랐다. 석구는 끝내 내게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해준이 바라는 사과를 할 수 없었다. 의사는 석구와 해준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고 있을 학살자의 죽음이 아니라. 나는 버티듯 석구와 해준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시 이주일 치 약을 처방받아 병원을 떠났다. 병원을 떠나는 길은 평소보다 혼잡했다. 병원 직원들이 여기저기 서서 끊임없이 뒤엉키며 밀려드는 차량을 통제했다. 약국에서 약을 받아 가방에 넣고 버스를 탈까 하다가 정류장을 그대로 지나쳐 연희동 방향으로 걸었다. 다음 행선지는 걸어서 30분이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처음 과호흡이 찾아왔을 때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임시방편이 걷기였다. 공황장애약을 삼년 먹고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를 떠나보낸 대학병원 앞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요. 무작정 빨리 걸었죠. 한시간 가까이 앞만 보고 걸었는데 호흡이 편안해졌다 싶었을 때 처음 보는 낯선 거리에 와 있더라고요. 불안장애를 진단받은 후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네 뒷산을 오릅니다. 아직 약을 끊지는 못했지만 걷는 동안에는 적어도 발작이 오지 않으리란 확신이 들어요. 정신질환 환우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험담이었다. 대학병원 호흡기내과와 정신건강의학과에 검사를 예약하고 진료일을 기다리는 동안 우선 걷기를 시작했다. 자리에 앉으면 아득히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어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동네를 몇바퀴 돌았다. 그러다 건널목을 만나면 자꾸 걸음이 중단되어 집에서 조금 떨어진 큰 공원으로 갔다. 오피스텔 건물에서 난지천공원 입구까지, 거기서 다시 하늘공원 입구까지 오르막길을 천천히 올라 왼편 구름다리를 건너 월드컵 평화의 공원에 들어가면 한시간이 걸렸다. 인공연못 앞 벤치에 앉아 10분 정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물끄러미 수면을 바라보다 왔던 길로 돌아가면 두시간 넘게 걸을 수 있었다. 매일 그 길을 걸었다. 산책이라기보다는 도피에 가까운 행위였다. 숨이 안 쉬어지고 땅이 꺼질 것 같아 자꾸 눈을 질끈 감게 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달아나는 길이었다. 어느새 불안과 공포는 감정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었다. 몸으로 생생하게 느끼는 증상이었다. 걷는 동안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증상이 시작되기 전 즐겼던 산책과 같지 않았다. 난지천공원과 하늘공원, 월드컵 평화의 공원의 나무들은 가을 채비에 분주했다. 매일 주변의 나뭇잎 색깔이 달라졌다.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타오르는 붉은색, 노을 같은 주황색, 등불 같은 노란색 단풍을 보고도 감탄하지 않았다. 예쁜 게 예뻐 보이지 않아서 내가 단단히 고장 났구나 생각했다. 무지개처럼 다채로워야 할 감정이 불안과 공포에 짓눌려 가라앉았다. 연못 앞 벤치에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은 사람들을 보면 내가 혼자라는 것이 떠올라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사랑스럽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 뭔가가 내게서 저 보드랍고 따뜻한 것을 앗아갔다는 생각이 들어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면 무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잿빛 뼈가 연상되었다. 어떤 것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모든 것이 자극이었다. 머리를 감으려고 고개를 숙이면 샤워기 줄이 올가미로 보였다. 눈을 감으면 어둠이고 어둠은 곧 죽음이었다. 눈을 감을 수가 없어서 잠도 잘 수 없었다. 입을 벌릴 수도 없었다. 음식물은 질식을 떠올리게 했다. 불안이 몸 안의 모든 통로를 안에서부터 단단히 걸어 잠갔다.

약물치료는 급한 불을 꺼주겠지만, 약이 환자분의 불안과 공포를 깨끗이 몰아내지는 않아요. 첫 진료일에 의사가 말했다. 상담치료나 행동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고, 지금처럼 걷기나 운동에 몰두하는 것도 좋아요. 또 일기를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기라니. 나는 그날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의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일기라면 사십대에 들어서면서 쓰기를 그만뒀다. 마흔살이 된 걸 기념하듯이 이십대부터 삼십대에 걸쳐 쓴 수십권의 일기를 사무용 세단기를 사서 죄다 갈아버렸다. 사흘이 걸렸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행위입니다. 객관화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이랄까요. 자신과의 거리가 0일 때 우리는 그것을 문제적이라고 합니다.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자신과의 거리가 0을 지나 음수에 수렴하는 중이었다.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서 외부의 모든 자극을 차단하고 내면의 동굴로 걸어 들어간 패배자였다. 실제로 약물치료를 시작하기 직전 나는 밤마다 이불 속에서 태아 자세로 웅크린 채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 중얼거리며 덜덜 떨었다. 겁쟁이가 되어 동굴에 숨어드는 것과 일기 쓰기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의사의 말을 의심하면서 인터넷에서 ‘일기 쓰기’를 검색하다가 ‘연희방글스튜디오’를 발견했다.

통유리창 너머로 정원의 동백나무가 보였다. 연희동 2층 양옥을 개조해 1층은 까페와 글쓰기 교습소로 쓰고 2층은 운영 사무실과 강사들의 작업실로 썼다. 개조 후에도 정원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서 철마다 동백, 목련, 능소화, 배롱나무, 모과나무, 감나무가 차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까페로 운영하고 (이 시간대에는 출입구에 ‘방글’이라는 팻말이 달렸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글쓰기 교습소가 되었다. (이때 출입구의 ‘방글’ 팻말이 뒤집혀 ‘글방’이 되었다.) 요일마다 소설창작교실, 시창작교실, 비평쓰기교실, 에세이쓰기교실 등이 열렸는데 그중 놀랍게도 일기쓰기교실이 있었다. 누가 일기 쓰는 방법을 돈을 내면서까지 배울까, 생각하며 일기쓰기교실 배너를 클릭했다. ‘당신의 삶을 써보세요.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 두 문장이 한 구절씩 차례차례 화면에 떴다. ‘쓰면 만나고’가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로 이어질 때 까닭 없이 아득해졌다. 나는 자세한 안내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삼개월 일정의 일기쓰기교실에 등록했다.

학살자가 죽었는데 연희방글스튜디오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전직 대통령과 같은 동네에 산다고 자랑해왔던 마웨는 시무룩하게 앉아 프린트해온 과제물을 읽고 있었고 고슴과 도치도 평소처럼 바짝 붙어 앉아 있었지만 말이 없었다. 강사는 아직 2층 작업실에서 내려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화요일 일기쓰기교실의 수강생은 단 네명이었다. 인기가 없을 줄은 알았지만 소설창작이나 에세이쓰기 수강생의 절반도 안 되었다. 강사 림자는 오년 전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작가였는데 아직 자기 이름으로 낸 소설책이 없어서 홈페이지에 소개된 프로필이 다른 강사들에 비해 짧았다. 강좌 첫날 강사는 일기를 쓰는 일에 어떤 가르침이나 배움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는 다소 맥 빠지는 소리로 시작하더니 자신은 마라톤의 페이스메이커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니 선생님이나 작가님 같은 호칭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 통하는 자신의 별명 ‘그림자’를 줄여 ‘림자님’ 혹은 ‘림자씨’로 불러달라고 했다. 또 수강생들도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별명을 지어 서로 불러주자고 제안했다. 이는 일기라는 장르의 특성상 개인정보를 보호하고 익명성을 원칙으로 하려는 스튜디오의 방침이라고도 했다. 이어서 수강생들이 앉은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칠십대 노인이 자신은 늙은이라 요즘 맞춤법도 모르고 평생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바빠서 어려운 말도 배우지 못했으니 선생님의 아니, 림자님의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또 별명은, 에, 에,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마이웨이’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하니 마이웨이로 불러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젊은 수강생이 그럼 두 글자로 줄여서 간지 나게 ‘마웨’가 어떻겠냐고 제안해서 노인의 별명은 마웨가 되었다. 노인은 어쩐지 중국의 부호 같은 느낌이 든다며 흡족해했다. 앳된 얼굴의 여자애와 남자애는 커플인지 시종일관 딱 들러붙어 있었는데, 네가 먼저 해, 아니, 네가 먼저 하라고, 한참을 옆구리를 찔러가며 키득거리더니 여자애가 먼저 말했다. 자신들은 커플이니만큼 커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별명을 짓고 싶은데 남자친구가 ‘바퀴’와 ‘벌레’를 제안했고 자신은 바퀴벌레라면 끔찍하게 싫어해서 ‘잉꼬1’과 ‘잉꼬2’를 제안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도 너무 올드하고 구려서 한참 고민하다가 둘이 함께 키우는 고슴도치를 떠올리고 ‘고슴’과 ‘도치’로 정했다고,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마지막으로 모두 내 쪽을 돌아보아서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음을 알았다. 나는 오십대가 되어 한번쯤 삶을 반추해보고 싶었다는 다소 상투적인 말로 수강 동기를 적당히 둘러대고 별명은 딱히 생각나는 게 없으니 다음 시간까지 지어 오겠다고 덧붙였다. 다들 시시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강사 림자가 큰 화면에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띄웠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소크라테스.

 

림자가 얼굴에 비해 다소 커 보이는 안경을 살짝 추어올리며 잠시 통유리창 너머 정원을 보았다. 내 시선도 림자를 따라 정원을 향했다. 정원은 이미 어두웠고 바닥에 설치한 조명이 마른 나뭇가지를 주황빛으로 비추고 있었다. 저 나무가 홈페이지에서 보았던 동백일까? 동백이 맞는다면 나는 봄까지 이곳에 드나들며 붉은 동백꽃이 피는 순간을 만날 수 있을까? 검은 유리에 반사된 림자의 옆얼굴이 피로해 보였다. 림자는 다시 수강생 쪽을 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했어요. 여기서 성찰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되돌아보는 것? 마웨가 대답했다. 예, 되돌아보는 것, 돌이켜보는 것이죠. 그런데 왜 되돌아봐야 할까요? 평가하려고요. 젊은 남자애 도치가 말했다. 림자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예, 평가도 하죠. 그런데 자기 삶을 평가한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백점, 오십점, 빵점, 이렇게 점수를 매기는 걸까요? 반성하기? 나도 모르게 불쑥 말했다. 반성도 좋은 말이네요. 반성은 흔히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보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원래는 거울에 비춰본다는 뜻이니까요. 여러분의 말을 종합해보면 성찰이란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고 평가하고 반성하는 일이네요. 일단 보는 행위가 먼저겠고요. 보고 이리저리 생각해보는 것이죠. 보고 생각해보고 그걸 글로 쓰면 그게 바로 일기입니다. 그 일기를 전부 모으면 뭐가 될까요? 자서전, 하고 마웨가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사실 일기와 자서전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일기의 총체 혹은 확장이 자서전이죠. 림자의 설명에 마웨가 한번 해볼 만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림자가 펜 모양 리모컨을 누르자 슬라이드 화면이 바뀌었다.

 

자서전은 뒤늦게 쓴 일기의 총합이다.

 

나는 펜을 꺼내 수첩에 그 문장을 옮겨 적었다. 자서전은 뒤늦게 쓴 일기의 총합이다. 우리는 왜 굳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려 할까요? 림자의 질문에 고슴이 말했다. 선생님이 시켜서요. 도치와 마웨가 하하 웃었다. 고슴님은 선생님이 시켜서 말고 자발적으로 일기를 쓴 적이 있나요? 림자가 물었다. 설마요. 고슴의 즉각적인 대답에 도치와 마웨가 또 하하 웃었다. 림자가 안경을 고쳐 쓰고 고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사춘기 때부터 지금껏 일기를 써오고 있어요. 물론 매일 쓰는 건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쓸 때도 있지요. 그럼 일기가 아니라 주기나 월기가 아니오? 마웨가 말하고 자기 혼자 껄껄 웃었다. 예, 일기를 쓸 때도 있고 주기나 월기를 쓸 때도 있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매년 막바지에 한해를 정리하면서 그동안 쓴 일기를 다시 읽어보는 의식이 생겼어요.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죠. 림자가 잠깐 말을 멈추고 수강생들을 훑어보았다. 다소 무심해 보이는 첫인상과 달리 림자는 뜻밖에 뛰어난 연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동안 쓴 일기에 등장하는 나는 내가 아니더라고요. 림자가 대단한 비밀을 누설하는 사람처럼 속삭였다. 분명 사실만을 기록했고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게 썼지만 일년 후 그 기록을 읽는 나와 그 기록 속을 살아가는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어요. 왜 그럴까요? 내가 어벙한 말투로 물었다. 림자가 내게 속삭였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이 강좌를 맡기로 했습니다. 림자가 리모컨을 눌러 슬라이드를 바꾸었다.

 

‘당신의 삶을 써보세요. 쓰면 만나고 만나면 비로소 헤어질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본 강의 소개 문구였다. 무엇과 헤어질 수 있다는 말인가요? 도치가 물었다. 내가 기록한 나와. 내가 기록 속에 가두어놓은 나와. 여전히 과거의 기억 속에서 헤매는 나와. 림자는 신들린 듯 대답을 쏟아내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왠지 양팔에 소름이 돋았다. 헤어지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기록하세요. 어떤 수치심도 글로 옮기면 견딜 만해집니다. 림자가 다시 슬라이드를 바꾸었다. 과제물을 미리 보낼 자신의 이메일 주소와 급할 때 연락할 전화번호가 떴다. 처음 몇주는 제가 길잡이로 키워드를 드릴 거예요. 그 키워드를 주제어 삼아 자유롭게 일기를 써오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분량도 문체도 자유입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상관없어요. 부담 갖지 말고 맘 편히 써서 주말까지 제 이메일 주소로 보내주세요. 다음 시간부터는 각자 써온 일기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아요. 주제어가 뭐라고요? 마웨가 받아쓸 준비를 하고 물었다. 림자는 주제어를 즉흥으로 떠올리려는지 다시 통유리창 너머 검은 정원을 돌아보았다. 바깥은 쓸쓸하고 쌀쌀해 보였다. 우산. 림자가 작게 읊조렸다. 우산으로 하죠. 우산을 생각하고 떠오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써보세요.

 

*

 

시옷에게도 자신만의 우산이 있었다. 일곱살이었나, 여덟살이었나. 아빠가 시옷의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가 직접 골라준 우산이었다. 레몬색 천 위로 흰 장미가 가득 인쇄된 비닐을 덧씌운 이중우산이었다. 우산을 처음 펼쳤을 때 시옷의 귀를 가볍게 때렸던 팟 하는 소리, 그리고 거의 동시에 코를 쏘았던 새 물건 특유의 인공적인 냄새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옷이 기억하는 시옷만의 첫 우산이자 마지막 우산이었다. 펴는 즉시 샛노란 천 위로 하얀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던 그 우산은 아름다웠다. 우산을 사 들고 온 날부터 시옷은 어서 비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살면서 유일하게 비를 기다린 때였다. 마루에서 토방으로 내려서는 반듯한 댓돌 옆 우산꽂이에 얌전히 꽂혀 있는 제 우산을 보며 언제쯤 저것을 펼쳐 들고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시옷은 매일매일 비를 기다렸다. 마른하늘을 향해 우산을 펼쳐 들고 공연히 마당을 오락가락하다 할머니에게 뒤스럭을 떤다고 핀잔을 듣기도 여러번이었다. 드디어 비가 내린 날 아침 시옷은 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서둘러 우산을 팟 소리 나게 펼치고 학교로 향했다. 부러 천천히 걷는 걸음마다 빗방울이 우산 위 장미 꽃잎을 타고 알알이 미끄러졌다. 위험한 줄도 모르고 자꾸 눈앞이 아니라 우산 속을 쳐다보며 걸었다. 그날따라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등굣길이 너무 짧아 아쉬웠다. 시옷이 지루한 수업을 견디는 동안 비가 그쳤고 시옷은 우산을 교실 뒤쪽 우산꽂이에 그대로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만화책을 들춰보다가 불현듯 우산을 떠올리고 깜짝 놀라 학교로 달려갔을 때 교실 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밤새 우산의 안부를 걱정하다 다음 날 아침 뛰다시피 학교로 갔을 때 우산꽂이는 텅 비어 있었다. 시옷은 교실 곳곳을 둘러보고 복도 여기저기를 살피고 행여나 싶어 다른 교실도 기웃거렸지만, 아름다운 우산은 보이지 않았다. 그후 한동안 시옷은 비 오는 날마다 남의 우산을 골똘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간혹 레몬색 우산이나 흰 장미꽃 우산을 발견하면 멀리서도 심장이 뛰었지만, 가까이 가보면 시옷의 우산이 아니었고 돌아설 때는 어김없이 울고 싶어졌다. 시옷은 그렇게 자신만의 처음이자 마지막 우산을 딱 한번 써보고 잃어버렸다. 마지막 우산이라고 말한 것은 그후 한동안 시옷에겐 시옷만의 것이라고 할 만한 우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빈곤은 우산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언제부턴가 시옷의 집에는 우산살이 하나둘 부러져 비를 완전히 막아주지 못하는 허술한 우산만 남았다. 식구들이 집을 나서는 순서대로 우산을 골라 들고 가면 시옷의 차례에는 우산이 없을 때도 있었다. 장마철은 난감했다. 엄마는 급한 대로 옆집에서 우산을 빌려오기도 했고 대나무 살에 얇은 파란색 비닐을 씌운 허술한 우산을 사다 주기도 했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파란 비닐이 순식간에 찢어졌다. 어른이 되어 우산 정도는 어렵지 않게 살 수 있게 된 때에도 시옷은 비 오는 날이 싫었다. 아침에 눈을 떠 비가 오는 걸 알면 까닭 모를 걱정과 불안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시옷에게 비는 살이 부러진 우산과 젖은 신발을 의미했다. 그 축축함과 막막함은 자연스럽게 군모를 깊숙이 눌러쓴 어느 군인이 국방색 우비 위로 길쭉한 소총을 끌어안고 집요하게 비를 맞고 있던 장면을 머릿속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해 봄 시옷은 방송국 어린이합창단에 들어갔고 평일 방과 후에 혼자 버스를 타고 방송국에 합창 연습을 다녔다.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큰길을 건너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 꼭대기에 방송국이 있었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철제 정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정문 너머로 장갑차와 총을 들고 선 군인들이 보였다. 정문 앞에도 수위아저씨 대신 군인 두 사람이 양쪽을 지키고 서 있었다. 국방색 우비 위로 빗방울이 알알이 흘러내렸고 비스듬히 세워서 안은 총도 비를 맞고 있었다. 시옷은 실물 총을 그때 처음 보았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옷이 번들거리는 총신에서 눈을 못 떼고 있을 때 군인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군모를 깊숙이 눌러써서 눈이 보이지 않는 군인이 말을 하자 시옷은 깜짝 놀랐다. 나는 어린이합창단이에요. 군인은 시옷의 대답이 올바른 암호라도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