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다은 金多恩

『시사IN』 기자. 저서 『혼밥 생활자의 책장』 『마음은 굴뚝같지만』(공저) 등이 있으며 팟캐스트 ‘혼밥 생활자의 책장’을 제작하고 있음.

midnightblue@sisain.co.kr

 

박경희 朴卿喜

시인. 시집 『벚꽃 문신』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 등이 있음.

rud4151@naver.com

 

양경언 梁景彦

문학평론가. 평론집 『안녕을 묻는 방식』 등이 있음.

purplesea32@hanmail.net

 

 

 

 

왼쪽부터 양경언 박경희 김다은 Ⓒ 신나라

왼쪽부터 양경언 박경희 김다은 Ⓒ 신나라

 

 

양경언(사회) 여름호 문학초점 시작해보겠습니다. 저는 오늘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양경언입니다. 좌담이 진행되는 오늘은 절기상으로 입하(立夏)를 앞두고 있어 계절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때인데요, 팬데믹 상황이나 대선 이후의 향방을 각계각층에서 고민하는 등 우리 사회 역시 변화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분주한 것 같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문학이 세상에 건네는 이야기를 예민하게 감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활동영역에 계신 분들이 문학을 접했을 때 어떠한 구체적인 사유를 마련하는지도 궁금한데, 폭넓은 이야기를 나눠주실 두분 모실 수 있어 기쁩니다. 한분씩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경희 안녕하세요. 시를 쓰는 박경희라고 합니다. 이런 좌담 자리가 처음이라 무척 떨리네요. 기차를 타고 오는 내내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지?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혼자 묻고 답하면서 왔습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김다은 『시사 IN』 기자이자 책 소개 팟캐스트 ‘혼밥 생활자의 책장’을 제작하는 김다은입니다. 저는 사실 계간지를 매번 챙겨 읽지는 못하고 이따금 궁금한 주제나 대담을 중심으로 읽어왔는데요, 워낙 문학계의 전문가들이 만들고 읽는다는 느낌이 있어서 섭외를 받았을 때 조금 긴장을 했습니다. 그래도 대중적인 관점에서 독자들을 대변해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고요, 팟캐스트 진행하듯이 궁금한 것은 묻고 배우고 하겠습니다.

 

양경언 좋습니다. 세대와 연령과 영역을 넘나드는 여성들이 소설과 시에 대한 수다를 나눈다고 생각하며 시작해보겠습니다.

 

 

김지연 『마음에 없는 소리』(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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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언 『마음에 없는 소리』로 시작해보면 좋을 듯해요. 2018년부터 그야말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해온 김지연의 첫번째 단편집입니다.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청년세대, 퀴어 커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담긴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감상부터 자연스럽게 나누어볼까요?

 

김다은 우선 표지가 작품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이 대부분 원색처럼 쨍하거나 테두리가 또렷하기보다 파스텔톤의 표지 그림처럼 흐릿하고 투명도가 높았거든요. 생을 마감한 인물부터 살아 있지만 마치 죽기 직전의 상태인 듯한 인물들, 누군가에게 져주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사는 사람 등 이들은 ‘투명인간’처럼 자신의 무게를 가볍게 만든 인물들로 느껴졌어요.

 

양경언 표현이 재밌어요. ‘투명인간.’ 한편으로는 땅에 발붙이려고 애쓰는 몸짓이 느껴지기도 하죠.

 

박경희 서울에서의 퍽퍽한 삶과 그로 인한 귀향, 결혼 압박, 잘 풀리지 않는 연애와 사랑 등 30대 여성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많이 투영되어서인지 오늘 이야기할 소설 가운데 가장 쓸쓸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가령 「굴 드라이브」에서 ‘나’는 결혼 생각이 없지만, 삼촌은 조카의 말을 무시하듯 월 300만원짜리 일자리가 있다고 속여 고향에 오게 해요. 남자를 소개해 결혼시킬 작정인 거죠. 이처럼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말을 해도 다른 인물들이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느낌이 강하기도 했어요.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제게는 크게 다가왔고 소설이 툭 던져놓은 ‘마음에 없는 소리’가 큰 파장을 일으키더라고요. 바다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어요. ‘파랑’ ‘바다’의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지기도 하고, 돌멩이를 던지면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이 떨어질 것 같고요.

 

양경언 배경으로 바다에 인접한 지역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풍경으로서만이 아니라 말씀하신 파장과 깊이를 확보한 소재로 나온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책에 첫번째로 배치되어 있는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은 옛 연인과의 여행을 회고하는 소설인데요, 둘이 나체로 편하게 놀 수 있는 개인 해변을 찾아 갔다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할머니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이 나와요. “근처 조선소가 망한 뒤론 다 빠져나갔”다며 “나 같은 늙은이들뿐이”(19면)라는 할머니의 말을 통해 이전에는 산업적으로 흥한 지역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죠. 경제적으로 쇠락하면서 희미한 색채를 가진 지역이 되었다는 역사적·사회적 사연이 소설과 잘 엮여 들어가더라고요. 작가가 이런 순간의 장면을 단편의 규모에 맞게 포착하고 조명한 뒤 아련함을 남기는 데 능한 것 같습니다. 그 아련함이 배경이 되어버린다기보다 내 삶에서 지울 수 없는 순간에 포함된 장면으로 남는달까요. 지역이 기능적으로 쓰였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김다은 귀향의 목적지인 지역은 주인공을 환대하지 않는 곳으로 나와요. 철학자 레비나스(E. Levinas)는 집을 ‘자신이 원할 때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정의하면서 내가 정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음으로써 세계와 내가 건강한 거리감을 가질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 이 작품 속 인물들에게 고향이나 집은 안정감을 주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떠돌이처럼 표류하는 여성 인물들을 보고 있으니 씁쓸한 마음이 들어요.

 

양경언

양경언

양경언 그러면서도 씩씩하고 단단한 인물들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발 한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도 하고 앞으로 할 것들을 마련해나가기도 하고. 「마음에 없는 소리」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반년 만에 때려치우고 취업에도 번번이 실패한 35세 여성 ‘선미’가 청년사업 신청 제한 나이에 걸려 지원금도 없이 식당을 개업하는 이야기예요. 친구들은 선미에게 다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라는 둥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고”(189면)라고 한마디씩 하죠. 하지만 곧 39세까지 청년으로 인정한다고 시 정책이 바뀌고 소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삶은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고 거기엔 아주 많은 공을 들여야만 한다”(194면)는 선미의 말로 끝나요. 나는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 거라는 식의 힘, 에너지가 분명히 느껴져요.

 

김다은

김다은

김다은 「결로」도 비슷한 느낌입니다. 일단 이 소설은 반전이 많고 참 치밀하게 짜여 있다 싶었어요. 피규어 중고거래를 하기 위해 낯선 동네에 가서 한시간 정도 판매자를 기다리면서 일어나는 일인데요. 슈퍼 앞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초반에는 잘 모르는 사이니 거짓말도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거기서 스미는 따뜻함이 인상적이죠. 그런데 결말에 가서는 주인공이 할머니가 선물로 준 카디건을 헌옷 수거함에 넣어버려요. 저는 이 대목이 거의 독자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져서 무척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조금 더 읽어나가면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설명돼요. 근데 그것도 충격적이에요. 할머니들에게 죽지도 않은 동생을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카디건을 보면 자신이 한 잔인한 거짓말이 계속 떠오를 것 같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거죠.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샤워를 하고 나와 “물기가 마르니 몸이 가벼워지는 듯했다. 일일이 다 따져가며 기억할 힘이 조금 생겨나는 것도 같았다”(96면)고 해요. 인물들이 하는 마음에 없는 소리, 거짓말들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고안해낸 현실과의 ‘거리 두기’ 방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또 이 단편은 주고받는 대화에서 작가의 내공이 잘 드러나는데, 할머니들의 생생한 말들이며 유머가 좋아서 말을 잘 다룰 줄 아는 작가구나 싶었어요.

 

양경언 “다 큰 동생이 그걸 누나한테 사 오라고 시켜?” “언니예요.” “하여튼.” 이런 대화 곳곳이 재미있는데, 앞 세대의 고정관념을 살짝 건드리면서도 거기에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는 이 방식이 무척 자연스러워요. 작가가 삶의 리듬을 탈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요. 리듬이 가라앉지 않게 계속 끌어올려주는 이런 대화의 매력은 「사랑하는 일」에서도 잘 드러나죠.

 

박경희

박경희

박경희 「사랑하는 일」의 주인공 은호는 레즈비언이에요. 은호의 정체성을 무시로 일관하는 엄마와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지 않느냐며 은근히 말하는 아빠, 대놓고 저주를 퍼붓는 할머니 등 은호가 자신의 가족, 그리고 파트너 영지와 맺어가는 관계에 대한 소설이죠. 은호와 영지가 가끔 유머를 담아 “헤테로들 하여튼”(226면) 하며 성소수자의 사랑은 그와 얼마나 다르고, 지난한 어려움들과 싸워야 하는지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는데요. 은호의 엄마 아빠, 동생 영호와 그의 아내, 은호와 영지의 관계까지 이 소설에서 그려진 다양한 관계들을 보며 저는 사랑이라는 것은 각자 다른 시선을 가지고 각자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느껴지더라고요. 범주화하면 동일한 집단이라고 상상하기 쉽지만, 각각을 들여다보면 각자의 사정과 다름이 항상 있는 거죠.

 

김다은 소설에는 두번의 ‘커밍아웃’이 나오는데요,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은호가 엄마에게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게 첫번째고, 곧이어 파트너 영지가 자신이 에이섹슈얼(무성애자)임을 은호에게 말하는 두번째 커밍아웃이 있어요. 성소수자 안에서 또다른 커밍아웃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단편은 가족에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의 외부적 갈등만 아니라 자신의 동성 파트너와 겪게 되는 내부적 갈등도 흥미롭게 엮여 있는 거예요. ‘(동성 간의) 사랑하는 일’을 아주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더구나 이 단편에서는 ‘마음에 없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 마음에 있는 소리들을 직접적으로 발화하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앞쪽에 포진된 단편들에서는 주인공들이 지방 출신, 성소수자, 여성 등의 정체성을 가지고 삶을 유지하는 전략으로써 자신의 농도를 투명하게 줄여가며 살고 있다고 생각됐는데 여기서는 아주 선명하게 내가 누구인지를 발화하는 인물이 나오죠.

 

양경언 근래 많은 작품들이 성소수자들의 섹슈얼리티를 다루는데 이 소설은 그런 실감의 차원에서 발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 사실 은호 가족이 무척 화목하게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우여곡절은 있지만 그래도 레즈비언 딸, 누나를 대하는 모습에서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집이구나 싶었고, 주인공 은호 역시 그런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은호라는 인물이 어떤 ‘안전한’ 체제와 규범의 작동 속에서 형성되었는지, 은호가 자신의 삶을 위해 그 규범을 허물어야 한다고 판단할 때 어떤 식으로 발버둥을 칠 수 있는지 소설이 잘 포착한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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