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김소영 金昭榮
작가, 어린이 독서교육자. 지은 책으로 『어린이책 읽는 법』 『말하기 독서법』 『어린이라는 세계』 등이 있음.
sohosays@hotmail.com
안희연 安姬燕
시인.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등이 있음.
elliott1979@hanmail.net
양재훈 梁宰熏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반박귀진의 하수들과 철없는 바틀비들: 「잘 살겠습니다」를 중심으로 본 장류진 소설 등장인물의 두 중심 유형」 「새해가 오게 하려면」 등이 있음.
ddalgimilk2u@naver.com

왼쪽부터 양재훈 안희연 김소영 ©강민구
안희연(사회) 안녕하세요. 시 쓰는 안희연입니다. 새해 첫 문학초점에 초대되어 기쁩니다. 오늘 사회자라는 다소 무거운 직책을 맡았는데, 대화의 물꼬를 트고 두분 말씀 충분히 경청하는 자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양재훈 평론 쓰는 양재훈입니다. 저는 그간 박사논문 쓰느라고 오랜만에 이런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문학초점에 초대받아 요즘 작품들을 읽으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김소영 저는 김소영입니다. 저는 어린이와 같이 책을 읽고 어린이에 관련된 글을 주로 쓰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요즘같이 불안한 현실과 어두운 전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희망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문학으로 회귀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돼요. 저는 창작하는 사람도 비평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좋은 작품을 읽고 싶은 독자 한명으로 오늘 열심히 듣고 궁금한 게 있으면 여쭤보고, 또 제가 생각한 것들도 솔직히 말씀드리는 자리로 생각하고 왔습니다.
고명재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문학동네)
안희연 고명재의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으로 시작해볼까요. 약력을 살펴보니 2020년에 데뷔했고 2~3년 만에 시집이 나왔으니 비교적 이르게 작품집을 선보인 셈입니다. 시가 난해한 것은 아닌데 문장과 문장 사이에 생략된 말들이 많아 독해가 쉬운 편은 아니라는 첫인상을 받았습니다. 행간에 숨은 말들을 적극적으로 탐색하며 읽어야 하는 시편들이더군요. 그럼에도 아포리즘적인 구절이 중간중간 시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가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양재훈 무슨 말이지 싶으면서도 어휘의 연결이나 문장의 리듬이 굉장히 자연스럽고 매력적이어서 몇번씩 반복해서 읽게 만들더라고요. 다만 저는 형식이나 기교보다는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내려는 편이라 여러번 읽어도 잘 모르겠는 시들은 어떻게 소화할지 난감했습니다.
김소영 저는 시를 읽을 때 방금 말씀하신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싶은 순간을 좋아해요. 그 비어 있는 부분이 시의 특징이자 소설과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감상한다’고 하고 소설은 ‘읽는다’고 하는 표현이 각각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 같은데요. 완전히 이해하기보다 뭔가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그 부분들이 시를 읽기에 좋은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독자여서 말씀하신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극, 그 사이에서 “흐르는 강물에서 기다란 바게트를 꺼내요”(「페이스트리」)처럼 갑자기 점프해 뭔지 모르는 채로 끝나는 낯섦이 너무 좋았고 매번 깜짝 놀라면서 시집을 읽었어요.
안희연 고명재의 시는 주로 내밀한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내면의 독백이 자연스럽게 발설되기보다는 이미지로 전환되거나 생경한 비유가 끼어드는 등, 자기 문법에 입각해 서술하려는 의지가 강하더라고요. 달리 말해 그건 시의 문체와 표현, 즉 형식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뜻이겠고요. 제가 느낀 독해의 어려움은 아마도 그런 형식적 도약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내용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자기 경험에 충실한 시집처럼 보입니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는 엄마와 함께 콩국수를 먹는 소박하고 단순한 장면을 그린 시로, 엄마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이 진정성 있게 다가왔습니다. 시의 동력이 자기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탄탄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눈에 띄는데, 시인의 어머니가 정말 반찬가게 운영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소보로」나 「페이스트리」처럼 자기 체험과 음식 이미지가 만날 때 시인의 시적 상상력이 폭발하는 듯했습니다.
양재훈 「소보로」 「페이스트리」 모두 무척 좋았는데요, 사랑과 죽음이 부푸는 빵의 이미지를 통해서 폭발하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시인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주목되었는데, 「페이스트리」는 “매일 사랑하는 사람의 유골을 반죽에 섞고/언덕이 부풀 때까지 기다렸”다는 말로 시작하잖아요. “나는 안쪽에서 부푸는 사랑만” 본다고도 썼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으로 멈춰 있지 않도록, 그 죽음이 자신의 세계를 끝내게 하지는 않도록 자기 안에서 굴리고 굴려서 부풀리는 것 같았어요.

김소영
김소영 시각적 이미지뿐 아니라 냄새나 소리, 촉감 등의 감각들이 총동원되어 독자에게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와요. 「뜸」을 보면 하얀 안개꽃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백내장이 흐드러지고”를 지나 “박하를 짓이겨 배꼽에 밀어넣었”다는 대목에 이르는데요, 연 구분도 없이 하나의 호흡으로 다양한 감각을 전달하고 있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나비를 찢고 깨어난 그는 일흔이다”(「일흔」)라는 구절에서는 어떻게 한 문장 안에 이런 강렬함과 연약함이 공존할 수 있을까,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나비를 찢고 깨어났는데 일흔살인 사람. 어구 하나로부터 엄청난 서사가 만들어지는 듯해 좋게 읽었습니다. 또 좋았던 점은, 엄마와 할머니가 자주 등장하는데 지극히 개인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이에요. ‘엄마’ ‘할머니’라고 할 때 우리가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아니라 말이죠. “너희 할머니는 민들레했다”(「지붕」) 같은 표현이 기억에 남고, 시가 한 존재를 이렇게까지 얘기해줄 수 있으면 앞으로 시를 좀 믿어도 되겠다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안희연 시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시집이라는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저 역시 “사람을 넘어 존재가 된다”라는 「소보로」의 구절이 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를 집약해준다고 봤습니다. 엄마와 할머니를 포함해서, 시인의 시선을 거쳐간 대상은 보편적인 것에서 고유한 것으로 들어 올려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시인의 시선이 참 다정하다 느낀 것이, 싫은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더라고요. 무엇이 나에게 아름다움이라고 느껴지는지를 하나하나 열거한 「엄마가 잘 때 할머니가 비쳐서 좋다」가 대표적입니다. 싫은 게 없거나 고통을 몰라서는 아닐 텐데 그럼에도 좋은 면을 발견하고 호명하고자 애쓰는 태도가 시인을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해요.

양재훈
양재훈 고유한 존재에 대한 호명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사실 반대로 생각을 했습니다. 고명재의 시에서 사람이 존재가 되는 건 그들이 자기 안으로 들어올 때였던 것 같아요. 엄마, 할머니, 친구, 애인 이야기를 하는데 다 자기 이야기하고 뒤섞여 있어요. 그러니까 개별적인 ‘나’가 아니라 그들과 구분되지 않는 ‘나’가 되어서 시를 쓰고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개별적 존재자들을 존재 자체의 보편성으로 고양시킨다고 할까요.
김소영 두분 말씀이 다른데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느껴져서 좋네요.
양재훈 “혁명을/민들레라 부르는 거다”(「지붕」)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는 혁명을 민들레로 바꾸어 부른다는 게 너무 아름답다 느끼면서도, 아름다움만을 마냥 취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습니다. 시인이 언어의 의미를 생략하고 언어 자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예컨대 분단체제 속에서 의미기가 달라지고 쓰기 어려워진 말들이 있잖아요. 인민에는 국민이라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의미가 있는데, 우리는 인민이라는 말을 빼앗겨버렸죠. 혁명이라는 말도 비슷한 방식으로 제게는 뺏긴 말처럼 다가와요. 자본주의가 낳은 심각한 문제들을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는 상상이 막혀버렸으니까요. 그래서 “혁명을 민들레라 부”를 때 발생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그 ‘핏기’를 정말 빼버릴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는 들었던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