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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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장편연재 3

꽃 같은 시절

 

 

당산나무가 운다

 

진평리 당산나무가 우웅우웅 운다. 내 허물이 한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그래서 내 영혼의 무게가 더 가벼워지고 더 말개지고 더 조그마해질 때마다 나는 놀란다. 왜냐하면 지난봄까지만 해도 이승사람들의 말소리가 바람이나 달이나 해나 별이나 나무나 강물들이 하는 말보다 더 크게 들렸는데, 이제 이승사람들 말소리는 아득히 멀어지고 사람 아닌 것들이 내는 소리들이 성큼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산나무가 언제부터 울었던 것일까. 사람들 소리가 멀어지고 나서 들려오기 시작한 당산나무 울음소리는 사뭇 애간장을 녹이는 듯하다.

당산나무 울음소리가 이곳 저승길까지 울려오는 것을 보니, 나무가 많이 아프긴 아픈 모양이다. 당산나무는 팽나무다. 예전에 마을은 지금보다 더 위쪽에 있었다. 그래서 사실은 마을 위 팽나무가 원래 진평리의 당산나무다. 원래의 당산나무를 사람들은 웃당산나무라고도 하고 어미당산나무라고도 했다. 산을 내려와 심은 당산나무는 아랫당산나무, 혹은 새끼당산나무라고 했다. 새끼당산나무는 내가 진평리로 시집오기 이태 전에 심었다 했다. 어미당산나무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옛날 옛적에 동네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이집 저집에서 놋그릇을 훔쳐 지고 가다가 하도 무거워 당산나무 아래서 잠시 쉬었다. 다시 일어서려는데 이상하게 당산나무 발치에 붙인 엉덩이가 떨어지질 않았다. 일어서려면 주저앉게 되고 또 일어서려면 주저앉게 되더니 날이 새고 결국 도둑이 붙잡혔다는 전설이 있는 나무가 바로 어미당산나무다.

지금 어미당산나무와 새끼당산나무가 같이 울고 있다. 어미가 우웅우웅 우니 새끼는 끼잉끼잉 운다. 어미가 우니 새끼도 운다. 짐승들이 그렇듯이 나무도 그렇다. 세상 만물은 다 그렇다. 사람과 똑같이 아프고 사람과 똑같이 울고 사람과 똑같이 웃는다. 내가 아직 이승사람일 때는 긴가민가하다가 혼사람이 되고 나니 그렇다는 것을 확실히 알겠다. 나무들의 울음소리가 애처로워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저승 가는 길목에 다시 주저앉아버렸다. 이승을 떠나는 순간 이승 것들 중에서 냄새가 가장 먼저 멀어졌다. 우리집 꽃이 훤히 보이는데도 도무지 꽃냄새를 맡을 수 없고서야 나는 내가 혼사람이 된 것을 실감했다. 그 다음에는 소리다. 내가 아직 저승 초짜라 모르긴 몰라도 냄새, 소리, 다음에는 형상일 터인데, 아직은 사람들 소리는 안 들려도 형상은 보인다. 이제 자연의 소리가 안 들리고 나면 사람의 형상들도 멀어질 것이다. 냄새야 경황이 없어 허망하게 떠나보내고 말았지만 소리와 형상은 모두 멀어지기 전에 한소리라도 더 들어두고 싶고 한모습이라도 더 봐두고 싶다. 안타까이 안타까이 귀를 모두니, 우는 것은 당산나무뿐이 아니다. 어미당산나무 위에 있던 대나무 산죽나무 들이 피울음을 울고 있다.

내가 이승 나이로 마흔살쯤 됐을 때,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때 동네 남자들끼리 한 회의에서 어미당산나무를 베어내자는 결정이 났다. 당산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마을 공동 잠실(蠶室)을 짓자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전에 소득증대사업을 한답시고 마을 공동 산을 개간하여 뽕나무를 잔뜩 심어놨다. 나라에서 다른 무엇도 아닌 뽕나무를 심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뽕나무를 심는 조건으로 개간 허가를 내줬다고 했다. 뽕나무는 남자들이 심었지만 나중에 누에치기는 고스란히 여자들 몫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잠실을 지으면 나라에서 시멘트가 나온다고 했다. 남자들은 군에서 나오는 시멘트와 모래를 못 써서 환장이었다. 멀쩡한 돌담들을 허물고 그 자리에 공터에서 찍어낸 시멘트 브로꾸(블럭)담을 쌓았다. 자기들 딴에는 좋은 일 한답시고 혼자 사는 과부인 시앙골댁 오명순네 돌담을 와그르르 무너뜨리고 브로꾸담을 쌓아주고는 자기들끼리 좋은 일 한 기념으로 개를 잡아 잔치를 벌였다. 산에서 나무를 해서 이고 오다 자기 집 담이 돌담에서 브로꾸담으로 바뀐 것을 보고, 오명순이 나무를 조용히 내려놓고는 희희낙락 개추렴을 하고 있는 남자들에게 갔다.

“내가라우, 이날 평상에 넘 못헐 일은 안허고 살았어라우. 그런디 이것이 먼 억하심정이다요, 금메에.”

오명순은 울음도 안 나오고 그저 자꾸 치가 떨렸던 것 같다. 으륵, 으르륵 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자꾸 몸을 떨었다.

“앗따, 시앙골떠기가 오해를 허고 있그만이라우. 우리는 존 일 헌다고 했그만 치사는 못헐망정, 치를 떨어야 쓰겄는게라우?”

술이 들어간 양도출이 거들먹거리며 나왔다. 그때 어디선가 조난남이 득달같이 나타났다.

“엇따 우리 이쁘잖은 해징이떠기가 어디서 튀어나온단가?”

“개를 왜 자버, 개를 왜 자버어. 이 개같은 인종아아.”

남자들이 잡아먹은 개는 다름아닌 조난남이네 누렁이였던 것이다.

“브로꾸다무락(담)이 하도 이삐고 오져서 한잔 안허고 그냥 넘어가기가 영 아쉽드란 말이시. 인자 우리도 브로꾸다무락에 쓰레또(슬레이트) 지붕에 상수도 하수도 갖춘 선진문화인이 되는디 잔치를 안헐 수가 있겄든가, 어디?”

아이들 얼굴에 누렇게 부황이 난 것을 보기가 짠해서 개라도 잡아 먹일 요량을 하고 있던 조난남이 일장연설하는 양도출의 멱살을 움켜잡다가 자기도 힘이 모자라 맥없이 무너졌다. 오명순이, 조난남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억장이 무너져서 숨을 못 쉴 지경으로 아이고오, 아이고오, 소리만 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오장육부가 시리고 아려서 할 수 없이 내가 나섰다. 우선 애비들한테 혼날까봐 옆에 가지도 못하고 대밭거리 한쪽에서 비 맞은 뭐같이 입맛만 다시고 눈치만 보고 있던 양도출이 애기들, 우리집 애기들, 양분란이 애기들, 김채선이 애기들, 한연순이 애기들, 하여간 동네 애기들을 싹 다 불러모아 애비들 개추렴하는 곳으로 갔다. 가서 애기들한테 구탕 한그릇씩을 안기고는 이제 막 굳기 시작하는 브로꾸담을 부수기 시작했다. 집주인인 오명순이 마른 울음을 삼키느라 자꾸 흐르륵, 흐르륵, 딸꾹질 소리를 내면서 돌을 날라오면 그것을 나하고 조난남이 받아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차곡차곡 돌을 쌓았다. 양도출이하고 김춘복이가 주동하여 ‘항차에 저년들을 주개불자’고 남자들을 선동하며 옥화네 주막으로 몰려갔다. 그제야 제 남편 눈치 보느라 이제나저제나 다무락 안에서 이리 쭝긋 저리 쭝긋 낭자머리 정수리만 보이던 여편네들이 하나둘씩 기어나와 합세하기 시작했다. 시엄씨 시압씨 들이 몰려와서, 동네에 망조가 들려고 암컷들이 ‘지랄양광을 떤다’고 욕을 퍼부어댔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돌담을 쌓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오명순의 돌담이 우리는 좋았다. 먼 데서 돌아와 마을을 들어서면 맨 먼저 그 오래돼서 이끼 자욱한 돌담이 우리를 맞아주는 게 그렇게 푸근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그 낮은 돌담 너머로 오명순네 밥 짓는 연기가 푸실푸실 새어나오는 것이 좋았고 먹을 것을 넘겨받고 넘겨주는 것이 우리는 좋았다. 그 좋은 것을 부숴버리는 사나운 마음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사나운 마음이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 수 없어 무서웠다. 오명순은 서러워 울었다. 서러워 운다고 해서 눈물을 철철 흘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언제나 그랬듯, 한숨을 쉬듯이, 육자배기 가락에 사설 한자락을 풀다보면 막힌 가슴이 좀 뚫리는 것이다.

 

시상은 과부집에 꽃 폈다고 숭을 보네 오월이라 능소화는 홀애비집에나 과부집에나 몽실몽실 핀다네 속도 업시 핀다네 시상은 과부가 장에 간다 숭을 보네 삼월이라 봄바람은 홀애비집에나 과부집에나 살랑살랑 분다네 속도 업시 분다네

 

오명순의 사설을 조난남이 받았다.

 

남원운봉 목기장시야 꽃을 두고도 그냥 가냐 나도야 이 재 넘어가서 해당화를 숭거놓고 피었는가 보러 갈란다 보성미력 옹구장시야 짓고 가소 짓고 가소 이름이나 짓고 가소 딴 디 가서 해찰 말고 이리 오소 이리 오소 오봉산에 꽃 보드끼 나를 보러 이리 오소

 

달이 둥실 떠올랐다. 오명순네 다무락이 달처럼 둥실, 그 이쁜 자태를 드러냈다.

 

브로꾸다무락 쌓기가 여자들이 반대한 사업이라면, 마을 공동 구판장 건립은 남자들이 반대한 사업이었다. 농한기 노름을 없애고 구악을 일소한다고 마을 공동 구판장을 지어서 부녀회 회원들이 장사를 했는데, 그 바람에 옥화네 주막이 망했다. 옥화는 울면서 도시로 떠났고 후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인 진평리까지는 못 오고 읍내로 돌아와 산다고 했다. 생각하면 그 일이 나는 가장 마음에 걸리고 속상하다. 옥화집에서 속없는 남자들이 노름을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옥화집에서 술을 못 팔게 했던 것은 잘못한 일이다. 옥화네 가게가 없어질 바로 그 무렵에 촌 동네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초가집이 없어지고 스레트 지붕이 생겨났다. 우리집도 그때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스레트 지붕을 올렸다. 스레트 지붕에 붉은칠도 입혔다. 나는 우리집 지붕 빛깔이 영 불안했다. 빛깔을 입혀도 꼭 붉은색을 입혔다고 잔소리를 했더니,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다음날 퍼런칠을 덧입혔다. 그러느라 또 돈이 들어갔다. 멀쩡한 지붕 걷어내고 빚 내서 스레트를 올리고 빚 내서 색을 입힌 것도 속상한데, 거기다 잘못 입힌 빛깔 탓에 돈이 더 들어간 것이 오장 상해서 툴툴거렸더니 김춘복이, 집구석을 확 불싸질러버리겠다고 발광을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붕개량사업은 국가시책이여. 국민이 국가시책을 거역허먼 어찌 되는지는 말 안하겄네이. 잘 알아서 판단혀어.”

제법 이장이나 면서기 어투였다.

“그러고 니얼부터는 간편복을 착용허소. 면장이 면에 가서 받아온 하명잉게, 안 지키면 안되는 것인 줄 맹심허소. 다 몸뻬 입고 나왔는디 자네만 꼴같잖은 거듬치매 끌고 나가지 말고.”

‘지랄 오만 잡소리’라고 속으로 욕을 하는 참인데, 귀청이 떠나가라 이장집 감나무에 매달린 스피커가 울었다. 그전에는 징을 쳐서 마을 울력을 알렸는데, 이제 ‘자립마을 특별하사품’이 징을 대신해서 울었다.

“아아, 말씀드리겄습니다. 지난번 회의에서 결정이 난 대로 윗밭에 당산나무를 오늘 비기로 했습니다. 모다들 당산나무 비기 울력을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마을회의를 늘 남자들끼리만 하던 버릇이 있어서 여자들은 회의에서 뭔 말이 오갔는지를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스피커 때문에 알게 되었다.

“오살을 허네.”

욕설을 휘날리며 조난남이 맨 먼저 어미당산나무가 있는 윗밭으로 달려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조난남이 따라 나도 달려갔더니, 한강쟁이댁, 그 옆집 밤실댁, 그 아랫집 살푸쟁이댁이 불불불 기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미당산나무를 베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우리 동네 여자들이 치성을 드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미당산나무가 없어지면 우리가 쌓은 돌탑도 무너질 것이고 이제 우리 설움 고해내고 우리 마음 기댈 데가 만고에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지랄 염병이 났는개비여.”

“돈 준단게 안 그러요.”

“그 돈은 공짜가디.”

“숭악혀, 숭악혀어.”

“죄로 간당게.”

“즈그들 죽고 우리 죽고여.”

우리는 단단히 나무를 그러안고 버티면서 남자들을 기다렸다. 그러고 있자니 속도 모르고 남자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엇따, 아줌니들이 나무허고 씨름허고 있그만.”

언제나 그랬듯이, 맨 먼저 양도출이가 나서서 조난남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니년이 허는 지서리가 시방 삘갱이 지서린 중은 아냐, 모르냐, 어?”

머리채 휘어잡힌 게 어디 한두번인가. 머리채 휘어잡혔다고 항복을 할 조난남이 아니다.

“이것은 국가시책이여, 이 무식헌 여편네야.”

김춘복이도 양도출이한테 질세라 나, 이오목이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우리는 죽기살기로 버텼다. 그리고 그순간, 우리와 나무를 하늘이 살렸다. 마른하늘에 번개치고 천둥치는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어디선가 번쩍 한다 싶었는데, 으르릉 꽝꽝, 천지가 진동했다. 이윽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뭔가가 두렵기는 두려웠던지 남자들이 툴툴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옥화집도 없어져서 내려가봤자 갈 곳 없는 남자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비실거렸다.

“죽이도 살리도 못헐 저 부앳가심들을 어찌야 쓰까나.”

내 속 알아주기는 남편보다 나은 당산나무 아래서 우리는 그날도 노래 불렀다. 비를 철철 맞아가며 노래 불렀다. 악을 쓰며 불렀다.

 

해징이떠기야 뭣할라고 일광단(낮에 짜는 베)을 지섰더냐(지었더냐) 해징이양반 마포중우 거시기가 털렁털렁 시앙골떠기가 재미보네 무수굴떠기야 뭣할라고 월광단을 지섰더냐 무수굴양반 비단중우 옥화가 꽤를 비끼네 맹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 요때 춘삼월이면 꽃이 피어 화산되고 잎은 피어 만발된다 우리 일생 한번 가면 다시 오지를 못하리라……

 

이제금 당산나무가 우웅우웅 울어젖히는데 혼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그 우는 내막을 어찌 다 알겠는가. 당산나무며 대나무며 산죽나무가 피울음을 우는 이승에 대고 나무가 운다고, 나무가 울어서 내가 황천길을 못 간다고 악이라도 쓰고 싶은데, 말은 나오지 않고 그저 저승새 울음소리 같은 소리만 티끌처럼 허공에 흩날릴 뿐이다.

 

 

접수는 아무나 하나

 

간밤에 유독 한숨소리 같기도 하고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한 저승새 울음소리가 자꾸 났다. 저승새 울음소리에 마음이 뒤숭숭해, 깊은 잠을 못 자고 눈을 뜨니 동쪽 봉창에 희붐한 새벽빛이 비치고 있다. 오늘 영희가 서울 올라간다 했더니, 복주는 자기가 봐주마 하던 공남숙이 아침 일찍 건너왔다.

“인났는가?”

“예에.”

“앗따, 엊즈녁에는 저승새가 별촉시럽게도 울어쌌드만이.”

“그러게요.”

“애기는 안즉 잔가?”

“예에. 애 깨나기 전에 가야겠어요.”

“애기 압씨는?”

“공사장에서 지리산 도사를 만났대요. 잘하면 도인되겠더라고요.”

매형 따라 4대강 공사장으로 가려던 계획이 매형의 사고로 무산되고, 철수는 며칠 전 88고속도로 확장 공사가 있는 순창으로 떠나 그동안 소식이 없다가 어젯밤 전화가 왔다.

“어이, 영희씨, 여기가 거기서는 동북방향이 맞지?”

별스럽게 영희씨, 하는 것이 왠지 가소롭고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 하는 것도 수상쩍다.

“근데 왜?”

“인생이란 것이 애달캐달한다고 풀리는 것도 아니더라고. 다 운때가 따라줘야……”

“왜? 꿈에 동북방향으로 가라 해서 갔더니—”

“우리 이영희 위원장님, 똑똑해부러. 하여간 동북방향에서 지리산 도인을 만나부렀네. 운때가 맞은 거여. 하여 나는 나의 길을 갈랑게 자네는 나를 따라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마소.”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던져놓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탁 끊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화에 대고 ‘야지’를 놓는 것이 김철수 나름의 시위인 모양이었다. 철수의 논리는 그러니까,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왜 하느냐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제 영희에게 순양석재와의 싸움은 점점 이기든 지든 결과와 상관 없는 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복주를 보면서 그 생각을 더욱 굳혔다. 철수가 순창으로 떠나던 날, 복주한테 물었다.

“요새 너희 엄마는 뭣이 그렇게 바쁘다냐?”

복주가 침을 꼴깍 삼키고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우리 엄마느은 시, 지판, 소성, 알인시 하지이. 아빤 그것도 몰라?”

“어이, 애 입에서 시방 뭔 소리가 나온단가? 통역 좀 해보소이.”

아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영희 가슴도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러니까, 엄마는 시위, 재판, 소송, 일인시위를 한다는 것인데,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순양석재 덤프트럭을 향해, 수양섯째 나쁜놈, 소리치는 아이를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자신을 흔들리게 하는 아이 때문에라도 영희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이가 알아듣든 말든 영희는 말했다. 물론 철수 들으라는 의도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엄마도 싸우는 게 힘들어. 하지만,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나는 건 우리를 더 힘들게 할 거야. 복주야, 엄마는 지금 순양석재하고 싸우는 게 아니고 그, 뭐야, 어, 그니까, 그래 맞아, 내 속의 패배주의하고 싸우는 거야. 긍게, 내 속의 패배주의와 싸운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냐 하면은, 이기든 지든 결과에 상관없이 나를 억압하는 것과 싸운다는 것이여. 말하자면 긍게,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산다는 것이여. 주체적으로 산다는 거라고, 알겠지?”

말을 하면서도 제 말이 말이 되는 소린가, 솔직히 좀 자신이 없기는 하지만, 어린아이 앞일망정 어렴풋한 제 속마음을 말로 털어놓고 보니 영희는 뿌옇던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놀랍게도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는 복주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엄마!”

라고 외치지 않는가. 영희의 주체적인 삶 운운을 듣고 있던 철수는,

“모자공연단이구만 아주. 뭐? 주체? 어버이 수령님이냐? 주체사상이여? 쥐랄이 자빠져요, 아주우.”

제 분을 참지 못하고 애 앞인 것도 아랑곳없이 쌍소리만 남기고 결국 떠나버렸다.

“그렇게 또 가출을 하셨답니다.”

“뭣이, 잘허먼 요번에는 출가가 되겄그만, 큭큭. 그런디, 멀쩡했던 남자들도 꼭 이 동네만 들어오면 여자 하는 일에 자를 논다네. 이 동네 물이 그런가봐. 우리집 압씨도 나를 아주 뭣 보드끼 하잖아.”

갑자기 소리를 잔뜩 줄여서는,

“그래각고 지가 필요헐 때만 뽀짝거리고 일 끝나면 천리나 만리나 떨어져불어.”

영희를 위로하고자 한 말이 결과적으로 부부금슬 자랑이 된 것이 무안한 듯, 또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앗따, 아침놀이 버언헌 것이 오늘도 폭폭 찔랑개비.”

아이가 깨어나면 남숙이 알아서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낼 것이다. 서둘러 챙길 것들을 다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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