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김종훈 金鍾勳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시와 삶과 노동시의 재인식」 등이 있음. splive@chol.com

 

 

시간의 깊이와 밀도

이기인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3245현재 독자에게 쉽게 널리 읽히는 시를 분류하면 대체로 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소위 리얼리즘 계열로 불리는 시들이 첫째 부류인데, 이들은 전대(前代)의 영향을 받아 주로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현실의 삶을 반영한다. 따라서 그곳에는 저항과 부정의 의식이 자주 출현하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믿음이 내재해 있다. 둘째 부류는 소위 서정시들이다. 이들 시는 대체로 그리움의 감정이나 깨달음의 인식을 보여준다. 이 안에도 역시 좋은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다. 둘 다 온전한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공존할 수 있을 듯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함께 있을 때 이 두 경향은 나란히 있기보다 서로의 영역에 흡수되곤 한다.

리얼리즘의 시들이 서정의 시세계에 진입하면 날선 비판의식은 애틋한 감정에 감염되어 누그러지기 쉬운 한편, 서정시가 리얼리즘 시세계에 진입하면 개인적인 감정까지도 저항의 옷을 입으며 경직되는 경우가 많다. 이기인(李起仁)의 첫 시집이 발간되었을 때 언급되던 어떤 새로움에 대한 인식은 이 개별적인 세계가 공존하는 것에 대한 낯섦의 표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두번째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창비 2010)는 그 모습을 좀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빈집 마당에

돌처럼

겨울잠에서 깨어난 할미꽃 한 송이 마실 나온 것처럼 앉아 있다

재개발지역의 주소지로 개미떼가 연합군처럼 기어올라간다

할미꽃 그늘 속으로 들어간 이슬 같은 가족들은 이제 어디로 가서 소식을 보내올까

반쯤

눈 감은 개가 신발 한 짝을 어디서 물고 와서 짖는다

조용히 우편물처럼 온 이가 할미꽃 등뒤로 기울어진 담을 보고 있다

얼룩덜룩 젖은 고지서를 보고 있다, 빈집의 고요를 덜컹 닫은 이가 와락 겁을 먹는다

「할미꽃 한 송이」 부분

 

고지서가 젖어 있는 까닭은 오래도록 꺼내볼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쫓겨난 이들을 환기하는 것에서 이 시대의 폭력성이 드러나고, 할미꽃 한 송이가 그들의 기별을 전하는 것에서 안타까움에 기반을 둔 서정성이 솟아난다. 공허함과 저항감이 공존하는 풍경은 이기인 시의 특징 중 하나다. 가족이 쫓겨난 사실과 할미꽃에 투영된 시인의 감정은 이렇게 서로의 개별성을 보존하고 있는 반면, 이 둘은 서로를 각자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대신 그 개별성의 영역에 흠집을 내어 각각의 확장 가능성을 높인다. 노동은 같은 처지인 대상들과 연대하며 낮은 곳에 있는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고, 개인의 감정은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기보다 누추한 대상들 속에 풀어진다.

따라서 그의 시에 자주 보이는 노동자는 노동의 고귀함을 강변하기보다는 노동이 처한 실상을 들춰내기 위해 등장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배고픔으로 뭉쳐”(「뭉쳐진 숨소리」) 있는 이들 앞에서 시인이 확고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까닭도, 그 역시 같은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은 높은 곳에 있는 이들과 달리 지상의 세계와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키며 자신의 생각을 무너뜨리고 세우기를 반복한다. 이들에게는 확신할 것도 계획할 것도 없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이들의 세계는 높은 곳에 있는 자들보다 넓다. 낮은 자들의 세계에는 높은 자들의 세계에 없는 혼란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닮아가는 구두짝을 우스꽝스럽게 벗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밤늦게 지붕을 걸어다니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껴안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벽에 걸어놓은 옷에서 흘러내리는 주름 같은 말을 알아 듣고

벗어놓은 양말에 뭉쳐진 검은 언어를 잘 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매트리스에서 튀어나오지 않은 삐걱삐걱 고백을 오늘밤에는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

자기중심을 잃어버린 별들이 옥상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본다

뒤척이는 불빛이 나비처럼 긴 밤을 간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사소한 편지」 부분

 

이기인의 시가 단정한 외형을 띠지만 더디게 읽히는 까닭도 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덧붙일 것이 있다면 거기에 포개진 세 층위의 시간이다. 표제작에서 확인할 수 있듯 겹겹의 수식어는 누락된 세계의 대상들을 시의 문면에 끌어올리기 위해 공들인 시간의 흔적이다. 이것이 첫번째, 시인의 시간이다. 여느 시에서는 자아를 드러내는 데 쓰이는 이 수식어들이, 이기인의 시에서는 대상을 드러내는 데 쓰인다는 점은 특별하다. 시인의 정성으로 “구두짝”과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주름 같은 말”과 “고백”들은 뚜렷하면서도 무거워졌다. 이들은 조심스럽게 내비친 희망의 내용들이다. 희망의 반대편에는 현재의 그가 있다. “자기중심을 잃어버린” 별의 실체와, “뒤척”이며 “나비처럼 긴 밤을” 가는 실체가 모두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어깨를 보며 겨우 입 밖으로 꺼낸 수식어에는 강한 자아에 대한 확신보다는 균형을 잡아보려는 약한 자아의 안간힘이 포함되어 있다. 어쨌든 이같은 시인의 시간은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되어 시들을 곱씹게 한다. 이것이 두번째, 독자의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시적 대상들의 시간이다. 비록 바깥에서는 눈길조차 받기 힘든 존재들이지만, 그들은 여기서 비로소 자기 이력을 갖게 된다. 비정규직인 사람들부터 용산참사 희생자들까지, 사연 없는 대상이 없다. 한편 이 시적 대상들의 이력을 형성하는 데는 시인의 오랜 관찰의 덕이 크다. 지속적이고 투명한 관찰의 흔적은 시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앞의 시 「할미꽃 한 송이」에서 “얼룩덜룩 젖은 고지서”의 ‘얼룩덜룩’에는 버려진 시간이 환기되며, 다른 시에서 식탁을 닦는 행주는 “눈시울처럼 붉은 김칫물이 밴”(「행주」) 것으로 표현되어 남루한 이력을 구체화한다. “눈시울처럼 붉은”에 대상을 선명히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면, “김칫물이 밴”에는 오랜 관찰의 흔적이 묻어 있는 것이다. 그의 시선은 이처럼 섬세하며 그만큼 끈질기다. 세 층위가 포개지며 확보된 시간의 깊이는 평평한 일상에 굴곡을 만든다. 첫 시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독자들은 이 깊이와 밀도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