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이명박시대의 반환점, 거버넌스의 위기

 

이명박정부의 통치 위기

민주적 거버넌스와의 부조화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등이 있으며, 편서로 『이중과제론』(창비담론총서 1) 등이 있음. lee87@skhu.ac.kr

 

 

1. 천안함정국, 흘러간 에피쏘드가 아닌 전형적 사례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나는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단호하게 조처해 나가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북한 선박은 ‘남북해운합의서’에 의해 허용된 우리 해역의 어떠한 해상교통로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교류협력을 위한 뱃길이 더이상 무력도발에 이용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간 교역과 교류도 중단될 것입니다. (…) 대한민국은 앞으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용납하지 않고, 적극적 억제 원칙을 견지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입니다.”

 

2010524일 전쟁기념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낭독한 대국민담화의 일부다. 이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 이후 대화와 협력을 확대해온 남북관계의 기본방향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선언이다. 휴전체제라는 불안한 평화상태에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고려하면 준전시상태를 선언한 것과 다름없다. 분단체제에 내재하는 근원적 적대관계가 다시 표면에 부상한 순간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군사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이상 주가가 폭락하고 외환시장이 요동친 것은 당연한 결과다.1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의 안전과 공공질서가 위협받는 경우에 국가원수에게 긴급한 조치를 발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524일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국가의 존망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이 적절한 심의와 숙고의 과정 없이 전쟁기념관에서 일방적으로 발표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출현 자체가 국가거버넌스의 위기이며, 이명박정부하에서 진행된 민주주의의 후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사태였다. 다행히 6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정부여당이 패배하면서 한반도는 일단 일촉즉발의 위기국면에서 벗어났다. 당장 군사충돌로 이어질 대북확성기 선전방송 재개 등의 조치들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이는 분단체제의 제약을 넘어서려는 힘이 만만치 않음을 확인한 것이기도 했다. 지방선거에서 약진한 진보개혁세력도 선거의 성과를 다지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히 진보개혁적 인사들이 지방정부, 지방의회, 지방교육 등의 영역에 대거 진출하면서 지방거버넌스가 주요 의제로 제기되었다.2 그렇다면 520일 민군합동조사단의 발표와 524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로 최고조에 이르렀던 천안함정국은 이제 흘러간 에피쏘드에 불과한 것인가? 천안함정국은 잊고 새로운 거버넌스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가?

국제적으로 보면 7월말 한미군사훈련을 둘러싼 갈등이 한반도 내의 갈등을 넘어 한국과 중국,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갈등으로 비화하면서 천안함사건의 여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만약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했다면, 냉전수구세력의 헤게모니가 더욱 강화되면서 한반도에서 군사충돌이 발생하는 등 사태가 한층 심각한 방향으로 치달았을 것이다.3 그 가능성이 현실화되지는 않았지만 지방선거에서 정부여당이 패했다고 해서 이러한 흐름의 동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지 않고서 우리 사회를 업그레이드하겠다는 발상은 공상에 가깝다. 따라서 천안함정국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며 넘어가는 순간, 우리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길로 접어드는 것이 된다. 천안함사건과 그후 남한사회 내에서 전개된 양상은 선거를 앞두고 발생한 일회적인 에피쏘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여과 없이 노출한 사례로 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정치적인 것은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직시하고 이에 맞서는 것이다.

 

 

2. ‘예외상태’를 호출하다

 

천안함 침몰사건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풍’ 시비로 비화되었다. 그렇지만 천암함정국을 선거시기의 정치행위인 북풍 프레임으로만 본다면 사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천안함정국에서 정부여당과 냉전수구세력의 행동은 일종의 ‘예외상태’를 호출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이었다. 즉 천안함정국은 단순히 선거에서의 대응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상황을 창출하려는 시도로 해석되어야 한다.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서구 민주주의 내에 긴급상태 혹은 비상사태와 같이 법적 질서를 지키기 위해 법률의 효력을 정지시켜야 하는 아포리아가 내재하며, 오늘날 이러한 예외상태가 점차 예외적 조치 대신 통치술로 등장할 뿐 아니라 법질서를 구성하는 패러다임으로서의 본성을 드러내기까지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4 서구 민주주의에서 예외상태가 상례가 되는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는 그의 분석은 일부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 있지만, 전체주의의 출현부터 최근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주의적 질서 내에서 끊임없이 예외상태가 호출되었던 일들을 고려하면 그가 근대 민주주의의 본질적 측면의 하나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음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그의 예외상태에 대한 설명이 가장 잘 적용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특히 아감벤이 인용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크다고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민주주의 자체의 일시적 희생 따위야 정말 사소한 것이다”라는 클린턴 L. 로씨터(C.L. Rossiter)의 말은 우리 정치사의 핵심을 찌른다.5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분단체제’라는 내전적 상황에 처해 있고, 이러한 예외상태를 배경으로 국가권력이 탄생했고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에게는 남한의 예외상태를 공간적・시간적으로 일정한 경계 안에 가두고 예외상태에서 정상상태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왔다. 이러한 인식이 이명박정부의 출범 이후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법질서가 사실상 중단될 수 있는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천안함정국이 준전시상태 선포에까지 이어지면서 법질서의 효력 자체가 문제되는 상황마저 등장했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으며, 이 사건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한 진실을 둘러싼 시비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정국의 또다른 본질적 문제는 권력관계가 ‘진실’을 구성하는 과정에 미치는 영향이다. 천안함의 침몰과 함께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군사시설, 그리고 어둠이 깔린 바다라는 장소성에 어울리는 수많은 미스터리가 부상했다. 진실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인의 이익에 따라 해석되고 구성된 결과라고 간주하는, 진실에 대한 포스트모던적 설명이 적용되기에 딱 어울리는 현장이었다. 이후 사태의 전개도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이 되기보다 포스트모던적 설명의 정당성이 증명되는 것처럼 진행되었다.6

사건 초기에는 누구도 침몰 원인을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청와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원인을 북한의 공격으로 규정하고, 조사활동을 이 방향으로 몰고가려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들이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에 의해 확대재생산되며 사태의 진행을 지배했다. 조선일보는 330일자에 탈북자의 주장을 인용하며 북한의 해상저격부대가 운영하는 ‘인간어뢰’에 의한 공격 가능성을 거론했고, 331일자 1면에는 침몰 전후 북한 잠수정의 움직임이 확인되었다고 보도했다. 42일 김태영(金泰榮)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어뢰일 가능성이 더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조갑제 『월간조선』 전 편집장은 45일 ‘조갑제닷컴’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은 ‘예단’을 하는 자리”라고 썼고 48일 국민행동본부가 주최한 ‘천안함사태 관련 긴급강연회’에서는 “북한 어뢰에 의한 격침 가능성이 90%”라고 말했다. 이명박정부에 대해서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미련 때문에 천안함 침몰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7 결국 정부의 태도도 변하기 시작해 북한의 공격과 연관이 없는 다른 가능성들은 배제해갔고, 여러 의혹들에 대한 합리적 문제제기는 유언비어로 몰아세우거나 심지어 법률적 탄압을 시도했다. 천안함 침몰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점차 객관적 증거보다는 예정된 목적, 즉 예외상태를 호출하려는 목적에 의해 이끌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순조롭지 못했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전제하에 포석을 깔아나가고 있었지만 이를 확증하고 예외상태를 호출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합조단은 515일 어뢰추진체를 수거하면서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북한 공격으로 규정할 소위 ‘결정적 증거’를 확보한다. 이때부터 상황이 다시 급박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에는 국운이 있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테니 기다려보자”고 불안감을 달랬는데, 결국 대통령의 국운론이 적중했다는 뒷이야기를 전하는 보도도 등장했다(『중앙일보』 2010.5.28). 북한의 공격이라고 예단하며 상황을 몰아갔지만 사건의 진실을 확신할 수 없었던 균열상태의 불안감을 메운 것은 국운 같은 미신적 신념밖에 없었던 듯싶다.

그런데 515일 수거된 ‘결정적인 증거물’도 결정적인 것이 되지는 못했다. 정부는 증거물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평가보다 이를 예정된 목적에 활용하는 것이 더 급했다. 증거물을 분석 가능한 장소로 안전하게 옮기고, 관련 분석을 진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인쇄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을 증거물이 수거된 지 불과 닷새 뒤인 중간발표일까지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합당한 선택은, 새로운 증거물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위해 중간발표를 연기하거나 말 그대로 중간발표로 그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그 어느 것도 아닌 천안함 침몰에 대한 사실상의 최종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 결과 중간보고서는 수많은 기초적인 실수와 의문점을 포함하게 된다.8 예외상태를 호출하려는 세력들에게 이 모든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고,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524일 담화로 그 목적이 달성된 것으로 보였다.

천안함 침몰의 조사과정에는 여러 분기점이 존재했는데, 그때마다 정부의 선택은 진실에 대한 엄정하고 진정성있는 접근보다 북한의 어뢰공격이라는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9 이러한 선택에는 지방선거에 대한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은 다른 곳, 즉 예외상태를 창출하려는 시도에 있었다. 이러한 사태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예가 525일 국민행동본부가 주최한 ‘천안함 폭파범 김정일 규탄 국민궐기대회’에서 조갑제가 한 연설이다. 그는 524일 대통령 담화에 대해 “어제부로 조금 늦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상 한반도 상황을 준전시상태로 규정했습니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곧바로 “그렇다면 뭐가 문제냐? 남은 것은 남한 빨갱이밖에 없습니다. 남한 빨갱이를 어떻게 조치하느냐?”라고 화살을 남한내 ‘좌파’에게로 돌린다. 예외상태의 창출과 국내통치와의 연관성, 그리고 이들의 진정한 목적이 가감없이 드러난 것이다.10 국가가 이러한 움직임에 완전히 포위되었던 것이 524일 사태의 본질이다.

국민들은 6·2지방선거를 통해 이러한 의도를 투표로써 심판하고 그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사태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외상태의 창출을 통해서만 통치할 수 있는 집단이 여전히 우리 운명을 좌우할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그 시도는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왜 예외상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가를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내전과 분단이라는 예외상태는 이들의 탄생비밀이, 권력의 원천이 숨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민주화가 상당기간 진행되었음에도 예외상태를 호출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드러나고 있는 ‘보수적’ 통치와 민주적 거버넌스 사이의 부조화,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국가거버넌스의 위기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3. 보수적 통치의 위기

 

좋은 혹은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어떤 형태로든 거버넌스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를 더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여기서 짚어볼 문제는 거버넌스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 자체가 문제로 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특히 통치의 정당성이 신이나 자연의 섭리 같은 초월적 존재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인민 등의 새로운 주체들의 동의에 의해 주어진다는 인식이 확산된 근대에 와서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11 이때의 통치,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민주권의 원리에서 출발하는 민주적 거버넌스는 초월적 진리의 일방적인 전달이나 관철이 아니라 피통치자들과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푸꼬도 ‘국가의 통치성화’(governmentalization of the state)를 근대성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로 보았다. 이는 군주의 권력과 다른 형태의 권력 사이에 선을 긋고 군주의 권력 강화만을 목적으로 하는 마끼아벨리식의 통치와 달리, 국가 내에서 다양한 형태의 권력 사이의 연속성(국가의 통치와 사회 내의 가족에 대한 통치, 수도원장의 수도원에 대한 통치 등 사이의 연속성)을 고려하는 ‘통치의 기술’(the art of government)이 발전하는 과정이다.12 여기서 국가는 건강과 안녕을 보장하고 행복을 증진시켜야 하는 주민(population)들, 그리고 자기조절의 법칙을 따르는 경제(과거에는 가족 내의 문제, 혹은 가족의 관리로 간주되던)를 통치의 대상이자 목적으로 삼으면서 통치가 단순한 법 적용이 아니라 사람과 사물들에 직접 개입하는 다양한 전술이자 게임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 과정들이 결코 순탄한 것이 아니라 많은 곡절을 겪었음을 16세기 이후 서구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거버넌스, 더 좋은 거버넌스를 만들어가기 위한 토대로서 민주적 거버넌스의 형성 자체가 문제시되는 상황이다. 건국 이후 형식적으로는 근대적 의미에서의 통치를 추구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반복되는 긴급사태를 통해서만 국가의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전형적인 표상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면헌법’이다. 19876월항쟁 이후에야 이러한 상태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예외상태를 호출할 수 있는 근원으로 작동하는 분단체제가 극복된 것은 아니지만, 민주화와 남북관계의 진전을 거치면서 표면적으로 남한정치는 예외상태의 제약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정당간 경쟁이 제도화되었고 인권보장에서도 큰 진전이 있었다. 이에 따라 정치적인 것이란 이익갈등을 정당정치 같은 합법적 경쟁, 특히 정책경쟁을 통해 해결해가는 과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예외상태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형성되고 구조화된 힘들은 결정적으로 약화되지 않았고 사회 전반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민주적 거버넌스와 조화될 수 없는 세력이며, 이들에게 민주적 거버넌스의 발전은 자기존재에 대한 부정과 다름없다. 물론 민주화는 냉전수구적 보수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그들이 민주적 거버넌스와 화해하는 방향으로 혁신할 기회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단체제에서 형성된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이러한 혁신능력이 매우 떨어졌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가 보여주듯 기존 정부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정책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사실상 민주적 거버넌스 자체를 모조리 부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이 시기에 보수의 혁신이 진행되지 못하고, 오히려 냉전수구세력의 헤게모니가 강화되는 양상도 나타났다. 노태우정부 이후 진행된 대화협력정책을 뒤로 돌리려는 대북정책 역시 분단체제–예외상태–한국형 보수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범한 이명박정부의 통치방식은 퇴행적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13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절차와 노력을 낭비로 간주하고 반대자의 목소리를 공론장에서 배제하고자 끈질기게 시도해왔다. 언론통제는 비판적 지식인에 대한 배제에서부터 연예인의 방송출연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까지 집요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민간인부터 여당 정치인까지 정치적 필요에 따라 가릴 것 없이 불법적으로 사찰하고 있다. 이러한 조짐은 대통령후보의 도덕성과 관련한 시비가 제기되었던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미 나타났다. 그렇지만 국민들이 개혁정부에 피로감을 느끼고 ‘747’(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 같은 화끈한 실적주의 공약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보수진영은 대선과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나는 데는 알게모르게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적 인식의 확산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이후의 통치행태는 민주화시기 형성된 국민들의 민주적 감수성과 정면충돌하는 것이었으며 촛불시위 및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대대적인 추도물결 등을 통해 국민적 경고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통치행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성찰과 반성을 말하기도 했으나 이는 위기를 넘기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예를 들면 천안함정국이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가던 511일 이명박 대통령은 촛불시위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관련 부처에 지시했는데, 그 주된 취지는 촛불시위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들이 억측과 괴담이었음을 밝히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근거 없는 괴담에 억울하게 당했다는 것이 촛불시위를 향한 이들의 시각이다.

지난 3년간 이명박정부의 통치는 피치자들의 이성에 부합하게 통치행위를 고안하거나 혹은 통치에 부합하게 피치자들의 이성을 규율하려는 의지조차 없이 오직 사적 권력과 이익의 강화와 만족만을 추구한 것이다. 이러한 통치행위가 “그런대로 기강이 잡힌 독재이던 박정희시대보다 더 먼 과거, 어떤 면에서 아프리카 일부 신생국의 ‘도적정치’(kleptocracy)에 가까웠던 이승만과 자유당 시절을 연상시키는 바가 있다”고 한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14 근대적 통치성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법적·형식적 구조와의 부조화로 다시 통치성의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행태들이다. 즉 민주주의의 후퇴는 국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뿐 아니라 정치적 위기가 거버넌스 자체의 위기로 전화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들을 무너뜨리며 주기적으로 통치자를 곤경에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냉전수구세력에게 천안함사건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통치행태와 민주적 거버넌스 사이의 부조화를 예외상태의 호출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 시기의 레퍼토리를 총동원하는 통치행태에는 예외상태가 더 어울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도마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남는 것은 스스로 무너뜨린 거버넌스, 즉 국정운영체제 자체의 위기이다. 이제 권위주의적 거버넌스로 돌아가는 것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은 분명해졌지만 그렇다고 보수적 통치가 민주적 거버넌스를 수용하고 발전시킬 의지와 능력도 없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정부여당이 6·2지방선거에서 패배한 것이나 7·28재보선에서 승리한 것 모두 현재의 거버넌스 위기를 치유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위기는 남은 임기 동안 계속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같은 사태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4. 민주적 거버넌스의 복원과 질적 심화

 

거버넌스 위기를 극복하는 한 방법으로 보수진영 내에서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을 막고 통치행태를 바꿀 수 있는 길이 있다. 거버넌스의 본질이 통치이니, 통치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빠를 것이다. 6·2지방선거 이후 보수 내에서도 정부에 통치방식을 변화하라는 주문들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주문들은 현재의 거버넌스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구들이 보수 내에서 민주적 거버넌스와의 부조화를 일으켜온 냉전수구세력의 헤게모니를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노력의 일환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15 물론 보수 내에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관적 희망과는 달리 이들은 냉전수구세력에 도전할 만한 역량과 의지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정치적 이미지를 개선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 이들은 보수 내에서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라도 결국 냉전수구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현재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서 냉전수구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나 보수적 가치와 민주적 거버넌스를 조화시킬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박근혜가 복지라는 화두를 내세우며 나오자 진보의 의제마저 차지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복지가 처음부터 진보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던만큼 보수라고 복지를 강화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도 진정한 시험대는 여전히 냉전수구적 헤게모니를 극복할 수 있는가에 있다. 박근혜는 원칙을 중시한다는 이미지를 구축하기는 했지만 정치적 성향 면에서 냉전수구세력과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대권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냉전수구세력과 단절하지 않는 한 실질적 정치행태는 이명박정부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적 거버넌스와 결합되지 않은 복지정책은 시혜적이며 일시적인 떡고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보수 내에서 보수적 통치와 민주적 거버넌스 사이의 부조화를 극복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결국 국민의 힘으로 냉전수구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거버넌스 위기가 더 폭발적인 양상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길밖에 없다. 근본적인 변화는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질 2012년에 민주적 거버넌스를 복원하고 이를 질적으로 더욱 심화시킬 전환점을 만들어내야 가능할 것이다. 이번 6·2지방선거가 이를 위한 대장정의 출발을 알렸다. 진보개혁세력은 무력감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고, 2012년에도 보수가 다시 집권할 것이라는 투의 패배의식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지역에서 진보개혁진영이 대안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실천공간도 확보했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방선거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반MB·반한나라당연합’이 이완되는 일이다. 지방선거에서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을 막을 수 있는 조건이 어느정도 마련되었다고 판단하게 되면 반MB연합에 대한 공감대가 축소되고 정부에 대한 견제심리가 약화되는 것은 어느정도 불가피하다. 이번 7·28재보선의 결과도 그러한 분위기가 표출된 것이다. 그렇지만 중기적으로 보면 앞서 언급했듯 이명박정부의 거버넌스 위기가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고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반MB연합의 객관적인 필요성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진보개혁세력 내에 반MB연합에 대한 공감대를 축소시키는 인식들이 확산됨에 따라 이 시기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공동전선이 약화되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첫째, 반MB연합의 정치적 성과가 특정한 세력에만 집중될 것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정치연합을 통해 진보세력이 정치적 진출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계기였다. 정치연합이 진보세력에 불리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공연한 피해의식인 것이다.

둘째, 반MB연합을 진보적 가치와 대립시키는 경향도 적지 않다. 특히 한국정치가 ‘진보-보수’의 구도로 재편되기를 희망하는 경우에 이러한 인식이 매우 강하다. 이들에게는 냉전수구세력을 청산하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복원하자는 정치목표가 만족스럽지 않으며, 따라서 진보가 민주당 같은 ‘보수적’ 정치세력과 연합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본다. 따라서 아예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합침으로써 보수 색깔을 분명히하는 것이 한국정치가 보수-진보 구도로 변화하는 데 더 유리할 것이라 판단하기도 한다.16 그러나 이는 분단체제에서 형성된 우리의 보수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를 완전히 외면하는 잘못된 현실인식이며, 진보정치가 확장되기보다 위축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 뻔하다. 냉전수구적 헤게모니와 민주당의 결합은 냉전수구세력의 헤게모니, 나쁜 보수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일일 뿐이다. 남한정치가 보수-진보라는 구도로 재편되기를, 그리고 진보정치의 공간을 확장하기를 원한다면 한국정치에서 냉전수구세력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것이 더 빠른 길이다. 그리고 이는 한반도에서 예외상태를 작동시키는 근원인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과제와 함께 진행될 때 실현 가능한 것이다. 진보정치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도 이러한 정치과제를 더 철저하고 일관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번 광주 남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반MB라는 정치적 지평에서 진보성을 드러내려는 시도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셋째, 반MB연합이 미래지향적이고 적극적인 정치적 정체성을 확산시키기에 부적합한 구호라는 인식도 적지 않다. 이러한 지적이 일리가 있지만, 전적으로 타당한 주장은 아니다. 반MB라는 정치선택의 기준이 만들어지고 유권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여기에 어떤 정치적 가치와 지향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MB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는 정치적 지향과 염원을 더욱 분명하고 긍정적인 개념과 가치로 집약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반MB라는 정치적 공간과 유리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지평에서 벗어난 가치와 정책들은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정치적 역동성과 공명을 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반MB라는 정치적 흐름은 민주적 거버넌스의 복원과 질적 심화라고 할 수 있다. 민주적 거버넌스의 복원은 우리 사회에서 냉전수구의 헤게모니를 해체시키고 정부의 책임성 강화, 인권보장, 시민참여 증대 등 민주주의의 핵심적 제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질적으로 심화한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시장과 경쟁 만능의 논리에서 벗어나 연대, 지속가능성, 마음과 신체의 건강이라는 가치들이 보장되는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우려해야 할 또 하나의 변수는 반MB연합의 난이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현행 선거제도와 관련되는 문제다.17 이번 지방선거는 정치연합이 이루어지기에 비교적 유리한 조건에서 치러졌다. 광역에서 기초까지 여러 층위에서 선거가 진행되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진보개혁세력이 참패했던 탓에 진보개혁세력 내의 여러 정당들이 상보적 연합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공간이 열려 있었다. 반면 낮은 비중의 비례대표제와 소선거구제의 지역대표제가 결합된 총선이나, 결선투표제가 없는 대선에서는 정치연합의 공간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물론 선거제도를 연합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하거나, 연합에 공감하는 정당들이 통합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득권세력의 반발과 정당간 정체성의 차이로 이러한 방안이 실현되기는 어렵고 현행 선거제도와 정당구조하에서 2012년의 선거가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모든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그렇지만 반MB연합, 특히 냉전수구 청산과 민주적 거버넌스의 복원 및 질적 심화라는 객관적 필요성이 존재하고 이에 대한 공감대가 유지된다면 그 활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연합공천, 공동정부구성 등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구조가 곧바로 결과를 결정짓는 정치는 없으며, 구조에 내재하는 가능성을 구현하는 것이 정치주체들의 책임이다. 민주당의 경우는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연합의 성과가 진보개혁세력에 공유될 수 있는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수정당들도 민주적 거버넌스의 복원과 질적 심화라는 정치지평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호신뢰가 쌓인다면 다음 선거에서는 더욱 목적의식적인 연합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2012년을 냉전수구의 청산, 그리고 민주적 거버넌스의 복원과 심화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5. 국가거버넌스와 지방거버넌스

현재 우리 앞에는 국가거버넌스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발전시키는 과제와 지방 차원에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는 과제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국가거버넌스의 위기가 지속되는 조건에서 지방에서 새로운 거버넌스가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중앙집권적 성격이 강한 우리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물론 지방거버넌스와 관련된 모든 논의들을 국가거버넌스 문제와 직접 연결시켜 지방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지방을 식민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지방거버넌스가 국가거버넌스 위기와 무관하다는 식으로 논의를 진행할 수는 없다. 따라서 국가거버넌스가 지방거버넌스를 지배하지 않으면서 두 수준에서의 거버넌스를 연관된 과제로 밀고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가거버넌스에 대한 고려가 지방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하고, 그 동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국가거버넌스와의 연관성을 사고할 때라야 지방의 새로운 거버넌스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나갈 전략이 마련될 수 있다. 당분간 국가거버넌스가 불안하고 지방거버넌스에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지방의 새로운 거버넌스를 위한 노력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4대강사업 논란만 보아도 국가 차원에서의 정책변화가 없는 한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 이 문제를 둘러싼 지리한 소모전에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지방 차원에서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기보다 핵심적인 정책목표를 정하고 이에 역량을 모을 필요가 있다. 교육과 환경이 힘을 집중해야 할 우선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지방 차원의 새로운 거버넌스가 단순히 지방에 국한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이는 진보개혁세력이 대안세력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지방거버넌스의 정치지평을 넓혀야 지방거버넌스와 관련한 새로운 논의가 명망가 중심의 전시행정으로 전락하거나 부분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좌초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아래로부터의 더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새로운 거버넌스가 통치방식의 변화만이 아니라 지방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심화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새로운 거버넌스의 특징으로 민관협치가 강조되고 있지만 이러한 거버넌스가 장기적으로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민(民)의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냉전수구적 세력의 영향력이 더 크고 개혁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므로,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그나마 거버넌스 논의가 존재하는 지역의 건전한 역량을 소모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지역에서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만이 아니라 새로운 거버넌스가 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국가거버넌스의 위기를 극복하고 민주적 거버넌스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과 결합될 수 있다면 2012년은 국가 차원은 물론이고 지방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심화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획기적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1. 대국민담화 발표 다음날인 5월 25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5.5원이 급등한 1250.0원에 거래가 마감되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44.10포인트 하락한 1560.83에 장을 마감했다. 북한의 ‘전군 전투태세 돌입’ 소식이 전해진 한때 환율은 1270까지 치솟고, 코스피지수는 전날 대비 72.25까지 하락하는 패닉상태에 빠졌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은 북의 전투태세 돌입 소식이 와전된 것임이 알려지고 남한정부도 제재조치의 실행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곧 정상화되었지만 한동안 간과되었던 분단체제의 잠재적 폭발력을 다시 확인시켜준 사례였다.
  2. 최근 거버넌스(governance)는 협치(協治)로도 번역되며 국가와 시민사회가 협력하는 새로운, 그리고 규범적으로 바람직한 통치유형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거버넌스란 통치, 관리 등을 의미하는 가치중립적인 용어다. 따라서 유엔과 세계은행에서는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라는 용어로 바람직한 거버넌스의 유형을 제시한다. 최근 지방 차원의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좋은 거버넌스’ 혹은 사회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거버넌스’(new governance)에 대한 탐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주의할 점이 있다. 우선 좋은 거버넌스는 국가 역할을 축소시키려는 신자유주의적 경향과도 친화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실정에 맞는 좋은 거버넌스란 무엇인가에 대해 현실과 밀착한 이론적・실천적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국가거버넌스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데 이 사안을 떼어놓고 지방정부의 거버넌스를 논의할 수 있는지의 문제도 있다. 본고는 국가거버넌스 위기의 본질과 극복 방향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를 진행하고 마지막절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이 지방의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한 모색에 어떤 함의를 주는지 정리할 것이다.
  3. 이러한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중앙일보』 2010년 5월 24일자에 실린 김진 논설위원의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라는 글이다.
  4. 조르조 아감벤 『예외상태』, 김항 옮김, 새물결 2009, 24면.
  5. 같은 책 27면.
  6.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조사의 문제점은 다음 책에 잘 정리되어 있다. 강태호 엮음 『천안함을 묻는다: 의문과 쟁점』, 창비 2010. 특히 조사과정의 문제점은 권혁철, 정현곤의 글 참조.
  7. 안수찬 「타는 목마름으로, 대북 전면전을」, 『한겨레21』 2010.4.16(제806호).
  8. 조사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았음에도 합조단의 공동단장 박정이 중장은 대장으로 승진하고 1군단장으로 영전했다. 승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종보고서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리까지 이동시키는 것은 진실을 규명하려는 진정성있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별다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최종보고서 발표일이 7월 하순, 8월 6일 등으로 계속 연기되고 있는 것도 합조단 조사의 혼란상을 잘 보여준다.
  9. 진실을 발견하는 데 있어서의 정확성(accuracy)과 진실을 말하는 데 있어서의 진정성(sincerity)은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가 진실의 가치에 대한 포스트모던식의 회의론을 비판하는 동시에 결코 자명하지 않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덕목으로 든 것인데, 천안함사건 조사는 이 두 덕목을 모두 결여한 것이었다. Bernard Williams, Truth and Truthfulness: An Essay in Genea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10. 예외상태가 어째서 중요한 의미를 띠는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예외상태 안에서 세속의 권위체계가 갖고 있는 비밀이 모두 드러난다”(김항 『말하는 입과 먹는 입』, 새물결 2009, 82면)라는 표현을 여기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다.
  11.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경제, 공론장, 인민주권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상상에 의해 근대적 질서가 구성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사회적 실천은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상상에서 바로 귀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인민주권이라는 사회적 상상이 형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상상이 쉽게 합의된 제도적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미국과 그렇지 못했던 프랑스의 경우를 대비하며 그것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매우 다양할 수 있으며, 복잡하다는 점을 설명했다. 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 이상길 옮김, 이음 2010, 제8장.
  12. Michel Foucault, Security, Territory, Population (Lectures at the Collge de France), Picador 2007. 여기서 통치(government)는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규율을 의미하며 국가만이 아니라 가족, 지역공동체, 종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출현하는 현상이다. 푸꼬는 이 강연에서 근대에 국가가 통치의 중심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13. 현정부가 출범할 때 그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명박정부를 한국에서 신보수주의세력이 등장하는 신호로 해석하는 견해가 많았다. 이러한 해석들은 부분적 타당성은 있지만, 분단체제에서 형성된 특수한 정치문화와 정치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채 서구에서 형성된 이념적 틀만으로 이명박정부의 성격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행태적 측면에서 보면, 어떤 원칙을 따르기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주의와 수단도 사용할 수 있는 유연성과 과감성을 보여주는 이명박정부와 ‘보수세력’에 대해 어떤 ‘주의’라는 틀로써 설명하려는 것은 이론의 남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제정책의 측면을 보아도 수사적으로는 신보수주의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감세정책을 밀어붙이기도 했지만, 좌파정부라고 비판하는 지난 정부들보다도 오히려 더 시장과 기업에 대해 노골적인 간섭을 하는 경우도 많다.
  14. 백낙청 「지난 백년을 되새기며 새 판을 짜는 2010년으로」, 『창비주간논평』 2009.12.30.
  15. 지방선거 직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일제히 이명박정부가 소통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는데, 자신들이 우리 사회에서 소통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자기성찰이 전혀 없다. 이러한 비판은 이명박정부와 거리를 둠으로써 현정부의 정치적 위기가 자신들의 위기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일 뿐, 보수의 성찰과 혁신의 계기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16. 김상봉 「박근혜와 민주당, 만나야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07년 7월호.
  17. 한나라당이 분열하거나, 다음 선거에서 MB청산을 내건 새로운 지도부가 전면에 나서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때 반MB라는 정치목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반MB연합이 성공적으로 작동할 때에만 출현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반MB연합의 성과를 기초로 해서 민주적 거버넌스의 복원과 질적 심화라는 방향을 구체화할 새로운 정치목표를 제시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