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201067일 신동엽창작상 운영위원회는 한기욱, 박형준, 김수이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하여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심사를 시작했다. 신동엽창작상은 등단 10년 이하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작가의 최근 3년간 한국어로 된 문학적 성취들을 심사대상으로 한다. 심사위원들은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의 추천목록을 참조하여 한달간 작품을 검토하고, 다음의 시집 3권, 소설집 3권으로 심사대상을 압축했다.

강성은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김사이 『반성하다 그만둔 날』, 안현미 『이별의 재구성』(이상 시), 김미월 『여덟번째 방』, 천명관 『고령화 가족』, 황정은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이상 소설).

심사위원들은 715일 모임에서 이상의 6권을 집중적으로 검토한 끝에 새로운 감수성과 삶의 힘을 감싸안는 서정이 돋보이는 안현미 시집 『이별의 재구성』을 올해 신동엽창작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심사평

 

김수이(金壽伊) 문학평론가

역량과 개성이 넘치는 작품들 앞에서 즐거움과 곤혹이 교차하는 심사였다. “어떤 작품이 상을 받아도 좋겠다”는 말이 여러차례 오갔다. 공동수상의 가능성이 탐색되기도 했다. 한 작품 한 작품의 가치와 의미를 재확인하는 가운데 도달한 곳은 안현미의 『이별의 재구성』이었다. 신동엽창작상 수상 조건인 등단 10년을 꽉 채운 시인의 탄탄한 작품에 결국 모두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별의 재구성』은 개별 시편들과 시집 전체의 완성도, 첫 시집의 행보를 이으며 인식과 미학의 진전을 이루어가는 시적 돌파력, 비감과 블랙 유머를 팽팽히 교직시킨 특유의 화법 등에서 많은 미덕을 지닌 시집이다. 안현미의 시에는 어떤 각별한 ‘심층’, 즉 금방이라도 폭발하거나 더 깊이 침잠할 것 같은 심층이 도사리고 있는데, 이는 시인이 살아온 삶의 경험과 분리되지 않는다. 극단을 껴안으며 텍스트 위로 불현듯 솟아나는 심층은 안현미만의 독보적인 자산이다. 때로는 능숙하게, 때로는 위태하게, 때로는 “외롭고 웃기”게(「외롭고 웃긴」) 안현미는 그 심층을 다스리며 오늘에 이르렀다. “가끔 내가 쓰는 모든 시들이 유서 같다가 그것들이 모두 연서임을 깨닫는 새벽이 도착한다”(「불면의 뒤란」). 생애 첫 수상의 소식이 도착한 날은 분명 ‘연서의 새벽’이었으리라.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김사이의 『반성하다 그만둔 날』을 먹먹한 통증 없이 읽기란 불가능하다. 21세기 서울, 가리봉동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삶과 내면을 감동적으로 노래한 이 시집은 침체된 오늘의 노동시를, 노동시에서 멀어진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마지막까지 물망에 올린 데는 노동시 전반에 대한 상징적인 수상의 의미도 일부 포함되어 있었다. 강성은의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동화의 새로운 텍스트화 방식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동화가 현실을, 현실이 동화를 읽어나가면서 탄생하는 텍스트의 풍경은 강성은만의 매혹적인 스타일을 형성하고 있다.

소설 쪽에서는 황정은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가 2년 연속 후보에 올랐다. 황정은의 소설은 현실의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터치로 그리면서 중량감과 쿨함을 동시에 발산한다. 서사전략에서도 서로 다른 경계들을 이어붙이고 소통하게 하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솜씨가 뛰어나다. 천명관 장편 『고령화 가족』이 탐구하는 것은 고령화시대의 가족문제가 아닌(이와도 일부 관련이 있지만), ‘가족’이라는 제도 자체의 고령화 현상이다. 노화된 가족제도가 파생시킨 다양한 형태의 가족(삶)들, 그로부터 다시 형성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삶)들 사이에서 이 소설은 우리 시대의 고민과 활로를 서술한다. 이전의 가족소설들과 다르게, 혈연/타자와 연대하는 복수(複數)의 삶의 방식으로서 가족문제에 접근한 시도가 색다르다. 김미월 장편 『여덟번째 방』을 읽은 후에 남는 것은 풋풋하고 싱그러운 느낌이다. 이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가 반복되는 ‘이사’와 피폐한 ‘방’들로 압축되는 젊은이들의 팍팍한 현실임에도 그렇다. 차가운 현실을 따스한 사랑의 시선이 내내 어루만지면서, 그 사랑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김미월의 소설을 읽고 위로받은 순간은 황폐한 세상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박형준(朴瑩浚) 시인

28회 신동엽창작상 후보작에 오른 작품들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등단 10년 이하의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의 이미지와 서사는 새로운 형식에 당대 삶의 진정성을 더하고 있어 2000년대 한국문학의 중요한 동력을 마주 대한 느낌이었다. 사회와 단절된 청춘의 고뇌를 보여주는 김미월의 장편 『여덟번째 방』 같은 경우,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다채로운 서사로 경쾌하고 흡인력있게 녹여내어 이들 세대의 내면을 알지 못하는 나 같은 독자도 공감과 보편의 독서에 이르게 했다. 근자에 신동엽창작상이 연거푸 소설가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김미월 등이 보여주는 새로운 서사에 무게가 실릴 수 있었다.

심사에서 논의된 시집은 강성은의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김사이의 『반성하다 그만둔 날』, 안현미의 『이별의 재구성』이었다. 동화적인 상상력과 예술가적 기질이 섬세하게 맞물린 강성은의 환상적인 이야기는 ‘슬픈 보석’처럼 매혹적이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좀더 삶 쪽에 무게를 두는 김사이와 안현미의 시집 쪽으로 의견이 압축되었다. 자신의 삶과 시대를 함께 놓고 팽팽한 긴장미를 보여주는 김사이의 시집과 2000년대 서정시의 섬세한 울림과 상상력을 발산하는 안현미의 시집 중 한권을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자기고백적인 김사이의 시가 감동을 자아내지만 다소 반복적인 면이 있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시와 삶을 아우르는 균형과 서정미를 갖춘 안현미 시집 이별의 재구성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김사이의 시집에는 가리봉으로 대표되는 서울의 소외된 삶과 고향의 불우한 기억이 겹이미지를 이루고 있으며, 노동을 직접 말하지 않고도 그것의 핵심을 건드릴 줄 아는 진정성과 시적 성취를 보여준다. 그녀의 시편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고 삶의 가장 내밀한 바닥에 이른 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육성의 언어로 가득하다. 이 시집은 삶과 하나가 된 언어를 통해서 시의 비유는 꾸밈이 아니라 그 자체가 행동임을 증명한다.

안현미의 시편들에서는 90년대와 2000년대의 서정시가 섬세하게 균형을 이룬다. 새로운 감수성과 삶의 힘, 양자를 모두 감싸안는 서정이 웅숭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진솔함의 미덕과 상상력의 힘을 합체하는 타고난 언어감각이 빛을 낸다. 생의 아픔을 때로는 재치있는 유머로, 때로는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담아내면서 현실의 불우를 환상으로 채색해가는 이 시인의 시세계는 드러냄과 감춤의 미학을 통해 우리의 감성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김사이 시인에게서 노동시의 활력과 미래를 기대하며, 수상자가 된 안현미 시인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한기욱(韓基煜) 문학평론가

올해 심사에는 시와 소설 양쪽 부문에서 뛰어난 작품들이 많아 선정이 쉽지 않았다. 여섯 편의 작품을 두고 장시간 토론한 끝에 논의는 최종적으로 두 여성시인의 시집으로 압축되었다.

김사이 시집 『반성하다 그만둔 날』에 수록된 노동시들은 질박하되 섬세한 여성의 목소리로 서울 가리봉 노동자들의 헐벗고 너절하고 아릿한 삶을 어떤 미학적 가공도 거치지 않고 날것 그대로 뱉어내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아픔과 소외와 저항의 상투형으로 떨어지지 않고 마음에 아픈 무늬를 새겨놓는 것을 보면 모종의 ‘반미학적 미학’이 작동하는 것이 분명하다. 서정적인 톤이 강한 제2부의 가족 시편들도 보수적인 농촌 가부장제하의 여성이 겪는 오래된 아픔과 슬픔을 곱게 승화시키기보다 직설적으로 내뱉는 쪽을 택하는데, 그래서인지 상처의 아픈 무늬들이 더욱 독특한 울림을 보여준다.

안현미 시집 『이별의 재구성』은 언어와 사유의 변신술을 연마하는 도량(道場)과 같다. 거기서 우리는 재래의 정갈한 언어가 두어번의 단아한 동작으로 그윽한 국화술을 빚어내고 ‘언어 이전에 있는 어떤 어항에서 꺼낸 언어’가 의족을 단 고단한 여인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인어로 둔갑시키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 기발하고 도발적인 언어의 변신술이 각박한 경쟁체제에 굳어버린 우리의 몸과 사유의 맥을 풀어놓는데, 놀라운 것은 그것이 감각의 해방이자 우리 삶이 슬픈/아픈 이유를 묻는 물음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단독자들의 ‘이별의 슬픔’이 ‘이 별의 슬픔’을 묻는 질문으로 변하고 그 막막한 물음에 시인은 자신을 비운 ‘나-무(無)’가 되어 답한다. 안현미의 시는 재래의 서정과 어법을 낯선 서정과 어법으로 이어주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가치체계에서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고 들리지 않던 것을 들리게 하는 시적 성취를 이뤄낸다. 특히 이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유희들은 재미와 위안이기에 앞서 우리 삶과 언어에 대한 깊은 응시와 성찰인 점을 주목하고자 한다.

심사위원들은 두 시집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결과, 첫 시집 『곰곰』으로 주목받은 이후 계속 정진하여 새로운 성취를 이뤄낸 안현미의 『이별의 재구성』을 수상작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시세계를 보여준 김사이 시인에게 계속적인 정진을 바라며, 올해의 신동엽창작상 수상자 안현미 시인에게 아낌없는 축하를 보낸다.

 

 

수상소감

 

아름답고 수상한

 

안현미 安賢美

1972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나 서울산업대를 졸업했다. 2001 『문학동네』 신인상에 「곰곰」 외 4편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불편’ 동인으로 활동중이다. 시집으로 『곰곰』 『이별의 재구성』이 있다.

 

아름답고 수상한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 일어났다. 수상자라니! 내가? 정말? 가난했기에 여상을 다녔고 졸업 후 종합무역상사에 취직해 높은 빌딩으로 매일 출근하던 시절, 회사에서 참가비를 지원해주는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 있다. 동사섭(同事攝)이라는 명칭의 56일 동안의 그 프로그램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직업과 연령의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자신의 사회적인 이름이 아닌 스스로 지은 별칭을 달고 빙 둘러앉아 지금, 현재, 이곳에서, 자기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그렇게 꺼내놓은 감정에 대해 또 각자의 느낌을 덧붙이는 방식의 감수성 훈련이었다. 지식이나 가르침이나 사회적인 지위 따위는 필요치 않은. 그때 나 스스로 지은 나의 별칭은 ‘시인’이었다.

나는 말의 힘을 믿는 편이다. 좀더 솔직하자면 말의 힘밖에 믿을 게 없었다. 그때 내게 ‘시인님’이라고 불러준 거울님, 학님, 모계님, 태양님, 추풍님, 물불님, 곰님, 촛불님, 차차로님, 순수님, 찬드라님, 무등님, 맥가이버님…… 오랜 동안 내게 한없이 맑고 투명하게 남아 있는 그 이름들을 가끔 퇴근 후 시를 쓰는 깊은 밤이면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불러주던 ‘시인님’이란 말의 힘을 생각한다. 그 더 오래 전에는 가난해서 여상으로 진학하는 제자에게 고등학교 가서도 꼭 시를 쓰라고 격려해주시던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언어에 기대어 이만큼 걸어왔다. 기적이라고 우겨도 당신만은 믿어줬으면 좋겠다.

올해로 시를 쓴 지 꼭 십년이 된다. 2010년 새해를 맞으며 나는 습작노트에 ‘아름답고 수상한’이라고 적었다. 수상한,이라는 단어 뒤에는 사회적인 내 이름을 쓰고 싶었다.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일이 일어났다. 기적이다. 어떤 분야에서건 십년쯤 그 일에 종사하면 전문가라 불리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아직도 젊은 시인이라고 불리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고 독단적이고 오만한 권력을 향해 외치고 있는, 따뜻한 격려가 필요할 나의 문학적 동지들과 함께 신동엽 시인이 주신 이 상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

가난하고 외롭고 꿈조차 사치였던 시절에, ‘껍데기는 가라’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