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6·2지방선거 이후의 한반도 정세

 
 

15년 만에 최고 투표율(54.5%)을 기록한 6·2지방선거는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의 완승으로 끝났다. 876월항쟁 이후 이뤄냈던 모든 민주주의적 성취들이 무너지고 있음을 지난 2년 반 동안 시민들이 생생하게 실감했던 터라, 변화의 열망이 반영된 전국 차원의 승리라고 해도 좋았다. 그간의 실정(失政)에 얼추 상응하는 정치적 타격이 정부와 여당에 가해진 한편, 합심한다면 이명박정권의 독주를 제어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야권에 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심이 야당의 손을 얼마나 확실하게 들어주었는가는 더 생각해볼 일이다. 야권의 단일후보들이 모두 고배를 마신 7·28재보선 참패 때문만은 아니다. 재보선의 초라한 성적표야 6·2지방선거의 압승과 이명박정권의 연이은 악재에 안일하게 기댄 민주당 지도부가 받아 마땅했다. 한국정치사 초유의 정치연합 실험에 임한 민주당의 그간의 행적도 야권의 맏형으로서는 썩 미덥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그런 문제와 여타 야당들의 복잡한 내부사정에도 불구하고 연합의 성과가 없지 않았기에 한차원 높은 야권연대의 희망을 품는 계기도 되었다.

정치연합실험을 새롭게 재가동해 대안세력을 만들어야 하는 민주개혁진영의 책무가 더 막중해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거 이후에 과연 무엇이 실제로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만 하는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은 삼권분립과 11표의 선거제도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표를 적게 받은 쪽이 많이 받은 쪽에 승복하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가운데 위정자는 민심을 정치현안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외교·통일·안보 라인을 모두 유임시킨 8·8개각이 단적으로 말해주듯 이명박정부는 민심과의 가망 없는 전쟁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바람 잘 날 없는 우리 정치현실이지만 지금부터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까지의 국면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비상한 각오가 필요한 고비다. 무엇보다 천안함사태를 계기로 이명박정부의 내치문제가 남북관계 및 외치의 위기로 심화된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그럴수록 내부적으로는 ‘천안함’의 사실관계부터 규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온갖 과학적 의혹이 해소되기는커녕 조작의 혐의마저 제기되는 현시점에서 합조단의 ‘중간발표’(520일) 및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524일)의 형식과 내용을 복기하고 소위 천안함 외교라는 것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의 헌정질서가 건재한지조차 의심스럽다.

천안함 일지(日誌)에서 주목할 점은 이명박정부의 태도 변화도 변화지만, 이 사건을 보는 미국과 중국의 시각이 애초부터 달랐다는 사실이다. 천안함사건을 북의 소행으로 몰면서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으려는 외교가 무참하게 실패한 것도 바로 그런 상황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정부의 대미의존은 동맹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벌써부터 의존의 댓가는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노골적으로 내미는 한미FTA 재협상 카드도 그러하고 미국의 독자적 ‘이란 제재’에 한국정부가 동참할 것을 압박받는 것도 그러하다. 그로 인해 예상되는 경제손실이야 말할 나위 없겠지만 더 우려스러운 점은 남북관계의 파탄과 연동된, 이미 위험수위에 달한 동북아의 긴장이다. 이명박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연기하고 동해상에서 ‘불굴의 의지’라는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해 북한과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한 데 이어, 미국은 미국대로 항공모함의 서해 진출을 공언하는 등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구실로써 ‘천안함’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물론 그럴수록 사건의 진상규명에 관한 한 과학정신에 입각한 조사와 사심 없는 판단이 무엇보다 앞서야 한다. 하지만 더 중차대한 과제는 현정권이 천안함정국을 지렛대삼아 심화시킨 남북관계의 위기를 제어하고 6·15정신과 그에 상응하는 대북정책의 포석을 좀더 긴 안목으로 구상해내는 일이다. 미국을 비롯한 동북아 강대국들의 첨예한 이해관계 속에서 남북의 자멸적 긴장이 증폭되고 있기에 포용정책도 말 그대로 ‘다원고차방정식’의 해법 아니고서는 감당할 길이 없다.

그런 맥락에서도 천안함사태를 두고 패가 갈리는 미일–중러의 행보를 주시하면서 그 행보에서 한반도의 분단에 개입한 외세의 작용을 읽어내는 역사공부가 긴절하다. 아울러 한미군사훈련으로 야기된 긴장에 맞불을 놓는 북에 할 말은 하면서, 천안함사태를 빌미로 냉전시대의 한미동맹으로 되돌아가려는 이 정권의 시대착오적 행태에 대해서도 시민사회는 경종을 울려야 한다.

우리 국민은 권력이 전횡을 일삼을 때마다 거리로 나아가 고장난 대의제 민주주의를 수리해왔다. 그런 거리의 민주주의는 한국근대사의 상처인 동시에 자랑이다. 하지만 이제 노상(路上)의 수리기술도 한결 복잡해졌다. 현실이라는 것이 일단 멈춰놓고 수리하는 시계공의 시계와 같다면 얼마나 간단하겠는가. 고도로 발전되고 다양화된 사회일수록 망가진 현실이라도 각자 삶의 터전에서 최대한 충실하게 살아내면서 수리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6·2지방선거와 7·28재보선에서 드러난 ‘일관된’ 민심도 그런 지혜를 요구하는 터, 민심에 순응하고 상식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한반도 정전체제 종식과 동북아 평화의 동력을 찾아들이는 지혜의 거버넌스야말로 우리시대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이번호 특집 제목을 ‘이명박시대의 반환점, 거버넌스의 위기’로 내건 것도 기본적으로 그런 취지에서다. 천안함정국에 대한 분석과 거버넌스 개념의 재검토를 아우르는 총론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서 ‘협치(協治)’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지방거버넌스의 활성화 문제, 방향을 상실한 4대강사업의 실태와 가능한 대안, 무한경쟁을 모토로 삼은 교육현장의 위기 진단과 학교혁신 전략 등을 심도있게 담아내고자 했다.

이남주는 총론으로써 천안함정국이 단순한 일과성 사건이 아니라 분단체제의 제약이 표출되는 전형적 사례임을 이명박정부의 국정위기 양상을 통해 논한다. ‘천안함’이 현정부의 보수적 통치와 민주적 거버넌스의 부조화를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되는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예외상태’가 통치위기를 호도하는 데 활용되는가를 분석한다. 반신자유주의 노선과 상치되지 않는 반MB전략을 새롭게 벼리고 국가거버넌스와 지방거버넌스의 상생 방안을 찾아가는 논쟁적 분석은 주목에 값한다. 박인규는 6·2지방선거를 돌아보면서 지방분권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중앙집권적 정치 및 행정구조와 지방정부 자체의 문제점을 적시한다.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적 전략 가운데 하나였던 공동지방정부를 2012년을 내다보면서 구체화하는 데 좋은 자극을 주는 글이다. 박창근은 4대강사업의 개요를 점검하면서 이명박정부가 공언하는 사업의 취지가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를 논한다. 4대강 반대 목소리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개별 공사의 현황 및 그 난맥상을 짚으면서 바람직한 하천관리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도출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성열관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약진한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의 공약인 ‘혁신학교’ 비전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신자유주의적 교육개혁 패러다임을 극복하기 위한 학교혁신의 과제를 제기한다. 교육이야말로 거버넌스의 기초 인프라임을 유념한다면 책임교육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제안도 귀담아들을 만하다.

거버넌스를 열쇳말로 내건 특집과 관련해 추천하고 싶은 글은 S. 재써노프의 번역논문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위험성의 증가라는 근대적 현상을 제어하기 위해 어떻게 전문가의 지식과 일반시민의 상식을 모아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를 탐색한다. 4대강사업의 무모함을 되돌아보는 데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대화 ‘복지국가는 진보의 대안인가’도 우리 사회의 새로운 거버넌스 구상과 무관하지 않다. 1997IMF사태 이후 본격적으로 심화된 양극화가 한국사회 전체로 퍼지면서 누구나 복지문제를 우리 시대의 화급한 현안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이태수·김연명·안병진·이일영 4인의 토론은 한반도 차원의 복지전략에 대해서도 생각거리를 던진다.

논단과 현장도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천안함사건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가 얼마나 부실한가를 과학적으로 검증한 서재정·이승헌은 이 사건에 대한 정부 발표의 오류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우리가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한국사 100년을 돌아보는 연속기획 세번째인 정현곤의 글은 제목 그대로 ‘6·15공동선언 10년 읽기’다. 지난 10년간의 간단치 않았던 남북관계의 현황을 꼼꼼하게 점검하면서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이룩할 새로운 시민주체의 발견을 역설한다.

창작란과 비평란도 풍성하다. 먼저 우리 젊은 시단의 풍향을 짐작하게 해주는 신예시인 특집이 마련되어 있다. 각각 연재 3회와 2회에 접어든 공선옥과 김애란의 장편도 회를 거듭할수록 작가적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 흥미를 더해주며, 천명관의 단편도 고단한 현대인의 덧없는 일상을 잘 보여준다. 또한 백낙청 리얼리즘론의 궤적을 꼼꼼하게 살피며 비평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류준필은 그간 우리 평단에서 오해와 몰이해가 적지 않았던 리얼리즘론의 면모를 밝혀주고 있다. 지난호 특집의 문제의식을 받아 문학의 새로움과 소설의 정치성을 작품을 놓고 구체적으로 재론한 한기욱의 평문, 고형렬·이정록·최승호의 최근작을 상세히 조명하면서 시와 정치 논쟁에도 조언을 보태는 고봉준의 글도 모두 한국 비평의 최일선에 서서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황석영의 신작 『강남몽』을 문학평론가와 사회학자의 시선에서 조명한 백지연·김백영의 평문도 흥미로운 읽을거리이며, 조광희의 연재산문은 영화를 통해 삶과 예술이라는 고전적 주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녹여낸 글이다.

임규찬·차병직·장회익 등 12명의 필자가 나선 문학초점과 촌평, 문화평은 짧지만 언제나 만만찮은 공력이 들어가는 코너다. 필자분들께 특별히 감사를 전한다. 또한 독자들께 양서를 추천하는 마음으로 만해문학상과 신동엽창작상 수상작을 발표하게 되어 기쁘다. 만해문학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강만길, 박형규・신홍범 선생과 신동엽창작상을 받게 된 안현미 시인에게 진심어린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아울러 이번호부터, 시와 평론을 넘나들며 문단에 새 바람을 불어넣어 주목받아온 진은영 시인이 편집위원진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밝혀둔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여전히 속 시원한 맛은 별로 없는 것이 지금의 정치현실이다. 하지만 청명한 가을을 예비하며 독자 여러분의 일신에도 신선한 바람이 불기를 기원하며, 시대를 앞서가면서도 어제의 발자취를 잊지 않는 창비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

柳熙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