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소설가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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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장 裵明勳

1982년 인천 출생. 경희대 디지털콘텐츠학과 재학중. 2009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libanjang@gmail.com

 

 

 

납작쿵

 

 

가깝고도 먼 옛날.

고양이가 내 앞에 최대한 납작하게 눌렸다. 그 아이에게는 아무 미련도 없는 듯 보였다. 납작하게 납작하게, 두번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길바닥에 납작한 그 아이는 그 일부나 다름없었다. 불현듯, 그 아이는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어째서 이제야 눈치챈 걸까. 자문해보아야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하지만 그런 작은 위안이나마 필요했다. 어쩌면 내 깊숙한 곳 어디선가는, 사실 알고 있었을 거라는 위안.

내 앞 길바닥에 납작해진 그 아이를 한때 고양이라고 알았다. 하지만 이제 얇게 펴진 그 아이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아이는 최대한 가볍게 얄팍해졌다. 나는 기억했다. 그 아이가 내 옆에, 이 거리에, 세상에 차지하고 있던 딱 그 정도를 기억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그 아이와 기억 속 그 아이는 결코 겹쳐지지 않았다. 그 아이가 차지하던 딱 그 정도는, 납작하게 바람이 빠져 볼썽사나웠다. 그 아이가 차지하던 딱 그 정도는, 이제 누구의 것이 되었을까.

내 곁을 오가는 이들은 길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내가 거치적거리는 모양이었다. 거치적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발에 차이고 무릎에 찍혔다. 어머나 어이쿠 하는 탄성과 함께 내려다봤다. 내가 어디서 피어올랐는지 의문 가득 휘둥그레. 고개 꺾어 올려다보자 그들의 세부는 태양의 후광에 씹혀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 부셨다. 눈물이 고였다. 윤곽, 검은 형체에 불과한 그들이 내 곁을, 앞뒤로 흘렀다. 사람들은 언제나 바닥에 납작한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들을 태연자약하게 밟고 지나갔다. 젖은 흙이 묻은, 끈적한 기름이 차진, 단단한 보도에 거칠게 마모된, 발발발 구두굽이 다채로운 문양을 얼룩을 바닥에 납작한 그들 위에 저벅저벅 찍어놓았다. 눈물로 씻어보려 했지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보도가 젖어 있다. 어제 아주 잠시 소나기가 내렸다. 빗물을 머금은 포석은 거뭇하게 타들어갔다. 내 손등에서 그 위로 뚝뚝, 피가 꽃을 피웠다. 납작해진 고양이를 보도에서 긁어내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찰싹 달라붙은 그대로였다. 손톱 밑에 작은 돌조각이 끼었다. 살짝, 벌어졌다.

 

그리고 오늘,

아저씨가 내 앞에 최대한 납작하게 눌렸다.

 

*

 

덜커덩.

차를 타고 달리는데 차도에 토끼가 납작했다. 차는 방금 그 위를 지났다.

엄마 저것 좀 봐, 하며 재촉했다.

하지만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지도를 살피기 바빴다. 여행 중에 길을 잃었다. 엄마 아빠는 헤매는 내내 입을 꾹 다물게 했다. 토끼는 어느덧 시야 밖으로 흘렀다. 아쉬운 마음에 안전띠를 풀고 뒤돌아 창밖으로 토끼의 행방을 좇았다. 보이지 않았다. 길을 찾아 헤매는 자동차의 분란 속에, 납작해진 토끼 따위를 위한 여유는 없었다. 어렵게 마련된 휴가였고, 그것이 자동차 기름과 함께 물 새듯 낭비되는 지금 엄마 아빠는 바짝 날이 섰다.

뭐 하는 거야, 위험하게. 빨리 안전띠 매지 못해? 엄마가 소리쳤다.

나는 대꾸 없이 그에 따랐다.

 

그날 종일, 토끼는 가슴에 납작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고속도로변 숙소의 침대에 누워 먹먹한 가슴을 아무리 달래보아도 소용없었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토끼를 느꼈다. 토끼는 내 안 어딘가에 달라붙었다. 토끼가 도로 복판에 그토록 납작해진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느닷없이 가려운 손등, 그 위에 선한 오랜 흉터를 벅벅 긁으며 생각해봤다. 자동차나 그와 비슷한 것에 치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아빠 차가 그랬듯, 다른 모두 역시 그 위를 거듭 지나간 것이다. 무심결에, 무지에, 무신경에, 그렇게, 덜커덩 덜컹.

그리고 다음날,

나는 도로에 납작한 사슴을 보았다.

 

*

 

있잖아. 방학 때 엄마 아빠랑 차 타고 가는데, 길에 토끼 죽은 거 봤다.

아 그래? 반 친구가 답했다. 그러고는 무심한 듯 숙제에만 눈길을 주었다.

완전 납작하게 쭈욱 눌렸더라. 근데 있지, 다음날엔 막 사슴도 보고 멧돼지도 있고 쥐 같은 것도 잔뜩 납작한 거야.

아 그래? 하고, 반 친구가 답했다. 친구는 내 숙제를 자신의 공책에 옮기기 바빴다. 나는 더는 친구를 방해하지 않았다.

교실 창밖을 내다보니 교문은 동년배들로 득실거렸다. 그들 틈에 문득 뭔가가 환히 부각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황급히 교실 문을 향했다.

야 어디 가? 다음 껀? 반 친구가 불렀다.

가방 안!

교문 쪽으로 달렸다. 학교 현관은 교문과 마찬가지였다. 선후배들과 동기들이 득실거렸다. 좁다란 현관이 꽉꽉 빈틈없이 들어찼다. 그 흐름에 홀로 반하는 나는 이리 차이고 저리 밀쳐지며 앞으로 나아갔다. 대체 뭐야, 하는 얼굴. 재차 흘기는 짜증스런 눈빛. 그들은 그대로 나를 짓밟고 갈 기세였다. 교문에 도착해 교실 창밖으로 본 그것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는 잠시 떨어져 기다리기로 했다.

이내 군중이 흩어졌다. 한둘만이 간간이 교문을 지났다. 그 틈에 교실 창밖으로 본 그것을 찾아 살폈다. 보도는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학교 앞 차도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자동차, 승합차, 화물차 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한여름 더위에 숨구멍이 거칠게 타들어갔다. 인중의 땀을 훔쳤다. 그것이 보였다.

까마귀였다.

여행 때 차창 밖으로 본 토끼와 사슴만큼이나 납작한 까마귀. 검디검은 까마귀.

까마귀라고 알아본 것 자체가 기적일 따름이었다. 까마귀는 차도에 발린 한겹 색감에 불과했다. 납작해진 지 한참 된 게 분명했다. 곁을 스치는 차가 일으키는 돌풍마다, 바삭한 까마귀의 일부가 비늘처럼 얇게 들어올려졌다. 일부는 먼지가 되어 풀풀 날렸다. 근처 화단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집어 까마귀를 긁어댔다. 하지만 워낙 납작 달라붙어 있어 까마귀는 떨어질 줄 몰랐다. 거친 포장재만 긁힐 뿐.

거기 뭐 해. 문 닫는다. 빨리 안 오면 지각이야. 교문에서 수위 아저씨가 외쳤다.

나뭇가지를 놓고 교문으로 달렸다. 흘끔 뒤돌아본 차도에 까마귀 위로 자동차가 덜커덩 덜컹. 나는 그저 손등만 벅벅, 긁적긁적.

 

수업 내내 창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칠판에 집중하라는 선생님의 꾸중도 안중에 없었다. 청소차가 차도 위를 지났다. 세제를 뿌리며 크고 거친 솔로 차도를 닦았다. 하교길에 까마귀가 납작해진 곳을 찾아갔다. 까마귀는 너절한 일부만 남긴 채 지워졌다.

 

*

 

우리 가족이 사는 집 지하창고에는 아저씨가 살았다. 아저씨는 먼 땅에서 이곳으로 왔다. 여행, 같은 것은 아니었고—아저씨는 그런 이유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장탄식을 했다—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는 고향에 딸 둘과 아들 셋, 아내를 두고 이곳으로 왔다. 광야 한복판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는 거기서 선대가 그랬듯 평생 돌을 깎아 만든 집에 살면서 고지대에서 소를 기르며 보내리라 생각했다. 그러다 처음 보는 낯선 이들이 찾아와 마을에 많은 걸 가져다주었다.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이었다. 그때까지 보아온 무엇보다 딱딱하고 날카롭고 요란스러운 것들이었다. 아저씨는 처음에는 두려움마저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차츰 익숙해져 시간이 지나자 그것들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되어버렸다고 했다. 그리 말하는 아저씨의 눈에는 뜻 모를 먹빛이 스쳤다.

시간이 지나 마을에 그 물건들을 새로 들여야 했지만, 그럴 돈이 아저씨는 물론, 다른 사람들한테도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챘다. 그리고 아저씨들도 가슴 한편이 허전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을 들이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그런 것 없이 살아온 마을에 이제 와 솟아날 리 없었다. 마을은 필요한 것들을 자급자족해왔다. 마을에는 장인들이 있어 옷가지며 가구, 식기 등의 생필품을 만들었다. 먹을거리는 밭과 소와 고지대의 초원에서 얻었다. 부족한 게 생기면 서로 가진 것을 나누었다. 그런 그들에게는 돈이 없었다.

고심 끝에 마을의 아저씨들은 외부로 흩어졌다.

 

엄마 아빠는 아저씨를 못마땅해했다. 이 땅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유별난 외모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아저씨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외모는 내 눈에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냄새는 글쎄,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냄새를 잘 맡지 못했다. 생선내장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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