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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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2003년 『창작과비평』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가 있음. brokenname@empas.com

 

 

 

장편연재 3

두근두근 내 인생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알고, 아버지는 난생처음 기도란 걸 해봤다. 여름이 막 끝나갈 무렵, 가을이 갓 시작될 즈음. 수천번의 계절 안에서 수천번의 간절(間節)을 살아, 엄청 늙은 고목 아래서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벌거벗은 채 웅덩이에 대(大)자로 떠 있었다. 언젠가 만화책에서 본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라는 삽화 속 사내와 비슷한 폼을 하고서였다. 지나가는 미풍 하나에도 소름이 돋는 게, 수영을 하기엔 너무 늦은 날씨였지만. 무력하게 출렁이는 고환 역시 영문을 모른 채 오그라들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한동안 계속 그러고 있었다. 달뜬 몸을 식히려는 것도, 강이 좋아 그러는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러는 건 ‘생각’을 하기 위해서였다. 혹은 원인이 있는 장소에는 반드시 해답도 있으리라는 미신적인 기대 때문인지도 몰랐다.

‘생각은’

나무들이 춤을 추며 노래했다.

‘그짓을 하기 전에 했어야지……’

숲 어디서, 무언가 툭— 툭— 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나무에 붙어 있던 매미들이 낙과처럼 하나둘 떨어진 거였다.

‘이젠 더이상 여름이 아닌 게지?’

언젠가 그렇게 읊조리며 돌아서는 어머니의 발밑에도 매미 시체가 깔려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입을 맞춘 마지막 저녁이었다. 어두워진 얼굴로 이제 막 사춘기의 길목을 빠져나가는 두 사람의 걸음을 따라, 그 길에선, 바스락 매미 부서지는 소리가 났더랬다.

‘아이는’

아버지가 항변했다.

‘생각으로 만드는 게 아니잖아.’

절벽 위에 비뚜름히 자리잡은 노송 한그루가 의아한 듯 아버지를 굽어봤다.

‘그렇다고’

아버지는 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는 대상에게 골을 냈다.

‘생각으로 안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잖아.’

바람이 불자, 아버지의 몸이 출렁였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라고 그냥 놔두었다. 그러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때 우리는 그걸 원했어. 그때 우리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우리는 그걸 한번 더 했어. 우리는 그걸 계속 했어. 그리고 우리는 그게 몹시……

‘좋았어.’

순간 나는 ‘아이고, 아버지’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노트북 화면 위에 ‘좋았다’는 말을 쓴 뒤 갑자기 먹먹해져버렸기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좋았다고 써드리고 싶었는데. 실제로도 좋았을 것 같은데. 그 문장을 적는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나는 화면 속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십칠세. 세상 어떤 노인에게 욕먹어도 쌀 만큼 어리석고 싱그럽고 대책없는 아버지의 몸이 거기 있었다. 아름다운 몸이었다. 나는 ‘그랬어요? 아버지?’ 쓸쓸하게 웃은 뒤 다음에 벌어질 일을 기다렸다.

 

주위는 어둑해지고 있었다. 가을을 어서 모셔오려는 듯, 바람이 구름의 옷자락을 계속 잡아끈 거였다. 계절을 계절답게 하는 건 바람의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니까. 여름에 부역하던 모든 것이 시치미를 떼며 일제히 가을을 공모하고 있었으니까. 낮고 두터운 구름의 이동을 따라 아버지의 얼굴에도 천천히 그늘이 드리워졌다. 지나치게 건강한 나머지 도리어 비극을 애호하게 마련인, 사춘기 특유의 도취가 서린 얼굴이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버지는 갈등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지금까지는 자기 삶만 궁리하면 됐는데, 이제는 세 사람의 인생을 한꺼번에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서였다. 그리고 그런 건 살면서 한번도 안해본 일 중 하나였다.

두둑—

빗방울 하나가 아버지의 이마를 때렸다. 차고 맑은 타격이었다. 그것은 이내 수를 불려 빠르게 낙하했다. 한차례 내리고 말 소나기였지만 숲 전체를 술렁이게 하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계곡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초가을 여우비를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이대로 병에 걸려버렸으면. 무언가 더 큰 문제가 생겨주었으면. 차라리 그냥…… 죽어버릴까?’

웅덩이 위로 타닥타닥 쉴 새 없이 동그라미가 돋아났다. 아버지의 알몸 위로도 무수한 파문이 인 뒤 사라졌다 다시 생겼다. 그야말로 시끌벅적한 원들의 합창이었다. 아버지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동그라미의 세례를 받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도 지금 이런 기분이겠지?’

같은 시간, 양수 속에서 타닥타닥 비트(bit, beat)비를 맞고 있을 나를 향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버지는 점점 원들의 아우성을 견디기 힘들었다. 원들의 주장, 원들의 요구에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사방에선 물안개가 피어났다. 아버지는 배영 자세를 풀고, 양서류처럼 물속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왔다. 그러곤 비에 젖어, 평소보다 더 시커매 보이는 큰어른나무 앞에 섰다. 신선한 숲 냄새가 아버지의 폐를 파랗게 적셨다. 아버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당장 덤벼들 듯 나무를 노려봤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먹보다 먼저 움직인 건 무릎이었다. 아버지는 털썩 나무 앞에 꿇어앉았다. 그러곤 글썽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

큰어른나무는 묵묵부답이었다. 주위에선 희망을 가질 만한 어떤 징조나 신호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뭔가 모자란 것 같아 한번 더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지가 아니 되게 해주세요, 네?”

그건 아버지가 생애 최초로, 자신의 전존재를 걸고, 온힘으로, 정성을 다해 올린 기도였다. 물론 그 전에도 ‘여자친구 하나만’ 만들어달라는 청을 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장난이었다. 만일 정말 신이란 게 있다면, 근엄하고 점잖으신 분이 그런 걸 그리 쉽게, 신속하게 들어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지각있는 신이라면, 그렇게 막 까부느라 올린 기도를, 그렇게 진지하게 들어주면 안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지금의 ‘나’만 봐도 알 수 있듯, 아버지의 신은 아버지의 첫째 부탁만 들어주고 둘째는 이뤄주지 않으셨다. ‘진심’ 하나면 신하고도 얘기가 다 통할 거라 믿었던 아버지는 좌절했다. 신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물론 아버지의 짐작처럼 세상 많은 신들은 미물의 기도하는 마음과 경건함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가 몰랐던 게 하나 있는데, 신에게도 유머감각이 있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한참 올린 기도 탓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근육이 땅기고, 턱이 달달 떨리는 게, 서러워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그래봤자 넌 나무라고, 포유류의 고충 따위 관심 없다 이건가? 어찌됐든 네 새끼지 내 새끼가 아니다 이거야? 아버지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시발. 뭐라 대꾸 좀 해봐. 엉엉. 다 듣고 있는 거 안다고. 왜 소원을 한번에 하나만 들어주느냔 말이야. 그럴 줄 알았으면. 흑흑. 좀더 신중하게 골랐을 거 아니야. 엉엉.

 

감기, 그리고 열병의 나날이 지나갔다. 몇번의 큰 비와 뒤척임. 일교차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그래프의 곡선과 먼지의 운동. 낮과 밤. 빛의 마블링. 그런 것이 지나갔다. 그 사이 간절(間節)을 앓는 것은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철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조금씩 아팠다. 면역을 배우느라 그랬고, 나이를 잡숫느라 그랬다. ‘철이 든다’는 건, 철을 겪었다는 말과도 같으니까. 계절에 제법 물들어봤단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이따금 열이 오른 아버지가 투병중 ‘황홀’을 경험하게 되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의 꿈속에서 만나, 누구의 꿈자리서 나누는 건지 모를 아득한 대화를 했다. 한사람은 벌거벗은 채 웅덩이에 떠 있고, 다른 한사람은 공중에서 상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굽어보는 쪽의 얼굴은 웅덩이 위의 하늘을 꽉 채울 만큼 커다랬다. 마치 한사람이 다른 이의 신이라도 된 양 그랬다. 아버지는 사지에 힘을 풀고, 하염없이 먼 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어머니가 하늘에서부터 거대한 얼굴을 들이밀며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왜 당신을 당신의 아버지라 불러?”

어머니의 목소리는 왕왕거리며 산 너머로 퍼져갔다. 큰어른나무 주위의 오목한 공간이 그 자체로 하나의 스피커가 된 모양새였다. 잠시 후, 아버지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아버지니까……”

아버지의 목소리는 겹겹의 원을 그리며 숲 너머로 번져갔다. ‘나는— 나는— 하고, ‘아버지니까— 아버지니까—’ 하고. 가장 나중에 그려진 동심원 밖에서 파드득 새떼가 날아올랐다. 그 소리는 메아리쳐 제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아닌 산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얼마 뒤, 두 사람의 위치는 바뀌어 있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비트루비우스의 자세로 물에 떠 있고, 아버지가 어머니를 내려다보는 형상이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먼 하늘서 큰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당신은 왜 당신을 당신의 어머니라 불러?”

그러자 어머니는 기쁜 듯 차분하고 슬픈 듯 들뜬 목소리로 대꾸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어머니니까……”

말하자면 몸살, 그리고 환절(換節)의 날들이었다. 하늘은 높고, 말라죽은 매미의 텅 빈 눈동자 위로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뭉게구름이 지나갔다. 산이 꾸는 꿈속에서, 매미들은 죽어서도 노래했다. 그때 우리는 그걸 원했어. 그때 우리는 그게 필요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때 우리는 그걸 했어. 그때 우린 그걸 한번 더 했어. 그때 우린 그걸 계속 했어. 그리고 그런 뒤 우리는.

‘나무에서 떨어졌어.’

그러자 다른 매미들도 후렴구를 따라했다.

‘떨어졌어, 떨어졌어…… 나무에서 떨어졌어.’

 

이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음 입맞추었던 때로 돌아가 보는 게 좋겠다. 숲속에서 처음 만나, ‘누구세요?’ 물은 뒤, ‘아름답군요, 아름답군요’ 하기 전으로. 뒤척이고 설레어하며 서로를 힐끔대던 막간의 풍경으로 말이다. 그 즈음,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일 많이 한 것은 다름 아닌 ‘이야기’였다. 그게 자연스러운 순서였고, 그것 말곤 딱히 할 게 없어서기도 했다. 아버지가 수음중인 동기생을 구타한 사연을 털어놓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어머니가 자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은 사람?”

“응. 나은 사람.”

“노래로?”

“응. 노래로.”

“그게 돼?”

“어쩌면.”

누군가 자신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단 사실만으로 자신이 귀한 사람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비밀과 거짓말. 유혹과 딴청. 진담 혹은 우스갯소리가 얼마간 이어지던 시기. 작게 웃고, 공감하고, 귀 기울이던 나날. 하지만 연인들이 차려놓은 대화의 식탁에 꼭 밀담만 있으라는 법은 없었다. 거기에는 오히려 둘만의 밀어를 보호하기 위한, 무수한 딴 얘기와 시치미가 필요했다. 시시껄렁한 얘기도 좋고, 범박한 소재라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 말들을 통해 두 사람이 뭔가 ‘축조’해나가고 있다는 거였다. 자기들도 모르게.

‘자기들도 모르게?’

지나가는 바람이 갸웃대면

‘응. 모르게.’

오고 있는 바람이 대답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버지는 모자란 화젯거리를 주로 만화방에서 얻었다. 이를 테면 물속으로 뛰어들며 아버지가 던지는 이런 말 같은 것.

“원숭이는 원래 헤엄치지 않는대.”

“정말?”

“응.”

“근데 사람은 하잖아?”

“응.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대.”

아버지가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러곤 어머니가 ‘정말?’ 하고 물을 때, 단어의 뒤꿈치가 사뿐 들리는, 그 가볍고 다정한 억양이 퍽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헤엄치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신이 나 어머니 앞에서 재주를 부렸다. 순서대로 폼을 바꿔가며, 온갖 영법을 선보인 거였다. 자! 이건 자유영! 이건 배영! 봐라, 접영!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평영! 아버지는 오두방정을 떨며 잘난 체를 했다.

“으하, 그거 웃기다!”

“뭐?”

“네가 지금 하는 거 말이야.”

“평영?”

“응. 꼭 개구리 같아. 하나도 안 멋있어. 그건 어디 가서 하지 마.”

그러자 아버지는, 훗날 자기 삶에 기본이 될지도 모를 중요하고 암시적인 말을, 자기도 모르게 내뱉었다.

“야, 이게 이래 웃겨 보여도, 물속에서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 영법이야.”

 

아버지가 어머니 앞에서 그런 잡스러운 지식을 늘어놓는 데는 체고생의 콤플렉스도 한몫했다. 아버지는 어디서든 ‘뭔가 있어 보인다’ 싶은 정보들은 단단히 기억해두었다가, 적당한 순간 써먹곤 했다. 사내로서, 한 여자에게 이 세계의 질서에 대해 설명해줄 때의 뿌듯함도 한몫했다. 물론 그 인용이 항상 적절했던 것은 아니다. 문맥에서 벗어난 경우도, 끼워맞춘 듯 억지스런 순간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천진한 표정으로 내숭을 떨며 아버지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세상에! 저 동공 좀 봐……’

도발을 모르는 도발. 혹은 도발을 약간 아는 도발. 활짝 열린 어머니의 동공 속엔 분명 그런 것이 있었다. 조금은 어머니가 의도한 거였다고 해도 말이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가십성 과학잡지에서 읽어온 얘기로 어머니의 환심을 샀다.

“나무 하나가 하루 동안 두 사람이 마실 양의 산소를 만들어낸대.”

그러고는 넌지시 먼 하늘을 보는 척했다. 동시에 쓸쓸한 듯 서정적인 눈빛도 잊지 않았다. 조금 전 웅덩이에서 나온 탓에 아버지의 몸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한기에 살짝 곤두선 아버지의 솜털 위로 미세한 물방울이 매달려 있었다.

“정말?”

“응. 정말.”

아버지는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우리가 남에 숨을 먹고 산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어머니는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나무도 우리 숨을 먹잖아.”

큰어른나무의 가지가 조그맣게 흔들리며, 어머니의 얘기를 긍정했다. 아버지는 ‘맞다……!’ 하고 머리를 긁적였다. 거기까진 미처 생각지 못한 거였다. 그게 아버지의 한계였다. 잠시 후, 아버지가 진지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미라야.”

“응?”

아버지가 한번 더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최미라.”

“왜?”

아버지가 말했다.

“노래해봐.”

“뭐?”

“너, 성악 배웠다며. 것 좀 해봐.”

어머니가 얼굴을 붉혔다.

“싫어.”

“왜?”

“못해.”

“아이, 참. 한번 해봐.”

“실은 그렇게 잘하지 못해.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야.”

“괜찮아. 나는, 잘하는 노래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네가 하는 노래를 듣고 싶은 거야.”

“몰라.”

“한번만. 응?”

“………”

두 사람의 실랑이는 계속됐다. 아버지의 설득과 아첨, 어머니의 새침과 딴청이 줄다리기를 했다. 어머니가 고집을 피우자,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토라진 척했다. 같은 사내들 앞에서는 절대 못 부릴 앙탈. 발각되는 즉시, 열댓명의 체고생이 달려와 일제히 이단옆차기를 날릴 법한 애교였다. 이윽고, 어머니가 못 이기는 척 운을 뗐다.

“듣고 싶어?”

“응.”

“진짜?”

“아, 그렇다니까.”

어머니가 주저하다 고백했다.

“근데 나, 아는 거 별로 없어.”

“별로?”

“어.”

“근데 그게 꿈이야? 성악가가?”

어머니가 아버지를 째려봤다.

“됐어. 안해.”

아버지가 다급히 어머니를 달랬다.

“아니야. 해. 해. 꼭 해. 제발 해. 응? 얼른 해.”

 

어머니는 노래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를 제외하곤 지금껏 누구 앞에서도 해본 적 없는 곡이었다. 어머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곤 아버지로부터 조금 떨어져, 높은 너럭바위 위에 섰다. 어머니는 배꼽 아래로 조붓이 양손을 모았다. 얼굴에는 보기 드문 엄숙함이 어려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마음속으로 세는 숫자. 하나, 둘, 셋……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은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때 나는 좋데나”

 

한참 뒤 어머니가 물었다.

“어땠어?”

한참 뒤 아버지가 말했다.

“좋아서 혼났어.”

 

얼마 뒤 어머니가 물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가 말했다.

“슬프다……”

 

두 사람은 다시 나무 밑에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그때부터 더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쉬지 않고 재잘댔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노랫소린 이미 흩어져 사라지고 난 뒤였다. 하지만 아득하고 정갈한 여운이 계곡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상은 고요했고 나무들은 풍요롭게 너울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야릇하고 암시적인 침묵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었다. 흔들려야 할 것은 흔들리라고, 벌어져야 할 것은 벌어지라고,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 하루 동안 두 사람의 몫의 산소를 만들어내는 나무 한그루와 소년, 그리고 소녀가 있었다. 말 그대로 오롯한 삼각형이었다. 이윽고 땅바닥을 내려다보던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어머니는 상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뜬금없이, 쌀쌀맞게 말했다.

“이 고장 남자랑은 안해.”

더벅머리 아버지가 어안이 벙벙해져 물었다.

“뭐라고?”

어머니가 반복했다.

“이 고장 남자랑은 안해. 절대로 안해……”

그러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격렬하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신령하고 오래된, 점잖은 큰어른나무 아래서의 일이었다. 헛기침하듯 하늘하늘 흔들리던 나뭇잎 하나가 어머니의 손등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산에 있어 푸르던 것이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