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10년대 한국문학을 위하여
자체제작 소리를 내는 상자들, 그리고
2010년대 시로 나아가기 위하여
김수이 金壽伊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평론집 『환각의 칼날』 『풍경 속의 빈 곳』 『서정은 진화한다』 등이 있음.
whitesnow1@hanmail.net
1. ‘자체제작 소리를 내는 상자1’들 앞에서
전선들과 내부기관이 고스란히 노출된 건물 형태는 현대 도시의 낯익은 장식미학이지만, 작품의 제작 원리와 과정이 작품에 내재되는 것은 예술의 오랜 불문율이었다. 예술의 창조원리와 세부공정은 작품의 비가시적 차원과 작가의 무의식적 차원에 저장되어온 것이다(알다시피 그 탐구와 해명의 작업은 ‘비평’의 몫이었다). 이는 마치 인간이 자신의 기원과 형성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거나 의식하지 못하면서, 그 원리와 구조를 살아내고 있는 것과 같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의 기원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모방행위를 넘어,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의 출현에 대한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을 역으로 자신이 주체가 되어 행하는 ‘자기 재창조의 의식(儀式)’으로 변용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의 감성적 매트릭스를 해체하고 새롭게 조직화”2하는 시를 상상한 2000년대의 젊은 시인들은 시쓰기의 원리와 공정을 텍스트에 기입했다. 그 과정에서 철학과 비평의 사유와 언술을 시에 도입했고, 자신들의 시에 관한 별도의 비평문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자체 이력발화 장치를 단 시를 창작한 셈인데, 이는 1969년에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가 나무로 만든 「자체제작 소리를 내는 상자」의 2000년대 산(産) 시 판본에 비유될 수 있다. 만들어질 때의 소리가 안에 든 테이프를 통해 ‘내면의 소리’처럼 흘러나오는 이 기묘한 상자는 자신의 탄생과 현재를 겹쳐놓는 발본적인 존재방식을 연출한다. ‘기원’을 ‘기관’으로, ‘원리와 공정’을 ‘작동’으로 변용하면서, 예술창조 원리의 선형적 분할선(작품 완성 이전과 이후의 시간)과 가시적 분할선(작품의 외형에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을 지우는 것이다. 기원과 현재, 과정과 산물을 동일한 시공간에 배치함으로써, 이 지극히 단순한 모양의 상자는 예술의 발생과 지속을 교란하는 예술사적 사건이 된다. 이를 변주하기라도 하듯, 2000년대의 젊은 시인들은 자신과 세계와 시를 끊임없이 현재형으로 재창조하는 야심찬 시적 기획을 추진한다. 자신과 세계와 시의 기원을 사후적으로 재구성하는 제작자가 되어 제작 원리와 방법을 시에 적어넣은 것이다. “나는 사방에서 자꾸만 태어났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기다란 수염을 달고/아무런 화면도 보여주지 않을 거야……”(황병승), “감정의 동료들은 여전히 집이 되기를 거부하지요”(김언), “감각으로 사유하는 종(種)들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네요”(유형진), “감각이 열릴 때, 세상 도처가 나의 거처다” “내 안에서 살던” “시를 낳을 저 몸”들(강정)……. 자기 자신 및 세계와 시의 재창조에 대한 자의식으로 충전된 제작자-시인은 이질성들의 불협화음과 혼선 등의 ‘자체제작 소리들’을 시에 각인했다. 철학과 비평의 사유와 언술이 소용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3
젊은 시인들의 비평적 시각이 담긴 시와, 시와 연동된 비평이 내는 ‘자체제작 소리’는 크게 세가지 음(音)으로 논쟁적으로 해석되면서 증폭되었다. 세 유형의 음은 계기적 시간이 아닌 질적 시간의 차원에서 2010년대로 나아가기 위한, 이른바 2000년대 시의 출구전략을 비판적으로 모색하는 데 중요한 발화점이 된다.
첫째, 서정과 시의 종언을 겨냥한 반서정, 비서정, 탈서정, 비시, 시의 종언 등의 파열음. “문제는 서정이 아니다”(신형철)라는 진정 국면을 거쳐 ‘서정’을 ‘마지막’ 어휘4로 호명하면서 잠정 봉합된 일련의 논쟁은 ‘미래파’를 독립된 시적 사건이 아닌, 시와 비평이 유례없이 협업한 동상이몽의 담론이자 사건으로 본 김홍중(金洪中)의 진단에서 가장 첨예화되었다. 김홍중은 미래파 시가 모든 문학적 대의와 책무를 폐기한 ‘오따꾸-동물 시인’이 쓴 “‘실재’로부터 자유로운 시”인 반면, 미래파에 대한 비평은 정작 미래파 시에 없는 실재의 열정을 맹렬히 추적한 ‘실재의 열정에 대한 열정’(바디우, 지젝)의 산물이라고 본다. 두개의 다른 역사적 시간에 속한 시와 비평의 이접(離接)에 미래파 담론의 특이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재의 열정을 잃고 스칼라(방향 없는 크기—인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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