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 연속기획•한국사 100년 다시 보기 ④
한국강제병합과 현재
조경달 趙景達
일본 치바(千葉)대학 문학부 교수. 저서로 국내에 번역출간된 『민중과 유토피아』 『이단의 민중반란』 외에 『植民地期朝鮮の知識人と民衆—植民地近代性論批判』 등이 있음.
k.d.cho@adagio.ocn.ne.jp
시작하며
한국강제병합 100년에 해당하는 올해 한국과 일본에서 다양한 집회나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한국에서는 전국역사학대회 ‘식민주의와 식민책임’(5월 28일)과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한국강제병합 100년 재조명 국제학술회의: 1910년 한국강제병합, 그 역사와 과제’(8월 24~26일)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역사학연구회 전체회의 ‘지금 식민지 지배를 묻는다’(5월 22일)와 국립역사민속박물관과 ‘한국병합’ 100년을 묻는 모임이 공동으로 주최한 ‘국제심포지엄 “한국병합” 100년을 묻는다’(8월 7~8일)가 그러했다.
시민운동적인 차원에서 이뤄진 것까지 보면 훨씬 많은 집회가 있겠지만, 일본에 거주하는 필자는 한국 안의 움직임은 잘 알지 못한다. 일본에서 특별한 점은 ‘한국병합’ 100년 시민네트워크가 2008년 10월에 조직되어 전국적인 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한국과의 공조로 한국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위원회가 조직되어 일본실행위원회와 한국실행위원회가 각각 8월 22일과 29일에 ‘한일시민공동선언대회’를 개최했다. 연대적인 움직임으로는 지식인 차원이긴 하지만 ‘한국병합’ 100년 한일지식인공동성명의 공개적인 표명도 주목할 만했다.
일본에서는 그밖에도 1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집회나 강연회, 심포지엄이 개최되었으며 잡지 등의 특집도 눈에 띈다. 한국강제병합 100년을 어느 정도의 관심을 가지고 맞이했는가는 일본 시민운동의 입장에서 중요한 시금석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민의 관심은 예상 외로 높은 편이었다. 필자 자신도 학술 심포지엄이나 강연회 등을 포함해서 매달 어딘가에서 강단에 서거나 원고 집필에 쫓겼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한 행사에서 도대체 무슨 문제가 제기되었을까. 크게는 두가지로, 강제병합의 부당한 과정을 재검토하는 것과 식민지 지배의 실태를 재검토하는 것을 통한 식민지주의 비판이라고 하겠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심포지엄과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는 이 두가지 점을 축으로 하면서도 여기에 또 한가지 역사인식의 문제가 더해졌다. 이 글에서는 세가지 문제에 대해 필자 나름의 생각을 밝히려 하는데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논의를 전개할 것이다.
첫째, 강제병합의 역사적 위상을 비교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는 일이다. 강제병합은 부당하며 그 부당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여기에서는 그 점을 전제로 하면서도 한국과 일본의 정치문화 차이에 초점을 맞춰 강제병합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둘째, 최근 일본에서 러일전쟁 이후 강제병합까지 근대일본 국가의 건전성을 강조하려는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비판이다. 15년 전에 세상을 떠난 역사소설가 시바 료오따로오(司馬遼太郞, 1923~1996)는 국민적 작가로서 지금도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그 역사인식은 러일전쟁까지의 일본은 좋았지만, 그후로는 군부독재의 길로 치달아 근대일본은 암울한 시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러일전쟁을 그린 그의 대표작 『언덕 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을 작년부터 방영했는데, 이 드라마는 근대일본을 미화했다는 비판을 각 방면에서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역사연구자 중에서는 이러한 ‘시바 사관’과 궤를 같이하는 움직임이 있다. 더구나 시바는 러일전쟁 후의 일본에 비판적이었음에도, 강제병합 직전까지 일본의 양심이 한국에 대해 실천되었던 것처럼 논의를 전개하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그 양심이란 구체적으로 이또오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서 발견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는 그 문제성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식민지 실태와 식민지주의 비판의 문제를 재고하는 일이다. 최근 식민지근대화론이나 식민지근대성론이 식민지 연구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그러한 논의는 과연 식민지주의 비판은 고사하고 ‘식민지 책임’을 유효하게 제기할 수 있을까. 근대화론의 입장이 그러한 논리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은 자명하지만, 근대성론의 입장도 매한가지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세가지 모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논할 수 없지만, 지면이 허락하는 한에서 필자 나름의 논의를 펼치고자 한다.
1. 한국의 정치문화와 강제병합
한국이 왜 일본에 병합되어야 했을까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제까지 다양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발전단계가 일본에 비해 뒤처졌다든가(정체론), 자율적인 역사를 지니지 않은 까닭의 귀결이라든가(타율성론) 따위는 당시부터 이어져온 논의이며 해방 후 한국인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을 만큼 널리 퍼져 있었다. 해방 후 한국에서는 물론 북한과 일본에서도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이 주창되어 그런 역사인식은 극복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식민지근대화론은 그런 논의를 새롭게 포장하여 부활시킨 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지만, 내재적 발전론에도 커다란 문제가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매뉴팩처’ 단계=자본주의 맹아라고 할 만한 것은 조선 말기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한 것은 일본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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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겨울호 한국강제병합과 현재조경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