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소설가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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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1985년 광주 출생.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을』이 있음. songbook1123@gmail.com

 

 

 

해만

 

 

누군가 해만에 가야겠다고 말했다. 친구의 친척동생이었나. 전화기 너머로 해만에 대해 알려달라는 목소리를 듣고 아 해만이요? 하고 말했다. 처음 듣는 목소리는 계속되고 나는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했지만 순간 모든 것이 멀어지고 그저 해만, 해만이라…… 생각만 했다.

해만에 가게 된 것은 어느날 회사를 그만둔 후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손에 쥔 것은 큰돈이었나. 어쨌거나 해만에서 서너달 머무르는 데는 문제가 없게 되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다. 남쪽에서 출발한 배는 다섯시간이 지나 해만에 닿았다. 나는 미리 예약한 숙소로 향했는데 배에서 내려 숙소로 향하는 길은 편의점과 까페가 있다는 것 빼고는 남쪽의 어촌마을과 다를 것이 없었다. 등 뒤에서 바다냄새가 났지. 짠 냄새가 났다. 숙소 옆 건물은 술집이었고 열려 있는 문으로 생선구이 냄새가 났다. 연기가 났다. 끈적한 공기와 연기, 생선을 굽는 냄새가 기억난다. 연기를 지나 숙소 계단을 올랐다. 한 남자가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우리는 눈으로 인사를 했고 나는 한층을 더 올라가 접수대로 향했다. 두달간 머무를 건데요. 돈을 내고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고 들어온 날짜 나갈 날짜를 적고 열쇠를 받았다. 32호실에서 빈자리 아무데나 쓰세요. 여름옷으로 채워진 트렁크는 그리 무겁지 않았고 나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설레는 것도 아니었지만 힘들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방에는 이층침대가 두개 놓여 있었고 나는 오른쪽 침대의 아래칸에 짐을 놓았다. 누군가의 벗어놓은 옷과 어지러운 짐들이 보였고 나는 짐을 풀어 침대 옆의 선반에 놓고 샤워할 준비를 했다.

방은 조용했고 창에서 바람이 불어와 걸려 있는 수건을 흔들었다. 잘 왔다고 생각한 것도 같고 조용하다고 생각한 것도 같다. 해만을 알게 된 것은 신문을 통해서였다. 존속살인을 한 범죄자가 해만에 숨어들어 한참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는 기사를 본 거였다. 그 남자는 아버지를 죽이고 도망다니다 해만까지 흘러들었고, 굳이 말하자면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유명하지도 볼거리도 없는 해만까지 수사를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해만이라. 직장을 그만둔 후 어디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뭔가를 보고 싶은 것도 푹 쉬고 싶은 것도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앞으로의 시간에서 변하는 것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뿐이었다. 해만의 숙소들은 수도에서의 월세보다 가격이 쌌고 날씨는 대체로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온다고 했다. 해만에 대한 정보가 없지는 않았지만 보통 다이빙이나 써핑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바다가 아름답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해만에 가기 직전까지 모든 것이 막연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 대학생 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인사를 하고, 어디서 언제 언제까지 같은 것을 묻고 대답했다. 몇살쯤 되었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아직 학교 다닌다고 웃으며 말했다. 숙소 안의 라운지에는 아까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얼음에 술을 부어 마시고 있었다. 여섯시가 넘었을까.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4월말. 낮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아까 접수를 받던 사람은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모두가 자기 자리처럼 보이는 곳에 앉아 있어서 어디로 가야 하나 잠시 머뭇거렸다. 텔레비전은 켜져 있었으나 아무도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 책을 보던 남자는 가끔 고개를 돌려 텔레비전을 흘끗 쳐다보았고 술을 마시는 남자는 술잔을 내려다보다 한번씩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곁에 앉아 있기가 뭐해 뭔가 먹어야겠는데 잡지라도 사와야겠는데 생각하며 숙소를 나와 걸었다. 아직 여름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공기는 무거웠고 온 섬이 늘어진 기분이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슬리퍼나 쌘들을 신고 있었다. 커다란 배낭을 멘 여행객이 지나가고 자전거를 탄 소년들이 지나갔다. 그렇게 숙소를 나와 항구와 반대 방향으로 걷다보니 돔 형태의 교회 같은 것이 나왔다. 원그리스도교정이라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주변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짙은 갈색의 원형 건물이 붉은 꽃이 핀 정원과 함께 있었다. 교회의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할머니 몇명이 교회로 들어왔고 그러고는 더는 없었다. 모든 것이 느리고 늘어져 있고 고여 있다. 내가 그랬다. 처음 온 이곳도, 그러니까 해만도. 나도 해만도 천천히 어디로도 가지 않고 여기에 있기만 했다.

길에는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생선을 구워 파는 술집이 대부분이었고 그밖에는 밥 먹을 만한 곳이 없었다. 술집의 연기도 어딘가로 흘러가지 않고 거리를 메우다 사라지기만 했다. 땀은 나지 않았지만 더운 기분이었다. 할머니들이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가사는 들리지 않고 합쳐진 음으로 웅웅웅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를 따라가다보니 시장이 나오기는 했는데 그 작은 시장에서 파는 것의 절반은 생선이었다. 생선이 늘어놓인 좁은 길과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생선 굽는 연기. 나는 뭔가 별 수 없어진 기분이 들어 시장 한켠에서 구운 생선을 파는 포장마차에 들어가 생선을 먹었다. 아무런 기대 없이 들어갔지만 막상 먹다 보니 맛있어서 속으로 맛있네 맛있잖아 하며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시킨 음식을 다 먹고서야 포장마차 안을 둘러보았는데 생선을 갖다준 아주머니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그 뒤로 기름이 잔뜩 낀 원그리스도교정 달력이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일기예보가 나왔고 오늘은 구름이 낀 그런 날씨고 내일도 흐린 날씨고 주말에는 비가 온다고 했다. 두달쯤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늘의 날씨도 내일의 날씨도 다음날 그 다음날의 날씨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오늘은 구름이 낀 흐린 날씨 내일도 흐린 날씨 주말에는 비가 오는구나. 아줌마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또 보고 왜인지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달력 옆에는 현상수배전단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아는 얼굴을 발견했고 아줌마가 나를 본 것처럼 그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잠시 후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리니 아줌마는 왜인지 다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떠밀리는 기분으로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시장 밖에는 낡고 허름한 집들, 갈라진 틈으로 이끼가 낀 집들이 보였다. 아무것도 더는 나올 것 같지 않아 걸음을 돌려 항구 쪽으로 향했다. 팔이 조금 끈적였고 어디선가 바람이 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편의점에서 캔커피와 주간 영화잡지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우니 어쩐지 샤워를 또 해야 할 것 같았다. 입에서 생선냄새가 났다. 해만을 유명하게 한 그 사람은 아버지에 대한 공포가 엄청났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체구가 왜소하고 회사에서 오래도록 승진하지 못했고 총체적으로 콤플렉스가 심한 사람인데 비해 아들은 그럭저럭 성실하고 평범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조금만 수틀리면 아들을 때려서 고막이 터진 적도 있다고 누군가 증언했다. 그게 어머니였던가 동네사람이었던가 아들 본인이었던가. 아버지는 자신의 콤플렉스를 가족에게 풀었다는데 일찍부터 나와 살던 큰아들은 별로 때리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작은아들은 무섭게 팼다고 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해만’이라고 치면 나오는 것은 그 사람의 이야기와 다이빙이나 써핑 아니면 차를 빌려 달리는 해안도로 설명뿐이어서 내가 읽은 것은 그 사람에 관한 것이 전부였다. 다이빙이나 써핑보다는 적어도 그 이야기가 더 흥미있었다. 그 사람이 여기에 있었던 거구나. 여기 어딘가에. 무엇을 하며 밥을 먹었을까. 구운 생선을 먹었을까 생각하다 눈을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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