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소설가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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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金成重

1975년 서울 출생.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hippieshow@naver.com

 

 

 

허공의 아이들

 

 

소녀는 포치에 앉아 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듯 허공에 두 발을 엇갈려 젓고 있다. 진지하고 골똘한 얼굴로, 다섯살부터 쭉 지어온 표정 그대로 멍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중이다. 오후 햇살이 소녀의 눈동자에 부딪쳐 불투명한 음영을 만들어낸다.

소녀의 어머니는 『위대한 개츠비』를 좋아했고 그 책에 나오는 포치 때문에 이 집을 샀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낮고 기다란 계단을 올라가면 지붕이 딸린 현관이 나오는 서양식 포치는 그녀의 오랜 꿈 중 하나였다. 어머니는 베고니아 화분으로 이곳을 장식한 후 고리버들 의자도 하나 놓아두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손의 일부처럼 이어진 뜨개바늘을 움직여 레이스 덮개들을 떠냈다.

지금 소녀는 혼자다. 밤늦게 돌아오던 소녀의 아버지도, 뜨개질을 하던 어머니도 남아 있지 않은 빈 집에서 조용히 소멸을 기다리는 중이다.

발아래의 땅은 크고작은 구덩이들로 가득하다. 틈새에서 검은 유혹이 흘러나와 공중에 드리운 소녀의 발목을 휘감는다. 소녀는 가장 깊어 보이는 틈새를 바라보았다. 그 속으로 뛰어들면 단단한 대지와 사라진 사람들이 남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소녀는 난간을 꼭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소년은 배트를 휘둘러 200개의 스윙을 채웠다. 야구부 전체가 사라졌지만 소년은 매일 7km의 로드워크를 하고 폐타이어에 배트를 휘둘렀다. 운동을 거르면 몸이 무겁기도 했지만 달리 시간을 보낼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성실하지만 기량이 늘지 않는 후보선수, 그게 소년이었다. 코치의 칭찬에는 안쓰러움이 묻어났지만 소년은 자신의 키가 10cm만 더 크면 주전 외야수가 될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소년은 자전거의 스탠드를 발로 차 옆으로 붙였다.

집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소년은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전부터 금이 가 있던 집이 허공에 떠오르면서 창문과 벽 사이에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큼 틈새가 벌어졌다. 평생 남의 집을 지어주느라 떠돌던 아버지는 정작 자신의 집은 돌보지 않았다. 상관없다. 어차피 세상의 모든 집이 비어 있으니까. 소년은 단순하게 생활했고 해결되지 않을 문제에 되도록 의문을 품지 않으려 했다.

다세대주택과 빌라로 이루어진 골목을 누비는 사이 소년은 수십개도 넘는 구덩이를 지나쳤다. 나무가 뽑힌 자리에는 커다란 혹이 강제로 떨어져나간 것처럼 움푹 팬 구덩이가 생겼다. 주변 흙이 무너져내리느라 작은 산사태가 일어나는 듯한 소요가 거리 전체에 가득 차 있다. 구덩이들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네 블록을 지나자 똑같은 집이 연달아 들어선 타운하우스 단지가 나왔다. 소년은 이런 곳으로 옮겨 살면 어떨까 생각하며 속도를 늦췄다. 움직이는 생물만 없을 뿐 단지는 고스란히 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여섯째 집 앞을 지날 때 소년은 급히 브레이크를 잡았다. 피아노 소리, 분명 피아노 소리였다. 서툰 연주였지만 지난 두달 내내 자신의 말소리 외에 별다른 소리를 듣지 못한 그에게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소년은 한쪽 발을 페달에 걸친 채 연주가 끝날 때까지 엉거주춤 서 있었다. 그대로 가버릴까 싶었지만 다른 이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전거에서 내린 소년은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소녀가 건반을 건드린 것은 적막을 혼자 견디는 일에 지쳤기 때문이었다. 피아노 소리가 울리면 누군가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긴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제 또래의 남자아이일 줄은 몰랐다.

—누, 누구세요?

소녀는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지만 꾀죄죄한 유니폼을 입은 방문객도 그에 못지않게 놀라는 눈치였다.

—정말 사람이 있네.

두 사람 사이에 경계심이 눅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다. 소녀가 열다섯 동갑내기라는 것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확인하는 동안 소년의 심장은 마구 뛰었다. 중학생이 된 후부터 여자아이와 말을 섞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이 더 있지 않을까?

소녀는 지금까지 누구도 본 적이 없다는 소년의 말에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을 텐데 말야.

—잘은 모르겠는데 뭐가 뭔지 알아도 별 소용은 없을 것 같아.

—그치만 궁금해하지도 않는 건 뭐랄까, 무책임하잖아.

아이들은 시선을 돌려 허공에 떠 있는 열두채의 타운하우스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풍경이 단지 1m쯤 떠올랐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대화는 재앙의 수순을 헤아려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소녀는 나무가 한꺼번에 뽑혀가던 새벽,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었다.

—낯선 소리가 들려 나가봤더니 머리 위로 흙이 우수수 떨어졌어. 그날 날아가는 새들을 본 게 마지막이야. 동물이 다 사라졌잖아.

—응.

—집에 들어오는데 뭔가 이상한 거야. 처음엔 몰랐어. 왜 그런지.

집으로 들어간 소녀는 반복적인 일상의 리듬이 미묘하게 흐트러진 것을 알아차렸다.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평소와 달리 네개의 계단이 아닌 다섯개의 계단을, 마지막에는 보이지 않는 허공의 계단을 내려온 것을 깨달았다. 집이 떠 있어요! 소녀가 집과 땅 사이에 한뼘쯤 난 틈을 쳐다보며 큰 소리로 부모님을 불렀다. 평소에도 존재감이 적은 아버지는 그날따라 모습이 희미해 보였다. 즉각 눈치 채지 못했지만 소녀의 부모는 점점 투명해지는 중이었다.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는 목소리밖에 남지 않았어. 어머니는 사라지고 옷만 허공에 있는데 이런 말이 들려오는 거야. 밖으로 나가지 마라.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었어.

소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느닷없이 고아가 되어버린 충격이 아직 소녀를 놓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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