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10년대 한국문학을 위하여
2000년대 소설의 윤리와 정치
이경재 李京在
문학평론가. 평론집 『단독성의 박물관』 등이 있음. ssmart1@hanmail.net
1. 외부와의 만남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토록 다양하고 그토록 의미심장한 2000년대의 소설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할 수 있는 비평적 호명의 개념이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를 조망할 총체적인 시야도, 수많은 작품을 귀납할 물리적 조건도 허용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2000년대의 현실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소설적 흐름이 바로 ‘외부의 탄생’이다. 지난 10년은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방면에 걸쳐 활발하게 경계넘기가 이루어진 시기다. 인종・국민・계급적 경계는 물론 성적・인류적 경계까지도 전과 다른 방식으로 사유되기 시작했다. 그 원인으로는 우선 자본과 노동의 전지구적 이동 및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로 인한 사회격차의 심화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6・15와 10・4 선언으로 상징되는 변화된 남북관계도 중요한 원인임에 분명하다.
수많은 경계넘기를 통해 우리 앞에는 수많은 외부자가 등장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은 새로운 ‘외부의 등장’이 아닌 ‘외부의 발견’이다. 타인과의 만남이 언제나 외부와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식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사정은 이렇다. 1980년대의 인간이 이념적 대타자에 기초해 자신의 위치를 규정짓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타인과 관계맺었다면, 1990년대의 인간은 그러한 방식의 정체성 규정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에 반발하며 자기만의 세계로 급속히 회귀했다. 1980년대에는 거대한 타자의 이상에 의지하는 상징적 도덕을 통해, 1990년대에는 거울상의 무제한적 조응에 바탕한 상상적 환영을 통해 타인과 관계맺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두 방식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이에 따라 이념적 대타자 혹은 상상계적 거울상에 의해 위치지어진 수많은 개체는 광장에 내던져졌다. 일정한 삶의 규칙과 법도를 공유하던 이들은 아무런 공통규칙도 전제할 수 없는 낯선 외부로 거듭난 것이다. 비로소 사람들은 곁에 선 이들을 자신과 같은 규칙과 감각을 공유하는 내부가 아닌 이질성과 혼혈성을 특징으로 하는 외부로서 발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외부의 발견,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만들어야 할 공동체의 성격은 2000년대 문학의 한복판을 가로지른 가장 핵심적인 과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지난 10년간 소설에 대한 논의의 최종심급으로 윤리와 정치가 그토록 자주 언급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2000년대 내내 독자와 평단 양쪽에서 가장 주목받았으며 이 시기를 대표한다고 이야기되어온 김훈(金薰), 김연수(金衍洙), 박민규(朴玟奎) 세명의 작가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이로써 외부를 사유하는 대표적인 방식을 살펴보고, 2000년대 소설의 특징적인 경향에 대한 희미한 윤곽이라도 그려볼 것이다.
2. 눈가리개 한 이순신, 오줌 누는 여인
김훈이 즐겨 다루는 배경은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전쟁터다. 전쟁터에서의 가장 큰 과제는 살아남는 것이다. 생존이라는 절대명제 앞에 승자독식, 무한경쟁, 적자생존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원칙이 된다. 김훈은 2000년대의 기본 조건이라 할 신자유주의에서의 지배적인 삶의 방식을 반복적으로 독백한다. 김훈이 그려낸 소설 속 상황과 그 속을 헤쳐나가는 인물의 삶은 지금 이 시대와 너무나 닮아 있다.
김훈이 그려내는 인물은 꼬제브(A. Kojve)가 말한 역사 이후의 인간 형상과 흡사하다. 꼬제브는 역사가 끝난 이후 가능한 삶의 양식으로 동물화된 삶과 속물화된 삶을 들었다. 동물화된 삶은 육체적인 생존과 그에 따른 만족만을 추구할 뿐이다. 한편 속물화된 삶이란 철저하게 형식화된 가치에 기초한 방식으로, 속물에게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매개된 고통과 쾌락만이 존재한다. 속물과 동물 모두 타인지향적 삶이라고 할 수 있으며, 깊이나 내면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에게는 부정해야 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특별히 이루고자 하는 대상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1 김훈의 소설에서는 인간의 동물화와 속물화가 동시적으로 나타난다.
김훈이 가치를 부여하는 속물에게는 타인과 사회로부터 주어진 역할과 그것에 성실한 삶의 자세만이 존재한다. 그들은 ‘당면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칼의 노래』(2001)의 이순신, 『현의 노래』(2004)의 우륵과 야로와 이사부, 『남한산성』(2007)의 이시백이나 서날쇠는 이러한 삶의 준칙에 철저하다. 김훈이 옹호하는 이순신이나 이시백이나 서날쇠 같은 인물은 공통적으로 스노비즘(snobbism)을 체
-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이은미 옮김, 문학동네 2007, 116~30면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