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다시 동아시아를 말한다

 

국가주의 극복과 한반도에서의 국가개조 작업

동아시아 담론의 현실성과 보편성을 높이기 위해

 

 

백낙청 白樂晴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최근 저서로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백낙청 회화록』(전5권) 등이 있음.

paiknc@snu.ac.kr

 

 

이 글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전반부는 ‘2050년의 동아시아: 국가주의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 제3회 동아시아 평화포럼(2010.11.5~7)의 첫날 기조발제 원고를 약간 첨삭하면서 새 내용을 각주로 추가한 것이다. 후반부를 이루는 ‘덧글’은 그후의 사태진전을 감안하여 2011년 초의 시점에서 새로이 마무리한 것이다.

포럼 이후 보름 남짓 지나 한반도에서는 연평도 포격사건이라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남북간 무력충돌이 벌어졌다. 이로써 한반도의 분단이 동아시아 평화에 얼마나 위협적인 요소인지를 거듭 실감함과 동시에, 자칫 ‘국가주의 극복’ 논의가 한가롭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발제문에서 언급한 분단국가 특유의 악성 국가주의가 위기와 더불어 더욱 창궐하는 것이 눈앞의 현실이기도 하려니와, 이런 때일수록 국가 및 국가주의에 대한 장기적이고 전지구적인 성찰을 국지적 상황에 대한 점검과 결부시켜 진행하는 공부가 절실하다.

나의 발표가 한반도 문제를 중심에 둔 것도 한국측 기조발제자로서 자신의 국지적 상황에 충실하고자 한 선택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한반도중심주의’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한반도에서의 국가개조 작업이 ‘국가주의를 넘어선 동아시아’의 건설에 핵심적이라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한반도가 세계 전체에서도 똑같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자본주의 근대에 대한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의 한 전범으로서 한반도의 작업이 지구적으로도 절실한 관심사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유효하다고 믿는다. 이에 대해서는 ‘덧글’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다.

 

 

1. 국가와 국가주의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국가를 없애는 길이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으로 명징할 뿐 실제로 국가의 폐기가 가까운 장래에 이루어지기는 힘들다고 봐야 옳다.1) 세계화와 더불어 국경의 장벽이 흔들리고 국민국가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면이 있으나, 이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새로운 국면에서 국가의 성격과 기능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자본의 세계화가 결코 국가의 폐기 또는 소멸을 가져올 수 없음은 ‘국가간체제’(interstate system)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필수적인 조건의 하나로 보는 월러스틴(I. Wallerstein)이나 자본주의체제를 ‘자본=네이션=국가’의 결합체로 보는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 등이 거듭 강조하는 사실이다. 국가와 국가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문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근본적 변혁이라는 장기적 과제의 일환으로서만 설득력을 갖는다.2)

카라따니가 칸트의 영구평화론에서 출발하여 구상한 ‘세계공화국’(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세계공화국으로』, 도서출판b 2007)도 대동소이한 이야기다. 저자 스스로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칸트가 말하는 국가들의 연합諸國家連合은 본래 평화론이 아니라 시민혁명을 세계 동시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구상된 것입니다. (…) 칸트의 ‘영구평화’라는 이념은 국가와 자본의 양기(揚棄)를 의미합니다”(「平和の實現こそが世界革命」, 『世界』 201010월호, 124면)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와 자본의 양기’ 내지 지양이라는 장기적 과제가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럴 경우 상당기간 존속할 국가들을 개조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개량과 혁명을 엄격히 구별하는 입장이라면 국가에 반대하거나 최소한 국가를 우회하는 방법을 고집할 테고, 국가개조론을 국가주의에 대한 개량주의적 투항의 한 형태로 간주할 것이다. 하지만 일체의 개량론이 혁명의 성공에 위협이 되는 혁명 전야의 급박한 상황이 아닌 한, 이런 교조적 이분법이 개혁은 물론 혁명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가와 관련해서도 당장에 국가를 소멸시킬 묘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국가의 성격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국가주의 극복에 유리할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동조합과 지역통화라는 대안을 추구하는 카라따니도(앞의 인터뷰 126면), 사회민주주의가 대안은 아니지만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그러한 대안의 실현에 유리한 입법을 해줄 것을 요망하고 있다.

 

 

2. 분단 한반도의 국가와 국가주의

 

국가 및 국가주의 문제와 관련해서 한반도는 특별히 관심을 끌기에 족한 사례다. 동족끼리 남북으로 갈라져 준전시상태로 대치하고 있는 한쌍의 분단국가는 평화국가에 대한 거부가 체질화된 안보국가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국가주의는 민족주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악성이며 억압적이다. 민족의 통일을 겨냥하는 원래의 민족주의를 약화시키고 분단국가의 국가주의와 결합된 새로운 민족주의를 조성하기 위해 온갖 상징조작과 선동을 마다않게 마련인 것이다.

다른 한편 바로 그러한 이유로 분단국가의 국가주의는 남다른 취약성을 지니기도 한다. 분단국가의 자기부정에 해당하는 통일을 목표로 내걺으로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