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애란 金愛爛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2003년 『창작과비평』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함.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가 있음. brokenname@empas.com
장편연재 4(마지막회)
두근두근 내 인생
어딜 가나 바람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나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초록을 자빠뜨린 주황. 주황을 넘어뜨린 빨강. 바람은 조금씩 여름의 색을 벗기며, 땅 밑의 심을 앗아가고 있었다. 그쯤 되면 바람이 얼굴에 느껴지고 풍향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2계급 남실바람이었다. 0계급은 고요. 1계급은 실바람. 그 다음은 산들, 건들, 흔들…… 고요에서 왕바람까지 모두 열두 계급이 있다는 것 같은데…… 잡지를 보다 ‘풍향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말이 좋아 어딘가 적어둔 기억이 난다.
이곳 병원에도 가을이 왔다. 하늘을 양쪽에서 잡아당긴 듯 팽팽해진 공기가 가슴팍을 바쁘게 들락거렸다. 신의 입김이란 게 있다면 딱 이 정도 온도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차고 맑은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 신의 폐활량에 맞춰 내 속 낱말카드도 조그맣게 흩날렸다. 이것은 눈〔雪〕. 저것은 빛. 저쪽에 나무. 발밑에 땅. 당신은 당신…… 하도 만져 귀가 닳고 사위어 어지러이 뒹구는 말들이었다.
볕이 좋을 땐 자판기 커피를 뽑아 벤치로 가 놀았다. 종이컵 주위로 퍼지는 향과 김이 그윽한데다, 그러고 있으면 어쩐지 어른이 된 기분이 들어서였다. 커피는 마시는 시늉만 하고 입에 대지 않았다. 조금만 혀에 대도 심장이 쿵쾅대는 게 누군가 쫓아오는 기척이 들려서였다. 심장내과 환자 중엔 겉보기엔 멀쩡해도 갑자기 쓰러지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간호사 누나들이 ‘A형 캐릭터’라 부르는 신경과민 환자가 적지 않았다. 내 경우엔 ABR, 그러니까 ‘절대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틈이 날 때마다 병원 곳곳을 쏘다녔다. 하염없이 ‘안정’만 취하고 앉아 있다가는 정말이지 어느 순간 미치고 펄쩍 뛰는 ‘절대 불안정’ 상태가 될 것 같아서였다. 어머니는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부쩍 잠이 많아진 게, 예전보다 더욱 피로를 느끼는 눈치였다. 날씨는 제법 선선했다. 겉으로는 아닌 척했지만, 나무도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가지 끝이 각오와 오기로 탱탱한 게, 단단한 몸통에 수액 대신 ‘집중력’을 꽉 채워놓은 인상이었다. 바람이 불자, 나무 아래로 얼룩덜룩 해그림자가 너울댔다. 그쯤 되면 잔물결이 일고 나뭇가지가 흔들린다는 3계급 산들바람이었다. 바람은 함부로 제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며 시시각각 몸을 바꿔 딴 데로 달아났다. 혹은 누군가 그 이름을 부를 때까지만 그 이름이고자 했다. 나는 내 숨 모양이 궁금해 허공에 대고 ‘하아’ 입김을 불어보았다. 그것은 현상액에 담긴 필름처럼 아스라이 형체를 드러낸 뒤 곧 사라졌다. 희고, 가볍고, 부질없는 게 나의 내계와 외계가 만나 짧은 인사를 한 뒤 헤어지는 모습 같았다. 혹은 추운 계절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영혼의 형상 같았다. 나는 가을의 그 풍격(風格)이 좋아 자꾸만 ‘하아’ ‘하아’ 날숨을 내뱉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 몇몇이 카디건을 걸친 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화단 앞 인공연못 주위론 잠자리떼가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저쪽에선 웬 아저씨가 언성을 높이며 누군가와 통화중이었고, 상복을 입은 아주머니는 휴지통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댔다. 건너편 남자는 ‘대체 무얼 동의하라는 건지 알 수 없는’ 목록이 가득한 종잇장을 든 채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딱 봐도 대체요법 외판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상황버섯이며 헛개나무, 자기 장판이 든 가방을 쥔 채 기웃거렸다. 어느 병원이고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모습은 단단한 벽 너머, 저 콘크리트 안에 있었다. 조금만 참으라는 부모 앞에서 ‘내가 얼마나 아픈지 엄마가 알아? 엄마가 아냐고?’ 고함치는 아이라든가, 눈 뜨면 다시 시작되는 고통에 잠을 자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 누렇게 뜬 얼굴로 바퀴 달린 침대에 누워 택배처럼 어디론가 실려가고 있는 할머니, 바나나우유, 체리주스, 복숭아에이드 빛깔의 소변들, 대변주머니, 간성혼수…… 그런 것이 건물 안에 있었다.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면 안되는 특별한 인종들처럼 옹기종기 의좋게 모여 있었다. 병 앞에서 사람들은 놀라고 긴장하고 화내고 부정하며 슬퍼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일상적으로 억눌린 채 병원 주위를 건조하게 맴돌았다. 다들 뭔가 반응하는 즉시, 그것이 진짜 사실이 되어버릴까 걱정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언젠가 나는 간호사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병원에서 오래 일했죠?”
“응.”
“그럼 환자들 볼 때마다 무슨 생각 해요?”
간호사 누나가 내 혈압 수치를 확인하며 답했다.
“아무 생각 안해.”
“………”
“그럴 시간이 없는걸.”
간호사 누나는 ‘그때그때 닥치는 일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다’고 중얼댄 뒤, 뭔가 겸연쩍은 마음이 들었는지 덧붙였다.
“그래도 분명히 깨달은 건 하나 있지.”
그녀가 결과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중얼댔다.
“돈이 참 중요하구나 하는 거……”
어디선가 까르르 박꽃 같은 웃음이 터졌다. 돌아보니 젊은 레지던트 하나가 간호사들에게 농담을 걸고 있었다. 나는 내 속 단어장에서 ‘추파’라는 낱말을 꺼내 만져보았다. 가을 추, 물결 파. 가을 물결.
‘예쁘구나, 너. 예쁜 단어였구나……’
그런데 이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보내는 눈빛을 추파라고 하다니. 하고 많은 말 중에 왜……? 그러자 곧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 바람이 나를 향해 속삭였다.
‘가을 다음엔 바로 겨울이니까.’
불모와 가사(假死)의 계절이 코앞이니까. 가을이야말로 추파가 다급해지는 시절이라고…… 귓가를 뱅뱅 돈 뒤 사라졌다. 나는 오래전 ‘추파’를 ‘추파’라 부르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상상하며 가만 웃었다. ‘아! 만권의 책을 읽어도, 천수의 삶을 누려도, 인간이 끝끝내 멈출 수 없는 것이 추파겠구나’ 싶어 흐뭇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세상이 무탈하게 돌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선가 잠자리 한마리가 날아와 무릎 위에 앉았다. 숨죽인 채 녀석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한쪽 눈이 거의 안 보여, 초점을 맞출 때는 왼쪽 눈을 아예 감아버리는 게 나았다. 한개의 눈을 가진 나와 만개의 눈을 가진 녀석이 서로 응시했다. 기이한 긴장감이 돌았다. 두 존재가 아닌, 두 시간이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수백만년 전의 시공과 현재가 대면하는 듯한. 실바람에 잠자리 날개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비늘 위로 무지갯빛 기운이 자글대다 잠잠해졌다.
잠자리는 곧 사뿐 날아올라 벤치 끝 팔걸이에 앉았다. 두쌍의 투명한 날개에 새겨진 규칙적이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햇살 아래 빛났다. 그 속엔 녀석이 원시생물이었을 때부터 간직해온 정교한 수학체계가 깃들어 있을 터였다. 아마 우리 몸에도 같은 식(式)이 들어 있겠지…… 그러면 애초에 그 수(數)를 만든 존재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나를 만든 그분께선 어째서, 그리고 어디서 그 셈을 틀리셨을까……
바깥에 오래 있으니 근육이 위축됐다. 오른쪽 가슴 위로 중심정맥관이 호흡을 따라 가쁘게 오르내렸다. 잦은 주사에 혈관이 가늘어져, 입원 이래 줄곧 착용한 거였다. 나는 ‘조금만 더 있자’ 중얼대며 혼자만의 시간에 집중했다. 그러곤 머리 위로 두서없는 문장을 떠올렸다. 사실 이곳까지 굳이 산책을 나온 건, 그애에게 건넬 말을 궁리하기 위해서였다. 메일을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답신을 보내지 않은 상태였다. 일단 회신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고, 쓴다 해도 뭐라고 할지 몰라서였다. 물론 답장을 쓰지 못한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까닭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내가 그 편지를 ‘잘 쓰려’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표가 나서는 안돼……’
나는 그애에게 때이른 ‘만족’을 주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안도한 뒤 자족해 돌아서버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애가 바란 것 이상으로 그애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만족이 임계점을 넘으면 만족이 아니라 감탄이 되니까. ‘아!’ 하는 순간의 탄성이 만들어내는 반향을 타고, 그 반향이 일으키는 가을 물결을 타고, 누군가 내게 쓸려오길 바랐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까지 쓴 형편없는 메모들이 떠올랐다. 힘이 잔뜩 들어간 게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홧홧해지는 내용이었다. 관념적이고 현학적인데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발견하고, 보는 즉시 ‘어우’ 손사래쳤던 글을 내가 쓰고 있었다. 그것도 문체가 제각각인 게 어떤 것은 도도한 초등학생이 쓴 산문 같고, 또 어떤 것은 인문대 복학생이 쓴 잡문 같았다. 이건 뭐 공작도 아니고, 수컷이 깃털 자랑하듯 구애하는 모양새라니. 가장 평범한 소년이 되어 가장 평범한 고민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낯설고 불편했다.
‘역시…… 연애를 글로 배워서 그런가?’
누군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일본어를 독학한 친구에게 ‘네 말 속엔 노인과 야꾸자와 여고생의 말투가 다 섞여 있다’고 촌평한 걸 듣고 깔깔댔었는데, 지금 내 모습이 딱 그거 같았다. 그것은 다시 말해, 내 안에 여러가지 욕망이 섞여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그걸 다 빼고, 어떻게 나를 설명한단 말인가? 그래도 정말 괜찮단 말인가? 나처럼 괜찮은 아이가? 나는 수심에 잠겨 먼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수심이 마음에 든 나머지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이서하……”
사물의 이름을 처음 배우듯 발음하는 세 글자였다. 그러자 한밤중 아무도 모르게, 소나무 가지에 얹혀 있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툭— 떨어지는 눈덩이처럼 가슴속에 조용한 기척이 일었다. 고요라는 이름의 바람이 따로 있기나 한 듯. 적막이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바람의 열두 계급 중 0계급에 속한다는 ‘고요’라는 단어를 읊어보았다. 그것은 곧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기척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는 동그라미를 만들어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0계급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0계급이 무언가 하고 있었다.
‘일단 첫 문장을 써야 해. 첫 문장을…… 그런 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두고 보자고.’
나는 허공에다 대고 ‘안녕’이란 말을 썼다 지웠다. ‘잘 지내니’ ‘반가워’라는 말도 쓱쓱 지웠다. 한 소년의 여든 먹은 폐와 심장, 혈관을 타고 바깥으로 흘러나온 한숨이 대기를 흐렸다. 나는 김 서린 창문에 대고 글씨를 쓰듯, 뿌옇게 변한 찰나의 공기 속에 그애 이름을 적어넣었다. 그러자 하늘 위로 생뚱맞은 문장이 영화자막처럼 돋아났다.
‘풍향계가 움직이기 시작……’
어디선가 삐걱 하고 낡은 풍판(風板)이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머리 위로 지나가는 활자를 한자 한자 따라 읽었다. 그러곤 그 문장이 흘러가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그곳에는…… 나이 많은 플라타너스 한그루가 있었다. 수천장의 잎사귀를 나부끼며 풍요롭게.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게로, 그 나무가 또 건너 나무에게로. 쉼 없이, 은근하게. 그러고 보면 봄 추파는 사람만 보내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무에게서 시선을 돌려 정면을 바라봤다. 동시에 한손에 휴대전화를 든 채 걸어가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잠시 흠칫거리더니, 이내 놀란 기색을 감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음을 재촉했다. 나는 내 앞을 지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천천히 하나, 둘, 셋을 세었다. 내가 ‘다섯’이란 숫자를 힘주어 외치자, 손잡이가 돌아가듯 남자의 고개가 다시 한번 내 쪽을 향했다. 나는 재빨리 머리를 숙여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열까지 세고 고개를 들었을 때, 팔걸이에 앉아 있던 잠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
이따금 장씨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동네에서 가장 가깝게 지냈고, 유일하게 그애 얘기를 알고 있는 분이라 그랬다. 특히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가 헝클어질 때면, 장씨 할아버지의 대책 없고 명쾌한 한마디가 그리워지곤 했다.
입원 하루 전, 저녁 마실을 나섰다. 장씨 할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현관 앞에서 할아버지 댁 불빛을 확인한 뒤 까치발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연 건 장씨 할아버지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큰 장씨 할아버지였다. 나는 괜히 기가 죽어 조그맣게 말했다.
“저어, 혹시 안에 장씨 할아버지 계신가요?”
큰 장씨 할아버지가 까다로운 눈으로 나를 내려 보았다.
“덕수, 아픈데.”
속으로 ‘아! 할아버지 이름이 덕수였구나’ 하고 조금 놀랐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노인들은 이름이 없을 거라 생각한 게 죄송했다.
“어디가 아프신데요?”
큰 장씨 할아버지가 엄한 얼굴로 나를 굽어봤다.
“신경 쓰지 마라. 우리 나이엔 아픈 게 일이니까.”
어쩐지 내가 빨리 가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다행히 저쪽에서 장씨 할아버지가 담요를 뒤집어쓴 채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감기에 걸렸는지 코 근처가 빨갰다. 장씨 할아버지는 넓은 데를 놔두고 구태여 현관 기둥을 잡고 선 자기 아버지 팔 아래로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아빠, 나 안 아파!”
학교에 결석계를 내고도 놀고 싶어 안달하는 어린애 같은 말투였다. 장씨 할아버지는 나를 보고 엄청 반가워했다. 내가 텔레비전에 나온 뒤로 노인정에도 데려가고, 먼 데서도 손을 높이 들어 인사하는 게 연예인을 친구로 둔 사람인 양 굴었다.
“야, 너 웬일이야?”
“어, 인사드리러 왔어요. 저 내일 입원하거든요.”
“그래? 그런 건 단둘이 얘기해야지.”
“저기 편찮으시다고.”
“응? 괜찮아. 잠깐인데 뭘. 옷 입고 올게. 기다려.”
장씨 할아버지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안으로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나와 큰 장씨 할아버지 사이로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 나는 큰 장씨 할아버지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금방 올게요’ 변명했다.
우리는 동네 초입에 있는 구멍가게로 향했다. 늙은 느티나무 아래 널따란 평상이 있는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연신 코를 훌쩍이며 기분좋게 앞장섰다. 집에만 있어 답답했는데, 구실이 생겨 신난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마실 것을 사줬다. 탄산이 약간 들어간 오렌지맛 음료였다. 우리는 나란히 평상에 앉아 음료수를 마셨다. 병속에선 방울방울 기포가 올라오고, 저녁 어스름, 산동네에 내려앉은 파랑은 맑고 우아했다. 어디선가 동네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아득히 들렸다. 또랑또랑한 목청으로 놀면서 구호를 외치고 시비를 가리고 함성을 지르는 게, 이 동네가 제대로 된 동네임을 알려주는 기운들이었다. 예로부터 톤이 높아 멀리 가는 까닭에, 집에서도 제 어미가 알아듣게끔 만들어진 소리들이었다.
“내일 가?”
“네.”
“그럼 언제 와?”
매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할아버지가 한번 더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음, 다시 좋아지면요.”
“짐은 다 쌌고?”
“네.”
“잘됐구나.”
저쪽에서 오토바이 몇대가 굉음을 내며 도로를 지나갔다. 딱 봐도 폭주족인 게, 멀리서도 번쩍이는 불빛이 다 보일 정도였다. 장씨 할아버지가 바로 인상을 쓰며 투덜댔다.
“어우, 난 젊은애들이 싫어.”
나는 할아버지의 노골적인 반응에 방긋 웃었다.
“왜요?”
“짜증나잖아. 무식하지, 오만하지, 근데 또 자신만만하지…… 진짜 싫어.”
할아버지가 혐기동물을 대하듯 몸서리쳤다.
“저기 복덕방 송씨 할아버지는 다르게 말하던데요?”
장씨 할아버지가 질투의 눈빛을 내비치며 물었다.
“뭐라는데?”
“노인들은 늘 젊은이들이 멍청하다고 탄식하지만 그건 잘못된 거래요.”
“왜?”
“젊은이들이 칭송받아 마땅한 것은 몸뚱이, 그뿐이기 때문이래요.”
할아버지는 곰곰 생각하더니 이내 으하하하 웃었다.
“맞아! 맞는 말이네. 그 양반이 소싯적에 글씨깨나 썼다더니 같은 말도 나랑 다르게 하는구먼.”
할아버지가 빨대로 쪽— 경망스런 소리를 낸 뒤 한마디했다.
“죽고 싶어 환장한 것 같지 않니?”
그러고는 폭주족이 지나간 자리를 고개로 가리켰다.
“네.”
“근데 왜 저 지랄이라니?”
“그러게요. 멋있어 보이려고 그러는 거 아닐까요?”
할아버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나는 쟤들이 왜 저러는지 알아.”
“왜 그런 건데요?”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죽는 게. 살아 있다고 재는 거지.”
“……?”
“자랑하는 거야, 벌벌 떨면서. 내가 좀 놀아봐서 알아.”
나는 할아버지가 하는 말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지만, 무슨 얘긴지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도 저러고 노셨어요?”
“어.”
“그럼 저 형들 욕하면 안되죠.”
“왜 안돼? 쟤들도 우리 욕하는데.”
“할아버지는 어른이잖아요.”
“그러니까 해야지. 우린 더 심심하잖아. 오토바이도 못 타고.”
“어휴.”
장씨 할아버지가 나긋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아름아.”
“네?”
“넌 왜 네 또래 친구랑 안 노니?”
나는 내 사정을 빤히 아는 장씨 할아버지가 새삼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서운하고 서러워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그게……”
“친구 없어?”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 목소릴 높였다.
“아니요. 많아요. 최근에도 친구 하자고 연락온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근데 그냥…… 수준 안 맞아서 싫어요. 유치해요.”
장씨 할아버지는 내 얼굴을 가만 바라보다, 흡족한 듯 으하하하 웃었다.
“그래?”
“네.”
“근데 어쩌냐, 지금 너 말하는 꼬락서니가 딱 네 나잇대 애들 같은데.”
“네?”
“유치하다구, 너. 열일곱살 같아.”
“그러는 할아버지는 왜 딴 할아버지랑 안 노는데요?”
할아버지가 태연하게 답했다.
“몰라서 물어? 수준 안 맞잖아! 그 영감탱이들.”
우리는 도란도란 담소를 나눴다. 평소보단 진지하고 깊은 얘기들이었다. 그 즈음, 내 성격은 조금 바뀌어 있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물어보는 습관이 든 거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신 물어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더 성급해지고 경솔해져도 좋을 것 같았다. 특히 상대가 장씨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정답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대답 속엔 누군가의 삶이 배어 있기 마련이고, 단지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당신들의 시간을 조금 나눠 갖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
“응?”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언제 할아버지라고 느꼈어요?”
“글쎄……”
장씨 할아버지가 가만 생각에 잠겼다.
“그게 말이지. 예전에는 나도 오륙십 먹은 양반들이 무지 나이 많은 이들처럼 느껴졌거든? 근데 막상 내가 그 나이가 되고 보니까 그치들이 그렇게 늙은 사람들이 아니었더라고.”
“그래요?”
“응.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하나도 안 늙은 거 같아.”
“아……”
“심지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아직도 자라고 있는 거 같다고 하는걸.”
“할아버지?”
“왜?”
“늙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뭐야 이 자식아?”
“저번에 작가 누나가 저한테 그렇게 묻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어물어물 대꾸했는데, 제대로 대답을 못한 것 같아요.”
“별놈의 아가씨가 다 있구나.”
“그죠?”
“한마디 쏴주지 그랬냐.”
“뭐라고요?”
“니들 눈엔 우리가 다 늙은 사람으로 보이지?”
“………”
“우리 눈엔 너희가 다 늙을 사람으로 보인다! 하고.”
“하아, 괜찮다! 진짜 그럴걸!”
바람은 부드럽고,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저녁밥을 먹으러 들어간 골목은 조용했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이별을 한다고 찾아왔건만, 그 다음에는 막상 뭘 어찌할지 몰랐다.
“저기 할아버지?”
“왜?”
“사실 저 어떤 여자애한테 편지를 받았어요.”
순간 할아버지의 눈에서 광채가 났다.
“예쁘냐?”
나는 한숨을 쉬며 섭섭한 듯 웅얼거렸다.
“그게 중요해요?”
“야 인마, 당연하지.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이 평생 딱 두가지뿐이야. 10대 예쁜 여자, 20대 예쁜 여자, 30대 예쁜 여자, 40,50대도 예쁜 여자.”
장씨 할아버지가 일일이 손가락을 꼽으며 설명했다.
“그럼 60대는요?”
할아버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었다.
“고운 여자.”
나는 ‘아!’ 하고 고개를 크게 주억거렸다.
“그래서 예뻐?”
“몰라요. 나처럼 머리카락이 없대요.”
“음.”
“근데 걔가 저한테 노래를 보내줬어요. 그리고 행운을 빈대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