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돈 드릴로 장편소설 『마오 』, 창비 2011

소설가와 테러리스트, 그리고 군중

 

 

윤조원 尹照媛

고려대 영문과 교수 joewon@korea.ac.kr

 

 

10558돈 드릴로(Don DeLillo)의 열번째 소설 『마오 II』(Mao II, 유정완 옮김)가 발표된 지 꼭 20년 만에 한글로 번역되어 나왔다(원서 1991년 출간). 반갑고도 서운한 일이다. 왜 20년이나 걸려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번역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 드릴로를 비롯해 가장 최근의 미국작가를 전공하여 비평적 지식을 충분히 갖춘 전문가가 번역했으니 더 다행인 것은 물론이다.

20세기 후반 많은 주목을 받게 된 여성작가와 소수민족작가 틈에서 백인 남성작가의 문학은 때로 ‘주류문학’이라 지칭되면서 마치 정치적 저항과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부분의 제1세계 백인 남성작가의 글쓰기는 이전과 같은 문화적 주도권을 갖기 어려운 것이 어느정도 사실일 것이다. 드릴로 역시 이런 점에 대한 자의식을 가진 작가겠지만, 그는 1971년 『아메리카나』(Americana)를 발표한 이후로 미국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탐색하는 독특한 문학세계를 꾸준히 구축해왔다. 그는 케네디 암살이나 음모이론 등 냉전시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미국사회의 무의식과 그 징후를 진단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대중문화와 소비문화, 언론매체, 학계 및 예술계의 필연적 교섭과 공생 속에서 변모해온 현대 미국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독자의 시선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야심찬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때문에 토마스 핀천과 더불어 미국문학의 이른바 ‘정전(正典)’의 전통을 이루는 남성작가의 명맥을 잇는 가장 최근의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마오 II』는 돈 드릴로 특유의 관심사를 잘 보여주는 대표작 중 하나로서, 그다지 길지 않고 구성도 아주 복잡하지는 않아 일반독자가 접근하기에도 비교적 쉬운 편이다. 그러면서도 텍스트의 시야를 확장하여 미국을 전지구적 역사의 맥락 속에 놓고 대중문화의 일상적 측면과 냉전시대 이후 세계정세의 변화를 플롯 속에서 세밀히 교직(交織)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시야의 확장을 빌 그레이라는 작가를 중심으로 한 소수의 인물들의 삶의 교차, 그리고 그들이 매개하는 도시와 군중의 이미지를 통해서 이루어낸다는 것이 드릴로의 작가적 성취라 할 수 있다. 또 소설가와 테러리스트라는 일견 부조리해 보이는 짝짓기를 전경(前景)에 내세워, 서로 다른 매질(媒質)과 실천을 통해 대중과 관계맺는 문학・예술과 테러리즘이 현대사회에서 지니는 유사하지만 상이한 파급효과를 부각한다.

돈 드릴로는 특정한 이미지 몇개를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교차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특히 작품의 제목에 새겨진 채 작품 전체에 유령처럼 부유하는 마오 쩌뚱(毛澤東)의 이미지는 상징적이다 못해 일종의 상형문자 같은 기능을 한다. ‘마오 II’는 포스트모던 미술의 대표작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데, 현대의 여러 대중적 우상을 형상화한 것으로 유명한 워홀이 왜 마릴린 먼로나 재키 케네디와 더불어 마오 쩌뚱을 소재로 삼았는지 생각하면 드릴로가 그 제목을 자신의 소설에 가져온 의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마오 쩌뚱은 종교와 무관한 지도자이면서도 종교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지녔던 인물로, 그의 이미지는 이성과 합리성이 왜소해진 시대에 절대가치에 복속(服屬)하려는 군중의 염원을 반영하고 있다. 마오의 이미지는 빌 그레이의 조수이자 비서라 할 수 있는 스콧이 뉴욕의 한 전시회에서 워홀의 작품을 감상하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후 여러 인물의 시선과 의식 속에 되풀이해 등장하면서 그들의 삶을 이어주고 절연된 내면을 중첩시키는 일종의 매개물로 작용한다.

한국독자에게 이 작품은 통일교의 집단결혼식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흥미를 유발한다. 더이상 절대영원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개인을 초월하는 무언가에 자신을 맡기고 싶은 텅 빈 영혼들은 집단결혼식 속의 12천 신도들로 대표된다. 딸 캐런을 찾으러 온 부모는 불가해한 힘에 딸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지만, 양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이 신도들은, 상업적으로 조직화된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며 무아지경에 이르는 군중의 다른 모습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들이 문선명(文鮮明) 총재를 무조건적으로 숭앙하며 그에게 삶을 바치는 광경을 통해 작품의 주인공들 중 하나라 할 현대적 ‘군중’을 소개하는 이 작가의 영민함은,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그의 카리스마에 여전히 목말라하며 그의 시신 매장을 거부하는 무슬림교도 무리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도 발견된다.

드릴로는 흔히 ‘광신도’라 불리는 이 군중이 그같은 갈망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일반대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암시한다. 이 군중을 보며 낯선 전율과 더불어 왠지 모를 친화력을 함께 느끼는 작품 속 인물들 역시 그러하다. 작가 빌 그레이의 수족이 되어 그의 원고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서류, 편지, 언론보도를 강박적으로 정리하고 관리하는 스콧이나, 한때 통일교도로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으려 했던 그의 연인 캐런이 마오의 이미지를 관조하는 광경은 그들 삶의 유사한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마오의 이미지는 인물들이 일종의 집단무의식을 통해 서로 엮이고 겹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문선명과 호메이니 사이에서 마오의 이미지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매혹된 이들은 어느덧 또다른 군중이 되고, 작가와 테러리스트는 이 군중을 움직이는 작은 결절지점인 동시에 그 군중의 일부인 것이다.

빌 그레이는 대중매체와 소비문화의 난무 속에서 작가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간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던 글쓰기 자체에도 회의를 품는다. 이 혼돈의 시대에 언론은 폭탄을 제조하고 건물을 무너뜨리는 테러리스트를 대중의 무의식에 파고드는 새로운 우상으로 옹립한다. 작가와 테러리스트는 교환 가능한 등가의 존재로 상정되지 않지만 대칭적 지점에 놓여 있다. 다만, 작품은 빌 그레이의 내면을 세밀히 파헤치면서 대중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압박감 속에서 창작을 향한 강박적 충동과 무기력함을 동시에 느끼는 작가의 자의식을 독자 대중에게 노출하는 반면, 대중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그 당위성에 일말의 의문을 품지 않는 듯한 테러리스트의 내면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오랜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는 빌 그레이의 시도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와의 협상테이블에 등장한다는 계획으로 이어진다. 이슬람 극렬세력에 인질로 잡혀 있는 무명의 젊은 스위스 시인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유명작가의 등장이 가능케 하는 대중의 시선과 언론의 주목이 일종의 협상카드로 제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명인’으로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갖는 시장가치는 대중문화가 기대고 있는 일종의 집단적 환상에 근거하는 것으로, 갈등과 폭력의 현장에서 그것의 정치적 환율을 역이용하려는 빌 그레이의 의지는 그의 통제를 벗어나는 카오스적 현실의 폭력에 차단당한다. 『마오 II』의 묵시록적 현실에서 “미래는 군중의 것”이기 때문이다(30면).

『마오 II』에서 보이는 현대 전지구사회의 여러 근심들—특히 테러리즘과 음모이론—은 이후 드릴로의 소설들에도 반복해 등장하고, 1998년에 “폭탄 아래서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한 글이라며 발표한 『언더월드』(Underworld)에서 드릴로의 역사의식과 비판적 성찰의 깊이는 한층 더 성장한다. 드릴로가 미국의 대중문화와 현대의 여러 정치적 근심을 『마오 II』 이전과 이후의 작품에서 어떻게 지속적으로 다루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추후의 과제다. 『마오 II』의 뉴욕에는 물론 아직 세계무역쎈터가 존재한다. 포스트모던한 도시의 대중문화에서 흘러나오는 체액처럼 노숙자와 부랑자는 거리와 공원의 도처에 고여 있지만, 그런 광경을 모두 가려버리는 밤의 어둠속에서 세계무역쎈터는 미국의 상징으로 빛을 발한다. 뉴욕과 베이루트를, 공허한 미국 대중문화의 우상과 이슬람 극렬단체의 필사의 신념을, 그리고 작가와 테러리스트를 연결하는 『마오 II』에서 세계무역쎈터의 불빛이 이미 테러리즘의 그림자와 병치되고 있다는 점은, 『마오 II』가 발표된 지 꼭 10년 후 발생한 911사태를 목격한 우리로 하여금 그의 혜안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911사태 이후 또다시 10년이 흐른 오늘 독자가 이 작품의 의미와 더불어 번역서 출간이 지니는 의의를 가늠해보고자 한다면, 『마오 II』 이후의 20년 동안 『마오 II』의 시의성과 통찰력이 과연 조금이라도 덜 유효해졌는지에 대한 자문으로 시작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