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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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白佳欽

1974년 전북 익산 출생.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가 있음. gahuim@nate.com

 

 

 

(痛)

 

 

1

 

원덕씨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날은 올해 들어 가장 추웠다. 그가 죽기 사흘 전이었고, 화요일이었다. 도심의 수은주가 영하 17도까지 내려가 온 세상이 바짝 얼어붙었다.

그는 때때로 의식이 돌아왔지만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현실과 몽환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어떤 게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온기가 없는 방 안은 바깥 한파의 날씨와 별 차이가 없었다. 낡은 집의 무수한 틈으로 칼바람이 넘나들었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환영에 빠져 있었다. 노란 빛깔의 손톱만한 작은 꽃잎이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간혹 서늘한 바람과 잿빛의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렸다. 얼굴에 닿아도 차갑지 않았다. 눈앞으로 노란 빛깔의 꽃잎과 잿빛의 함박눈이 어지럽게 몰려들었다. 원덕씨는 침침한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연신 깜박였다. 무수히 쏟아져내리며 흩어지는 움직임을 그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는 약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얼굴로 쏟아지는 빛깔과 움직임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간간히 약기운에 너무 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함이 들었다. 그럼에도 간지럽게 얼굴을 때리는 노란 빛깔과, 닿자마자 가벼운 촉감만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잿빛이 그런 마음을 떨쳐버리게 만들었다.

때때로 의식이 돌아올 때면 환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누렇게 뜬 벽지와 우묵하게 내려앉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눈을 껌벅이며 오래도록 비루한 현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도 시선을 한곳에 오래 두지 못하고, 눈은 뒤집어졌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며 점점 허공 속으로 멀어져갔다. 그의 의식도 따라서 소용돌이치며 천장이 사라지고 생긴 무한의 공간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움직임을 좇느라 반쯤 감긴 눈을 쉴 새 없이 껌벅였다. 그러면서도 노랑 꽃잎과 잿빛 눈이 쏟아지는 무한한 공간의 끝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그것은 거리가 가늠되지 않는 어떤 한곳을 중심으로 천천히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그 중심에 그의 시선이 가닿았다.

 

2

그 전날, 그가 죽기 나흘 전 월요일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마당의 앙상한 매화나무 위로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그는 오후 내 멍하니 바라보았다.

날이 저물 무렵이 다 되어서야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걸을 때마다 발목까지 눈이 차올랐다. 폭설로 거리는 한산했다. 아주 간혹, 차들이 도로 위를 느리게 지나갔고,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위태로웠다. 병원으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두배는 멀게 느껴졌다. 웬만해선 외출을 하지 않는 그였지만, 엄청나게 내리는 눈발을 무릅쓰고 병원에 갔다.

할아버지 약 그렇게 한번에 드시면 더 못 드려요. 거기 수면제랑 진통제랑 같이 들어 있어서, 많이 드시면 환각 와요.

젊은 의사가 진료실로 들어선 그를 외면한 채 말했다. 그는 평소에 진료를 받던 의사가 아니어서 조금 당황했다.

그분은 오늘, 쉬시는가?

그는 의자에 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워서 문가에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다른 병원으로 가셨어요. 할아버지, 저는 그분처럼 정량 이상 약 못 드려요. 아셨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처럼 원덕씨는 진료실을 두리번거렸다. 몇년을 보았던 의사가 갑자기 약 처방을 바꾼 것을 그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도무지 약발이랑 거시 들어먹어야지.

원덕씨가 눈을 연신 깜박이며 느릿하게 말했다.

약은 얼마나 남으셨어요?

젊은 의사는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서 무심히 말했다.

뭐 좀, 개얀을 땐 두봉도 먹고, 심헐 땐 다섯봉도 먹고. ……인자 얼매 안 남었지.

그러다 약물 중독돼요. 더 못 드리니까 정해진 날에 다시 오셔요. 아셨죠?

의사가 여전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선 짐짓 친절한 말투로 말했다.

원덕씨가 고개를 숙인 채 잠잠히 듣고 있다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가 뭔가를 얻고자 할 때 익숙한 방식이었다. 점퍼를 벗고, 목까지 올라오는 얇은 티셔츠를 벗었다. 그제야 젊은 의사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를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점퍼 안에 달랑 얇은 티셔츠 한장과 바지만 입고 있어서, 그것을 벗어버리자 금세 알몸이 되었다. 헐렁한 바지 안에도 속옷 같은 것을 입고 있지 않아서, 혁대를 풀자마자 바지가 훌러덩 발목으로 내려갔다. 쪼그라든 성기가 순식간에 드러났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그의 몸에는 온통 붉은 반점, 새끼손톱만한 돌기와 수포로 가득했다. 젊은 의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몸은 보는 사람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몸을 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가려움이 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한겨울에도 거시기를 하나도 못 걸친당게.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난 집에서 이러고 있소. 이 개라움을 누가 알겄소잉. 그래도 겨울이 젤 살만 함시도, 갑작스럽게 피는 열꽃 땜시 개라서 좀체로 정신을 못 차리것다 이말이요잉. 어제는 칼을 들고 내 살거죽을 모두 벗겨내려고 했는디. ……개란 것보다 그게 훨 낫지 않겄소잉.

원덕씨가 몸 구석구석을 벅벅 긁기 시작했다. 금세 피부는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여기저기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터졌다. 그럼에도 그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아예 손톱으로 피부를 벗겨내기라도 할 듯 인정사정없었다.

알았으니까 그만하세요. 일단 한달치 드릴 테니, ……그래도 약 줄이려고 노력하셔야 돼요.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원덕씨는 바지를 추켜올렸다.

 

3

원덕씨는 죽기 사흘 전 황홀한 환영에 휩싸였다. 일찍이 그는 인생에서 그런 아름다운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단지 약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나 생경하고 아름다웠다. 그가 본 무아경은 가진 것 모두를 내놓는다 하더라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의 한부분이 가감없이 펼쳐지기도 했고, 망각 속에 묻혀버린 어느 한때가 재현되기도 했다. 생전 본 적 없는 오묘한 풍경과 이미지들이 눈앞에 떠오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게 새로 처방받은 약 때문인 줄 몰랐고,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효과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의사가 일러준 대로 정량만 복용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죽기 보름쯤 전이었다. 그저 푹 잤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주일치 약을 한번에 먹은 것뿐이었다. 현실 너머에 신세계가 있다는 것을 그는 그날 처음 알았다.

그는 가려움 때문에 반평생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햇빛을 쬐지도 못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누렇게 떠 있었다. 햇빛을 받으면 수만마리 구더기가 온몸에서 구물거리는 것 같았다. 잠깐이라도 햇빛을 받으면 극심한 가려움증이 일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온종일 파리채를 들고 앉아 자신의 알몸을 지체없이 가격하는 일이었다. 긁는 것보다 때리는 편이 나았다. 가려움증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철썩, 철썩 파리채로 몸 이곳저곳을 세차게 때리는 방법뿐이었다. 다른 어떠한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이긴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언제나 벌겋게 살이 달아올랐지만 자신에게 가하는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겨울은 완숙하게 제 갈길을 가고 있었고, 날씨는 점점 더 나빠졌다. 몸의 상태도 날씨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가려움증에 익숙해지기는커녕 고통이 더욱 커졌다. 그럴수록 자신의 몸을 향한 매질도 나날이 세졌다. 가려움이 심해지면 가끔 자신의 혁대를 풀었다. 가죽의 민첩함은 살에 쩍 붙었다가 살점을 들고 일어서는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살이 터지고 상처가 남았지만 그때만은 가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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