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10년대 한국문학을 위하여 2

 

공동체와 소통의 상상력

권여선 윤성희 김미월의 소설을 중심으로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이 있음. cyndi89@naver.com

 

 

1. 불안의 시대에 꿈꾸는 소통의 상상력

 

최근 우리 소설의 한 흐름으로 드러나는 공동체와 소통의 상상력에는 사회현실 전반에서 감지되는 민주주의의 위기양상과 경쟁체제의 심화가 중요한 배경으로 스며들어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위기는 교육・주거・복지에 이르는 빈곤과 소외를 심화시키며, 사회 전반에 걸쳐 각종 불공정과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거대한 규모의 자연재해와 질병의 공포, 개인의 일상을 결박하는 경쟁체제의 심화는 개인의 불안의식을 추동하며 삶의 전반적인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다. 어느 순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재난에 휩쓸리거나 생존의 현실에서 낙오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근 몇년간 한국문학에서 자주 논의돼온 문학과 정치, 문학과 윤리라는 주제는 이러한 사회현실이 야기하는 불안의 제반 양상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우만(Z. Bauman)의 수사를 빌리자면, 현대사회의 씨스템은 끊임없이 ‘배제와 포함’의 원리를 작동시키면서, 경쟁에서 낙오된 자를 잉여의 존재로 몰아넣는 공포와 불안을 양산하고 있다.1) 그의 지적대로 자본주의 근대 일상체제의 ‘빅 브라더’는 누구를 포함할지가 아니라 누구를 배제할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배제의 원리는 현실에서 작동되는 각종 써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절실하게 체감된다. 오락문화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강도 높은 경쟁체제의 형식은 일상인의 삶을 ‘리얼 다큐’의 연속으로 만들고 있다. 한가로워야 할 주말 저녁에도 사람들은 미디어의 써바이벌 게임이 드라마틱하게 환기하는 긴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쟁에서 밀려나 쓸모없는 ‘잉여물’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와 위기는 휴식의 시간에도 끊임없이 엄습한다. 그야말로 ‘타인보다 오래 살아남기’라는 절박한 명제 속에서 우리는 하루하루 생존의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떤 관계가, 어떤 조직이, 누구를 금 밖으로 밀어내는가를 둘러싼 불안과 위기의식은 ‘쓰레기’로 소각되지 않으려는 개인들의 필사적인 무한경쟁을 불러일으킨다.

경쟁이 심화될수록 따뜻하고 안정적인 관계에 대한 욕구는 강렬해지지만, 이를 채워줄 가족과 각종 친밀성의 집단관계는 약화되고 있다. 지난 시대에 개인을 묶어주던 집단적인 유대가 느슨해지면서 소통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고 있는 형편이다. 불안과 고립에 시달리며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혀 있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문을 열고 걸어나와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 시작한다. 현실이 삭막해질수록, 사라진 유대의식을 보상해줄 따뜻하고도 친밀한 공동체에 대한 갈망과 상상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고립과 소외에서 비롯된 소통의 상상력은 냉담한 현실을 상상적으로 보상하는 기능도 하지만, 삶의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정체성의 탐색과정을 끌어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자기와 타자를 둘러싼 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근본적인 차원에서 심화된 자기성찰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소설에 나타난 우연적이고 상상적인 공동체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대상 역시 현실에서 완전히 유리된 타자들만은 아니다. 익명적으로 결집된 듯 보이는 공동체 속에도 성차와 계급, 빈부의 격차라는 구체적 조건을 내재화한 개인들의 충돌과정이 담겨 있다. 임의로 모인 우연의 공동체 속에도 타자들의 적대와 충돌이 자아내는 긴장관계가 존재하며, 여기서 근대적인 귀속성들, 집합성들의 부정적인 측면들을 가로질러 자유롭게 존재하는, 열려 있는 존재로 나아갈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다.2) 그런 점에서 단자적 개인들 간의 익명적 소통을 꿈꾸는 상상의 공동체나, 긴장과 충돌이 공존하는 현실 속의 다양한 공동체에 대한 문학적 해석은 폭넓은 층위에서 시도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공동체와 소통의 상상력이 의미하는 새로운 서사의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권여선과 윤성희, 김미월의 소설을 살펴보고자 한다.3) 이들의 소설은 불안의 시대에 등장한 문학 속의 공동체와 소통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라고 할 수 있다. 권여선의 소설이 일상의 허위감각을 예리하게 투시하면서 친밀성의 영역에 잠복한 성차의 위계관계를 드러낸다면, 윤성희의 소설은 가족공동체의 쇠락을 보상하는 새로운 익명의 공동체적 유대를 꿈꾼다. 청년들의 사회적 불안과 실존을 현실적으로 묘파한 김미월의 소설 역시 세대론적 층위에서 개인과 집단의 소통관계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들 소설이 보여주는 공동체와 소통의 상상력은 문학과 현실이 관계맺는 다양한 층위를 진단하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 ‘우아한 친교’ 뒤에 숨은 그녀들의 이야기: 권여선 소설

 

권여선(權汝宣)은 개인을 둘러싼 친밀한 관계들과 그것이 야기하는 갈등의 상황을 누구보다 섬세하고 예리하게 투시하는 작가다. 그의 소설은 가족을 포함해 여성과 남성, 친구와 선후배 등 가까운 집단이 맺는 관계의 다양한 양상을 깊이있게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사랑의 탈낭만화 현상을 씨니컬하게 직시한 은희경 소설과 부르주아적 삶의 허위적 양상을 예민하게 관찰하는 정미경 소설, 소비사회의 사물화 경향을 경쾌하게 포착하는 정이현 소설의 특성들은 권여선 소설의 일정 부분과 연결된다. 더불어, 견딜 수 없는 자기갈등과 자학의 예민한 심리학은 소설사의 계보를 거슬러올라가 김승옥이나 오정희 소설의 자기해부와 만난다.

평범한 일상적 소통관계 속에 존재하는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그려내는 권여선 소설은 적대와 모욕의 인간학,4) ‘자학과 자폭’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자아탐구5)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청춘시절에 경험했던 집단적 연대와 현재의 고립된 개인 일상을 대조적으로 비춰보는 일련의 연애서사 속에 이러한 허위의식의 성찰을 엿볼 수 있다. 성차의 권력관계와 허위적 감각을 전도시키는 해석의 시선은 「분홍 리본의 시절」 「가을이 오면」 같은 수작들에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