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대녕 尹大寧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제비를 기르다』 『대설주의보』,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달의 지평선』 『미란』 등이 있음.
구제역들
1
해가 바뀌고 나서 혹한이 계속되면서 모스끄바보다 서울의 기온이 더 낮다고 방송에서 떠들어대던 날이 있었다. 그러다 구정(舊正)이 가까워지면서 예년의 기온을 회복해 낮에는 전국적으로 영상의 날씨를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예당저수지 근처에 있는 추모공원을 찾아가던 날도 추위는 어지간히 풀린 상태였다. 구정 다음날인 2월 4일이었다. 그날이 입춘(立春)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승용차 안에서 교통방송을 듣다 알게 되었다. 서울 기점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으나 차는 연속적으로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교통방송에서는 청취자를 대상으로 퀴즈를 내고 있었다.
……이 채소는 신채라고도 합니다. 12세기 중국 주나라에서는 향신료로 사용했고 조선시대에는 입춘에 이것으로 김치를 담가 임금님께 진상하였다고 합니다. 자 1번 부추, 2번 배추, 3번 갓, 4번 고추. 이 중에 정답을 아시는 분은 오십원의 유료 문자를 이용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당첨된 두분께는 귀성길에 꼭 필요한 주유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한가지 힌트를 드리면 이 채소는 여수에서 나는 것이 유명합니다. 자 다들 아시겠죠?
너는 아냐?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병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부터 마치 싸우기라도 한 듯 서로 입을 다물고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냥저냥 말문을 트기 위해 던져본 말이었다.
뭘?
신채 말이야.
낡은 형광등이 켜질 때처럼 잠시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있다가 병수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걸 지금 잡지사 기자인 나한테 묻고 있는 거야?
차 안이 지나치게 적요한 것 같아서 물어본 거다.
난 방송에서 시청자나 청취자를 상대로 내는 퀴즈를 듣고 있으면 대체로 모르모트나 원숭이가 된 기분이 들더라구. 신채(辛菜)는 매운 채소니까 갓, 여수 돌산도에서 나는 게 바닷바람을 쐬서 그런지 더 맵고 줄기가 야무지더군. 향일암 밑에 가면 식당 앞에 가판대를 내놓고 동동주 한사발에 갓김치 한줄기를 주면서 천원을 받더라구. 얘기하다 보니 먹고 싶네. 음식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지만.
24절기라는 것도 중국에서 수입한 거지?
주나라 때 농사에 참고하라고 만들었답디다. 달력도 그때 생겼고.
너는 잡다한 것을 너무 많이 알아,라고 속으로 빈정대며 나는 차창을 내리고 담배를 피워물었다. 전화가 연결된 첫번째 청취자는 신채를 부추라고 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웅얼거리며 병수가 덧붙였다.
우리 가는 길에 잠깐 태안으로 빠져 점심으로 낙지박속탕이나 먹고 갈까? 추모공원 관리소도 오늘은 문을 닫았을 게 뻔하고, 뭐 급할 것도 없잖아. 재작년에 신두리 해안사구를 취재하러 갔다가 먹어봤는데, 맑고 매콤한 게 울혈진 속이 확 풀리더라구.
두번째 전화가 연결된 청취자는 신채를 고추라고 했다. 자신을 이십대 후반이라고 밝힌 그녀는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방송 진행자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고추도 매운 채소니까 정답에 근접한 셈이었다.
근데 형, 방금 방송에서 입춘이라고 했어?
갑자기 병수가 표정을 우그러뜨리며 스마트폰을 꺼내 뒤적거렸다.
이런, 제기랄. 오늘 약속 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러게 이 여자는 날짜를 잡아서 얘기해야지, 지가 무슨 조선 아녀자라고 입춘에 사람을 만나자고 그래. 달력을 봐도 숫자 밑에 겨우 개미새끼만한 글자로 박혀 있는 게 절기잖아.
무슨 약속인데 그래?
됐어,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 근데 어떡하지? 오후 2시에 소백산 비로봉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제 세시간밖에 안 남았네. 그러니까 추모공원인가 뭔가는 다음주에 가자고 했잖아. 지금 도로 막히는 것 좀 보라구.
이미 병수에게 말했으되 다음주는 내가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주말에 회사 직원연수회에 들어가야만 했다.
소백산이면 경북 영주에 있는 건가? 부석사, 소수서원…… 전에 희방사에서 누군가를 만나 희방사역에서 헤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이 나는군. 여름비가 종일 주룩주룩 내리던 날이었는데.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며 병수가 물어왔다.
그게 누군데?
됐어, 얘기하고 싶지 않아. 네가 먼저 털어놓으면 모를까.
혹시 희방사역 근처에 여관이나 모텔 있어?
왜, 거기서 하루 기다리게 하려고? 글쎄,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당최 그런 곳엔 취미가 박약해서.
박약? 그게 그런 데 쓰는 말이야? 그나저나 무슨 방법이 없을까. 근 일년 만에 해후하는 건데.
처녀, 유부녀, 이혼녀, 어느 소속이냐? 대학 등산반 동기는 아닐 테고.
왜, 유부녀나 이혼녀면 안돼?
나는 쿡쿡거리고 웃었다.
조합에 따라 함수관계가 달라지잖아. 그만하자, 부모 묏자리 보러 가는 길에 이런 얘기는 짐짓 삼가는 게 우월하겠지.
우월? 기가 찬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고 나서 병수는 외면하듯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2
누나에게 전화가 걸려온 것은 구정을 일주일 앞두고서였다. 연락을 한 이유는 교통도 복잡한데 구정에 굳이 내려올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보름 전 아버지가 심혈관 확장 수술을 받아서 다녀온 터였다. 오년 동안 벌써 네번째 받는 수술이었다. 그때마다 누나는 환자의 보호자이자 총무가 되어 나와 동생에게 일정하게 수술비를 갹출했고 이런저런 갈무리도 도맡아 처리했다. 부모와 지근거리에 산다는 게 누나에게는 일종의 업이었다. 나와 병수는 처지가 다르면서도 한결같이 부모에게는 무관심했다. 병수는 어렸을 때부터 막내로서 받을 수 있고 또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뻔뻔히 누리며 살아왔음에도 어느 누구에게든 부채감 따위는 눈곱만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성격이 곧 기득권이라는 것을 나는 병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부모, 특히 아버지와는 불혹을 넘긴 지금까지도 늘 적대관계를 유지한 채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하필 가계가 어려울 때마다 부모와 나는 내 장래 문제를 놓고 심각하게 대립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부모의 뜻을 어겼으면서도 나는 좀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었던 이유를 곧잘 부모와 연관시켰다. 훗날 부모에 대한 이런저런 책임을 느끼고 싶지 않아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 속내를 알았던 것일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몇번인가 낭떠러지 끝에 위험천만하게 흔들리며 서 있을 때도 부모는 으레 방관하거나 고의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