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이집트의 새로운 소설
도시의 변화와 서사형식
싸브리 하피즈 Sabry Hafez
영국 런던대학 아시아・아프리카대(SOAS) 현대아랍문학 및 비교문학 교수. 저서로 The Genesis of Narrative Discourse, The Modern Egyptian Short Story 등이 있음.
기획의 말
2010년 12월 17일 튀니지에서 촉발된 시민혁명이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재스민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이 연쇄반응적 시민봉기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해석작업도 나라 안팎에서 활발하다. 본지는 우리 나름의 대응으로서 싸브리 하피즈의 평론 「이집트의 새로운 소설: 도시의 변화와 서사형식」을 싣는다. 국내의 독자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싸브리 하피즈는 현대아랍문학과 비교문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아랍권 문학을 서방독자에게 심층적으로 소개해온 활동으로도 성가가 높다. 「이집트의 새로운 소설」에서도 그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작금의 북아프리카 및 아랍세계의 시민혁명이 평지돌출의 사건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모순들이 축적되고 확대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사태임을 1990년대 중반 무렵에 대거 등장한 이집트—이집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신예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아랍세계의 시민혁명을 한발 앞서 문학비평으로 예감한 듯한 느낌마저 주는 이 글은 90년대 작가들의 작품이 이집트 사실주의문학은 물론, 서구문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모더니즘문학과 어떤 의미에서 구분되는가를 상세한 작품분석을 통해 예시한다. 또한 원초적 폭력, 좌절과 소외, 삶의 방향상실 등으로 점철된 이들 작품의 철저한 전망부재가 어떤 맥락에서 현실변혁을 추동하는 민중의 잠재력과 연관될 수 있는가를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하피즈의 이러한 비평은 이집트 카이로라는 역사적 시공간에 대한 통찰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카이로의 연조가 상이한 도시들과 서사형식의 상동관계를 추적한 대목이다. 글쓰기의 내용 및 형식을 물리적 환경과 함수관계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저자의 철학이 엿보이기도 하는데, 단적인 예로 마구잡이로 개발되어 온갖 종류의 ‘막다른 골목들’을 양산한 카이로의 무계획도시와 90년대 신예작가들의 어지럽고 봉쇄된 서사구조의 상동성(相同性)을 짚어내는 해석이 그렇다. 결론의 마지막 문장, 즉 “‘폐쇄된 지평의 소설’은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낸 장르인 것이다”가 간명하게 집약하고 있듯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현재 이집트 상황에서 분투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그런 현실상황을 충실하게 사실적으로 반영하는 동시에 기존 소설미학에서도 탈피한 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논점이다. 이렇게 보면 이집트의 젊은 작가들이 검열받고 판금되고 또 해외로 망명하는 일련의 사태도 문학의 ‘살아 있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반증이다. 「이집트의 새로운 소설」에서 촛불항쟁과 용산참사의 기억이 생생한 오늘의 한국문학을 떠올리는 것도 바로 그 살아 있음을 증언하는 저자의 메씨지가 실감나기 때문이다. 끝으로 번역을 맡아준 이일수 교수와 감수에 애써준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께 감사드린다.
유희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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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아랍세계의 정치·문화적 중심지였던 카이로는 이제 이 지역의 사회적 정화조 비슷한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 거대도시의 인구는 약 1700만명으로 불어났고, 그 절반이 구시가지와 식민지 시절의 구역을 에워싸며 마구잡이로 늘어선 판자촌에 거주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정권의 자유화정책—인피타흐(infitah) 혹은 개방정책—은 개발주의모델의 붕괴, 심화되는 농업위기 및 가속화된 이촌향도(離村向都)와 맞물려 프랑스인들이 ‘버섯도시’라고 명명한 드넓은 지역을 만들어냈다. 아랍어로 알-마둔 알-아슈와이야(al–madun al–ashwaiyyah)로 불리는 이 지역은 ‘무계획도시’로도 풀이될 수 있다. 여기서 뒷 단어 알-아슈와이야의 어근은 ‘우연’을 뜻한다. 이 지역은 국가가 값싼 영구임대주택 공급을 포기한 후에 개발되었고 이 땅을 넘겨받은 민간개발업체들은 고수익을 창출하는 중산층 또는 준상류층을 위한 집을 짓는 데 주력했다. 빈민계층은 이 사태를 자기 힘으로 해결하고자 했으나 결과는 형편없었다.
지난 30년간 이집트 도시팽창의 60퍼센트는 ‘무계획 거주지’가 차지한다. 이 구역들은 가장 기본적인 상하수도시설이 부족하다. 도로는 응급차량이나 소방차가 드나들 만큼 넓지 못하고 어떤 곳들은 고대도시 메디나의 골목길보다 비좁다. 건물이 아무렇게나 늘어서 있는 탓에 막다른 골목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사전계획이 허술하고 택지가 부족한 탓에 녹지나 광장이 들어설 틈이 전혀 없다. 이 지역의 인구밀도는 슬럼가 기준으로 봐도 지나치게 높다. 인구과밀—어떤 동네는 방 하나에 일곱명이 사는 식으로—은 정상적인 사회적 경계를 붕괴시키기에 이르렀다. 온식구가 단칸방에 살다보니 근친상간이 만연했다. 과거에 근절되었던 질병들, 예컨대 결핵이나 천연두가 지금 퍼지고 있다.1)
1990년 이후 성년이 된 세대는 삼중의 위기, 즉 사회경제・문화・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이집트 인구는 1980년 이래 거의 두배로 뛰어 2008년에 8100만명이 되었는데도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예산은 전혀 늘지 않고 있다. 문맹률이 솟구쳐 학교는 재정지원이 절실한 상태다. 학생이 과밀한 대학에서 저임금 강사진은 학점을 높여주는 댓가로 학생들로부터 돈을 갈취하여 소득원으로 삼는다. 건강, 사회보장, 산업기간설비, 교통 같은 다른 공공써비스 부문도 나을 것이 없다. 도적떼 같은 지배계층과 그 패거리가 자행하는 공공부문의 약탈로 인해, 사회구조는 일그러지고 공룡에 비견될 괴물 형상—하나의 작은 머리, 즉 엄청난 부를 소유한 소수의 상류층이 끝없이 몸집을 불려가는 빈민층과 불만세력 위에 군림하는—이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청년실업률은 75퍼센트를 넘어섰다.
한편 문화부문은 편협한 전시주의적 무대로 변질되었고, 공적 검열관들—문화부 장관으로 장기 재직한 파루크 후스니(Farouk Husni, 2011년 시민혁명 직후 물러남—옮긴이)가 대표적이다—과 특히 의회와 상업성 신문에서 자임하고 나선 사적 검열관들이 장악하고 있다.2) 정치부문의 경우, 198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긴급조치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부패한 의회가 매년 어김없이 갱신하고 있다. 악명높은 이집트의 수형제도는 ‘특별송환법’(테러혐의자 등을 고문 등이 가능한 국가로 무단 이송하는 미 CIA의 조치—옮긴이)을 따르는 미국과 영국, 여타 유럽 국가의 국민들에게도 적용돼왔다. 1979년 사다트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에 일방적으로 합의한 이래 이집트 국민의 정서는, 외세와 결탁하여 미국과 이스라엘이 행한 최악의 잔혹행위, 그리고 그에 따른 전쟁—레바논 침공, ‘사막의 폭풍’ 작전,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점령—을 ‘사실상’ 지원해온 정치적 지배집단으로부터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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