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李鐘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제32대 통일부 장관 역임. 저서로 『조선로동당연구』 『분단시대의 통일학』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 『북한-중국 관계: 1945~2000』 등이 있음. leejong@sejong.org
젊은시절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결심했을 때만 해도 동북아정치학을 공부하리라 마음먹었다. 동북아정치가 무엇인지 머릿속에 제대로 그리지 못했던 시절이었지만, 공부를 하다보니 동북아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한국정치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정치를 공부하다보니 곧 우리 삶의 질곡 그 자체인 분단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정치를 논하는 것이 너무 허구적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북한과 남북관계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뒤 20년간 동아시아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부족한 학문적 소양 덕에 연구영역을 북한-중국 관계 이상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연하게 찾아온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의 공직생활이 다시금 나를 동북아로 안내했다. 참여정부는 인수위 때부터 국가안보전략을 짜면서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번영이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는 인식을 가졌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정착과 평화번영의 동북아 실현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비록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시행착오도 있었고 부족한 점들도 있었지만, 공직생활2) 내내 북핵문제, 한미관계, 한중관계, 한일 역사문제 등을 주요 과제로 다루면서 이러한 정책방향이 정당했음을 깊이 느꼈다.
연동하는 동북아, 요구되는 새로운 전략
백영서(白永瑞)의 표현대로3) 확실히 동북아(동아시아)는 긴밀하게 연동중이다. 현상적으로 나타난 그 연동의 모습은 천안함사태나 ‘중국위협’론이 오끼나와에서의 미군기지 이전 반대운동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처럼4) 대체로 부정적이다. 아직도 냉전의 잔재가 도처에서 이 연동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의 해체는 이 연동의 에너지를 갈등과 대립에서 평화와 협력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예컨대, 분단체제 극복을 향한 남북한의 노력이 성과를 거둘 때마다 그것은 동아시아 곳곳에 화해와 협력의 파장을 일으킨다. 거꾸로 동아시아에서의 평화 증진은 군사적 대치뿐 아니라 정치, 이념, 경제 등에서 대결적・대립적 측면이 매우 큰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동아시아 협력과 통합의 노력이 이 지역의 제반 가치와 질서가 일정하게 공존하고 나아가 수렴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남북간 대립・대결적 요소들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 있는 기회를 맞는 것이다.5) 현재로서는 분단한국과 동아시아의 연동이 냉전회귀적 상호작용이 될지 아니면 협력과 공동체 지향으로 힘을 발휘할지 미지수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로 방치될 사안이 아니라 우리가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문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공직에 있으면서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번영을 동시적으로 사고하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계기는 냉전의 해체와 함께 찾아온 중국의 성장이었다. 경제 분야만 살펴보아도 중국의 성장이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2008년말 기준으로 동북아 주요 국가들 간의 교역관계를 살펴보면 한국의 수출대상국 1・2・3위가 역내국가인 중국・미국・일본이며, 일본 역시 수출대상국 1・2・3위가 중국・미국・한국이다. 중국은 수출대상국 중 미국・일본・한국이 1・2・5위를 차지했다. 지리적으로 동북아 밖에 존재하지만 동북아국가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수입대상국 1・4・7위가 중국・일본・한국이었다.6) 이처럼 동북아 역내국가간 경제교류는 엄청난 활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교류의 활력은 경제를 넘어 사회・문화・인적 교류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새로운 변수는 중국과의 협력이다. 한국경제의 경우, 중국이 세계시장의 또다른 축으로 부상하면서 대중(對中) 의존도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현재 중국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가 되었으며, 이로써 기존의 한미동맹 중심의 대외전략마저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표 1> 한국의 중국, 미국, 일본에 대한 수출입 비중 추이7)
<표 1>이 보여주듯이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8)의 대중수출 의존도는 2005년에 21.8%였으며 2010년에는 25%에 달해 미국, 일본, 유럽에 대한 수출을 합한 규모보다도 컸다. 탈냉전 초기인 1990년 대미수출이 29.7%였던 데 비해 대중수출은 0.9%에 불과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한중 경제관계가 얼마나 급격하게 발전해왔는지 알 수 있다.
일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98년 일본의 총수출에서 중국에 대한 수출이 차지한 비중은 5.1%였던 데 비해 2010년에는 그 비중이 19.3%로 늘어났다. 대중수입은 같은 시기 13.1%에서 22.1%로 늘어났다. 이는 일본의 대미무역 총량의 거의 두배에 달하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한국경제는 교역상대국이 불공정행위를 했다고 판단될 경우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보복이 가능하게 돼 있는 미국의 ‘슈퍼 301조’의 위력 앞에서 공포에 떨던 과거가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1990년대 초반 미국 의존도에 버금가고 있으며 이 비중은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1990년대부터 우리에게 최대의 흑자시장이 되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