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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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설 金異說

1975년 충남 예산 출생. 200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경장편소설 『나쁜 피』,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음. im2seol@hanmail.net

 

 

 

부고

 

*

 

역한 비린내가 났다. 정액 냄새라고 생각했는데, 비 때문이었다. 창턱이 빗물로 흥건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네 엄마가 죽었다.

엄마는 담담했다. 아버지가 같이 오라신다. 나는 팬티를 입는 상준을 쳐다봤다. 와이? 상준이 소리를 내지 않고 물었다. 내 표정이 이상했는지, 상준이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무슨 일이니?

“엄마가 죽었대.”

상준이 나를 껴안았다. 맨살에 닿는 상준의 몸은 여전히 뜨거웠다.

“슬프겠다, 은희.”

엄마는 지난 이태 동안 식구들의 짐이었다. 당뇨 후유증으로 온몸이 썩어들어갔다. 시력을 잃고 다리를 절단하고도 생을 연명했다. 나는 슬프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엄마가 죽은 거니?”

죽은 엄마는 나의 생모였다. 부고를 알린 건 나를 키워준 엄마였다. 나는 바닥에 벗어놓은 티셔츠를 입었다.

“커피 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다음날까지 보내야 할 논문을 아직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이미 한번 미룬 원고였다. 한글 창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는 원용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엄마가 죽었다는 말을 못했다. 내게는 살아 있는 엄마도 있다. 설명하자면 길었다.

—너 아니고도 사람 많아.

—일주일만 미룰게요.

—이 바닥 좁다 너.

제 할말만 한 원용 선배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상준이 커피를 내밀었다. 어떻게든 일을 마쳐야 했다. 원용 선배의 눈 밖에 나면 안되었다. 원용 선배만큼 대필 논문을 대줄 사람이 없었다. 상준이 방문 앞에서 말했다.

“혼자 있고 싶지? 난 내 방으로 갈게.”

“아버지가 같이 오래.”

“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준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국 장례식은 어렵지?”

“예전에는. 지금은 병원에서 하니까 그냥 있으면 될 거야. 사실, 나도 잘 몰라.”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가 죽었는데 일을 하겠다고? 슬퍼서 그러는 거니?”

“원고 못 보내면 돈 못 벌어. 단순한 이치야.”

“이치?”

“단순한 원리, 단순한 상황이라는 뜻이야.”

상준은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쳐다봤다.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표정 같기도 했고, 이해하는 표정 같기도 했지만, 그건 너의 일이니 알아서 하라는 방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상준은 외국인처럼 보였다.

생모를 찾아 한국으로 온 게 십년 전이라고 했다. 삼년 뒤에 생모를 찾았지만 그쪽에서 재회를 원하지 않았다. 미혼모로 상준을 낳은 생모는 새 가정을 이뤄 잘 살고 있었다. 스물세살의 상준은 생모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이별을 방치한 한국사회가 더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 눌러앉았다. 스스로 납득할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상준을 만난 건 학원에서였다. 이미 외국어 강사 경력이 쌓인 상준은 한국어에 능숙했다. 나는 한번도 상준과 영어로 대화한 적이 없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상준이 자기 손에 든 커피 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상준을 향해 깍듯하게 목례를 했다. 학원의 강사들은 내게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나는 안내 데스크에서 수강신청을 받고 상담전화를 받았다. 상준은 유일하게 먼저 인사를 건넨 학원 사람이었다.

상준과 나의 유일한 공통점은 엄마가 둘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상준은 나를 이해한다고 했다. 엄마가 둘이라는 이유로 같이 사는 사람들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상준은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다. 중요한 건 너와 나가 사랑한다는 사실이야. 상준은 ‘내가’라는 말 대신 ‘나가’라고 했다. 나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한다는 말만큼은 진짜 같았다.

나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매일 마시던 커피 맛이 달랐다. 엄마가 죽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엄마는 투병중이었다. 슬플 이유가 없었다. 여하튼 남편을 떠나고 어린 나와 오빠를 버린 사람이었다. 속이 메스껍고 자꾸 생목이 올라왔다. 기분이 나빴다. 나는 논문 원고를 열었다. 근대문학사에 관한 연구였다. 마지막으로 퇴고를 한번 더 봐야 할 일이었다. 어떻게든 저녁때까지 마쳐야 했다.

 

병원 입구에서 상준은 내 팔을 붙잡았다.

“이 정도면 되니?”

귀걸이를 빼고 감색 양복을 입은 상준은 말끔했다. 서른살의 상준은 이십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준에 비하면 서른다섯의 나는 너무 늙은 여자 같았다.

장례식장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귀퉁이에 앉아 있던 엄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 영정 사진이 보였다. 젊은 여자였다. 저렇게 생긴 여자였구나. 예순이 다된 사람의 영정으로 쓰기에 마땅한 사진은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요절했다고 여길 만한 사진이었다. 어디서 저런 사진을 구했는지, 끔찍했다. 엄마셔. 상준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이런 자리에서 만나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상심이 크다니.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인터넷에서 알아온 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 앞에서도 상준은 똑같은 인사를 건넸다.

“절해라.”

아버지는 상준을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절을 했다. 자네도 하게. 상준이 어색하게 몸을 숙였다.

엄마가 밥과 국, 술을 갖다주었다.

“불쌍한 사람이라고, 아버지가 장례를 치러주자 했다.”

엄마는 상준 앞으로 수저를 놓아주며 말을 이었다.

“죽은 사람이 알던 사람들까지 찾아서 부르고 싶진 않더라.”

“잘하셨어요.”

“네가 서운할지 모르겠다만, 나는 할 만큼 했다, 은희야.”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를 때는 진심을 담은 말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의 눈가가 기미로 거뭇했다. 수저를 들었다. 국은 짜고 매웠다. 메스꺼웠던 속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

 

죽은 엄마가 집을 나간 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예닐곱살 즈음이니 기억이 있을 법한데도, 떠난 엄마의 기억은 전무했다. 대신 어둑한 방 가운데 우두커니 앉아 있던 아버지만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자다 깨 보면, 어김없이 아버지가 엄마의 빈 베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본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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